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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우주센터 역사적탐방기
10월4일(나로우주센터)
◦ 10월4일부터 1박2일의 일정으로 우리나라최초의 위성센터인 ‘나로우주센터’현장을 거쳐 나로도 유람선관광, 순천시 관내 ‘낙안읍성민속마을’을 탐방하였다.
이번 탐방에는 김기형 초대 과기부장관을 비롯한 60명의 우리 과우회 회원들이 참여하였다. 박승덕회장님, 김대석사무총장님을 비롯한 여러 과우회임원들이 이번 탐방을 위해 수고하셨다. 특히 이수웅선배님, 유범식선배님, 송춘규선배님, 정기순과장들이 너무나 애를 많이 쓰셨다.
우리는 2대의 관광버스에 나눠타고 9시30분 과총정문을 출발하였다. 망향휴게소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고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다 천안-논산고속도로를 지나 전주로 향하였다.
전주 “성미당”이라는 전통 비빔밥집에서 한국과학재단 최석식이사장님이 점심을 대접하셨다. 역시 맛있었다.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 아담한 옹기같은 그릇에 비빔밥이 나왔을때 웬지 양이 적게 느껴졌다. 그러나 밥을 비벼먹어보니 결코 적지않은 양이었다. 우리 전통도자기나 그릇들에 외부의 화려함보다 껴안은 듯이 아담하게 보이는 그릇속에 알찬 내실이 있게한 우리 조상님들의 지혜를 느껴보는 순간이기도 했다.
전주에서 출발하여 나로도 현장으로 향하였다. 가는 도중 두암휴게소에서 숨을 돌리고 승주땅을 지나 두암호수를 끼고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돌아 보성땅에 이르렀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산길옆에는 두암호수의 휘감김이 있었다. 깊이를 간직한 호수면은 너른 황금벌판을 달려온 우리에게 차분한 휴식과 돌아봄을 주려는 듯이 산굽이굽이 돌때마다 휘감기며 따라왔다. 보성벌판을 지나 고흥땅에 들어섰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기에 우리는 계속 달렸다.
고흥반도를 달려 연육교를 지나 나로도에 오후 6시 30분경 도착했다. 해변산골이라는 말 그대로였다. 아름다운 남해바다를 끼고 굽이굽이 산을 돌고돌아 한참안에 나로우주센터에 도착했다. 남해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드문드문 어촌마을이 정답게 느껴졌다.
곧바로 대회의실로 옮겨 민경주 센터장의 나로우주센터현황소개가 있었다. 항공우주원 영상물소개를 시작으로 나로우주센터추진현황브리핑이 있었고 간단한 현장시찰이 있었다.
이어서 과학기술의 산증인이신 김기형 초대과학기술부장관님의 인사말씀이 있었다. 오늘 10월 4일이 바로 1957년 10월 4일 인공위성이 발사된지 50년이 되는 날이라고 깊은 뜻을 새겨주셨다.
주요시설은 거의 다 건설완료되었고 다만 발사대시설만 내년2008년 2월경에 완료될 것이며 지금은 비록 미국이나 러시아에 기술의존하여 건설하지만 머지않은 날에 우리기술로 만든 인공위성을 우리가 만든 발사대에 의해 우리손으로 띄워보내겠다는 민센터장의 다부진 결의가 있었다.
우리나라 국자전략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과학기술의 총집합체라 할 수 있는 나로도위성센터와 나로도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한다.
<나로도>
◦ 나로도는 내나로도와 외나로도로 구성되어 있으며 우주센터는 외나로도(봉래면)에 소재하고있다. 지금은 연육교가 나있어 옛날과같은 뱃길은 아니다 . 나로도는 21개의 섬을 주위에 거느리고 있는데 그중 3개섬만 사람이 거주한다고 한다. 남해안중에서도 우리나라 제일의 청정해역이라 할 수 있으며, 우리나라섬중 주위에 양식장이 없는 유일한 섬이라는 것이다. 그 정도로 주민들은 조상대대로 잘 살게 해준 바다를 소중히 여긴다고 한다.
이 섬은 목섬과 꽃두여 등 갯바위 낙시터로 잘 알려져 있으며 노송이 푸르고 맑은 청정해역과 함께 길게 뻗은 하얀백사장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나로도 해수욕장으로도 유명하다.
외나로도는 조선초기부터 “나라섬”으로 불려오다 일제시대에 우리지명이 한자로 바뀌면서 뜻보다는 음을 딴 나로도(羅老島)가 됐는데 지명의 유래를 보면 “우리나라 최초로 말을 방목했다는 목장이 여러군데 있어” 국가적인 섬이라는 뜻의 “나라섬”으로 불렸다고 한다. 주민들도 일본식 이름을 버리고 국가적인 섬인 “나라섬”으로 다시 환원되길 희망하고 있다.
