'어묵과 사랑에 빠진 남자'의 입에서 어묵 아닌 것에 대해 듣는 일은 쉽지 않았다. '고래사어묵'을 만드는 사하구 장림동 소재 ㈜늘푸른바다 김형광(54) 대표는 '기부', '나눔'식의 단어만 꺼내면 낯이 간지러운 듯 "별로 나눈 게 없다"며 입을 다물었다. 그전까지 새로 개발한 메뉴, 새로 발명한 기계에 관해 얘기하며 신나 어쩔 줄 몰라 했던 김 대표였다. 하지만 나눔 얘기만 나오면 주문에 걸린 것처럼 입이 굳게 잠기곤 했다. "오른손이 하는 일 왼손이 모르게 하는 일, 그게 나눔 아닌가요?"
소외된 어르신·어린이 후원
사람 몰리는 행사 지원 팔걷고
세월호 사고 땐 컵어묵 2t 전달
따뜻함 필요한 곳 어디든 앞장
"특산물로 키울 제품개발 노력
지역 수산업계 발전에도 도움
부산 시민 다 함께 잘 살아야죠"
■혼자만 잘살면 무슨 재민겨
"좋은 일 하시는 걸 많이 알려야 다른 사람들도 더 많이 나눔에 동참하게 됩니다"라는 설명을 듣고서야 겨우 입에 채워져 있던 자물쇠가 풀어졌다. 그 스스로도 몇 년 전 차인표 씨가 한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하는 얘기를 듣고 마음이 동해 한국컴패션에서 아이 2명을 후원하고 있던 터였다.
"그게 십몇 년이 됐나." 직원을 불렀다. 고래사어묵에서 일한 지 몇 년이 됐느냐고 묻자 17년이 됐다고 했다. "이 직원이 양산에 있는 가온들찬빛(옛 혜성원)에 20년 넘게 봉사활동을 가고 있었는데 이 친구가 우리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 얼마 안 돼 거기 지적장애 친구들에게 어묵을 보내주자는 거예요. 이 직원한테 물 들었지. 그래서 그때부터 크리스마스나 무슨 날만 되면 몇 상자씩 보냈더니 좋아하더라고요."
그러고는 또 제품 개발하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갔다. 지론은 "일본에서 어묵이 들어왔고 우리가 그걸 어묵으로 먹었지만 이제 '피시케이크(fish cake)'로 만들어 세계로 내보내야 한다"는 것. 제품 개발에 몰두하는 이유도, 지난 2월 임대료가 비싼 해운대 해수욕장 인근에 2층짜리 직매장과 어묵 체험관을 연 이유도 그 때문이다. 실제로 관광지인 이곳 매장을 찾는 이들 상당수는 피시 케이크를 처음 맛보는 외지인, 외국인이다.
그렇다고 혼자 잘 나가겠다는 것도 아니다. "사막에 홀로 선 거목은 절대 살아남을 수 없어요. 오아시스를 만들어서 다 같이 먹고 살아야지." 그는 끊임없이 사하에 어묵빌리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실제로 지역 업체들로 어묵식품 전략사업단을 꾸려 정부로부터 60억 원의 지원을 얻어내기도 했다. "부산에 여행 온 사람들이 해동 용궁사에서 시작해서 감천문화마을까지 가서는 딱 끊겨 버려요. 장림에 어묵빌리지를 조성한다면 체험형 관광코스도 만들어지고 부산 어묵이 많이 알려지겠죠.
■어묵 국물처럼 사람 마음 데워주는 일
김 대표가 워낙 얘기를 안 하니까 직원들이 옆에 와서 '슬쩍슬쩍' 거든다. "세월호….", "아, 그거." 꼭 1년 전, 세월호 사고가 났을 때도 1t 트럭에 컵 어묵을 실어 보낸 적이 있었다. "세월호 사고가 났을 때 뭘 도울 수 있을까 생각하다 추운데 따뜻한 어묵 국물이 있으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보관 쉽고, 국물 따뜻하게 먹을 수 있고 한꺼번에 끓여 먹을 수도 있는 컵 어묵을 50박스인가 보냈을 거예요. 근데 얼마 후 시청에서 전화가 온 거예요. 뭘 보냈길래 팽목항에서 그걸 다시 좀 더 보내달라고 하냐, 난리가 났다며 빨리 좀 더 보내 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 길로 1t 트럭에 한 차 가득 실어서 직접 갖다 줬죠."
'어묵 국물'이 필요할 것 같은 곳에는 누가 말하지 않아도 먼저 나선다. 제야의 종소리 타종 행사를 할 때도 추운 겨울 떨고 있을 사람들을 떠올리며 어묵을 보내고 북극곰 수영대회에서도 추운데 떨고 있을 사람들을 떠올리며 1천만 원어치 어묵을 보내주기도 했다.
최근에는 감천문화마을에서 주민들이 직접 고래사어묵을 팔고 싶다며 제안을 해왔다. 사실 대부분 제품이 수제여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까지만 하고, 사업을 더는 확장하지 않으려는 게 김 대표의 마음이지만 사하구를 찾아주는 사람들에게 사하 음식을 선물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겠다 싶었다. 선뜻 1억 원가량의 비용을 들여 판매할 수 있는 매장을 만들어줬다. 수익금은 감천문화마을 주민들이 가져갈 수 있는 형태로 했다.
고구마 줄기 캐듯 하나하나씩 사연들이 올라왔다. 지난해에는 가야벽산아파트 노인정에 냉장고 1대와 어묵 20박스를 선물해드리고, 명절에는 쓸쓸히 명절을 보내야 하는 홀로 계신 어르신 200여 분에게 어묵을 보내드리기도 했단다. 2013년부터는 어린이재단에 매달 42만 원씩을 후원하며 사하구에 있는 소외된 아이들을 돕고 있기도 하다.
장인어른이 하고 계시던 업체를 물려받은 지 23년. 꽤 큰 어묵업체로 성장을 했음에도 기부나 나눔을 체계적으로 해온 것은 아니었다.그러나 앞으로는 따뜻한 어묵 국물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데워주는 일을 어묵 사업단 차원에서 함께 하고 싶다고 했다. "국가의 지원을 받아서 수익을 남기는 건데 당연히 사회 환원이 돼야죠." 앞으로의 계획에도 고래사어묵만이 아닌 어묵단의 계획이 들어 있었다. 가까이는 부산역과 공항 등 관광객들이 많은 곳에 어묵 사업단이 함께 들어가 매장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또 '어묵 벤또'를 부산의 대표 도시락으로 만들어보겠다는 야무진 꿈도 있었다.
"우리나라 수산가공률이 얼마인지 아세요? 10마리 잡으면 3마리 정도 밖에 안 돼요. 일본은 10마리 중 6마리가 가공되거든요. 아이들이 그냥 생선을 먹나요? 근데 이걸 어묵으로 만들고 '어세지'로 만들고 '어묵 스시', '어꼬면'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면 잘 먹어요. 빵은 탄수화물이지만 어묵은 단백질이에요. 건강에 좋고, 다이어트에도 좋은 건 물론이고요." 고래사어묵 자랑보다 부산 어묵 자랑을, 무엇보다 수산업계가 다 같이 잘 먹고 잘사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 그였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2부 '부산 맛 기업의 사회 환원'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함께합니다.
※ 나눔 참여 문의: 어린이재단 부산지역본부 051-505-31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