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0(토)
-.아침 7시 30분 부산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6시 30분에 집을 나왔다. 부산에서 어머니와 6끼를 먹고 오는 것을 목표로 하여 토요일에는 일찍 가고, 일요일에는 늦은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온다.
김해공항에 내려 어머니께 아침을 같이 하자는 전화를 했다. 부산은 서울에 비해 날씨가 청명한 편이어서 김해공항에 내리면 맑은 하늘이 귀향을 반기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은 잔득 찌푸린 날씨이다.
해운대행 리무진 버스를 타고, 남천동에서 내렸다. 남천동에서 내려 사잇길로 내려 가니 남천활어회 시장이 나온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날 수 있겠는가? 활어회 시장에 들러 단골집에서 생선회를 샀다.
단골집 아줌마는 우리 집과 거래한 지 오래되어서 우리 집을 잘 안다. 아줌마의 울산에 있는 친구가 울산에 유명한 피부과가 있는데 같이 진료 받자고 해서 울산에 갔는데, 가 보니 우리 집 사위가 있어 놀랐다고 한다.
나를 보더니 아들 네명이 돌아 가면서 집에 온다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시던데 내가 제일 자주 오는 듯하다고 한다. 생선회를 좋아 하여 이 집에 자주 오는 것은 맞지만, 부산집에 자주 오는 형제는 둘째형님이라고 정정해 주었다.
어머니는 회를 안 드시니 혼자 먹을 수 있는 양만 장만해 달라고 하였고, 봄에는 도다리가 제철 회인 만큼 도다리를 달라고 하였다. 도다리 500g이면 혼자 먹을 양이라며 도다리 세꼬시를 장만해 준다. 식탐이 있는 내가 보기에 도다리 세꼬시 500g은 적을 듯하여 밀치(봄에 나는 참숭어를 부산에서는 밀치라고 부른다.) 한마리를 더 달라고 하였다.
설 이후 처음으로 집에 온다. 집에 들어서니 어머니께서는 한상 차려 놓게 계셨다. 방금 회센터에서 산 회를 접시에 담으니 생각보다 양이 많았다. 도다리 세꼬시와 밀치를 반반씩 덜어 접시에 담았다.
어머니께서 잘 하시는 육개장, 반건조 생선구이 등 내가 좋아 하는 음식에 생선회를 상에 올려 어머니와 아침을 먹었다. 다 맛있다. 손맛이 살아 있다는 건 어머니께서 아직 건강하시다는 증거가 된다고 말씀 드리니, 어머니께서는 옛날 만큼 음식을 잘 못한다고 말하지만 흐뭇해 하신다.
아침을 먹고, 오늘 어머니와 같이 뭘하면 좋을지?에 대한 생각을 말씀 드렸다. "아버지 산소에 가보고, 산소 근처에 난 쑥을 캐면 어떻겠습니까?" 작년에 쑥을 캔 기억을 되살려 말씀드렸으나, 아직 쑥이 있기에는 철이 이르고 감기 기운이 있어 산소에 가기가 어렵다고 하시면서, 누나에게 전화하여 누나 부부와 같이 광안리에서 언양불고기로 점심을 먹자고 하신다.
누나에게 전화를 하였다. 항상 맑은 목소리의 누나가 좋아 하면서 자형과 함께 집에 오겠다고 한다. 어머니께서는 매일 받는 한방치료를 빨리 받고 오겠다면서 집을 나가셨다.
어머니께서 나가신지 얼마 후, 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형이 거제도에 가서 점심을 먹고 오자고 하셨다며 30분 후 집에 도착하겠다고 한다. 누나에게 어머니께서 수영삼거리에 있는 한방치료를 갔다고 하니, 구서동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오려는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며 어머니의 한방치료에 한마디를 한다. "오늘 하루 안 받으셔도 되는데..."
누나 부부는 동작이 굼뜨기 때문에 온다하면 늦게 오는 것이 상례였는데 오늘은 번개처럼 오니 문제가 생기게 된다.
누나 전화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께서 집에 오셨다. "누나가 모시려 간다했는데, 바로 오셨습니까?" 라고 여쭈니, 누나가 오늘 하루 한방치료 건너 뛰고 집으로 가라고 하여 바로 왔다고 하신다. 누나에게 어머니 오셨다는 사실을 전화로 알리니 누나는 모시려 간다고 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린다.
