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9일) 새벽 2시 20여분에 끝난 페덜 머레기의 윔블던 결승은 아시다시피 페덜이 이겼습니다.
영국인들의 테니스 메이저 대회 우승의 갈망은 올해로 76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강산이 무려 8번 가까이 바뀌도록, 테니스의 종주국이라 할 영국이 메이저대회에서
자국선수의 우승자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건데요.
머레이의 등장 이전에는 헨만이라는 선수가 있었죠.
얘도 공을 잘치긴 했지만, 메이저급 경기에서는 명함내밀기엔 실력이 후달렸었죠.
제 기억으론 윔블던에서 젤 잘했던게 4강까지 간걸루 알고 있습니다.
그런 영국에서 혜성같이 머레기가 등장했죠.
헨만보다 신체적으로 업그레이된데다 서비스, 리턴, 랠리 능력이 한수 위였죠.
이번에 윔블던에서 페덜이랑 붙기전 전적을 보면 머레기가 8승 7패로 앞섭니다.
비록 윔블던 잔디코트에서는 둘이 만났던 적이 없었고,
메이저 결승이니만큼 페덜의 우세가 점쳐지긴 했어도 한번 해 볼만하다는 전망도 만만치 않았더랬죠.
그랬던 머레기 였기에 오늘 윔블던 결승전은 영국을 흥분의 도가니로 만든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자 지금부터 경기상황을 보죠(이건 순전히 내 기억에 의존해서 쓰는 글이라 세부적으로는 틀릴 수가 있다는 점을 이해^^)
<1세트 상황>
페덜 서브로 겜이 시작됐는데, 이 겜이 바로 브레이클 당합니다. 페덜이 쉬운 볼을 어이없는 연이은
에러로 날려 버리죠. 그러다 페덜이 3~4번째 겜에선가 머레기 서브를 브레이크합니다.
대등한 상황이 된거죠. 근데 4-4 상황에서 페덜이 자기 서브를 또 한번 브레이크 당한 후,
머레기가 자기 겜을 지켜서 6대 4로 셋트를 가져갑니다.
첫번째 세트는 머레기의 두번의 브레이크가 한번의 브레이크에 그친 페덜을 앞선 결과였습니다.
페덜의 언포스드에러가 머레기 보다 3배가 더 될 정도로 많았고요.
한마디로 머레기가 지배한 세트.
<2세트 상황>
페덜의 입장에서는 절대 잡아야 하는 세트. 머레기는 1세트 승리에 이어 2세트를 가져 오면 윔블던 우승이라는 신화의 주인공에 한발 더 다가 서는 기회를 잡게되는 상황.
페덜의 에러가 여전하긴 하지만 조금씩 안정돼 가고, 머레기는 이에 전혀 굴하지 않고 자신의 플레이를
합니다. 5대 5가 될때까지 두사람 모두 자신의 겜을 견고하게 지켜나가는데요.
6대 5로 1겜 뒤진 상황에서 머레기 서브차례. 그런데 이 겜에서 그만 브렉당하고 맙니다.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페덜의 공세가 먹혀 철옹성같던 머레기의 방어벽이 뚫리는 순간이더랬죠.
이날 승패의 분수령이 된 세트가 바로 2세트가 되겠습니다.
머레기로선 자기 겜을 지켰더라면 타이에 돌입했을테고, 타이에서의 승부는 어느 누구도 장담 못하니, 만약 머레기가 타이로 가서 이겼더라면 세트스코어 2대 0이니 절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이 되는거였죠. 머레기로선 천추의 한이 될 세트...
<3세트 상황>
서로 1대1 본전치기후에 맞게 되는 세트. 3세트를 과연 누가 가져가는냐가 윔블던 우승배의 향방을 가를
중요지점이 됩니다.
그런데 3세트부터 미묘한 변화가 감지됩니다. 머레기의 첫서브 성공률이 현저히 감소하기 시작하고 움직임도 느려집니다. 첫서브가 안터지니 세컨서브에서 페덜에게 당하는 횟수가 늘어납니다.
