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대의 유럽은 미술'살롱전'이 열리곤 했다. 여기서 입상을 하게 되면 작가로서 이름을 알리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살롱전이 활성화된 후에는 낙선전도 따로 열렸습니다. 1863년 '에두아르 마네'는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파리 살롱전에 출품했지만 떨어졌다.
그리고 이 그림은 낙선전에 전시되었는데, 당시로서는 엄청나게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정장을 입은 두 명의 신사와 벌거벗은 여인이 야외에서 점심을 즐기는 장면이니 말이다.
서양미술에서 에두아르 마네가 처음 누드화를 그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는 누드 때문에 퇴폐적이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마네의 그림이 비난을 받은 이유는 인간의 누드를 그렸기 때문이다. 그 이전까지의 누드화는 신의 이야기나 종교적 인물을 표현할 때만 가능했다. 그러므로 신의 누드는 완벽하고 조화로운 인체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는 뱃살이 접히는 평범한 여자가 누드로 남자들과 어울리는 모습이 나온다. 이것은 누가 봐도 인간의 누드이며 그 상황 자체도 외설적인 것이었다.
더구나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는 당시의 일반적인 원근법도 무시한 그림이다. 당시에는 짙음과 흐림으로 물건의 원근을 나타내야 한다고 교과서처럼 외우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마네는 어두운 곳도 반사광 등의 영향으로 무조건 까맣치는 않다고 생각했다. 짙은 부분에도 빛을 그려넣다보니 그림은 입체감 없이 평면처럼 보였다. 그래서 마네를 인상파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림을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화가라고 화를 냈으며 작품을 훼손하려고 했다. 그래서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는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 걸어놔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