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TN 불학강좌 신해행증
71회. 삼학의 중요성 2부.
모두 합장하시기 바랍니다.
행복시작 불행 끝
성공시작 실패 끝
신해행증에 오심을 환영합니다.
아미타불
요즘은 세상이 시끄러운데 불교를 현실에서 적용해보면 어떻게 될까?
이것을 삼학(계학,정학,혜학)에서 정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정학에서, 선정의 방법 중에 비로자나 7지법을 공부했습니다. 禪定(선정). 선은 인도 말이고 정은 중국말인데 합쳐서 선정이다.
비로자나 7지좌법이라고 해서 고를 조(調)자를 써서 다섯 가지를 고른다(편편하게 한다)는 것이다.
1. 조심 調心.. 마음을 고르고
2. 조신 調身.. 몸도 고르고
3. 조식 調息.. 숨도 고르고
4. 조식 調食.. 음식도 고르고
5. 조면 調眠.. 수면도 고르고
마음을 고르게 하고 몸을 편안하게 하고 숨을 고르게 하고 음식을 적절히 하고 잠을 적절히 잔다. 마하지관책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근본적로 선정은 왜 하냐?
불교의 오정심관(五停心觀)- 5가지 마음(탐,진,치,불변의실체가 있다고 믿는 마음, 산란한 마음)을 멈추는 방법, 마음을 멈춰서 관찰하는 방법이 있는데 여기에서 오늘은 진심(분노)를 멈추는 방법인 다진중생자애관을 공부하겠습니다.
다진중생자애관(多嗔衆生慈愛觀)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자애관(自愛觀), 자비관(慈悲觀). 자비를 수행해라. ‘사랑하는 모습으로 봐라’ 해서 자애관이라고 해요. 선정의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마음에서 일어나는 분노를 마음에서 잘 조화를 해서 내 인생에 나쁜 영향을 안 미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요즘 부글부글 계속 끓고 있단 말예요. 공분을 일으키는 것은 나쁜 것을 개선하자는 것인데 일단 부글부글 끓으면 잘못된 거예요.
요양보호사로 병원에 근무를 하시는 부산의 법우님이 환자를 유심히 살펴보니까, 도와주세요, 구해주세요, 살려주세요, 이뤄주세요. 이렇게 기도를 하면서 신장 투석할 때 오줌을 잘 누어서 맑게 잘나오더래요. 그런데 남을 비난하거나 화를 내거나 욕을 하면 오줌이 탁해서 안나오면서 현실에서 고통이 오더라는 거예요. 비교를 해보니까 금방 딱딱 떨어지더라네, 무슨 과학자나 의학자가 연구를 안해도 우리가 현상에서 내 입으로 어떻게 하냐에 따라서 컨디션이 굉장히 달라지더라는 거예요.
화를 내는 방법은, 눈으로 화를 내는 방법도 있고 입으로 화를 내는 방법도 있어서 眞 앞에 입구를 붙여 쓰거나嗔 눈 목자를 붙여 쓰면瞋 다 화낸다는 뜻 이예요. 입으로 화를 내든, 눈을 흘기고 위로 떴다 아래로 떴다 하든.
다진중생은 자애관을 닦아라. 늘 뭔가 사랑스러운 것을 생각을 하고 그런 면을 찾아내야 하는 데 그게 쉽지 않잖아요. 괴로운 생각들을 자기 마음에서 일으키는 거니까 이 5조를 잘 조화를 시켜서 현실생활을 아름답게 바꾸는 거예요. 눈으로든 입으로든 화를 내면 자기 자신이 손해라는 것을 알아야 돼요.
부처님은 화 내는 것을 ‘독이다’ 라고 하셨어요. 독은 먹으면 죽어요. 안죽더라도 고통스럽게 되는 거예요. 그걸 알면서도 현실에서 인식을 못하고 일단은 질르고 보고 싸우고 보잖아요. 불자들은 반드시 이 삼독(三毒-탐심,진심,치심)을 줄이려고 노력을 해야 돼요.
1. 탐심 貪心..
탐(貪-今+貝). 한자로 탐은 지금금자에 조개패가 합쳐졌는데 지금 정신이 돈에 쏠려 있으면 탐심이라는 뜻입니다.