가끔 어머니와 통화를 해 보면, 의사 전달이 잘 안될 때가 있는데 오늘도 그런 경우가 된 듯하다.
잠시 후, 자형과 누나가 집에 왔다. 자형은 정년 퇴직 후 최근까지 병원에 나가셨으나, 구정 무렵부터 장에 이상이 있어 병원에 며칠 입원한 것이 계기가 되어 최근 한달간 쉬셨고, 이젠 더 이상 환자치료를 하기 싫어 하신다고 한다. 자형은 허리가 좋지 않고, 게다가 청력도 약해진 것이 쉬게 된 근본 이유일 것으로 추정한다.
40년생이시니 우리 나이로 73세. 열심히, 그리고 오랫동안 일하신 자형께 존경심이 생긴다. 자형은 집에 계셔서인지 에너지가 있는 건강하신 모습이어서 기뻤다.
누나는 아침에 생선회를 먹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서는 아침부터 삼겹살을 먹을 수 있다는 강호동과 같은 취급을 한다. 거제도까지 가기는 시간이 많이 되었고 또 생선회를 먹었다고 하니, 다양한 먹거리가 있는 기장 쪽 동해안으로 가자고 한다.
광안대교를 달려 해운대 신도시에서 송정으로 나왔다. 송정에서 해안도로를 타고 동해안을 옆에 끼고 기장으로 향했다. 해운대, 송정을 지나 대변으로 갈 때에는 편도 1차선의 좁은 길이어서 정체가 심했는데, 2차선으로 길이 확장되어서 시원하게 달릴 수 있었다. 또한, 토요일 12시가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차가 많지 않았다.
자형이 새로 생긴 절이라며 길에서 해안가로 우회전하여 빠진다. 해광사라는 절이었다. 기장에 있는 해동용궁사는 이제 규모가 커져 바닷가 조용한 사찰이 아닌 유명 관광지가 되었지만, 해광사는 용궁사의 초기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작은 돌섬을 연결하여 용궁암자를 지어 두었는데, 소박한 모습이어서 좋았다. 어머니께서는 어지러워 못가겠다고 하셨지만 자형의 격려에 힘입어 좁은 돌길을 따라 암자까지 가셨다. 해안 경계병으로 울산 방어진에서 근무하던 군시절, 구름다리로 연결된 돌섬에서 탐조등을 돌리던 생각이 났다.
동해남부 바다는 맑고 깨끗하다.
대변을 거쳐 월전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아버님 생전에 가끔 오시던 곳이라며 자형은 비닐하우스로 된 간이 건물로 들어 가셨다.
마치 영화 타자에서 보았던 야외도박장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숯불이 나오고, 산 아나고가 구이용으로 썰어져 나왔다. 숯불에 오른 아나고가 열기에 꿈틀거린다. 누나는 아나고를 약간 굽더니 양념을 묻혀 다시 구우려 하였다. 양념이 뭍은 아나고를 구우면 석쇠가 다 타니 많이 구운 다음 양념을 묻혀 구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 순간부터 아나고 굽는 일은 내 일이 되었다. 능숙하게 아나고를 굽고 있는 처남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로 보던 자형은 "재식이는 호텔 주방장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말씀을 하신다.
자형은 어릴 때부터 나의 주치의이셨다. 팔 골절하면 병원에 데려가 깁스를 해 주셨고, 간염 걸려 입원하면 처방을, 군에 가서 죽을 고비를 넘길 때에는 수도통합병원까지 동행하셔 처남의 안위를 걱정하셨다.
초교 4년 때부터 나를 지켜 본 자형이 대학진학을 앞 두고서는 법상대에 가지 말고 사범대학에 가서 교편을 잡으라고 권했다. 형님들에 비해 약골인 점, 설명을 잘하고, 게다가 아들 중 한명쯤은 할아버지, 아버지의 대를 이어 교사를 하는 것도 좋지 않겠냐는 것이 자형의 의견이셨다.
신중한 자형께서 호텔 주방장을 하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니 예사롭게 들리지는 않지만, 술을 좋아한다는 나의 고질병을 말씀드렸다. 주방장은 하고 싶은 일이지만, 좋은 안주가 있는 상황에서 한잔을 하지 않고 견딜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께서는 아버지를 가장 닮은 아들이 나라면서 술과 친구를 너무 좋아 한다고 하시며 절주를 권하신다.
