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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몸은 무엇으로 되어 있는가 - 오행과 오체(五體)
몸은 크게 나누면 근육과 피와 살과 피부와 그리고 뼈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들은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몸을 이루고 있는데 이것 또한 오행에 속한다.
목(木)의 간과 담은 근육을 주관하며, 화(火)의 심장·심포와 소장·삼초는 몸의 피를 담당하고 있고, 토(土)인 비·위는 살을, 금(金)인 폐와 대장은 피부를, 수(水)인 신장과 방광은 뼈와 골수를 주관한다.
즉, 운동을 하다가 근(筋)이 늘어나는 경우에는 간을 의심해야 할 것이다. 간 기능이 떨어지지 않고서는 저절로 근육이 다치지 않는다. 다리가 접질릴 때 그 부위를 살펴보면 대체로 바깥 복숭아뼈 아래 담경이 지나는 곳이다. 간과 담에 이상이 있음이 틀림없다. 재수가 없어서 삐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간과 담에서 몸에게 주의하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파스와 찜질로 당장 아픈 증세는 가라앉지만 기울어진 간담은 어떻게 일으키겠는가. 간의 허실을 파악해서 조화롭게 해주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피에 대한 질병이 요즈음은 골칫거리이다. 고혈압, 동맥경화, 협심증, 모두 피와 연관된 질병이다.
피를 주관하는 것은 오행으로는 화이고 몸에서는 심장과 심포로 나타나므로 당연히 심장과 심포의 기맥이 선택되어야 할 것이다. 생리불순이나 코피가 자주 나는 질환도 모두 피와 연관이 있는 증세로 소장, 삼초 또는 심장과 심포의 경락을 취해서 허실을 조정한다.
살이 보기 싫을 정도로 쪘거나 반대로 걱정할 정도로 살이 말랐다면 비장을 의심해야 할 것이다. 말 그대로 비위가 상해서 못 먹으면 살이 자연히 빠질 것이고, 반대로 비위가 너무 좋아 아무거나 잘 먹으면 살은 자연히 찔 것이다. 쪄도 좋고 말라도 좋지만 적당한 몸매는 그 사람에게 멋을 더할 것이다. 그러나 멋 내기 위해서 살을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비·위의 건강이 몸의 건강과 직결되므로 살은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을 척 보았을 때 말랐다면 그 사람은 비·위에 문제가 있다. "위장병을 앓고 계시군요." 또는 "소화력이 신통치 않군요." 하고 말한다면 "어떻게 그것을 아느냐."고 반문한다. 오행을 알고 그 오행이 우리 몸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만 알면 반쯤은 한의원 원장님이 된다.
폐와 대장이 피부를 다스린다고 하면 서양의학을 전공한 사람은 아마 웃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장이 나쁜 사람 치고 피부가 아름다운 사람은 없다. 대변의 독이 흡수되면 결국 간에서 부담을 느낄 것이고, 그 독이 해결되지 못하면 얼굴이고 어디고 가릴 것 없이 몸의 피부로 올린다. 식중독에 걸렸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두드러기가 나는데, 해독되지 않아 피부로 표출하는 것이다. 아름다워지고 싶어하는 여성들은 우선 대장의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
건강한 대장에 건강한 얼굴이 있다. 얼굴에 화장품만 바른다고 맷돌이 차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노인들이 뼈가 부러지면 잘 붙지 않아 말년에 심한 고생을 한다. 신장이 골수를 담당하는데, 이제는 노인이 되어 신장의 기운이 떨어져 정력이 없다. 그러니 뼈인들 잘 붙겠는가? 이빨도 뼈에 속하며 신장에서 다스린다. 그런데 치과에서 썩었다고 이빨을 뽑자고 하면 쉽게 이빨을 내어 주는데 뼈를 뽑는 것과 같다.
"다리뼈가 썩었다고 뽑아 내야 한다"고 하면 울고불고 그럴 수 없다고 난리를 칠텐데, 이빨을 뽑자고 하면 당연한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빨을 오복의 하나라고 했다. 뼈를 뽑아서는 몸이 무너진다. 가능한 한 이빨은 뽑지 말고 살려야 한다. 뽑을 때는 적은 돈이, 낄 때는 많은 돈이 든다. 뽑으면 끼어야 하고, 끼면 돈을 벌기 때문에......^^*
뼈를 다스리는 동력은 신장에서 나오는 정력이다. 정력은 말 그대로 힘인데, 이것을 때도 안 가리고 함부로 쓴다면 곧 고갈되어 힘을 못 쓸 것이다. 고요할 수 있는 힘, 참을 수 있는 힘, 이것이 가정을 지배하는 힘이고, 나아가서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 된다.
정중동(精中動). 동양을 이끌어온 이 힘을 신장(腎臟)의 힘이라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표현일까?
(2) 어떤 것을 먹어야 하나 ? -음식과 맛의 오행
(가) 음식과 다섯 가지 맛
오미자라는 열매가 있다. 다섯 가지 맛을 내는 열매라는 뜻이다. 신맛, 쓴맛, 단맛, 매운맛, 그리고 짠맛이 고루고루 섞여 있어서, 이렇게 보면 이 맛 같고 저렇게 생각하면 저 맛 같기도 하다.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은 다섯 가지 맛으로 분류된다. 다섯이면 바로 오행이다. 먹는 음식도 오행의 원리에 따라서 우리 몸을 돕는다.
서양식 사고라면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혹은 비타민 등의 영양소가 어디에 많이 들어 있나를 따지지만, 우리 식은 그 맛을 보고 어느 장부에 이로울까를 결정한다.
적당한 신맛은 간을 이롭게 하고, 쓴맛은 심장에, 단맛은 비장에, 매운맛은 폐에, 그리고 짠맛은 신장을 이롭게 한다. 식초를 먹으면 뼈가 부드러워져 기계체조를 잘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식초를 먹으면 뼈가 어떻게 부드러워진다는 것일까? 뼈가 대나무처럼 휘었다가 다시 원위치로 돌아온다는 것일까?
신맛은 간을 자양하며 간은 근(筋;힘줄)을 주관하므로 식초를 먹으면 힘줄이 단단해져 다치지 않고 공중재주를 잘 넘을 수 있다. 즉 뼈가 부드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힘줄에 탄력이 생긴다. 요즈음 구연산이라는 식품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말 그대로 신맛을 내는 식품이다. 간기능이나 위장질환에 이용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은 옛부터 신음식을 잘 만들어 먹었는데 그것이 바로 김치이다. 김치는 훌륭한 음식으로 고춧가루가 들어가니 매운맛이 있고, 소금에 절이니 짠맛이 있으며, 김치 자체는 땅에서 길러지므로 단맛이 있고, 거기에 발효시켜 먹으니 신맛이 가미돼 우리의 오장을 자양하는 데 손색이 없다. 요즘은 김치가 세계로 수출된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다.
5월 단오 때에는 어머니가 익모초를 찧어 새벽 서리를 맞혀서 자녀를 깨워 공복에 마시게 했다. 익모초, 생각만 해도 끔찍할 정도로 쓴 약인데 왜 이것을 어머니는 자식에게 먹이려고 했을까. 쓴 게 약이라는 말이 있듯이 쓴맛은 심장을 튼튼히 한다. 쓴맛은 몸의 열을 조정시켜 심장의 기능을 조정하므로 여름에는 쓴 음식을 먹어야 더위를 이기게 된다.
화생토(火生土)의 원리를 생각해 보면 화가 안정되므로 당연히 토가 정상이 되는 경우이다. 그래서 어머니들은 자녀가 여름에 밥맛이 없을까봐 익모초를 먹여 여름 타는 것을 예방했고, 남편들을 위해서는 씀바귀나 더덕 혹은 도라지, 상추 등의 씁쓸한 나물을 상에 놓아 여름에 밥맛이 없을 때 밥맛을 돋구었던 것이다.
