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2014.2.17(월요일) ●날씨:흐리고 비 아침부터 흐린 날씨다. 오후부터 비가 내린다 하니 비를 맞으며 산길을 걷는 산행도 운치가 있는지라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지만 그래도 산행이 끝난후에 내려주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집을 나선다. 오늘은 가까운 거제에 위치하고 있는 계룡산 산행이 있는 날이다. 계룡산은 어떤 산일까? 계룡산은 경상남도 거제시에 높이 566m의 산이다. 거제도 중앙에 우뚝 솟은 산으로 동서남북의 4개산(북쪽은 대금산,동쪽의 옥녀봉,남쪽에는 가라산과노자산,서쪽은 신방산)이 마치 머리를 조아리듯이 하고 있다. 용이 승천하는 산세의와 봉우리가 닭 벼슬처럼 보인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산이다 .오후부터 내린다는 비는 계룡산을 지날때 쯤 약하게 비가 온다는 암시를 하기 시작했어나 다행이 모두가 하산하고 나서야 빗줄기가 뿌리기 시작 했다. 동쪽으로는 상포에서 시작 해 대금산-국사봉-북명산-가라산-망산에서 명사해수욕장으로 끝을 맺는 거제지맥이 흘러가고 계룡산-선자산으로 해 평지마을에서 노자-가라-망산으로 이어지는 거제남릉 종주길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산행지도◀
※산행코스※ ☞거제공설운동장→전망대→계룡산→통신탑→고자산치→선자산→동부저수지☜ 거리및시간:10.1Km/총소요시간:4시간22분=이동시간:3시간34분=휴식시간:48분 ▶산행사진◀
거제공설운동장도착 산행을 시작합니다(09:55) 거제공업고등학교를 지나 육교를 건너 계룡산 1.8Km 남겨두고 산행중입니다 전망대가 어서오라 손짓하고 전망대에 도착합니다.삼성조선이 내려다보이고(10:34) 거제 시가지도 보이네요 인증샷도 남기고
조금 오르다 보니 암릉구간이 보입니다= 이 암릉봉 우리들이 계룡산의 이름을 결정지었나 봅니다.정말 닭 벼슬처럼 생긴 바윗길이 이어집니다 암릉을 배경으로 한샷 남기고 산행을 이어갑니다 561암봉에서 바라보니 계룡산 정상석이 어렴푸시 보이네요 계룡산 표지석에 도착합니다.물론 오는길은 힘들었죠(10:55) 계룡산 인증샷을 남기고 바다와 어울어진 평화로운 마을 바라봅니다,속이 확 터입니다 저~기 송신탑이 보이고 두 바위는 언제부터 이렇게 사이가 좋았을 까요=서로를 의지하고 있네요 그 틈새에서 한장 남깁니다
배경의 거북바위는 할말이 많으듯 고개를 하늘로 향하고 바위의 마술에서 풀려 인간이 되고 싶답니다~~ㅎ ㅎ ㅎ 지나온 암릉 입니다 아래 건물은 6.25 유적지로(11:50)
포로관리를 위한 통신대 건물이랍니다 이제 가야 할 목적지는 선자산입니다 3.4Km 남았네요 계룡산 정상에서부터 오락가락 하던비는 그 기세를 더하고...아래 고자산치를 배경으로 고자산치를 지나 저멀리 산자산으로 갈 겁니다.고자산치가 왠지 맘을 포근하게 하네요 그냥 스치려다 고자산치의 전설을 기록해 봅니다 고자산치의 전설 거제면 동상리에서 계룡산을 올라와서 신현읍 문동리로 가는 이 고개는 경사도가 급하고 산림이 울창하며 10㎞나 되는 준험한 산길로 고자산치라고 한다. 이 고자산의 고갯길에 연유한 전설은 우리 거제에 널리 알려진 인생 윤리 도덕의 대표적이 애한이라 할 수 있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고현성이 함락되고 17년 후인 1663년 현종 4년 거제현아를 고현에서 이 고자산을 넘어 거제로 옮겨 온 후에 고현과 거제 사이는 이 고개가 가파르지만 하나밖에 없는 대로였다. 그로부터 25년 후인 1688년 숙종 14년에 현령 김대기가 계룡산 북쪽 중허리를 둘러가는 김현령재의 고갯길을 개설할 때까지 96년간 신읍 거제와 구읍 고현 사이의 중앙 도로였기 때문에 사람의 내왕이 많았던 고자산재였다. 이 때에 어느 날 거제에서 의좋게 잘 살고 있던 기성반씨(岐城潘氏)의 반명돌(가명)이란 오빠와 여동생 순이(가명)가 함께 아주의 아주신씨(鵝洲申氏) 집안의 외갓집에 가는 길이었다. 대는 초여름의 장마철로 고자산 고개 중턱을 오를 때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비를 피할 곳이 없으므로 비를 맞으면서 오빠는 앞에 가고 여동생은 뒤를 따라 올라갔다. 계룡산의 고개 정상에 오르자 숨가픔을 쉬어가기 위해 앞서가는 오빠가 기다렸다. 이 때에 여동생이 올라오니 비 맞은 머리카락을 닦아주는 오빠의 눈에는 너무나도 여동생이 예쁘게 보였다. 