체중이 주는 자형은 체중을 늘리기 위해 많이 먹으려 하지만 준 양이 늘지 않는다고 누나가 말한다. 많이 드시지 않는 어머니, 자형 덕분에 식성 좋은 누나와 내가 별미인 아나고 양념구이를 많이 먹을 수 있었다.
싱싱한 아나고 양념구이를 먹었음에도 가격이 저렴하여 놀랐다. 부산에 오면 돈 가치가 올라간다. 특히 해산물은 선도는 높아지고 가격은 싸진다.
월전을 떠나 집으로 가는 길에 송정해수욕장 입구에 있는 죽도(해운대 동백섬과 비슷한 모습이나 규모가 작다.)에 들러 산책을 하러 했으나, 봄날씨 답지 않게 강한 비바람이 쳐서 산책을 할 수 없었다.
아나고 양념구이만 먹었지 본격적인 음식은 안 먹었다고 생각하시지는 어머니께서 큰 사위를 위해 다른 점심을 먹자고 했지만, 합리적인 누나가 집으로 가서 아침에 먹다 남은 생선회에 봄에 맛있는 멍게를 사서 먹자고 한다.
아침에 들렀던 남천동 회시장에 들러 멍게, 해삼을 샀다. 조리하던 멍게에서 나는 향이 미각을 자극한다.
점심 겸 저녁으로 집에서 생선회와 멍게, 해삼을 먹었다. 자형과 어머니는 양념구이 때와 마찬가지로 별로 드시지 않았고, 나와 누나가 많이 먹었다. 자형은 내가 사온 야채를 보더니 또 나의 재료 선택에 감탄을 한다. 마늘 쫑대, 봄똥, 깻잎, 쑥갓만 샀을 뿐인데.
자형과 누나가 떠났고, 어머니와 T.V.를 보면서 저녁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께서는 서울 생활에 대한 궁금한 점이 많았다. 특히, 재균형님이 서울로 모시겠다는 말을 한 뒤여서인지도 모르겠다. 서울에서 집을 구하면 동철형네(큰형님의 친구) 집 근처를 중심으로 집을 찾아라고 하신다.
3/11(일)
6시에 일어났다. 밤새 어머니께서는 기침을 많이 하셨고,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리셨다. 기침하냐 화장실에 가시랴 잠을 충분히 주무시지 못할 법한 어머니께서는 아침 이른 시간임에도 일어나 자동 안마기 앞에 앉아 안마를 받고 계셨다.
나는 목욕을 하러 갔다. 남천동 뉴비치 아파트 앞에 있는 목욕탕이 시설이 괜찮아 남천동에 살 때부터 이 목욕탕을 이용했었다. 헬스클럽이 있는 목욕탕이어서 헬스클럽 회원들이 이른 시간임에도 많이 와 있었다.
냉온탕을 오가고, 습식 한증탕에서 모래시계가 다할 때까지 앉아 있었다. 냉탕에서 잠수를 하다 물을 약간 마셨다. 수도물만 사용한다는 이 목욕탕의 물이 짭쪼름하다. 바닷가 옆 목욕탕 수돗물은 염분이 조금 스며드는 모양이다.
어머니와 아침을 먹었다. 어제 먹다 남은 생선회를 다 먹었고, 상에 나온 음식을 다 먹으려는 노력을 하였다. 노력의 결과 빈 그릇을 많이 생산하였다. 많이 드시지 않는 어머니께서는 아들만 왔다 가면 먹다 남은 음식을 처분(어머니는 음식물을 버리는 걸 죄악시 한다.)하느랴 고생하신다는 말을 자주 듣기 때문이다.
어제와는 달리 날씨가 좋다. 광안리 바다에서 뜬 아침 해가 집 거실을 비춘다. 햇살에 비낀 광안리 앞 바다의 은파가 아름답다.
오전에는 청소를 하기로 하였다. 먼저, 어머니 방에 있는 이불을 베란다 빨래걸이에 늘었다. 청소기로 밀고, 걸레로 방과 거실을 닦았다.
어머니께 파출부를 쓰라고 말했지만, 매일 오는 파출부는 있지만 일주일에 한두번 오는 파출부는 잘 없고, 모르는 사람을 데리는 것이 좋지 않아 파출부를 쓰지 않으신다. 부지런한 어머니이시지만, 세월이 만든 근육 약화로 인해 걸레질을 못한 주방 근처에는 눌러 붙은 때가 쉽게 지지 않는다. 힘을 들여 몇 번 걸레질을 하여야만 때가 진다.