탐심을 부처님께서 ‘감각적 욕망’이라고 하셨어요. 이것을 조심하라고 하셨어요. 감각적 욕망의 대표적인 게 음식(食)과 성(性)이예요. 부부생활하는 것, 성욕이라든가 거의 본능이다. 이 감각적 본능을 잘 컨트롤하는 것이 탐심을 줄이는 것이다. 식탐이나 색탐이 우리인생을 가장 괴롭게 하는 것이다.
탐심을 다시 정의한다면, 여러분들이 잘살려고 목표를 세우고 기도하는 것은 탐심에 들어가지 않는다. 여러분들이 잘 먹고 잘 살겠다든가 건강하겠다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쳐가면서 잘 살야겠다는, 의욕을 탐심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 욕망인 식탐과 색탐이 대표적인 탐심이다.
2. 진심 嗔心..
분노, 한문 眞글자에 눈目이 붙거나 입口이 붙으면 화를 낸다는 뜻이예요. 분노를 일으킨다.
3. 치심 癡心..
어리석음. 아는 것이 병이 들면 치심이 되는 것이지요.
이것을 우리가 삼독이라고 한다.
불교를 믿는 우리는 생활에서 자꾸 줄여나가야 돼. 미운사람들에게 화를 내는 게 좋을까요? 안내는게 좋을까요? 적절하게 내는 게 좋다. 적절하게. 중생의 생활에서 화를 안낼수는 없으니까 적절하게 내야 돼. 많은 불자들이 불교를 오해를 해서 불자는 화를 내면 안된다 하는데 관세음보살정도 되면 화 안내도 돼요. 만약에 여러분들이 화를 안내서 그게 뭉쳐서 화병이 와서 심장이 멈춘다면 그것은 잘못된 거예요. 그전에 여러분들이 풀어야 돼요.
많은 불자들이 질문을 하라고 하면, 주로 금강경의 ‘무주상보시’에 대해서 설명해달라는 부분들이 많아요. 불자는 무조건 양보하고 무조건 배려하고 무조건 포기하고 해야 됩니까? 무주상보시를 하려면 그렇게 해야 되지 않습니까? 무주상보시(有住相布施) 뜻이, 모양이나 상에 머물지 않고 남에게 베풀거나 보시하는 것이다.
불자들이 보시를 하나? 나는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대한민국 불자들은 보시를 하거나 공양을 올리는 게 생활화가 되어있지를 않아요. 남방불교 나라는 보시라는 것이 생활화가 되어 있어요. 그래서 그분들이 사회적으로 잘 살 수밖에 없는 거예요. 미얀마나 태국, 스리랑카는 애기때 출가를 시켜서 공양 받는데, 그 엄마가 오셔서 맨발로 무릎 꿇고 밥 공양 올립니다. 어려서부터 생활화가 되어요.
무주상보시라는 것은 아무런 머무름 없이 보시를 하는 것인데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궁금해 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아요. 무주상보시라는 것이 중생이 하는 방법이 있고 관세음보살님이 하는 방법이 있는데 중생이 하는 방법은 적절히 생색을 잘 내는 것이 중요하다. 여러 번 이야기를 했어요. 왜 그러냐 하면, 안 알아줘서 속앓이를 하고 그것이 결국은 문제가 되어서 명절 끝나면 이혼하러가자 해요. 그러면 차라리 옆구리 찔러서 절을 받던가, 엎드려서 절 받던가 하는 게 무주상보시가 되는 거지 그거 안알아줬다고 집에 가서 싸우고 그러지요.
스승하고 제자하고 길을 가는데 냇가에 물이 불었어요. 예쁜 처녀가 예쁜 옷을 입고서 건너가지를 못하고 발을 동동거리고 있으니까, 스승스님이 업어서 건너 준 거예요. 그 상좌스님이 너무 궁금한 거예요. ‘스님이 어떻게 처자를 업어줄 수 있나?’ 한 삼십리쯤 가다가 궁금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나요 하고 여쭈었더니 ‘너는 아직도 처자를 업고 있냐?’ 마음에다 담고 거기까지 따라온 거잖아요. 나는 건네주고 거기서 잊었는데 너는 아직도 업고 있냐고. 마음에 업고 있는 거예요.