얼굴은 보름달같이 밝으며, 두 눈은 부용꽃이 활짝 핀 것 같으며, 푸른 소나무 같은 팔자의 눈썹에 샛별같이 반짝이는 눈알, 해당화 핀 것처럼 분홍색의 양 뺨에 수양버들 가지가 늘어진 모양의 길 다란 머리카락에 앵두 같은 입술을 가지고 있었다. 초여름 고개를 넘어가는 산길이라 옷을 많이 입을 수 없고 백옥같은 모시저고리에 치마를 입고 촉촉이 비를 맞았으니 온 몸에 옷자락이 밀착되고 처녀의 갸름한 몸매에 유방이 분명하고 허리의 곡선미는 말로만 듣던 여인의 몸매가 과연 이런 것이냐 하고 마침 나체같은 또한 선녀같은 생각에만 도취되어 여동생인지조차 잊을 정도였다. 어느 새 동물성의 발동이 정신없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게 남성의 신기가 명돌이의 바지 속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느낌을 받으니 하늘이 캄캄해졌다. 오빠는 동방예의지국이라는 교훈을 받은 바 있어 때와 곳도 모르고 정신없이 동물성을 나타내는 자기의 눈과 신기는 인간된 도리에도 있을 수 없는 큰 죄를 지을 것 같은 죄책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불륜의 꿈같은 죄라도 마음의 용서가 되지 않아 여동생에게 먼저 내려가라고 타이르고는 혼자 남아서 이 고약한 못된 생각을 한 것은 자기의 눈이지만 행동으로 나타내려고 하는 것은 불륜한 고환(睾丸)인 불알의 잘못이다 하면서 주머니에 있던 작은 칼로써 고환을 찔렀다. 명돌이의 고환에서 붉은 피가 흐르고 정신없이 쓰러졌으니 끝내 돌아오지 못하는 죽음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여동생 순이는 얼마쯤 내려가다 돌아보니 오빠가 오지 않았다. 이상한 느낌이 감돌기 시작해서 도저히 혼자서 갈 수 없기에 다시 되돌아와 고개에 올랐다. 오빠를 부르며 숲 속을 헤메다 보니 뜻밖에도 오빠의 몸은 피투성이로 변했고 숨도 쉬지 않는 시체로 변하여 있지 않은가! 순이가 사연을 살펴보니 비맞은 여동생의 몸매에 귀신도 도취될 정도로 되어 인간다운 윤리에 어긋난 짓을 느껴 그 죄책감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이 계룡산 고개를 고자(睾刺) 산치(山峙)라 부르게 되었으니 칼로서 고환(불알)을 찔렀다는 전설이다. 여동생 순이는 하는 수없이 오빠를 바위틈에 흙을 덮어 매장하고 외갓집이 있는 장승포시 아주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가로질러 하늘만 보이는 골짜기를 무섭게 여기지도 않고 걸어가면서 한없이 한없이 오빠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었다. 이러한 전설로 고자산치와 울면서 걸어갔다는 길인 양정에서 아주로 가는 옥녀봉 밑의 고개를 울음이재라 불려 오늘날 300년 동안 고개의 이름이 되었다. 그 후 총각의 오빠와 처녀인 순이가 남긴 사연으로 지방의 신랑신부가 우기일 때는 아무도 이 두 고개를 넘지 않고 멀리 둘러서 다녔다. 이는 동방의 예의와 인륜의 도덕 원리에 대한 갸륵한 전설이라 할 수 있다.
고자산치에서 선자산 2Km 남았네요 전설의 그 고자산치를 넘고 있습니다 = 가랑비가 내리고 있습니다.이구간은 비내리면 안되눈데~~~ㅎ ㅎ ㅎ 선자산 1km남겨놓은 정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합니다
저 멀리 계룡산,통신탑 그리고 고자산치가 한눈에 들어오네요 선자산에 도착했습니다(13:01) 비를 맞으며 인증샷을 남기고 이제 오늘 산행도 끝나 갑니다.동부 저수지가 눈앞에
자연예술랜드 버스 정류소의 한적한 모습입니다 비내리는 동부 저수지를 바라보며 오늘 산행을 종료 합니다(14:12) 산행을 마치니 본격적으로 봄비라고 해야 하나요 더 굵은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를 마무리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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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순간을영원히 원문보기 글쓴이: 청 산
첫댓글 거제도 산행 잘했내요,
원점산행 코스있으면 추천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