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일기(19)- 역답사(상동역/밀양역)
‘밀양’(Secret Sunshine)이라는 이름이어서인지, 밀양을 방문한 날은 어제의 황사가 깨끗하게 사라진 청량하고 맑은 날씨였다. 경부선 탐사는 경북을 지나 경남으로 향하고 있다. 밀양은 이름에서 풍기는 낭만성을 현실적인 모습 속에도 그대로 담고 있는 도시였다. 화려하지 않지만 간결한 기품을 지녔고, 세련되지 않지만 소박함 속에 따뜻함을 지니고 있었다. 밀양의 두 역을 걸었다.
1. (밀양) <상동역>
상동역 앞은 적막하지도 복잡하지도 않게, 적당한 수준의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다슬기탕을 전문으로 하는 몇 개의 식당과 대중탕이 있었고 부동산 소개소가 눈에 들어왔다. 역 앞에 있는 넓은 평상은 주변 나무가 만들어낸 그늘과 함께 여행객에게 휴식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역 앞에 있는 밀양의 상징물 뒤에는 폐교가 된 <상동초등학교>의 건물이 아직도 을씨년하게 서있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초등학교는 사라지지 않고 반대쪽에 새롭게 건축되어 싱싱하고 앳된 얼굴로 반겨주었다.
역 앞에서 조금 더 걸어 나가자, 온통 장미꽃이 넘실거린다. 상동의 ‘장미꽃 축제’가 시작된 것이다. 밀양강을 따라 조성된 ‘수변길’은 붉은 색 장미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꽃은 이어지고 꽃과 강이 흐르는 길 주변은 풍요롭고 평화로운 산들이 둘러 쌓고 있다. 산과 강 그리고 꽃의 절묘한 조화가 이어지는 시간이자 공간이었다. 장미길이 끝나자 연결되는 도로는 철길을 따라 걷는 코스였다. 가로수와 장미꽃 그리고 열차의 길이다. 최근 방문한 역 중에서 역 주변을 산책하기에는 영동의 <황간역>과 함께 베스트 역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직은 바람이 서늘하여 태양과 바람, 물과 꽃이 주는 즐거움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약 3시간 정도의 답사를 마치고 열차 시간이 남아 나무그늘 아래 평상에서 아무 생각없이 ‘멍때리는 시간’을 가졌다. 따뜻한 기운 속에서 설핏 낮잠이 들었다. 혼자 여행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역이다.
2. 밀양역
밀양은 과거 ‘표충사’와 ‘얼음골’을 방문하기 위해 찾은 적은 있지만, 시내까지 들어오지는 않았다. <밀양역>은 리모델링 작업이 한창이다. 밀양역 앞에 있는 관광안내소 직원의 안내를 받아 도심을 흐르는 밀양강과 3대 누각 중 하나인 ‘영남루’를 보기 위해서 출발했다. 역 주변은 조금 낡았고 상업시설도 문을 많이 닫았다. 조금은 활력을 잃은 듯한 도심이었다. 과거 영화 <밀양>을 촬영했다는 카페 앞에는 밀양의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영화 <밀양> 속 도시의 모습도 그다지 아름답지만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조금 더 걸어가자, 밀양의 인상이 바뀌기 시작한다. 강 주변에 만들어진 가로수로 이어진 수변 숲길은 어떤 지역보다 풍요롭게 도심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여유를 즐기고 있다. 주말까지 <밀양 아리랑 축제>가 있었나 보다. 꽃들이 치워지고 시설물 철거로 사람들이 바쁘다. 멀리 <영남루>의 웅장한 모습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였다. 모든 건축물은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넘어, 주변 경관과 얼마나 어울리는가에 따라 미학적 가치는 더 커지고 평가받는다. <영남루>는 그런 점에서 강과 최상의 어울림을 지닌 건축물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역 앞의 한산함과 달리 영남루 주변 도로는 차로 넘친다. 이곳이 밀양의 중심인 것이다.
밀양의 느낌이 좋은 것은 지나치게 도시적이지 않은 소박한 인상 때문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강 중심을 흐르는 밀양강의 여유로움과 그것을 응시하고 서있는 누각의 위엄이 도시의 격조를 높여준다. 애수와 깊은 슬픔의 정조를 지닌 다른 지역의 아리랑과는 대비되는 경쾌한 흥을 지니고 있는 <밀양 아리랑>의 곡조도 이 지역의 특별함에 한몫할 것이다. 밀양의 중심에는 과거 역사의 흔적을 따라 걷는 코스가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다시 한번 방문할 주제를 발견했다.
첫댓글 - 고속열차와 아리랑 그리고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