다음은 화장실 청소를 하였다. 세제로 화장실을 한번 닦고 물로 씻었다. 마른 걸레로 화장실을 훔치고 마지막으로 화장실 벽거울를 닦았다. 화장실이 광채가 난다.(어머니 표현)
베란다에 늘어 두었던 이불을 베란다 문에서 털고 어머니 방에 다시 깔았다. 햇볕을 머금은 이불에서 햇볕의 냄새가 난다. 가실가실해진 이불과 요는 어머니의 안면에 도움이 될 듯하다.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는 이불 홑청을 씻고 풀을 먹여 홑청을 다시 입혀, 방에 깔아 주시면서 "꼬치가 생글생글 웃겠구나."는 말씀을 하셨는데, 세월이 흘러 난 어머니께서 하신 침구 세탁은 못하고 고작 볕에 말려 터는 것만 하였는데도 어머니께서는 좋아 하신다.
점심은 광안리에서 언양불고기를 먹기로 하였다. 광안리 바닷가을 달려 가장 오래된 언양불고기 집으로 갔다. 어머니께서 좋아 하시는 언양불고기는 쇠고기를 잘게 썰어 불고기 방식으로 구워서 준다.
잘게 썰었기 때문에 먹기 쉽고, 불고기 판에 구웠기 때문에 숯향이 배인 불고기 맛이 좋다. 광양불고기와 거의 비슷한 방식의 불고기이다.
횟집만 있을 것으로 상상되는 광안리 바닷가 뒷편에 오래된 언양불고기 집이 있다는 것이 이색적이다.
오늘은 전에 보지 못했던 완장을 찬 아저씨들이 불고기 집 입구에 몇 사람 서 있었다. 일본 관광객들을 위한 안내원들이었다. 일본 동북지방 지진 이후 부산을 찾는 관광객이 많이 늘었고, 광안리 언양불고기 집에도 일본인들이 많이 와 별도의 안내원이 있다고 한다.
언양불고기를 좋아 하시는 어머니께서 고기를 잘 드신다. 소주 반잔에 야쿠르트를 부은 야쿠르트 소주를 반주로 드렸다. 어머니께서는 술은 좋아 하시지 않지만, 야쿠르트 소주는 한잔 정도 드신다.
술꾼 아내는 대부분 술을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머니께서 술을 못하시는 것을 보아 아버지는 술꾼이셨음이 분명하다.
서빙하는 아주머니가 친절하여 계산을 하면서 어머니 몰래 팁을 조금 주었다. 어머니께서는 팁에 대한 개념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많이 드셨다면서 걸어서 집으로 가자고 하신다. 광안리 해변가를 지나, 삼익비치 아파트 중간 길을 걸어서 갔다. 벚나무에 물이 오르는 모습으로 보아 머지않아 화사한 벚꽃이 필 듯하다. 남천동 뉴비치 아파트에 살 때부터, 부산에서 유명한 벚꽃 구경지인 남천동 삼익비치 아파트에 오고 싶었으나 오지 못했다. 금년에는 꼭 오리라고 생각하지만 글쎄이다.
바닷 바람이 몹시 세었다. 제법되는 거리(2km 정도)를 걸어서 집으로 오면서 어머니께서는 몇 번 거리변 벤치에 앉아 쉬셨다. 걸린 시간이 많아서인지 먼 거리를 걸은 느낌이 되었다.
집에서 햇볕이 드는 쇼파에서 졸았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서울에 가져 갈 짐을 챙기시는 듯 주방에서 계속 일하셨다.
저녁 7시 비행기다. 어머니께서는 저녁을 먹고 가라고 하신다. 더 이상 먹을 배가 없어 서울에 가서 먹겠다고 하였다. 6끼를 먹으려던 계획은 실행할 수 없었다.
5시 반에 집을 나왔다. 어머니께서는 아파트 복도에서 배웅하는 것이 양에 차지 않으셨는지 아파트 앞 육교까지 배웅해 주시겠다며 같이 아파트를 나섰다.
육교 난간에 기대서서 어머니께 한참 동안 손을 흔들었다. 손을 흔들고서는 서로 손짓으로 가라는 수신호를 했지만 쉽게 돌아서지 않는 어머니의 모습에 내가 먼저 돌아서 육교를 내려 왔다.
항상 그러하듯이 광남4거리에서 리무진 버스로 공항까지 가, 김해공항에서 서울행 비행기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