단맛은 비장에 속한다. 그러므로 단 것을 어느 정도 먹으면 소화도 잘되고 비위를 튼튼하게 한다. 그러나 단맛이 지나치면 우리 몸이 부조화되어 병을 일으키는데, 그것이 바로 당뇨이다. 우리 욕 중에서 "엿 먹어라." 하는 말이 있다. 달고 맛있는 엿을 먹으라는데 좋아할 일이지 왜 욕으로 생각했을까? 요즈음은 설탕이 수입되어 자유로이 단 음식을 즐길 수 있으나 옛날에는 단 것이라고는 엿밖에 없었다.
그러니 단 것을 많이 먹으면 당뇨에 걸리고 당뇨에 걸린 사람은 대부분 병에서 회복되지 못하니 당연히 "엿 먹어라."가 아주 심한 욕이었다. 즉 엿 먹고 당뇨 걸려 죽으라는 뜻이다. 옛날에는 이 병을 소갈(消渴)이라 했는데 오늘날의 당뇨병이다.
서양의학에서는 당뇨의 원인을 췌장에서 인슐린이 분비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왜 분비되지 않느냐고 물으면 췌장이 고장났기 때문이고, 왜 고장났느냐고 좀 더 깊이 물어 보면 건강을 조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등의 대답으로 얼버무린다.
그러나 동의학으로 따져 보면 당뇨의 원인은 결국 몸의 열이다. 당분은 몸에서 열을 내고 그 열은 에너지가 되어 몸을 움직인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단 것을 많이 먹는데 비해 몸은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 특히 중년 여성들은 자동화된 기계 덕분에 손 하나 움직이지 않고서도 밥도 하고 빨래도 한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니 열량이 넘치게 되고 그 열을 달래려고 물을 벌컥벌컥 마셔댄다. 그리고 열이 있어 음식을 쪄대니 소화가 잘된다. 먹고 돌아서면 다시 배고파 하루에도 5∼6끼씩 먹는다. 그러니 자연히 배설의 양이 많아지므로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된다.
이른바 당뇨의 삼다(三多) 현상인 다음(多飮), 다식(多食), 다뇨(多尿)이다. 당연히 살이 찌고 나중에는 비장의 기능이 정지되어 당을 처리할 수 없게 되어 소변으로 단물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당뇨이다. "엿 먹고 조청 싸라."는 말은 이런 이유로 나온 욕이다.
당뇨의 원인을 오행의 법칙으로 따져 설명해 보자. 당분(백설탕)을 많이 먹으면 열량이 몸에 과잉으로 쌓여 화인 심장을 실하게 한다. 심장은 열량이 과하게 되자 그 자식인 비장에게 열을 공급해 비장도 실하게 된다. 비장인 토가 실해지면 상극관계에 있는 수를 극하므로 신장은 허약해져 당을 걸러 낼 수 없게 된다. 이것이 바로 당뇨병의 시작이다.
이렇게 당뇨가 시작되면 수에 항상 눌려 왔던 화는 설탕이 계속 입으로 공급되고 그 자식인 토가 수를 극하므로 자기 세상을 만나 듯 더욱 실해 지는데 이것이 바로 당뇨로 인한 고혈압, 동맥경화, 협심증 등의 합병증이다. 당뇨는 합병증이 무섭다고 하는데 음양오행의 원리를 알면 합병증이 진행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경과를 지켜보면서 치료한다는 것은 말장난이다. 홍수가 났을 때 경과를 지켜보면서 물을 막을 수 있겠는가? 미리 물의 흐름을 알아서 터질 것 같은 둑은 더욱 튼튼히 모래가마니를 쌓고, 넘칠 것 같은 곳은 미리 수문을 열어서 물을 빼놓아야 한다. 물이 무서운지는 당한 사람은 다 안다. 당뇨가 무서운지도 당한 사람은 다 안다. 그러나 당하고서 깨닫는 것보다 당하지 않고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적의 총에 맞고 애국자가 되어 국립묘지에 묻히는 것보다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와 무용담을 들려주는 것이 더 중요하듯이.
요즈음은 4명당 1명 꼴로 당뇨병이 발생한다. 심지어는 어린이도 당뇨가 생겨 부모를 애태운다고 하니 가히 설탕의 힘은 가공할 만한 파괴력을 지녔다고 할 것이다. 설탕이 수입된 지 어언 수십 년, 그 동안 좋은 것인 줄 알았던 서구문화의 선물이 이제는 뚱뚱보에 단물 나오는 병으로 얼굴을 바꾼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서구문화의 두 얼굴이다.
작은 고추가 맵다. 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우리 민족만큼 매운 것을 좋아하는 족속이 또 있을까? 고추도 매운데 고추장에 푹 찍어 먹고 마늘도 매운데 고추장에 푹 찍어 먹는다. 어지간하게 고춧가루를 넣으면 될텐데 뒤범벅이 되도록 넣어 김치도 매워서 혀를 내두를 정도다.
적당히 매운 음식은 폐의 기능을 도와주고 대장을 튼튼하게 한다. 그러나 대부분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지나치게 좋아한다. 그러니 맵게 먹고 나서 대장이 좋지 않아 배가 꾸르륵 꾸르륵 하면 화장실로 뛰어가기 바쁘다. 한바탕 설사하고서도 다음 식사 때 여전히 맵게 먹는다.
맵게 먹기를 좋아하는 여성이 있었다. 아이를 출산하고 쌀밥에 미역국만 먹으니 입이 갑갑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매운 풋고추를 고추장에 푹 찍어 한 입 베어먹었으면 하고 어머니에게 애원하니 절대 먹지 말라고 한다. 아이를 낳고 나면 몸이 회복될 때까지 몸을 조리해야 한다는 것이 이유이다. 이 산모가 몰래 풋고추 하나를 고추장에 푹 찍어 먹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갓난아기가 그 후부터 핏똥을 싼다. 산모의 어머니는 걱정이 되어 딸을 다그치나 딸은 원인을 모르겠다고 울먹인다.
바로 매운 맛 때문이다. 엄마가 먹었으니 그것이 당연히 젖으로 갈 것이고 그 젖을 먹은 갓난아기는 매운맛 때문에 대장이 상한 것이다. 부모님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을 얻어먹는다고 했는데, 요즘 여성들은 너무 옛것을 무시한다.
매운 음식을 많이 먹으면 폐가 상한다. 그래서 우리 나라가 폐결핵이 많은지도 모른다. 결국 병은 음식과 무관하지 않은데 먹는 습관에 따라 오장 중 어느 곳을 상하게 한다. 매운맛은 열을 내게 한다. 감기에 걸렸을 때 소주에 고춧가루를 타 먹고 땀을 푹 내라고 하는데 일리가 있는 처방이다. 열을 내 땀구멍을 열어 나쁜 기운을 배출해서 감기를 낫게 하는 원리이다.
생명의 근원이 바다에서 나온다고 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인간 역시 바닷물과 같은 양수 속에서 열 달 동안 있다가 나오기 때문이다. 만일 양수가 짠물이 아니라면 우리 몸은 엄마 뱃속에서 썩을 것이다.
몸에 소금물이 부족하면 병을 일으킨다. 그래서 사람이 병이 났을 때 병원에 가면 대개 링거 주사를 놓는데, 이것이 바로 소금물이다. 또한 땀을 흘리고 나서는 반드시 소금을 먹어야 하는데, 만일 먹지 않으면 몸에 염분이 없어져 병에 걸리기 쉽다. 그러나 소금에는 비소라는 몸에 치명적인 독이 들어 있는 간수가 있다.
간수는 단백질을 응고시키는 작용이 있어 두부를 만들 때 쓰이는데, 이 간수가 그냥 우리 몸으로 들어간다면 우리 몸의 영양분인 단백질을 응고시킨다. 그래서 소금의 간수를 빼내기 위해 옛 어른들은 소금과 깨를 함께 불에 볶아서 찧어 소금 속의 간수가 깨의 단백질을 미리 응고시켜 간수의 독을 빼냈는데, 그것이 바로 깨소금이다. 깨가 귀할 때는 소금만을 불에 구워 독을 제거해 먹었다.