정말 무주상보시는 우리가 마음에다 담아두지 않는 것인데, 조금 보시하고 절에 와서 스님한테 제가 시주했지요? 시주 했지요?하면서 한 삼삽년 따라다니면 어느 스님이 열 안받겠냐고? 열 받지. 또 자기가 촛대라도 하나 사다 놓으면 촛대는 안녕하신가하고 부처님께는 절 안해도 촛대를 잘쓰고 있나, 관리를 하고 있나 맨날 그것만 조사하지요. 하여간 문제예요. 한국불자들이 그래요.
미얀마에 가니까, 부처님 한 분 계시면 복전함이 한 열 개는 있어요. 복전함이 열 개는 되는데 거기 돈이 가득가득 들어있어요.
미얀마에서 저한테 어느 친구가 꽃목걸이를 만들어 와서 신발 벗고 무릎 꿇고 사달라고 하는 거예요. 미얀마에서는 공양 올릴 때는, 엄마도 신발을 벗고 무릎을 끓고 아들동자승 한테 그렇게 해요. 참, 멋지다. 그런 마음을 가져야 우리가 무주상보시가 되고 공덕이 되는 거예요. 우리는 조금 보시라도 하면 많은 사람들 앞에 안알려 주면 서운해 하고, 보시의 기본 자체가 잘 안되어 있지요. 안타까운 부분들이 많아요.
우리가 삼독심을 어떻게 하면 줄여갈 것인가? 하는 것을 수행이라고도 하고 기도라고도 하지요. 탐심은 감각적 욕망이다. 제일 큰 문제가 분노예요. 분노를 우리가 어떻게 승화시킬 것인가. 미국에서 나온 책들을 보면 어떤 상처에 대해서 빨리 잊고 현업에 복귀하도록 프로그램들이 되어있어요.
어느 부모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었어요. 그래서 술 먹고 계속 방황하다가 내가 이러면 안되지. 내 아들의 희생을 정말 값어치 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다가 아픔을 같이 한 사람들과 음주운전을 금지하는 법을 발기를 하여서 음주운전에 대해서 강력한 처벌을 하게 되니까, 그 이후에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죽을 수 있는 사람을 많이 살려낸 그런 교훈을 만들었잖아요. 우리가 이런 교훈을 살려야지 상처를 계속 키워가라고 하면 큰 문제가 되는 거예요.
우리는 상처를 자꾸 건드려야 분노하는 마음이 일어나고 어떤 잘못된 방법에 의해서 사회를 혼란하게 만들어요. 그러니까 상처는 잊고 교훈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상처가 잊을만하면 상처에 소금 뿌리듯 하게 되면 결국은 그분들이 자살해 버리잖아요.
미국은 어떤 사고가 나든, 어떤 프로그램으로 온 국민이 애도해 주고 그 교훈을 반드시 사회에 적용할 수 있도록 법을 만든다던가, 좋은 쪽으로 개선을 하는 거예요. 우리가 이런 정신수준, 의식수준으로 빨리 가는 게 필요해요. 우리는 이런 많은 부분들을 배워서 의식수준을 탐,진,치 삼독을 줄여가면서‘현재 나는 어떻게 하면 되나.’ 하면 돼요.
오늘은 선정에서, 분노를 줄이는 방법, 분노를 어떻게 하면 줄이면 되냐?
제일 중요한 것은 분노가 무엇인지 알아야겠더라고요. 분노가 뭐냐? 왜 발생하는 거냐? 분노는 마음에 맞지 않는 환경에 의해서 일어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티벳트의 위대한 음유시인이면서 요가의 대가였던 밀라렛빠라는 분이 십만송이라는 노래를 지어서 내려오는 것이 있는데 우리나라에도 나와 있어요.
마음에 맞지 않는 환경이 자기 마음에 일어나게 되면 자신을 잘 지켜봐라. 분노의 위험이 있다. 분노는 마음에 맞지않는 환경 때문에 일어난다. 우리가 이것을 잘 알아야하는데, 왜 나한테 환경이 맞지 않는지 자기 자신을 먼저 살펴봐야한다.
