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파왕의 바위궁전
거대한 바위가 시기리야 바위
대한항공편 스리랑카 CF에서 보던 장면이라 설램을 안고...
바위 위에는 궁전과 저수지, 수영장등
불가사의(不可思議)하게 만들어 놓았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고대문명 10개 중 하나인 시기리야는
스리랑카 플론나루와에서 서쪽으로 30km정도의 지점에 있는
거대한 바위산이다. (세계 10대 불가사이라고도 한다.)
시기리야라는 지명은 사자산이라는 뜻이다.(사자 모양)
또는 사자의 언덕, 사자의 목구멍이란 뜻도 있다.
5세기에 신할리왕조 제65대 왕 카사파가
자신의 아버지인 부왕을 살해하고
자신의 동생들과 아버지의 부하들로부터
보복이 두려워 성을 만들고 피해 있었다고 한다.
얼마나 두렵고 힘들었을까...
높이는 약 200m, 넓이는 약 2ha
평으로 환산하면 6,050평인 평평한 정상에
좁은 게단과 길을 만들었다니
그저 말문이 막힐 정도다.


시기리야 바위궁전은 해자(垓字)로 둘러져 있다.
아버지 다츄세나왕을 감금하고 죽인 카사파왕은
평민에게 낳은 장남이다.
그러나 왕비에게 낳은 차남 목갈라가 있었다.
카사파는 왕위를 계승하지 못할까
그 모든 악행을 저지렀고 인도로 망명을 간~~
목갈라의 위협에
바위산 주위를 한 통로만 길로 만들고
해자를 만든 것이다.


요즘이나 예전이나
자식들은 왜 부모님의 재산을 탐낼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볼일이다.

카사파는 아버지에게 감춰둔
재산을 내어 놓으라면서
협박을 했다고 한다.
다츄세나 왕은 아들을 자신이 건설한
칼라웨워 저수지로 데려가
저수지를 가르키며,
"봐라! 이것이 내 재산의 전부다"라고 말하여
이에
화가 난 카사파는 아버지에게 원한을 품고
부하를 시켜 아버지를 죽이게 하였다고 한다.
아버지를 죽인 죄책감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인도로 간 동생의 복수가 두려웠던 것인지
험난한 바위산 위에
왕궁을 짓고 그곳으로 들어가 살았던
카사파왕의 불안감이
올라가는 내내 경치보다는 가슴이 멍먹했다.
멍

입구에 들어서면 바위산이 저만큼 보이고
넓은 정원이 나온다.




양쪽으로 모두 4개의 저수지가 나오는데
상하수도 시설의 역활을 한다고 한다.


자연 그대로 바위를 살려 저수지를 만든다.(자연보호...
)

하나의 저수지는 개발하지 않는다고 한다.
후대를 위해서...


저 높은 곳까지 물을 끌어 올리다니(대단
)
석판에 분수까지 만들고...


몸도 불편하셨지만 높은 시기리야 바위산을 정복하신
울~~~수연향 보살님 대단합니다.

입구쪽에는 스님들이 공부하고 참선하셨던 석굴이 보인다.
물론 그 유명한 미인도의 모습은
없다.
아마도 스님들의 공부에
방해가 되어 지워버린 흔적이...



사자 목구멍같이 작은 통로로 들어가야 한다.
'누구든지 목구멍으로 들어오는 자는 내 먹이감'
이라는 뜻이었을까...
올라가니 사자 발톱이 보인다.





올라가는 길에는 소라모양의 철제 계단이 2개가 있다.
올라가는 철계단과 내려가는 철계단
철계단을 둥글게 싸고 있으며, 계단은 상당히 높은데라서
가슴은 조마조마...
겁이 나시는 분은 위쪽만 보시고...






어렵게 올라간 보람이 있었다. 그 유명한
바위굴 벽면에 프레스코화..(미인도)
프레스코화는 바위석굴 벽에 먼저 접착력이 좋은 점토를 바르고
석회나 모래를 섞은 점토를 다시 바르고
마지막으로 이전보다 더 두껍게 석회를 바르는데
여기에는 꿀을 섞어서 표면을 매끄럽게 해야 한다고 한다.
그 위에 야채, 꽃, 잎, 나무즙 등을 재료로
적색, 황색, 녹색 안료로 미녀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옛날에는 이 바위산 벽에 500명 정도였지만
지금은 남아있는 그림은 18명 뿐...

압사라 라고도 하는데 가슴을 드러내고 있는게 압사라이고
그 옆에 꽃쟁반을 들고 있는건
시녀라고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높은 곳에서 바라본 풍광...한없이 평화롭다.

미인도와 작별을 하고 거울벽(Mirror Wall)에 도착하였다.
거대한 벽면을 매끄럽게 만들어
문자와 그림을 넣어 메세지를 전달하였다고 한다.
그래피토(Graffito)라고도 한다.
거울벽에는 물내림을 위한 지붕이 있다.
거울벽 미러월은 오늘날까지도 보존이 잘 되어 있지만
군데 군데 낙서가 되어 있어서 안타까웠다.



드디어 마지막 계단을 오르니
바위산 정상의 카사파왕궁이 보인다.


올라와 보니 궁전 수영장이며,
병사들의 주거지 무도장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정상의 빗물이 바위를 타고 흘러내리지 않게
바위의 상단부분에 홈을 파서 지붕을 만들었던 흔적도 있다.




울창한 밀림과 늪지를 보고 나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았을까 궁금해진다.
또한 카사파왕의 대리석 의자에서
화려한 궁전의 모습도 엿볼 수 있었고,
밀림을 바라보며
인생무상(人生無常)도 생각났다.


첫댓글 소라같이 생긴 계단 무섭지 않으셧나요?
보기만해도 아찔하내요 ㅎㅎ
사실 다음날 다리가 아프더라구요..넘 겁을 먹고 힘을 줘서^^
여행기 쓰시고 사진 올리시느라 수고 많으십니다.
스님이 설명은 다 해주셨으니 저는 무임승차하는 기분이로 쓸쓸 사진올릴까 합니다.
하시던데로 하시면 안될까요?
스님은 스님 나름데로
보살님은 보살님 나름데로 느낌이 틀리니까요 ㅎㅎ
와 고대 건축기술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요즘 건축이 아무리 멋있다 해도 예전에 비하면 많이 규모가 많이 다른것 같아요. 역시...불가사의 할만 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