이렇게 매번 하기가 번거로웠으므로 우리 선조들은 소금을 끓여 먹었는데, 간장과 된장이 바로 그것이다. 요즈음의 주부들은 천일염이 색깔이 좋지 않다고 기계소금 내지 화학소금을 그냥 사용한다. 또한 조선간장이 맛이 없다고 왜간장을 사용한다. 하얗게 표백한 화학소금에는 생명이 없다. 그런 소금은 몸에 해롭다. 그러나 천일염은 우리 몸을 새롭게 한다. 음식의 맛은 소금으로 낸다. 그 비밀을 알고 있으면 항상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요즈음 죽염이라는 건강식품이 인기를 끈다. 소금을 대나무에 넣고 황토로 봉해 불로 구워 만들어 낸다. 그러니 오행이 모두 들어가 있는 셈이다.
대나무는 목이고, 불은 화이고, 황토는 토이며, 소금은 캐내니 말 그대로 금의 성질이 있고, 맛은 짜니 수의 성질이 있다.
병을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하여 지혜로운 스님들이 죽염을 만들어 먹었는데 대개는 돌소금이라고 불렀다. 민간요법으로 전해지다 현대인들이 소금을 너무나 먹지 않음으로 인해 각종 성인병들이 만연되자 요즘 치료 내지는 예방식품으로 나오고 있다.
지혜 있는 사람들이 도(道)를 닦기 위해 먹었던 방법이므로 이것을 실천하면 지혜가 따르고 건강이 따를 것이다.
(나) 오행과 다섯가지 곡식
우리가 먹는 곡식이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만 오행과 관련이 있는 곡식이 있다.
간에 좋은 곡식은 보리이고, 수수는 심장에 좋고, 피는 비장에 좋고, 벼는 폐에 좋고, 콩은 신장에 좋다. 그러나 어느 한쪽으로의 편식은 장기의 부조화를 유발하게 하므로 골고루 섞어 먹는 것이 좋다.
당뇨병과 같은 성인병에 보리가 좋다고 하는 이유는, 보리는 추운 겨울 동안 자라서 음의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몸에 열이 지나쳐 생긴 당뇨병에는 좋은 음식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쌀은 더운 여름에 자라서 양의 기운을 가지고 있으므로 냉한 사람에게 어울리는 곡식이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보리로 만든 술인 맥주는 여름에 마시면 더욱 시원하나 겨울에 마시면 배가 냉해져 속이 차지는 경우가 있고, 쌀로 만든 막걸리는 겨울에는 몸을 덥혀 좋으나 여름에는 몸에 열을 내게 한다.
그러나 몸이 항상 찬 사람은 막걸리가 몸에 맞을 것이며, 몸이 더운 사람은 맥주가 더 어울리는 술이다.
(3) 색(色)과 건강의 오행
(가) 오행과 다섯 가지 색깔
오행은 살아 있는 사람은 물론 죽은 사람에게도 적용이 되는 원리였다. 그래서 고구려인들은 음양오행의 원리에 맞추어 장사를 지냈는데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난 사신도가 바로 그것이다.
좌(동)청룡, 우(서)백호, 남주작, 북현무. 동쪽은 목으로 청색이며, 서쪽은 금으로 백색이고, 남쪽은 화로 붉은색이며, 북쪽은 수로 어두운 검은색이다. 그렇다면 오행의 원리상 빠진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무엇이며 방위로는 어디일까?
사람은 흙에서 만들어져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 흑인종, 백인종, 얼굴이 붉은 인종 그리고 황인종도 모두 죽으면 땅속에 묻혀 흙이 된다. 흙은 무슨 색깔일까? 당연히 황색이다. 시체는 무덤의 중앙에 안치시키는데, 황색토는 중앙의 위치이다.
그래서 고구려인들은 죽은 후에도 오행의 원리에 따라 이렇게 무덤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단순히 무덤 쓰는 방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즉 중앙의 위치에 황색을 배당했다는 것은 사람이 시체로 황색이라는 사실 이외에 황인종이 중심이라는 사실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지구상에는 여러 인종들이 살고 있지만 저마다 자기 민족 혹은 같은 피부색끼리의 우월성을 자랑하고 또 강요한다. 백인 우월주의, 유태인의 선민사상, 그리고 유태인의 학살로 이어지는 게르만족의 우월성 등이 그것이다.
음양오행이란 무엇일까? 바로 황인종 중심사상이다. 그러나 중앙은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다른 것과 조화를 이룬다는 점에서 다른 우월주의처럼 지배와 복종을 강요하지 않는다. 우리의 음양오행 원리는 평등 그 자체로 서양과는 차원이 다르다.
오행의 색이 그림으로 그려지면 동양화가 된다. 서양화라고 하는 것도 오행의 청, 홍, 황, 백, 흑색의 색깔을 섞어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오행의 색이 의류에 접목되면 다양한 의복의 색깔이 나온다. 황색은 중앙이고 중심을 의미하므로 임금님의 옷 색깔로 쓰였고, 붉은색과 청색은 문무백관들의 옷 색깔로 쓰였다. 백성들은 흰색으로 옷을 해 입어서 백의민족이라 불리게 되었다. 오행의 색으로 의복을 물들이면 색동옷이 된다. 아기들의 무병과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오행의 색깔로 옷을 해 입힌 부모의 지혜는 사랑 그 이상이다.
현대에는 색깔이 너무 현란하다. 아마 세상이 정신없이 돌아가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 사람의 정신이 안정되지 못해 그런지 연관성을 연구해 보면 "색깔이 인체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 같은 학위 논문이 하나 나올 법도 하다.
황색 옷을 좋아하는 사람은 비위의 병이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검정색은 신장과 방광, 붉은색은 심장에 이상이 있을지 모른다. 화가들이 평소 사용하던 색에 변화가 있을 때에는 건강의 변화도 있으므로 몸을 잘 관리해야 한다.
청색을 즐겨 쓴다면 간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 피카소의 청색시대, 그의 간은 과연 건강했을까? 우문(愚問)이지만 피카소만은 대답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 얼굴의 색과 병
"얼굴이 누렇게 떴구나." "얼굴색이 왜 이 모양이니?" 하며 사람들은 유달리 얼굴의 색에 관심이 높다.
몸의 5장에 오행이 배당되어 있듯이 인체의 얼굴에도 오행의 배당이 있다. 사신도와 마찬가지로 무덤이 얼굴이라면 얼굴의 좌측은 간목(肝木)이고, 우측은 폐금(肺金)이며, 불은 위로 타오르기 때문에 이마 부위는 심화(心火)이고, 물은 아래로 흐르기 때문에 턱은 신수(腎水)이고, 중앙 부위는 비토(脾土)이다. 각각의 위치에 얼굴 고유 색깔이 없어지고 색깔이 심하게 변하면 그 부위가 상징하고 있는 5장의 병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대체로 이렇게 얼굴의 부위별로 색깔을 구별하는 것은 심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얼굴 전체의 색깔 변화를 보고 5장의 상태를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간이 나쁠 때 목(木)은 푸르므로 얼굴에 푸른색이 나타난다. 대체로 어린아이의 얼굴에 푸른 기운이 있으면 경기(驚氣)를 할 조짐이 있고, 노인들이 얼굴에 때가 끼고 푸른 기가 있으면 중풍을 조심해야 한다. 분이 났을 때의 표현으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한다는 말을 쓴다.
즉 심장(붉은색)과 간(푸른색)이 상해 중풍이 된다. 심장이 나쁠 때는 화(火)의 색이 붉으므로 얼굴에 유달리 붉은색이 나타난다. 특히 술을 마신 후에 얼굴이나 몸이 붉어지는 것은 심장이 흥분된 상태로 심장에 유의하여야 한다. 또한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갑자기 상기되어 얼굴이 붉어지는 것도 심장의 허약한 증세이다.