현재 왜 분노가 일어나나? 그래서 자신을 지켜보며, 자기를 잘 관찰해야한다. 자기를 꼭 지켜봐야한다. 마음에 맞지 않는 환경이 발생하면 자기 자신을 지켜보며 깨어있을지니, 분노는 굉장히 위험을 초래하는 거예요. 우리는 늘 분노를 사용하다 보니 계속 사용하는 거예요. 음주운전보다도 스마트폰 보면서 건널목 없는 도로 건너는 것 보다도 사실 더 위험한 것인데, 우리가 위험하다는 것을 인식을 못하는 거예요.
부처님은 분노가 우리 인생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다 말씀 하셨어요. ‘화를 한번 내면 평생에 지은 공덕을 다 태운다’라고 할 정도로 그렇게 위험한 거예요. 여러분들이 자기 자신을 지켜보고 늘 깨어있어야 된다.
분노가 발생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인데, 마음에 맞지 않는 환경이다. 마음에 맞지 않는 환경이면 생기면, 몸과 입과 생각이 다 그쪽으로 동원되어서 어떻게 상대를 공격할 것인가 하는 마음들이 일어나겠지요. 일어난다 말예요. 그러니 그것을 잘 살펴서 내가 분노를 하나 안하나 지켜봐야하는데 잘 안되니까 요즘 사회학적으로 분노 조절하는 방법들이 많이 나와있더라고요. 분노를 어떻게 조절할건가, 평소에 훈련이 필요한 거예요. 열 덜 받는 훈련을 해야 되는 거예요.
불교의 분노 조절 방법은 진짜 좋은 것인데, 마음에 맞지 않는 환경이 자기 자신을 어지럽히면 자기 자신을 지켜보라. 분노의 위험이 그 안에 있다.
‘내가 지금 무엇으로 분노를 하고 있지???’
그런데 엄청나게 큰 원인이 아니라, 아주 작은 것이 발단이 되는 거잖아요. 부부가 왜 싸우나 보면, 인류행복과 세계평화를 위해서 분노하고 싸우는 게 아니라 아주 작은 것에 시비가 붙어서 너 죽어 나 살자고 싸우잖아요. 마음에 맞지 않는 환경에 여러분들이 익숙해지라는 게 아니고 왜 마음에 맞지 않는지 잘 관찰을 해야 돼요.
이 관찰하는 법을 불교에서는 마음 챙김등 여러 가지 용어로 되어있는데 내가 처해 있는 환경, 뭐가 문제지? 유가에서 일일삼선이라고 하루에 세 번 씩 자신을 돌이켜보는 것인데 세 번이 아니라 매순간순간 어떤 상황의 경계가 와도 잘 살펴보는 부분들이 필요하겠지요.
분노조절의 핵심 - 평소에 훈련을 한다. 분노를 안느낄 수 있도록.
물론 환경이 오면 느끼게 되니까 불교에서는, 다진중생(多嗔衆生)-화를 잘 내는 중생은, 자애관(慈愛觀)을 하라. 자-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고 행복의 원인을 많이 짓기를! 비-모든 사람들이 괴로움으로부터 멀어지기를!인데 일단은 자, 자애관을 하라.
첫 번째는 나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이 행복 하기를! 하고 훈련을 하는 거예요.
자기가 행복하려면 화를 내지 않아야 행복해지는데, 살다보면 화 내는 게 맞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부부간에든 자녀간에든 오히려 성질 돋구어서 열 받게 해서 팔딱팔딱 뛰다가 벽에다 꽝 들이받을 때~까지는 고소하지, 의료비 들어가니까 괜히 했나 그러지요.
다진중생(화를 잘 내는 중생)은 남들의 행복을 위해서 자꾸 기도를 하라는 거예요. 꼴 보기 싫기는 하지만, 내가 행복한 것보다 남이 못되는 게 고소한 게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여러분들이 신세를 지려면 그 중생이 잘되는 것이 훨씬 나아요. 경제학적으로 어느 것이 나한테 유리한가 따져보면 결국은 부처님말씀이 다 맞아요. 상대는 잘되고 나는 못되면 어쩌지? 이 생각 때문에 상대도 안됐으면 좋겠다 하는데 같이 안되어서 행복해질 일이 뭐가 있어요? 그렇지요?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일단은 자기마음을 잘 체크하는데, 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 환경도 결국은 자기가 끌어들인 거예요. 똑같은 상황에서도 정말 신나게 일하고 기쁘게 일하는 사람들이 있고 입만 열면 불평불만인 사람들도 되게 많찮아요.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은 결국에 자기발전도 없고, 관상등 모든 부분에 나쁜 작용을 하기 때문에 해고를 한다던가, 명퇴를 시킨다던가할 때 영순위가 되죠. 자기한테 주어진 조건을 행복하게 기쁘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굉장히 좋은 거예요.
