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함양군 안의면에 위치한
황석산과 함양군 서상면에 있는 거망산은 용추계곡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에
있는 금원, 기백산과 함께 남덕유산(1508m)을 모산으로 삼고있다. 남덕유에서
남동쪽으로 뻗은 가지가 월봉산(1279m)을 거쳐 금원산-기백산으로
뻗은 것이 있고 거망산-황석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있다.
함양군 안의면의 진산인 황석산은 비수처럼
솟구친 봉우리때문에 멀리서 보아도 범상치 않은 산으로 보인다. 황석산성은
함양땅 '안의' 사람들의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중요한 유적이다. 정유재란때
왜군에게 마지막까지 항거하던 이들이 성이 무너지자 죽음을 당했고
부녀자들은 천길 절벽에서 몸을 날렸는데 우전마을과 정상의 중간에
있는 벼랑은 아직도 붉은 색을 띠고있어 '피바위'란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다.
내가 이 산을 찾게 된 것은 2003년 12월 6일.
지난 6월 중순 회사 사람들과 금원-기백산을 산행하다 맞은 편에 있는
바위봉들이 너무 멋있게 보여 "저 뾰족산을 오를 수가 있을까?"
하고 반신반의 하면서 한번 시도해 보겠다고 생각했었다.
그 사이에 다른 산들을 다니다가 12월이 되자
'눈이 오면 황석산의 등산은 어렵다'고 보고 부랴부랴 가게 된 것이다.
금년은 아직도 눈이 제대로 내리지 않은 것이 나에겐 천만다행이다.
전날부터 내리던 비는 이날 아침에도 계속 됐지만 일행 5명은 우중산행을
각오했다.
등산객이 붐비는 일부 산을 제외하곤 12월부터는
산불예방 차원에서 입산이 금지된다. 그러나 회사동료가 미리 서상면사무소에
연락하여 입산신청을 하면서 거망산을 거쳐 황석산으로 가는 등산코스를
알아 두었다. 등산지도를 보면 서상면에 있는 소로목장에서 오르는 것이
최단거리인데 등산로가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였다. 소로마을의 이장댁으로
문의하여 "길은 있다"는 답변을 얻었다.
우리 일행이 대진고속도로를 타고 서상면에
들어서서 물어물어 소로목장에 도착한 것이 11시 10분이었다. 목장옆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갔더니 저수지가 나왔고 저수지 왼쪽에 임도가 있었으나
거망산으로 가는 길은 알수 없었다. 이장댁에 전화했더니 "수문쪽으로
들어가 산의 아무 능선이나 타고 무조건 위로만 가라"였다.
우리는 이장님 지시대로 저수지 건너편의 산자락으로
들어섰다. 길은 보이지 않았다. 나무가지를 헤치며 능선에 오르자 옛날
나무꾼들이 다녔음직한 길같지 않은 길이 있었다. 이런 길도 중간 중간 끊어져
잡목사이를 뚫고 나가야 했다. 앞사람의 몸에 휘어졌던 잔가지가 제자리로
돌아오면서 얼굴을 때리곤 하여 뺨이 얼얼할 정도였다.
이슬비는 내리고 안개는 자욱이 끼어 10여m
앞은 보이지 않고 장갑은 젖어 손으 시리고. '생고생을 사서 하는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에베레스트산을 오르는 한국의 산악인들을
떠올리며 '이보다 더 악조건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도 있는데...'라고
위안을 삼았다.
1시간쯤 오르자 더 높은 곳은 보이지 않고
우리가 왔던 길외에 두갈래의 내리막 길이 나왔다. 앞쪽 길로는 아무것도
없었고 오른쪽 길로는 하얀 리본을 매어 둔 것이 보였다. 우리는 리본이
있는 길을 따라 잠시 가다가 마을로 가는 하산로 같아 되돌아 왔다.
남은 길은 하나밖에 없어 내리막 길로 직진했는데 이때 잠시 안개가
걷히면서 앞쪽 멀리 높은 산의 거대한 줄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길의 방향은 이제 확인했기 때문에 오르기만
하면 됐지만 중턱을 넘어서자 산대나무들이 촘촘이 들어서 전진을 방해했다.
대나무 잎에 있던 물기와 부식토 때문에 옷은 흙으로 뒤범벅이 됐지만
그런데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등산로가 정비된 산길이 그리웠다.
'앞으로는 절대 등산로가 없는 길은 가지 않겠다'고
속으로 다짐하면서 1시간쯤 걸었을 때 갑자기 앞서가던 동료가
"와! 다왔다"고 외쳤다. '이럴 수가! 어떻게 느닷없이 정상에
도착할 수가 있단 말인가' 의구심을 떨쳐 버리지 못한 채 고개마루를
올라서니 높이 40cm 정도의 자연석에 '거망산 1184.0m 함양군'이라고
새긴 표지석이 서있었다.
우리가 힘겹게 올라 온 거친 산치고는 정상의
모습이 너무 초라했다. 여러명이 둘러 앉아 쉴수 있는 공간도 없이 북쪽의
은신치(1163m)에서 남쪽의 황석산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불과했다. 표지석이 없다면
거망산 정상임을 모른 채 은신치쪽으로 계속 갈 뻔했다.