비장은 토에 속하므로 황색이다. 따라서 비장이 나쁠 때는 얼굴이 노래진다. 어린애가 체했을 때에 얼굴이 누렇게 변한다. 황달 역시 얼굴이나 눈이 노랗게 변하는 병증인데 그 원인이 비·위에 있다. 즉 비·위가 상해 담액이 역류하여 눈이나 얼굴이 황색으로 되게 한다. 대체로 얼굴이 마르고 윤기가 없으면 비장, 위장의 병이다. 그러나 황색으로 윤이 나며 얼굴이 두터운 사람은 건강하다.
폐가 나쁠 때 얼굴의 색깔은 흰색이다. 쇠붙이, 철(鐵)을 검은색으로 착각할 수 있으나 검은색은 철이 녹슬어서 생긴 것으로 금생수(金生水)한 수(水)의 색깔이다. 철에서 녹을 벗겨 내면 백색이 된다. 그러므로 폐가 약한 사람의 얼굴은 대부분 창백하다. 폐결핵 환자의 얼굴 피부가 광택이 없고 유난히 흰 것은 폐가 흰색이기 때문이다.
깊은 물을 들여다보면 물의 색이 흑색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신장이 나쁠 때는 얼굴이 검어진다. 특히 윤기가 없으면서 검은 사람은 겁이 많고 정력도 부족하다. 그러나 얼굴색이 검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사람은 건강하고 성적인 매력이 풍부하다. 그래서 옛 여인들은 얼굴에 난 눈썹과 머리털은 모두 검게 화장을 했는데, 이유는 검은색이 신장의 색이기 때문이다. 검은 눈썹과 검은 머리는 신장이 튼튼한 것을 상징하고, 신장이 튼튼하다는 것은 자궁이 건강해 아이를 잘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옛 여인들이 시집갈 때 얼굴에 연지 찍고 곤지 찍고 눈썹 그리고, 머리를 창포물에 감고 윤이 나게 기름을 바른 이유는 얼굴을 예쁘게 하기 위해서였겠지만, 한편으로는 "나는 아주 건강한 여자입니다." 하고 자신의 건강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 그렇게 화장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옛날에는 예쁜 여자보다는 건강한 여자를 더 원했기 때문이다.
간에 병이 있을 때는 청색이 얼굴에 나타나는데, 이때에는 완화(緩和)작용이 있는 단맛의 음식을 먹게 한다. 단 음식으로는 쌀, 소고기, 대추, 미나리 등이 있다(목이 토를 극하므로 토를 보하는 원리임). 쌀은 봄에 발아하고 여름에 성장하고 가을에 수확하여 겨울 동안 저장하는 곡물로, 하늘과 땅의 사계절의 기(氣)와 화합되어 있다.
또한 뜨거운 여름에 물 속에 뿌리를 박고 자라므로 수화(水火)의 기가 조화된 곡물이다. 그러므로 쌀은 오미(五味)의 중심인 단맛을 갖추어 영양이 충분하다. 소는 생긴 그대로 온화해서 사람이 먹으면 근육의 긴장을 풀어준다. 대추는 약을 지을 때 감초와 함께 쓰이는데 약을 해독하고 조화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식품이다. 미나리 역시 중화하는 데 쓰이는 식물이다. 복어탕을 끓일 때 반드시 미나리를 넣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심장에 병이 있을 때는 얼굴이 병적으로 붉은데 이러한 사람은 수렴(收斂)작용이 있는 신 음식을 먹는 것이 좋다. 신맛 나는 식품으로 팥, 개고기, 자두, 부추 등이 있다. 여름은 오행상 열과 관계 있고 열은 심장 기능을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여름에 복날이라고 해서 열을 거두어 내는 개고기를 먹는 것이다( 목이 화를 생하므로 목의 기를 수렴하여 화를 생하지 못하게 하는 원리임).
폐에 병이 있는 사람은 병색인 흰색이 얼굴에 나타나는데, 이 사람은 건견(乾繭)작용이 있는 쓴맛의 음식을 먹는 것이 좋다. 쓴 음식으로는 보리, 양고기, 살구, 염교 등이 있다(화가 금을 극하므로 쓴맛으로 화인 심장의 열을 식히는 원리임).
비장의 색은 황(黃)이다. 얼굴에 병적인 황색이 나타난 사람에게는 연화(軟化)작용이 있는 짠 음식을 먹이는데 콩, 돼지고기, 밤, 콩잎 등이 있다.(토가 수를 극하므로 수를 보하는 원리임).
신장이 나쁜 사람의 얼굴에는 병적인 흑색이 나타나는데, 이 사람에게는 발산(發散)작용이 있는 매운맛의 음식을 먹게 하는 것이 좋다. 매운맛과 연관된 음식으로는 기장, 말고기, 복숭아, 파 등이 있다 (신장은 허할 때가 많으므로 금생수(金生水)하도록 매운맛으로 금의 기운을 보하는 원리임).
(4) 오행과 감정
(가)감정으로 오장을 진단한다 ?
1) 간과 분노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내밀라."는 성구가 있다. "예수나 할 수 있는 일이지."라고 단순히 생각하지만 몸을 위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사람에게는 여러 감정이 있지만 그 중에서 분노는 간에 배속되어 있어 간이 튼튼한가 아니면 병이 들었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품성까지 좌우한다.
"저 사람은 다혈질이야. 저 사람은 신경질적이야."라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평가한다면 간에 문제가 있다.
간은 근(힘줄)을 주관한다고 했다. 옛말로 치면 근력(筋力)이 전부 간에서 나온다. 그런데 간이 나쁜 사람은 근력을 쓰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 자동적으로 등을 기대거나 혹은 베개를 베고 드러누워 있기를 좋아한다. 그러다가 무엇인가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남을 시키려고 크게 이름을 부른다.
바로 간이 오성(五聲) 중에서 부를 호(呼)자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이것이다. 즉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누군가에게 시키려고 크게 이름을 부른다. 부인에게 담배 가지고 오라, 재떨이도 가지고 오라, 물 좀 떠다 달라, 자기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근육을 놀리기 싫기 때문에 꼭 남을 시키려고 크게 이름을 부른다. 그러다가 부인이 잘 들어주지 않을 때는 화낼 일도 아닌데 버럭 화를 낸다.
만약 부인의 간덩이도 좋지 않아서 당신은 손발이 없느냐, 내가 리모콘이냐고 하며 똑같이 화를 낸다면 부부싸움이 시작된다. 결혼한 사람들은 잘 생각해 보라. 부부싸움이 심각한 문제로 시작할 때가 얼마나 있는가. 모두 사소한 일로부터 발단된다. 간이 나쁜 사람은 화를 잘 낸다. 반대로 화를 잘 내면 간이 나빠진다. 오른뺨을 맞았을 때 왼뺨도 내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나 분을 참아 간을 보호하라는 것이다.
화가 나서 같이 뺨을 때리다가는 결국 둘 다 분에 못 이겨 무슨 일을 저지르고 만다. 누가 손해인가. 분을 내는 사람이 손해이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우리의 옛말은 바로 분을 내지 않음으로 간이 건강해지고 간이 건강하면 몸과 마음이 튼튼해진다는 뜻이다.
참을 인(忍)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을 우리의 간을 위해 곰곰이 생각해 보자. 간장병에는 약이 없다. 그러나 분을 내지 않고 사랑, 자비, 인(仁)을 생각하고 실천하면 간은 병 없이 항상 튼튼할 것이다.
부인들은 남편들을 잘 살펴야 할 것이다. 남편이 화낼 일도 아닌데 화를 낸다면, 맞서지 말고 "우리 남편이 간덩이가 부었구나." 하고 이해하면 가정이 평화로울 것이고, 남편들도 부인이 "당신은 손이 없어요, 발이 없어요, 왜 맨날 시키기만 해요."라고 하면 부인의 간덩이도 편안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해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간의 기능을 조화롭게 고치는 일이다. 결혼을 지옥이라 했다지만 그것은 간덩이가 부은 사람들의 경우이고, 간이 건강해 서로 존중하며 사랑하는 잉꼬부부라면 결혼 정말 해 볼 만한 일이다.