‘에이, 스님은 지금 떴으니까 그러시죠.’ 안떴을 때도 나는 부처님 전에 절만 할 수 있어도, 숨만 쉴 수 있어도, 나는 살았구나, 너무 행복하구나. 파란 하늘을 보고 계절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인지 몰라, 왜 그게 행복인줄 아냐면, 이미 제 친구들 중에 젊은 날에 간 친구들이 많거든요. 살아있다는 것만 해도 감사하고, 이 살아있는 인생을 어떻게 하면 좀 더 아름답게 활용해 볼 수 있을까? 이 생각들을 안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이 분노조절의 핵심은 평소에 분노를 덜 느끼도록 하는 훈련밖에 없다. 훈련방법은 불교에서 제시한 다진중생 자애관 또는 자비관, 사랑으로 보는 거예요.
법화경에 장자궁자유라는 비유관이 있는데
장자가 잃어버린 아들을 50년을 찾아요, 찾기는 찾았는데 워낙 떨어져 산 기간이 오래되다 보니까, 아들이 아주 거지근성이 뿌리가 박힌 거예요. 그래서 아버지가 뭐라고 해도 말을 안들어, 그래서 방편을 써서 50년 만에 만나 아들을 처음에 화장실 청소부터 시키고, 조금씩 조금씩 가르쳐나가는 과정이 나와요. 야, 참 어떻게 2500년 전에 이렇게 멋진 말씀을 하셨을까, 자녀문제에 대한 문제가 거기에 나오는 거예요. 자녀는 이렇게 교육을 시켜라.
법화경은 28개로 만들어진 드라마인데 지도자의 신앙생활에 대해서는 27품 묘장엄왕본사품에 나와요. 장자궁자에 아들은 이렇게 교육시키고, 사회는 이렇게 교육시켜라 하고 나와요. 정말 멋지다, 여러분들도 읽어보시면 되요.
다진중생은 자애관, 자비관을 해야 되니까, 분노가 많은 사람들은 사회와 자기 가족뿐 아니라 점차점차 나아가게 해서 자애관 자비관을 닦아야 해요. 우리 신도 법우 한분이 분노를 계속 일으키니까, 애를 때려죽이고 싶더래요. 그래서 가끔가다 패는 거예요. 사회적 분노를 어떻게 표출할 수 없으니까 자기 아들을 두들겨 패는 거예요. 어린애기를! 그래서 깜짝 놀랐대요. 사회의 공공적 분노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고 그래야 사회가 개선이 되고 발전이 되는 거예요. 공공적 분노는 반드시 교훈을 살리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 상처를 후벼 파는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분노가 모여서 그것을 표출하는데 자기 가장 가까이 있는 약자들에게 퍼붓는 것이지요. 이 마음을 가까이 자기 가족이나 자녀에게, 자애관 가족들이 자녀들이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해줄까 이 마음을 가지는 것이 분노를 덜 느끼게 되는 방법이라는 거죠.
불교라는 것은 응병여약(應病與藥)이라고 병에 따라 약을 주신다. 다진응병여약 병에 따라서 응(應)해서 약을 주신다.
무엇이 사랑스러운 부분이 있을까, 부부지간에도 그래요. 검은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사랑하고 한날한시에는 못 태어났어도 한날한시에 가는 것은 위험한 거예요. 한날 한시에 가는 것은 어떤 사고에 의해서만 갈 수 있어요. 주례사에 많이 했는데... 어쨌든 만났으면 가장 사랑스러웠을 때의 모습으로 돌려보게 되면 늙어가는 게 안타깝잖아요. 여러분이 사랑만하고 행복만하고 좋은 것만 다하고 살아도 부족해요.