면적은 여의도의 약3.5배이며 삼치어장의 중심지로 유명했으며, 일제시대에는 전량이 일본에 수출되고 전기와 수돗물이 들어갈 정도의 부자마을이었다한다. 나로도에 와선 돈자랑하지 말라는 속담아닌 속담이 있었다고 한다. 한때 고흥군 세수입의 1/3을 충당했으며 어선수백척이 들어설 수 있는 부두, 넓은 상가 등이 잘 조성되어있고, 수협위판장에선 자연산생선 및 수산물을 값싸게 구입할 수 있는 풍치좋고 풍요로운 섬이다.
<나로우주센터>
◦ 전남고흥군 봉래면 예내리 하반일원이며, 면적은 150만평(시설부지 약 8,7만평)
◦ 주요시설은 발사대(2008. 2월경 완공계획), 발사통제시설, 발사체 및 위성조립시험시설, 추진기관시험시설, 지원장비동, 기상관측시설, 우주교육체험관, 발전소등으로 구성되어 있음
◦ 추진규모는 약 2650억원(우주체험관포함)이며, 추진기간은 2001년~2007년(1단계사업), 2001~2003년 기본, 실시설계/부지매입, 2003~2006년 토목,건축공사, 해외도입장비발주, 2007년 지상설비, 장비설치/우주센터시험운영 2007년 시험발사(과학기술위성2호)이며, 추진주체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다.
우리 과우회 연구탐방단이 시설완료이후 첫 번째 손님이기에 더 의미가 깊다는 센터장의 말씀이었다.
밤 7시30분 저녁식사를 위해 우주센터를 하산했다. 올라갈때는 그래도 여기저기 몇집씩 어촌마을이 보였는데, 하산할때는 도회지와 다르게 완전깜깜절벽이었다. 굽이굽이 산을 돌아 내려오는데 멀리서 보이는 한점, 두점씩 반짝이는 불빛은 깜깜한 우주공간에 쏘아올린 과학기술위성으로 착각되었다. 한참 보고있노라니 어느새 어촌마을의 불빛으로 우리고향마을의 정겨운 호롱불빛으로 마음에 와닿는 것이었다.
그렇다. 과학기술위성발사는 멀리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마음에 우리가슴에 와 있는 것이다. 우리과학기술인들에게는 어느새 현실로 인식되어 와 있는 것이다. 화이팅! 우주센터임직원들이여, 힘을 내시오. 반드시 우리의 위성은 우리기술로 우리손으로 쏘아올려질 것입니다.
가까운 마을에서 민경주센터장의 대접으로 김기형장관님의 “나라를 위하여”를 선창으로 한잔씩 들며 맛있게 먹었다.
밤늦게 숙소에 돌아왔다. 고흥군도화면 발포리 “빅토리아호텔” 301호실에서 선배님들과 함께 7명이 투숙했다.
봉종헌대선배님(전기상청장)을 모시고 우리 선후배들은 잔을 돌리며 마음을 합쳤다. 피곤하실텐데도 후배들을 위해 티없이 함께 해주신 봉 대선배님께 감사드린다. 부드러우면서도 위엄을 잃지않으시며 후배들을 껴안아주시는 선배님덕으로 우리는 첫날밤을 웃으며 즐겁게 보냈다.
다음날 아침식사를 하기위해 1층으로 내려가 밤에 보지못했던 호텔앞의 모래사장과 잔잔한 푸른바다 그리고 주위의 섬들을 보니 경관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다시한번 오고픈 곳이었다.
10월 5일(나로도 유람선관광과 낙안읍성 민속마을 탐방)
◦ 하늘도 푸르고 바다도 푸르다. 높고깊음이 하나다.
아침 8시 호텔을 출발하여 나로도항으로 향했다. 8시35분에 유람선을 타고 섬을 왼쪽으로 끼고 돌아 10시45분에 다시 원래위치로 돌아왔다. 바다에서 바라보는 외나로도의 해안경관은 기암절벽의 연속이며, 불쑥솟은바위, 벌렁누운바위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헛갈리게 하고, 진짜짐승으로 오인할 정도로 닮은 카멜레온바위, 사자바위,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의 70m깊이의 용굴, 거대한 짐승의 콧구멍같은 쌍굴등 해안절경이 정말 일품이었다.
지금은 역육교, 연도교 다리2개가 생겨 섬이아닌 육지가 되어있지만 일제시대에는 자가발전으로 수도, 전기를 공급했었을정도로, 정말 부유한 섬이었다한다. 이제 위성발사기지가 완공되었으니 앞으로도 국가적인 섬, 나라도가 되리라 생각한다. 한때는 두개의 섬에 21,000명정도 거주했으나 현재는 5,200명정도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낙안읍성민속마을에서>
◦ 낙안읍성민속마을은 성곽 1410m를 비롯해 조선시대의 관아와 9동의 중요민속자료등 민가와 한국전래의 토속적인 민속경관이 잘 보존되어있고, 세시풍속과 통과의례 등 전통생활문화를 지키면서 100가구의 주민이 살고 있다고 한다.