중풍은 뇌에서 혈관이 터져 발생되는 병이라고 단순히 생각하지만 사실은 간과 연관이 있다. 화를 내면 열이 나고 그 열은 심장을 압박해 뇌로 몰려 뇌에서 혈관이 터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를 잘 내는 사람들은 중풍을 걱정해야 한다. 중풍의 증상은 근육을 못 쓰는 것이다. 근육은 간이 주관한다고 했으므로 결국 간 기능이 부조화되어 근(힘줄)을 마비시키는 병이 중풍이다.
좋은 세상 재미있게 살려면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
2) 심장과 기쁨
간이 분노와 연관이 있다면 심장은 기쁨과 연관이 있다. 기쁜 감정은 심장에서 나오며, 그 소리로는 웃음이다. 요즈음은 웃음이 메마른 때라 무엇보다 웃음이 필요하다. 그러나 웃음은 어느 때에 나오는가? 주로 남이 잘못되었을 때 웃는 경우가 많다.
겨울에 얼음판에서 누군가가 넘어졌을 때 웃음이 나오는 사람은 심장에 문제가 있을지 모른다. 다치지는 않았을까 하고 달려가서 일으켜 주어야 정상인데, 아니면 적어도 측은한 생각은 해야 되는데 웃음이 나온다.
자녀가 대학입학 시험에 붙었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자랑하는 어머니들이 있다. 훌륭한 어머니라면 그 자식을 앉혀 놓고 "네가 붙었다면 너 때문에 떨어진 학생도 있을 것이다. 물론 대학입시에 붙은 것은 기쁜 일이나 떨어진 너의 친구들을 생각해서 자중하고 오히려 그 친구들을 위로해 주거라." 하고 충고할 것이다. 그런데 그저 자기 아들만 잘난 줄 알고 기뻐 떠들면 심장마비로 쓰러질지도 모를 일이다.
스포츠 경기를 관전하던 사람이 경기에 이긴 기쁨을 억누르지 못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는 경우가 바로 이런 경우이다. 웃음이 그렇게 좋다면 매일 매시간 간지럼을 태워 웃게 하는 것이 건강 비법일텐데 그런 비법은 없다. 오히려 간지럼을 오래 태우면 너무 웃다가 기가 흩어져 심장이 상하게 된다. 아이들을 간지럼 태워 보면 잘 알 수 있다. 처음에는 아이가 재미있어 깔깔대고 웃지만 조금만 지나면 아이가 그만 하라고 애원한다. 그래도 더하면 그 아이는 틀림없이 "아빠 그만해 나 죽겠어." 하고 외친다. "아이고 웃어 죽겠다."는 말이 이 경우이다. 웃는데 왜 죽는가? 심장이 상해 죽는 것이다.
우리의 선비철학에 이런 말이 있다. 낙이불희(樂而不喜), 즉 즐거우나 기뻐하지 않는다란 뜻이다. 깔깔 웃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미소를 지으라고 한다. 미소는 깨달음을 의미한다.
염화시중의 미소(微笑)가 바로 이것이다. 『성경』도 "항상 기뻐하라(「데살로니카 전서」 5장 16절)."고 말한다. 항상 웃으라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 기쁜 마음을 갖고 어려움도 이겨내라는 것이다.
이런 기쁨을 가진 사람은 아마도 깨달음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하늘에 뜨고, 축지법을 쓰고, 이상한 일을 행하는 사람이 도인(道人)이 아니라 깨달음을 얻어 항상 미소를 짓는 사람이 바로 도인이다.
부처님의 얼굴에 가득한 미소는 바로 도(道)에서 나오는 그것일 것이다.
3) 비장과 생각
오행 중에서 토에 해당하는 비위는 생각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생각을 많이 하는 직업을 가진 연구원 교수들은 위장병이 많다. 소화가 안되고 답답해서 병원에 가서 여러 가지 진찰을 한다. 그러나 위에는 별 이상이 없다고 한다. 의사 선생님은 "위에는 별 이상이 없다. 신경성 위장병이니 신경을 쓰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 신경 안 쓰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오행상 토인 비위의 기능이 지나친 생각으로 인해 부조화된 것이다.
비위는 토에 속하고 방위로는 중앙에 속한다. 그러므로 토인 비위는 우리 몸에서 중앙의 위치라 중간을 유지하려고 이리도 생각해 보고 저리도 생각해 보는가 보다. 생각이 깊은 사람은 대부분 살이 말랐다. 비장은 살을 주관하므로 생각을 깊이 해 비장이 상하게 되면 살이 찌지 않는다. 아무리 살찌는 약을 먹고 영양제를 먹는다 하더라도 계속 깊이 생각하는 일을 멈추지 않으면 살은 찌지 않는다. 반면에 살이 찐 사람도 고민거리가 생기면 금방 살이 빠진다.
중국 교포가 모국의 친지를 만나기 위해 방문을 했는데 차비나 좀 보태려고 중국 한약을 사 가지고 왔다. 그런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후라 생각했던 것보다 잘 팔리지 않았다. 중국에서 돈을 빌려 약을 사왔으므로 꼭 팔고 가야지 만약 그대로 돌아가면 평생을 일해서 그 빚을 갚아야 한다. 친척들을 만나도 그렇게 쉽게 약을 사 주지 않고, 돌아가야 할 날은 다가오고 걱정이 태산 같다.
68킬로그램 나갔다는 교포의 체중이 한국에 온 지 불과 2달 만에 55킬로그램으로 빠졌다고 한다. 걱정과 고민으로 인한 깊은 생각은 살을 말리는 것이다. 대체로 살이 찐 사람들은 생각이 깊지 않고 단순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태평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심각한 일이라면 고민해야 하는데 "될대로 되겠지, 아니면 내 일이 아니니까." 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관심을 갖지 않으면 비장에 병이 생길 수도 있다.
비장이 실해지면 식욕이 너무 왕성해져 지나치게 먹게 되고 살이 너무 찔 수도 있다. 모든 성인병의 기초가 살이 너무 찌는 비만에서 시작되고, 이 비만은 무사안일의 생각에서 나온다. 생각 없이 대충 대충 넘어가는 사람은 결국 자기의 무책임한 생각 때문에 자기의 몸이 너무 살이 쪄 대가를 치른다.
편한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심각하게 고민할 것은 고민해야 한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 사람이 말랐다면 "아, 이 사람은 생각이 깊은 사람이겠다."고 추측하면 반쯤은 관상가가 될 수 있고, 비장과 위장의 기능이 썩 좋지 않겠다고 생각하면 한의사의 길에 입문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한의사들이 병을 말하지 않아도 알아내는 것은 다 이 오행의 색체(色體)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진찰하는 일은 알고 보면 쉬운 일이다.
4) 폐와 슬픔
슬픔은 오행 중에 어느 것에 속할까? 유달리 슬퍼하는 사람은 어느 장기가 부조화되어서 그럴까?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슬픔은 금에 속하며 폐에서 나온다. 그래서 몹시 슬퍼하면 폐가 상한다. 오 헨리라는 소설가의 작품 중에 「마지막 잎새」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여주인공이 병에 걸려 슬퍼하며 인생을 포기하려 한다.
비바람이 심한 가을날 낙엽이 바람에 파르르 떠는 것을 보고 이 소녀는 "저 잎새가 떨어지면 나의 생명도 떨어지겠지." 하고 슬퍼한다. 이 여주인공이 무슨 환자이겠는가? 바로 폐렴환자이다.
