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하기로 출발하기 전에 아침 산책을 하면서 안권사님에게 떡을 부탁하고
우리가 먹던 쌀푸대와 고구마주조금을 가지고 권집사님 댁에 갔었는데 않 계셔서 마루에 놓고
돌아 나와 이승희 목사를 찾아 사택으로 갔었다.
간 이유는 주보를 할려고 아무리 애를 쓰도 않되고
이승희 목사님에게 문의를 해도 되지를 않아서 직접박진으로 찾아갔었다.
그곳에서 직접 목사님의 컴푸터로 시험도 해보고 해서 자세하게 목사님이 하시던
방법을 듣고서
사모님이 맛있게 해 주신 점심을 먹고서 바로 진주로 달렸다.
시간도 많이 없고 또 토요일이라 마음이 많이 급했다.
가서 어머니를 찾아뵙고 누나하고 이야기를 하고
금요일 오후에 영빈이가 가면서 의사의 말을 전해 주는 것이였다.
방광에 혹이 있어 그 혹이 핏줄을 건드려 피가 나온다고 해서 알고 있었는데
영빈이의 말은 의사의 말에 방광 암으로 3기에 접어들었다고 했다.
근데 어머니의 얼굴은 평온했다..
누나의 말을 듣고
큰동생 내외와 작은 동생 내와가 와 있었다.
3형제와 누나와 이야기의 결론은 지금 수술도 항암치료도 할 수 없다라는데 결론을 내리고
퇴원은 화요일 하기로 하고 하기로 모시기로 합의가 되었다.
합의 할 것도 없이 자연히 부모는 어쩔 수 없이 큰 아들 몫이 된 것 같았다
그런 후에 누나가 고성에 있는 집을 팔아 사천에 집을 장만해 준다면 어머니를 평생 모시겠다는 것이였다.
물론 그 자리에서 그리하자고 했지만 누나의 성격과 또 딸들은 책임을 온전한 책임을 지울 수는 없지 않은가
만일에 중도에서 변수가 난다면 내가 모든 것을 떠 맞는 거런 형편이다. 물론 그렇게 되겠지만
동생은 칩을 팔아서 나를 준다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알아서 하라고 말을 하고선
병실에서 전도를 조금하다가 하기로 향하여 왔다.
하기로 오면서 군북으로 갔었는데 주일 날 떡을 돌리고 우리교인들 끼리 나눌 것인데
그때 과일이 있어야 된다고 하여 군북에서 살려고 했지만 사지를 못했고
그길로 함안으로 왔다.
오는데 길이 험하였다.
고개를 넘어서 함안으로 왔지만 내가 알던 길과 달라서 많이 헤깔렸다.
철로 옆의 장터만 찾았는데 그 길에서는 철로가 나오지 않는 길이였다.
겨우 찾아 포도 한상자를 사고서 집으로 돌아 왔다.
서중근 장로님이 정용호집사님에게 연락을 하여 신반에 일하시는 정용호 집사님을 불은 것다.
그리고 자세하게 설명을 하고 박창도 장로님과 박종열 장로님도 함께 하여 참여 하시고
일을 정용호집사님에게 일임하여 맡끼기로 하고 견적을 받기로 하였다.
월요일 견적을 가져 오기로 하고 각자 헤여젔다.
서제에 와서 주보를 아무리 할려고 해도 되지를 않는다.
서장로님과 그 아들까지 합세해도 컴에서 인쇄기까지 인식을 못하는 것이였다.
정말 암담했다.
그래서 새로히 주보를 만들었다.
급히 만드느니라고 조잡하지만 손을 털고 나니 1시가 훨씬 넘어 있었다.
내가 보아도 어슬픈 구석은 있지만 인터넷 도움없이 내가 만들었다는 것도 대견하였다.
대강 정리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멘!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