19세기 초기에 건축된 것으로 보이는 중요민속가옥들이 있으며, 조선시대의 의성 허준선생이 거처했다는 조그만 초가가옥이 있었다. 조선초기 왜구의 침입에 대항하여 이 지방출신의 의병장이 흙성을 쌓았다고 하며, 더구나 병자호란의 명장 임경업장군이 인조4년 낙안군수로 봉직하면서 선정을 베푼 은덕을 오래 기리기위해 세운 선정비까지 있으니 역사적인 보존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지금도 눈에 선한건 전통가옥안에서 새끼를 꼬며 짚신을 삼고 있던 노인들 모습이다. 우리가 들어가 인사했을때 늙고 주름진 앙상한 모습으로 묵묵히 일하고 계시던 그들의 모습에서 역사적인 전통을 이어가는 것은 입으로 떠들어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묵묵한 침묵속에 땀을 흘려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엄숙함마저 느껴졌다.
마을에 들어섰을때 볏집으로 지붕을 한 아담한 초가지붕위에 노오란색으로 익은 커다란 약호박들에서 , 목화밭에서, 전통적인 따스함과 근끈한 정을
느낄수 있었다.
<이제 서울로>
2대의 버스중 한대는 그냥 서울로, 우리가 탄 한대는 대전대덕특구를 들려 한국원자력연구원앞에서 선배몇분을 내려드리고, 김영환선배님(김홍석선배님의 장조카)께서 저녁을 대접하시겠다고 해서 “솔밥묵집”에서 도토리묵에 보리밥비빔밥으로 맛있게 먹었다. 서울에 이르러 양재역에서 대부분의 선배님들이 내리시고 우리 몇사람만이 강남역에 내렸다. 밤10시였다.
선배님들과 헤어질때 내어깨를 두드려주시며 다음에도 꼭 참석하라고 하시던 선배님의 배려가 너무나 고마웠다. 선배님 건강하십시오.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 시원스레 달리던 차창밖에는 가을의 황금물결이 계절이 늦은 탓인지 조금은 푸르름을 간직한채 이리저리 일렁이고 있었다.
저 이삭이 고개를 숙일때까지 농부님들-요즈음은 나이드신 노인들-의 땀이 지친호흡속에 얼마나 뿌려졌을까 생각하니 저절로 손이 모아진다.
문득 바람에 이리저리 움직이는 벼이삭 사이로 말발굽 소리가 들린다 요즈음은 중국의 교만심때문인지 민족혼을 일깨우기 위해서라 생각되지만 유난히 역사물-특히나 고구려 중심(주몽, 대조영, 태왕사신기 등)-이 TV에서 많이 나와서 그런가보다. 흔들리는 황금의 벼이삭들이 광야를 달리며 질주하며 외치던 그때의 절규, 함성과 말발굽소리 되어 나에게 다가온다.
그렇다. 알찬 결실은 조상님들의 나라위한 외침과 달림이 있었기에, 묵묵한 엄숙함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것은 오늘에도 계속되고 있다. 나로우주센터에서의 우리만의 기술로 우리위성을 우리손으로 쏘아올리겠다는 집념과 열정의 몸부림도, 전통을 지키기위한 묵묵한 실천도, 나로센터 영상실에서의 김기형대선배님의 오늘의 방문의의를 깨우쳐주심도, 저녁식사때의 “나라를 위하여”의 선창속에서도 우리는 우리조상들의 외침과 달림을 들을 수 있다.
이제 우리의 심장에 마음에 이러한 것들을 영상으로 달으며 이번 1박2일의 탐방에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하고자한다. 북쪽에서는 대통령께서 조국통일과 민족의 공동번영을 위해 정상회담을 하시고, 남쪽에서는 우리 과학기술의 산증인들인 과우회선배님들께서 과학기술의 집합체라 할 수 있는 세계13번째 되는 위성발사의 산실을 탐방한 것이 이게 우연이겠는가. 조국의 통일도 번영도 과학기술이 뒷받침된 힘의 우위가 없어서는 공염불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여기에 역사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선배님들 그 장시간동안의 여행에도 잘 견디셨습니다. 부디 건강들 하십시오.
2007년 10월 5일
박진우 드림
첫댓글 빠짐없이 재미있게 올려주신 멋진 기행문 잘 읽었습니다
도토리 묵밥을 먹을줄 알았드라면 나도 대전에서 하루밤 자는 일이 있더라도 2호 버스를 탈걸 그랬나?...탐방기 감사합니다.앞으로 또 이런 행사가 있으면 그때도 기행문 부탁올립니다.
아주 멋진 탐방기 올려주어 감사합니다. 글솜씨가 대단하십니다.
다재다능한 박사장님의 여행기를 읽고 나니 다녀 오지 않고도 광경들이 눈에 선하오.
상세한 상황 전개는 나르도 우주센터를 한번 더 다녀오는 기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