대체로 폐에 관한 질병을 가진 사람은 남보다 유달리 더 슬퍼한다. 슬픈 노래 부르다 폐병으로 죽은 사람들이 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폐병에 많이 걸린다. 잘 먹고 잘 살면 결핵은 없어지는 병이라고 하는 데도 아직도 후진국보다 발병률이 높다. 왜 그런가? 슬픈 민족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노래도 대개 슬픈 노래가 많고 한이 많이 맺혀 있다. 또한 백의민족(白衣民族)이란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색깔로도 폐는 흰색과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그런지 폐결핵 환자들은 대부분 얼굴이 희며 슬퍼하길 잘한다.
그리고 매운 음식을 지나치게 좋아한다. 지나치게 매운 음식은 폐를 상하게 한다. 금은 계절로는 가을에 속한다. 가을이 되면 유난히 슬픔을 타는 사람들이 많다. 낙엽이 떨어진 거리를 옷깃을 올리고 걷는다. 거기다가 슬픈 노래를 부르면 정말 더욱 슬퍼진다. 이렇게 하는 것이 개성인지 취미인지는 모르지만 폐병 걸리기 안성맞춤이다.
5) 신장과 공포
공포는 신장과 방광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유달리 무서워하는 아이는 오줌을 싸는 일이 많고 어른의 경우도 무서운 일을 당하면 오줌을 지린다.
시골에는 변소가 문 밖에 있어 밤이 되면 변소 가는 일이 끔찍하다. 얼른 볼일을 보고 뛰어들어와도 꼭 누군가가 뒤따라오면서 뒷덜미를 잡고 방에까지 들어오는 것 같다. 등골이 오싹한다. 방광경이 있는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른다. 무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은 오줌을 누고 왔는데 몇 분 지나지 않아서 또 마렵다.
방광과 신장의 경락에 문제가 있다. 명절 때가 되어 형제들이 다 모이고 부인들도 서로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운다. 큰 동서는 씩씩하게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막내 동서는 무섭다고 누군가 함께 가자고 애원한다. 틀림없이 이 막내 동서는 무서움을 많이 타니 신장의 기능이 나쁠 것이고, 따라서 몸이 붓는 경우도 있고 생리도 좋지 않을지 모른다. 대체로 무서울 때는 전율하는데 오줌을 누고 나도 전율한다. 등골이 오싹한다고 표현하는데 이 등쪽으로는 방광경이 흐르고 있다.
무서우면 방광경이 혼동되고 따라서 음양관계의 신장경도 흔들려 부조화된다.
(나) 오행의 상극작용을 이용한 감정 치료
옛날에 무서움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별당아씨들은 대개 자수(刺繡)를 놓았다. 밤이 되어 혼자 있으면 무서우므로 무엇인가 생각을 집중할 수 있는 일이 필요했다. 그래서 자수를 떴는데 이렇게 하면 무서움이 없어져 밤을 지낼 수 있었다. 바로 상극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생각은 토이고, 무서움은 수이므로 공포를 이길 수 있는 토극수의 원리에 따라 자수를 떠서 생각을 집중해서 무서움을 이겨낸다.
요즈음 정신병으로 신경쇠약에 걸린 사람이 많다. 무엇인가 두렵고 헛것이 보이고 도둑이 들어올 것만 같아 하룻밤에도 여러 번 문을 잠궜는가 확인한다. 신장의 허와 실을 따져 치료하고 수를 극(克)하는 토인 비위를 강화하여 신장 기능을 조절하면 의외로 쉽게 치료될 수 있다.
또한 무서울 때는 노래를 불렀다. 한밤중에 성황당 고개를 넘어올 때 용기가 없는 사람은 혼자 넘어오지 못한다. 그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며 그 고개를 넘어오는데 그렇게 하면 덜 무섭다. 노래는 오행상 토에 속하므로 무서움인 수를 이긴다. 바로 토극수의 원리이다.
오행과 오장의 감정을 우리가 안다면 이것을 이용해 몸의 질병을 치료해야 한다.
가령 심하게 부부싸움을 했다면 씩씩거리지 말고 화해를 해야 하는데 자존심이 상해 먼저 말을 걸 수 없으면 슬픈 영화를 한편 같이 보는 것이 좋다. 슬픈 영화를 보면 눈물을 흘리게 되고 한 번 울고 나면 가슴이 후련해진다. 쌓였던 분노도 어지간히 가라앉는다. 혹은 슬픈 음악을 듣는 것도 좋다. 옛날의 주부들은 슬픈 영화를 많이 보러 다녔다. 남편이 속썩이고 시어머니 시집살이가 심하고, 더군다나 먹고 살 만큼 풍족하지 않았으므로 울화가 자주 치밀어 올랐다. 그럴 때에 극장에 갔는데 대개 슬픈 영화였다. 극중 주인공의 인생이 슬픈지 아니면 영화를 보고 있는 자기의 인생이 슬픈지 그냥 눈물 콧물 다 짜내고 나오면 화가 났던 마음이 다 눈 녹듯이 녹고 미워도 고와도 내 남편인데 그래도 참고 살아야지 하면서 다시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그래서 우리의 영화는 대체로 슬픈 영화가 많았고, 슬픈 영화는 거의 흥행에 성공했는지 모른다.
슬픔은 오행상 금이고, 분노는 오행상 목이기 때문에 금극목(金克木)하여 분노의 기운을 누른다. 한 번 되게 울고 나면 속이 후련한 경우가 이것이다. 서양사람들은 이것을 "카타르시스"라고 하는데 굳이 어려운 말 쓸 것 없이 오행의 상극작용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학교 선생님이 학생을 가르치다가 말을 듣지 않자 분노가 폭발하여 학생을 매질했다. 선생님은 교육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감정이 많이 섞여 있다. 때릴 때에는 선생님의 간도 상하지만 맞는 학생도 분에 못 이길 것이다. 어쨌든 감정이 섞인 매질은 선생님에게나 학생에게 비교육적이다. 그러면 이 비교육적인 방법을 교육적으로 다시 바꾸어야 한다. 즉 학생과 선생님의 분노의 감정을 정화시켜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학생을 울리는 것이다. 금인 슬픔으로 목인 분노의 감정을 잠재워 놓아야 뒤끝이 없이 다시 스승과 제자 사이로 돌아간다. 무슨 방법으로 학생을 울릴까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는 선생님도 계실지 모르지만 사실 때리고 나면 선생님들도 후회한다. 그래서 선생님은 학생을 다시 상담실로 불러 조용하게 "때려서 미안하다, 선생님이 지나쳤다." 등의 말로 말문을 연 뒤 학생의 아픈 점을 찔러 울음을 터트리게 해야 한다. 학생의 최고 약점은 부모의 고생이다.
"부모님이 너를 가르치기 위해 얼마나 고생하느냐, 그런데 너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매일 말썽만 피우니 부모님이 아시면 얼마나 실망하겠느냐." 등의 말로 서서히 설득하면 학생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자신이 잘못했다고 울먹인다. 이렇게 해놓아야만 다시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가 원만해지고, 졸업 후에는 술이라도 한 병 들고 인사 온다. 선생님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인사 오는 학생들 중의 대부분은 한 번 그 선생님으로부터 호되게 맞았던 학생들이라고 한다. 존경받는 선생은 슬픔이 분노를 가라앉힌다는 오행의 상극원리를 아는 사람일 것이다.
집안에서 자녀들을 혼내 줄 때도 마찬가지이다. 때려 주고 나서 다시 조용히 달래야 한다. 그래야 자녀가 빗나가지 않고 훌륭히 성장한다. 요즈음 교육계에서 체벌을 놓고 나쁘냐 좋으냐를 따지고 있다. 서양적 사고의 흑백논리인 것이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 또 자녀들을 키울 때 선생님이나 부모도 사람인지라 감정이 폭발할 때가 있다. 그것을 좋으냐 나쁘냐 식의 문제로 끌어들이는 것은 말도 안된다. 비록 아이를 때렸더라도 다시 조용히 타일러 분노를 잠재우면 그 아이는 잘못되지 않을 것이다. 서양식의 교육에 찌든 요즘 세대에 음양오행의 원리를 적용해서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것은 어떤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얼굴이 하얀 여인을 미인으로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웬지 가냘프고 슬퍼하면서 얼굴도 하얗다. 사나이의 보호 본능을 충분히 자극하고도 남는다. 그래서 사랑에 빠지는데 알고 보니 폐결핵 치료차 요양 온 여인이다. 서로 사랑하다가 병이 악화되자 여인은 떠나고 남자는 실연의 아픔을 술로 달랜다. 실연 당했을 때 슬퍼해서는 안된다. 슬퍼서 식음을 끊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울다가는 폐가 상한다. 또 술만 마시면서 슬퍼하다가는 결핵에 걸리기 쉽다. 슬프기야 하겠지만 폐 생각 좀 해서 곧 다시 활기를 찾아야 한다.