정상에 도착한 시간이 13시 40분이니 소로목장에서
2시간 30분이 걸렸고 6300보였다. 거망산은 6·25때 빨치산으로
활약했던 정순덕의 은거지였던 곳으로 국군 1개 소대가 정순덕에게
무장해제 당하고 목숨만 부지해서 하산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람들의 출입이 이처럼 어렵기 때문에 빨치산이 숨어들 수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망산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 우리는
곧장 황석산으로 향했다. 내리막 길을 10분도 채 걷지않아 왼쪽 용추계곡으로
연결되는 삼거리가 나왔고 이곳의 이정표에는 거망산에서 황석산까지는
4.8 km로 표시돼 있었다.
거망에서 황석으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광활한
억새밭이 강풍에 시달리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강풍이 부는 산들의 억새가
키가 작은데 비해 이곳 억새는 1m가 넘을 만큼 꽤 길었다. 능선에서는
강한 바람이 안개와 구름을 걷어 가는지 시야가 확 트이는가 했더니
갑자기 싸락눈이 얼굴을 때리는등 날씨가 변화무쌍했다.
등산로는 능선을 따라 일직선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봉우리들의 왼쪽 또는 오른쪽면에 붙어 있었는데 오른쪽면에선
태풍이 몰려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세찬 바람이 부는 반면 왼쪽면에선
바람 한 점없이 고요했다. 우리가 중간 중간에 요기를 하거나 쉴때는
왼쪽면에 있을 때였다.
황석산으로 가는 도중에 맞은 편에서 오던
40대 부부팀을 만났다. 적막한 산속에서 다른 등산객과 조우한다는
것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험한 날씨에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산을 찾는 사람이 우리말고도 있다는 것이 의외여서 우리가 인사를 건네자
저쪽편에서도 반기면서 "오늘은 우리만 등산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다른 팀을 만나다니 뜻밖입니다"라고 우리가 할말을 먼저 해버렸다.
거망산에서 1시간 50분쯤 걸었을 때 눈앞의
구름이 걷히면서 뾰족한 바위봉 2개가 나란히 보였다. 바위봉으로 곧장
갈수 있는 지점에는 '우회로를 이용하시요'라고 적힌 팻말이 있었다.
우리는 "저것이 정상인 모양인데 정상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느냐"
며 바위봉쪽으로 직진했다.
험한 바위를 타면서 중간까지는 접근했지만
로프도 없는데다 바람이 너무 강해 몸이 날아갈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여
도중에 포기했다. 우회로를 돌아오면서 "황석산은 프로들이 아니면
정상접근이 불가능하구나"며 섭섭한 마음을 달랬다.
두개의 뾰쪽봉을 지나 산성이 있는 곳에 도착하니
또하나의 높다란 봉우리가 나타났다. 어느 것이 정상인지 알길이
없었지만 이번 봉우리 역시 접근불능이었다. 수직에 가까운 바위덩어리가
"올테면 오라"는 듯이 욱박지르고 있어 우리는 "아이구!
항복입니다"하고 서둘러 산성길을 따라 내려갔다.
"이제 하산하여 목욕할 일만 남았구나"하고
걸음을 재촉하며 20분쯤 내려왔을 때 길 왼쪽편에 나무로 된 이정표가
보였다. 아니 이게 어찌 된 일인가. '황석산 정상 50m'라고 적혀 있었다.
우리는 눈을 의심하며 정상쪽을 쳐다보니 몇개의 거대한 바위덩어리가
겹겹이 포개져 있었는데 다행히 로프가 매달려 있었다.
'이게 웬 떡이냐'이냐 싶어 허겁지겁 달려가
로프를 잡고 기어 올랐다. 5명중 4명이 힘겹게 올랐는데 정상은 까딱하면
바람에 날아 갈것 같았다. 바위틈에 끼어있는 조그마한 대리석 표지석
정면에는 '황석산 정상 1190m', 옆면에는 '1991년 3월 안의호돌산악회'라고
조각돼 있었다. 시계를 보니 16시 20분으로 거망산에서 2시간 40분이나
걸렸으며 약 15000보였다.
우리는 잃어버린 보물을 되찾은 것같은 기분이
들어 뿌듯한 마음으로 하산을 했는데 우전마을로 내려오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산에서는 해가 빨리 진다는 말을 입증해 보이듯 17시가 되자
해는 보이지 않고 어둠이 서서히 주변을 덮고 있었다.
우리가 임도에 내려와 '이젠 괜찮다'고
생각했을 때 하늘에는 둥근 보름달이 떠 있어 주위를 밝혀주고 있었다.
임도는 물기를 적당히 먹은 흙길이어서 다리의 피로를 풀어주는 듯했다.
우전마을에서 1km 떨어진 임도에 대기하고 있던 차에 도착한 것이 17시
50분. 거망과 황석산을 잇는 오늘 산행에 걸린 시간은 6시간 40분에
21100여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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