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릴 것이라는 TV의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아침에 출근할 때 날씨는 멀쩡했다.
그런데, 오후 언제쯤부터 창밖에서 비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1층이긴 해도 삼면이 벽이고, 빌딩 로비층 통로가 출입문인 사무실에서는 바깥을 내다볼 수 없어서 고작 이렇게 바깥사정을 짐작하고 있다. 사실 잠시라도 창문을 열고 책상위에 놓여있는 작은 풍란이며 난 화분을 창문 옆에 내놓았더라면 어느 정도 짐작은 할 수 있었을 테지만, 일에 쫓겨서 미처 그런 생각은 하지 못했다.
아무튼 퇴근 할 때에는 우산을 들고 사무실을 나섰다. 빗방울은 제법 굵었고, 흘러내린 빗물은 아스팔트도로와 보도를 촉촉이 적시고 도로변의 맨홀을 향하여 도랑물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도시는 온통 아스팔트로 포장되거나 블록으로 포장된 곳이 많아서 비가 내려도 도대체 얼마나 내렸는지 어림을 할 수 없지만, 지난여름 내내 물이 부족해서 애태웠던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시원한 풍경이었다.
지난겨울에는 눈이 거의 내리지 않은 채 봄을 맞았지만, 비는 도통 내릴 기미를 보이지 않더니 영농 철이 되어도 마찬가지였다. 농촌에서는 물이 없어서 이앙을 할 수 없다는 아우성이 높았고, 도시에서도 곳곳에 물 부족으로 소방차가 먹을 물을 실어 나르는 모습을 TV에서도 자주 보여주었다. 심지어 댐의 저수도 부족해서 발전을 제한한다는 심각한 뉴스가 보도되기도 했다. 결국 많은 국민들은 심한 비바람과 폭우로 매년 많은 인명과 재산피해를 안겨주는 장마와 태풍까지 간절히 기다리는 상황이 되었다.
물론, 정부가 이런 상황을 모르지는 않았을 테지만, 매년 6월 하순이 되면 연례행사로 한 달가량 장마가 계속되고, 그 뒤를 이어서 두어 번은 몰아치는 태풍이 올 것이니 다소간의 수해는 감수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물 걱정은 저절로 시간이 해결해 줄 것으로 믿었는지 모르쇠로 넘기고 말았다. 아마도 정부의 그런 안일한 자세는 국민들의 많은 지지표를 깎아먹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직도 물 부족이 심하다는 사실이다. 어느 중앙일간지는 농사철이 지난 지금 전국 저수지의 담수율은 평균 16% 수준이어서 이대로 겨울을 난다면, 내년에는 물 부족으로 재앙에 가까운 대혼란을 겪게 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우리나라가 물 부족국가가 현실화 되는가 싶던 차에 비가 내리고 있으니, 얼마나 반가운지 몰랐다. 환절기가 될 때마다 이렇게 내리는 비와 함께 계절이 바뀌니, 이젠 선선하고 상큼한 바람이 부는 가을도 머지않을 것 같다. 그런데, 사무실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약20분 남짓 하는 사이에 비가 뚝 그쳤다. 비를 맞고 골목과 공원길을 가로질러가면서 무릎까지 바짓가랑이가 촉촉이 젖었어도 기분은 상쾌했는데, 그리고 함초로히 비를 맞고 있는 나무와 풀잎들을 바라보면서 저 식물들도 비 내리는 것을 좋아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순간 맛있게 먹던 케이크를 땅바닥에 떨어뜨린 것럼 아쉬움이 컸다.
지구의 온난화 현상으로 기후가 변해서 한반도도 점점 아열대화 한다고 하는데, 이러다간 우리나라에서도 머지않아 베트남이나 태국 같은 아열대국가로 변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하긴 아열대국가로 변한다면 파인애플이며 바나나 코코아가 사방에 무성해서 최소한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죽는 사람은 생기지 않을지도 모른다며 자위하기로 했다. 갑자기 내 자신이 백성을 생각하는 정치인으로 변신한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