기뻐하면 폐의 병을 이길 수 있다. 상극의 원리에 따라 화극금(火克金)하므로 기쁨이 슬픔을 이겨낸다. 「마지막 잎새」에서도 화가 할아버지가 나뭇잎을 그려 나무에 매달아 놓자 아침에 일어난 그 여인이 그 잎새를 보고 다시 희망을 얻어 새 삶을 찾지 않는가. 화가 할아버지가 할 일이 없어 그 잎새를 그려 매달아 놓았을까? 희망과 기쁨을 주기 위해서이다. 소설도 음양오행의 원리에 맞게 써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 헨리도 음양오행을 공부했는지 모르겠다.
뜨거운 여름은 화에 속한다. 심장이 화이므로 날씨도 덥고 몸도 더워 땀을 흘린다. 이런 때는 공포영화를 보는 것이 좋다. 공포는 수이고 여름은 화이므로 수극화의 원리에 따라 공포영화를 보면 등골이 오싹해져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불장난하면 오줌 싼다는 말이 있다. 불은 화요 오줌은 수인데 수극화의 원리를 적용해 보면 반대가 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지나치면 병이듯이 화가 오히려 수를 넘볼 때도 있다. 그래서 불장난을 많이 하면 오줌 싼다고 말을 했던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몹시 곤란할 때는 한번 소리를 질러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좋다. 목극토의 원리에 따라 꽁하고 있던 마음을 한번 소리질러 푸는 것이다. 등산가서 큰 소리로 남의 욕을 하고 내려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역시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 중 하나이다. 사람의 병은 마음에서 온다고 한다.
아픈 사람이 있다면 우선 그 아픈 곳을 고쳐 주기 전에 그 사람의 마음에는 무슨 상처가 있는지 알아내야 한다. 아무리 아픈 곳을 고쳐 놓아도 그 마음이 고쳐지지 않으면 다시 몸을 괴롭힌다. 그러므로 오행의 변화를 깨달은 사람은 눈을 들어 아픈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상처를 어루만져 주어야 한다.
훌륭한 의사는 마음의 병을 고친다.
(다) 오행과 오상(仁, 禮, 信, 義, 智)
사람의 성품도 가지가지이나 오행사상으로 풀어 보면 그 성격 역시 자기의 5장과 연결되어 있다.
어질고 남을 인정해 주는 성품은 간에서 나오고, 예의 바른 행동은 심장에서 나오며, 믿음은 비장에서 나오고, 의로운 행동은 폐가 주관하고, 어떤 일에 뜻을 갖고 배신하지 않고 지혜롭게 밀고 나가는 것은 신장에서 나온다.
『성경』에는 인자한 사람이 되는 법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네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라. 무릇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지 말며,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예(禮)는 공자가 강조한 덕목으로 삼강오륜에 잘 나타나 있다. 삼강은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자식, 남편과 아내 사이에 지켜야 할 예의이고,
오륜은 아버지와 자식간의 친애, 군신간의 의리, 부부간의 분별, 찬물도 순서가 있다는 장유의 차례, 그리고 친구간의 우정이 그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예는 말이나 격식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그러므로 마음이 바른 사람은 예의 바르다.
신(信)의 뜻은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남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비장의 기운이 좋지 못할지 모른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속담은 부주의함을 말하는 것이지 믿음 그 자체를 책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사회가 어지러워지는 것은 바로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해서 일 것이다. 모두 비위가 상해 있는 것이다.
의로움(義)의 반대는 불의일 것이다. 그러므로 의로움을 지닌 사람은 불의에 대항한다. 불의에 대항한 전태일 열사의 죽음은 이 땅에 노동의 신성함과 더불어 노동자의 삶에 큰 변화를 주었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민중의 고통과 억압을 불쌍히 여긴 한국의 예수가 한 말이다.
우리 민족은 오행상으로 볼 때 금의 성격을 지녔다. 그래서 그런지 자신의 몸을 바쳐 나라를 구한 의인들이 많이 있다. 지혜(智)의 대표적인 인물을 들라고 하면 대부분이 솔로몬 임금을 꼽을 것이다. 그러나 지혜는 재치나 유머가 아닌 실천을 겸한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지혜가 있어 의술을 통달했다 해도 사람에게 베풀지 않으면 그것은 공술(空術)이고 사람들에게 베풀되 인술(仁術) 이외에 다른 목적이 있을 때 그것은 사술(邪術)이다.
깊은 뜻을 가지고 실천할 일이다.
어떤 사람이 신경질적이고 항상 남을 이기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인간성이 어쩌고 저쩌고 하기 전에 그 사람의 간 기능이 나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위아래 구분 없이 거만하다면 심장의 기가 좋지 않은 사람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사람은 알고 보면 모두 연약한 존재이다. 잘못된 성격이나 행동을 했을 때 비판과 비난으로 일관하기 전에 그 사람의 몸의 건강 상태를 이해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판단은 판단을 부르고, 이해와 용서는 화합을 이룬다. 세상에 온전한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온전한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나와 남이 하나된 사람이 아닐까?
(5)오행과 소리(音聲)
오행에는 오음이 배당되어 있어 이것이 악(樂)으로 펼쳐질 때 우리의 국악이 된다. 일반적으로 음성이라 할 때 음은 높낮이가 있는 소리를 말하고 성이란 높낮이가 없는 억양을 가리킨다.
오음은 각(角), 치(徵), 궁(宮), 상(商), 우(羽)의 다섯 종류로, 각의 음은 목(木)과 연관되어 있으므로 나무를 두드리는 소리를 말하며, 치의 음은 화(火)에 속해 불이 타닥타닥 타는 소리이고, 궁의 음은 토(土)의 소리로 땅이 울리는 소리, 상의 소리는 금(金)으로 쇠 두드리는 소리, 그리고 우의 소리는 수(水)로써 물이 흐르는 소리이다.
낮은 음부터 높은 음으로 표현하면 궁·상·각·치·우이고, 서양음악의 계이름으로 표현하면 궁(도)·상(레)·각(미)·치(솔)·우(라)이다.
오음은 우리 나라 말인 훈민정음과도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훈민정음 제자해에 따르면 세종대왕과 집현전의 학자들은 우주만물의 근원은 태극이며,
이 태극이 음과 양으로 갈라져 만물을 이루었고, 또 이 음양은 다시 오행으로 퍼져 우주를 움직이고 사람에게는 오장으로 작용하여 움직이니, 이 사람이 사용하는 말소리가 음양오행의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음은 우주를 움직이는 원동력인 음양의 이치에 따라 하늘의 모습을 본뜬 "· ", 땅의 모습을 본뜬 "ㅡ", 그리고 음양의 조화로 인해 태어난 사람의 모습을 본뜬 "ㅣ"의 글자들이 서로 사귀어 생긴 글이고, 자음은 오행의 원리에 따라 입의 모습을 본뜬 소리에서 출발한다.
자음의 창제원리를 살펴보자.
오음으로 각에 해당하는 어금닛소리(牙音)는 어금니가 길면서 우둘우둘하니 나무(木)에 해당하며, 그 소리가 단단함은 나무가 물로 키워지나 형태가 있음과 같다. 어금닛소자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닫는 꼴을 본떴는데 목인 나무가 바탕을 이룬 것으로 보며, "ㅋ"은 나무가 무성히 자란 것이며, "ㄲ"은 나무가 해묵어 왕성한 모습을 상징한다.
