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에 귀의합니다.
오늘 아침에 흰 눈이 펑펑 오는 것 보셨습니까? 굵은 눈이 정말 먹음직스럽게 퍼얼펄 휘날리는 것을 보니, 솜사탕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요즘 전 건강을 위해 보약을 먹고 있습니다. 하도 피로가 풀리지 않아, 나름대로 용하다는 한의원에 가 진맥을 한 결과 에너지를 소진해서 몸에 기운이 남아있지 않다고, 각종 금지식품 목록과 하지 말아야 할 일, 해야 할 일을 의사선생님께 찬찬히 지시받은 후에 그 좋아하던 커피도 "안녕... 다시 만날 때까지"입니다. 과자도, 거의 매일 사먹던 붕어빵도 모두 잘 있어라.
항상 그 곁을 지날 때마다 도대체 뭘 팔길래 이렇게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는지가 궁금한 떡볶이 집이 안국동 정독 도서관 입구 근처에 있었습니다. 가게 이름은 '먹쉬 돈나'입니다. 고대하던 눈이 내린 기념으로 친구에게 전화를 합니다. "떡볶이 먹자, 나와라." 생전 얼굴 볼 틈을 안준다며 타박만 먹는 제가 간만에 나오라한 약발인지 겨우 떡볶이가 뭐냐며 궁시렁대는 친구는 그래도 택시를 타고 나왔으니 "不亦樂乎"아. 둘이 긴 줄의 끝에 가서 섭니다. 여기서부터 기다리면 한시간 반 내지 두 시간이 걸린다나요.
오늘 날씨 참 추웠습니다. 전 '미안하다. 사랑한다'했던 친구도 한 시간을 기다리지 않았던 몰인정한 인간인데, 떡볶이 먹으려고 꼬박 바깥에서 줄서서 두 시간을 손을 호호 불면서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차례가 되어 떡볶이 집 문안에 들어서게 되었을 때의 감격이라니... 마라톤 완주 테잎을 일착으로 끊은 듯이 커다란 기쁨, 이제 먹을 수 있게 되었군요.
해물 떡볶이에 치즈 떡볶이를 시키고, 계란과 만두 사리를 추가하고, 매운 떡볶이를 연신 찬 물을 마셔가며 잘 먹다가 시몬느 베이유라는 철학자가 이런 말을 했던 것이 언듯 떠올랐습니다. 인간은 배고플 때 계란 하나를 배급받기 위해 아홉 시간 줄을 서서 기다릴 수 있으나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그런 노력을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는 요지의 말로 기억합니다.
저라는 인간은 길가다가 성업중인 음식점을 보고는 "언젠가 저기 가서 나도 꼭 먹어야지," 결심도 잘하고, 실행에도 잘 옮기는데, 가까운 사람이 선행을 하는 것에는 무척이나 둔감하고, 사지육신이 멀쩡한 중증 장애인처럼 심봉사도 아닌데, 두 눈이 다 감겨있어 봐도 못 본척도 잘 하고, 헬렌켈러처럼 들리지도 않고, 입도 안 떨어지고, 그저 내 한 몸, 내 한 입, 내 가족만 챙기다 그렇게 이기적인 생을 마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쓰나미처럼 스쳐 지나 갔습니다. 떡볶이 먹으려던 끈기와 인내만 있으면 뭣을 못하리오마는, 저급한 수준의 은근과 끈기는 충천하되 상위의 목표로 진입하기에는 맥없이 근기탓만 하고 있는 배는 부른데 머리는 빈, 이상 여의주였습니다.
내일부터는 추워진다네요. 모두들 옷 든든이 입고 감기 조심하십시오. 합장하고 물러갑니다.
첫댓글 여의주님,, 그 떡복이 나도 꼭 한번 먹어보고싶네요. 나는 그런것에 사는 재미를 느낀답니다. 그리고 그런 제 모습에 매우 만족합니다. 그러고도 별 문제의식을 못 느끼며 살았는데...이제 한번 느껴볼까나...게시판에서 뵈니 반갑습니다. 자주 오세요.
여의주, 휘파람님 모두 반가와요. 지금 눈이 내리고 있네요. 음식점앞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면 언젠가 저 대열에 합류해서 먹어봐야지 하는 마음 동감합니다. 한번 그곳에 가면 들러봐야 겠네요 한약 잘 먹고 튼튼한 몸으로 만나요 내일은 더 춥데요 감기 조심하세요
'먹쉬돈나'는 떡볶이 집 상호로 '먹고, 쉬고, 돈내고, 나가라'는 심오한 뜻이 들어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