아니다 다를까 머레기가 자기 서브겜을 한번 잃고 페덜겜을 한번도 잡지 못해 6대 3으로 페덜 승....
페덜의 상승과 우세, 머레기의 하락과 약세가 가속화되기 시작한 세트라 할 수 있는 경기.
<4세트 상황>
페덜의 컨디션은 좋아지는 분위기인데 반해, 머레기의 커디션은 난조로 빠져듭니다. 머레기의 서브는 회복될 기미가 없고 동작은 더욱 굼떠지고 있습니다.
머레기의 입장에서는 3세트의 나빠진 상황을 반전할 수 있는 모멘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반면,
페덜은 이어지는 상승세를 유지만 하면 되는 유리한 입장.....
결국 4세트에서도 머레기는 자기 겜을 한번 브렉당하고 페덜은 겜을 지키는 공식이 이어져 6대4로 승부가 결정납니다. 최종 스코어 페덜의 3대1승.
<종합>
기술 전략 등에서 페덜이 한 수 위라는 점이 입증된 경기였죠.
통산 전적에서 비록 머레기가 1승을 앞서고 있었지만 윔블던 이전에 두번 만난 메이저 결승에서 페덜에게 완패했었고, 더구나 잔디구장에서 스페셜한 페덜을 처음 만나는 경기, 그것도 메이저 결승...
큰시합에서는 우승 경험이 절대적으로 유리하죠. 동네시합에서조차 우승 경험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데 하물며 테니스 역사상 가장 도미네이트한 전력의 소유자 페덜을 상대로 윔블던 결승에서 이긴다는건 역부족이었습니다.
혹자는 머레기의 정신력의 문제를 들곤 하지만, 전 아니라고 봅니다. 실력이 딸린거죠.
머레기의 가장 결정적 약점은 서비스였습니다. 서비스에이스는 페덜보다 많았지만 그건 첫서브가 잘 들어갔을때의 얘기고, 세컨 서브가 넘 약해 페덜에게 계속 호구잡히는 구도였죠.
또한 페덜이 이날 슬라이스를 많이 구사했는데, 슬라이스 공략에 실패한 것도 패인의 일부였습니다.
종합하자면 페덜의 승리는 먼저 서브의 질이 좋았고, 적절한 슬라이스 구사, 체력 우세에 있었습니다.
체력문제를 두고 말하자면, 머레기가 약했다기 보다도 공수 완급을 조절하고 코스 배분을 통해 머레기를 더 뛰게 만든 페덜의 전략적 승리이기도 합니다.
사실 실력차이란게 이런 경기운영 능력부분인데요. 그건 하루 아침에 따라 잡을 수 있는 요소가 아니기에 선수간 클래스가 갈리는거죠. 지존과 지존이 될 수 없는 사람의 차이...
경기가 끝나고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머레기가 울먹이며 말을 못하는 장면에서는 뭉클했습니다.
애인도 울고 엄마도 울고 응원하던 영국민들도 울고...만약에 담에 메이저 결승에서 페덜과 머레기가 만나면 머레기를 응원하기로 크게 맘 먹었습니다^^
이로써 페덜은 메이저 승수를 17개로 늘리고, 랭킹 1위도 되찾고, 숙원이었던 최장기록 랭킹 1위도 갱신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한물갔다, 메이저 우승은 어림없다, 샘프라스의 최장 1위기록을 깨기도 힘들다고 했던 페까들의 코를 납작하게 맹글었구요.
페덜의 승리를 보면서 인간승리를 생각했습니다. 힘들게 도전하고 이를 이루는 과정...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의지의 아름다움...스포츠 정신이 삶에 던지는 화두같은것도 될 수 있는.....
여기 모이신 11단지 횐님들은 그런 걸 늘 일상으로 즐기시는 분들이니 행복하신겁니다^^
저도 물론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