오음으로 치에 해당하는 혓소리(舌音)는 혀가 날카롭고 움직이니 불(火)에 해당하며, 소리가 구르면서 날름거림은 불이 타는 모습과 같다. 혓소리자 "ㄴ"은 혀가 잇몸 위에 붙는 꼴을 본떴으며 파생음으로 "ㄷ, ㅌ, ㄸ"이 있다.
오음으로 궁에 해당하는 입술소리(脣音)는 입술이 모나며 합해지니 흙인 토(土)에 해당하며, 그 소리가 땅처럼 편편해짐은 땅이 넓고 커 만물을 품어 간직함과 같다. 입술소리자 "ㅁ"은 입의 꼴을 본떴고 거기에 획을 더해 "ㅂ, ㅍ, ㅃ" 등이 생겼다.
오음으로 상에 해당하는 잇소리(齒音)는 이가 단단하며 물건을 끊으니 쇠(金)와 같고, 소리가 부스러지다 막힘은, 쇠는 부스러져 가루가 되나 다시 단단해지는 성질과 같다. 잇소리자 "ㅅ"은 이 전체의 모습을 본떴고
거기에 "ㅈ, ㅊ, ㅆ, ㅉ" 등의 글자가 있다. 오음으로 우에 해당하는 목구멍소리(喉音)는 목구멍이 깊숙하여, 젖어 있으니 물에 해당하며, 그 소리가 비어 있고 막힘이 없는 것은 물이 맑고 거침없이 흘러가는 것과 같다.
목구멍소리자 "ㅇ"은 목구멍의 모양을 본떴으며 "ㅇ, ㆆ, ㅎ" 등이 있으나 지금은 "ㅇ"과 "ㅎ"만이 쓰인다. 한편 반혓소리인 "ㄹ"도 자음을 이룬다.
이렇게 음양의 원리와 오행의 원리가 조화를 이루어 모음과 자음이 이루어졌는데, 이들이 조화를 이루어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적으니 이 글을 읽고 쓰는 민족이야말로 우주의 이치를 깨달은 민족임에 틀림없으리라.
우리가 내는 억양도 그 종류가 다섯 가지인데, 목은 호(呼)자로 부른다는 뜻으로 간이 나쁘면 자주 부른다는 것이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간은 근육을 다스리며 감정으로는 분노를 뜻하는데 몸이 피곤하고 근육을 움직이기 싫을 때는 다른 사람을 시키려고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른다. 그래서 자기의 할 일을 다른 사람을 자주 불러 시키는 사람은 간이 나쁜 사람이다. 흔히 학교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불러 시키는 일이 많은데 이런 선생님은 간이 좋지 못한 선생님이다. 간이 좋지 않으면 그것은 비위를 공격해서 소화 기능이 안 좋게 되고 소화가 안되면 신경질만 내어 이름을 크게 부르며 호통을 치게 된다. 간은 일정한 운동을 요구하는데 남만 불러 시키고 말을 안 들으면 화만 내는데 그 간이 온전하겠는가?
사제동행(師弟同行). 그냥 구호로만 외칠 것이 아니라 선생님들의 간을 위해서라도 꼭 실천해야 할 일이다. 심장과 관계 있는 소리는 웃음이다. 웃는 집에 복이 온다고 했고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했다. 웃음은 사람의 마음을 맑게 하고 튼튼히 한다. 그러나 지나친 웃음은 심장병과 관계가 있다. 여고생 때에는 가랑잎이 굴러가는 소리만 들어도 웃는다고 했는데 이 말은 그만큼 심장, 소장의 기능이 좋지 않아 웃음이 잦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여고생 때는 생리가 진행되나 그 기능이 좋지 않아 고생하는 학생들이 많다.
토인 비·위와 관계 있는 소리는 노래 가(歌)이다. 비·위가 좋으면 소화가 잘돼 기분이 좋아 콧노래가 흥얼흥얼 나오나 그렇지 못하면 입을 굳게 다문 채 얼굴만 찡그리고 있다. 소화가 안될 때 즐거운 노래를 불러 마음을 밝게 하면 화생토의 원리로 소화가 잘될 것이다.
폐가 슬픔과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은 앞에서 언급했다. 슬픔은 반드시 뒤따르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곡(哭)으로 울음 소리이다. 자주 우는 아이는 폐의 기능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얼굴도 하얀색으로 폐의 병색을 나타내며 감기도 자주 걸려 병 치레를 많이 한다. 신음 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대부분 신장 기능이 상한 사람들이 많다. 대체로 노인들은 신음 소리를 많이 내는데 그 이유는 바로 신장, 즉 정력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감기에 걸렸을 때 앓으면서 끙끙 신음 소리를 내는 사람은 신장, 방광에서 시작되는 감기로 간주하고 신장, 방광 경맥을 다스려 주면 된다.
오행과 오성과의 관계를 이용해 장부의 부조화를 조화롭게 하는 방법이 있다. 분노가 치밀 때는 간이 상할 수 있으므로 금극목의 원리에 따라 슬픈 음악이나 영화를 본다면 분이 가라앉을 것이다. 곡(哭) 소리나게 한바탕 울고 나면 화가 가라앉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설움에 복바쳐 울고 났는데 기운이 없어 쓰러지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울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통곡하며 우는 사람의 대부분은 자기 슬픔 때문인지 모른다. 평소에 잘했으면 원통하지 않을텐데 돌아가시고 나니 그제서야 한스럽다고 속빈 강정처럼 울어댄다.
옛말에 애이불비(哀而不悲)라는 말이 있다. 슬프나 비탄에 빠지지는 말라는 말이다. 진실로 부모님께 효도한 사람이라면 아마 비탄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국악에 산조(散調)가 있다. 가야금 산조니 대금 산조니 하는데 대체로 슬프다. 그러나 이들 음악은 슬픔에 속하기보다는 오히려 슬픔을 흐트러뜨려 마음을 다스리는 가락으로 오히려 마음을 단정하게 한다. 그래서 이들 음악을 흐트릴 산(散)자를 써서 산조라고 한다. 마음이 분에 넘치거나 혹은 반대로 설움에 복받칠 때는 산조를 들어 보라. 곧 마음이 안정이 될 것이다.
우리의 악(樂)은 서양의 그것과 달라 우주의 원리이자 인간의 원리인 음양오행의 원리에 그 근거를 두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움이 복받칠 때는 기쁜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화극금의 원리에 따라 슬픔은 기쁨에게 자리를 내어 주어 마음은 금새 안정이 될 것이다. 어린아이가 몹시 울 때에는 이렇게 놀렸다. "울다가 웃으면 똥구멍에 털 난데요." 이렇게 놀리면 울던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울다가 웃게 된다.
너무 울면 폐의 기(氣)가 상하므로 아이를 건강하게 하기 위한 우리 어른들의 지혜이다. 웃음은 복이므로 눈가에 주름살이 질 정도는 말고 적당히 즐거워하는 것은 지혜이다.
미소는 깨달은 자만이 항상 얼굴에 머금을 수 있는 것이다. 무서울 때는 노래를 불러라. 그래서 어렸을 때 밤중에 외진 길을 갈 때에는 무서워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성황당 밤길을 혼자서 걸어간다고 생각해 보라. 소름이 끼치고 등골이 오싹 하고 왜 그날따라 오줌은 자주 마려운지, 너무 무서워 "아이고 무서워." 신음 소리까지 난다. 그러나 우리는 노래를 불렀다.
"학교 종이 땡땡땡"부터 시작해서 아는 노래는 전부 불렀다. 그러다가 노래가 떨어지면 다시 또 "학교 종이"로 넘어간다. 왜 이렇게 노래를 불렀을까.
바로 토극수의 원리, 토인 노래는 공포인 수를 이겨 무서움을 극복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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