제가 요즘 부산에서 서울로 이동할 때 유튜브에 푹 빠져서 사는데, 중국배우 주성치의 ‘서유기’가 있어요. 서유기에 보면 선리기연 이 있는데 노래도 너무 멋져, 속세에서는 사랑과 미움이 가득한 세상이라서 벗어나기 힘들어 그런데 정이라는 것이 놓기가 너무 힘들어. 지존보아하고 자하선자의 아주 안타까운 슬픈 사랑 이야기가 나오는데, 맞아 속세도 벗어나기 어려운데 때론 정도 끊어야 돼. 중국 사람은 영화도 멋지게 만든다.
우리가 자애관을 해야 되는데, 늘 불쌍하게 봐야 되는데 안돼.
왜 안보이냐면 질투 때문에 안보여요. 나보다 잘나지도 않은 것이 저것이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었네, 나보다 이쁘게 생겼으면 이해가 되겠는데. 부글부글 끓어서 너죽고 나살자는것 아니예요? 그게 뭐 죽고 사는 것도 아닌데 그때도 자애관. 그러더라도 그 중생이 행복하기를! 그 중생 불행해서 남는 것 뭐있어? 속은 고소하지요? 그 고소한마음이 악연을 만드는 거예요.
인도 부처님 당시에 앙골리마 라는 부처님 제자가 계셨는데 나중에는 아심사(무해-남을 해치지 않는다)라는 이름을 가졌어요. 부처님 당시 제상의 아들이었는데 태몽부터 안좋았어요. 그래도 낳고 잘 기도하면 괜찮치 않겠냐하고 낳았는데 부처님당시 명문대학 탁신라대학의 수석입학, 수석졸업했어요. 이 친구 조폭하고 연결이 된거요. 머리가 좋으니까 또 스승을 잘못만난거예요, 스승마나님이 연모해서 이 친구를 꼬셔도 안넘어가니까, 모함을 해서 앙골리마가 겁탈하려고 했다고 하니까, 그 스승이 머리가 획 돌아버려서 (파멸시키려고) 108명 엄지손가락을 잘라서 목걸이로 만들면 니가 아라한이 된다고 했어요. 인도는 따뜻한 나라인데, 더운데 앉아있으니 스승의 말을 따를 수도 없고 안따를 수도 없고 하다가 정신이 돌아버린 거예요. 돌아서 칼 들고 나가서 107명을 죽여서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하고 있는데 그때 엄마가 걱정스러워서 왔는데 엄마를 죽일려고 하는 찰라에 부처님이 나타나신 거예요. 부처님손가락 자르려고 아무리 쫒아가도 못쫒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서시오’ 하니까 부처님이 `나는 서있어`. 그 말에 원래는 머리가 똑똑한 친구니까, 거기서 한방 꽝 맞고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그래서 부처님 제자가 됐는데, 전생을 보니까 태자였어요. 아버지가 결혼을 시키려고 했는데 잘못되어서 많은 사람들한테, 집단에 의해 살해를 당한 거예요. 그래서 죽을 때 ‘허, 내가 너희들 언제든지 싹 죽이겠다’ 그런거여. 그래서 금생에 와서 그런 거여. 전생에 앙골리마를 죽일 때 같이 했던 사람들이 희생을 당한거지요. 그래서 인연이 없이는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는다,
우리는 사회의 공공적 분노, 공분, 사회를 좋은 쪽으로 발전시키는 공공적 분노가 필요한 거여. 그래야 사회가 발전이 되니까, 우리가 공분을 느끼되, 개별적으로 그 분노를 자기한테 끌여 들여서 자기집안을 불편하게 해서는 안된다, 애를 두들겨 패다보니까, 5살 먹은 애를 두들겨 패다보니까 내가 왜 패지, 분노의 마음이 자기한테 어느새 들어와서 부글부글 끓어서 어디에 표출이 되는 거잖아요. 모든 분야에서 자꾸 자애관을 연습할 필요가 있어요. 불자라면 그렇게 할 필요가 있어요. 탐진치 삼독에서 분노하는 마음을 덜 느끼게 훈련이 되는 거니까요.
분노 조절하는 핵심은 세 가지로 나와 있는데 전부 불교예요. 불교일 수밖에 없지, 탐진치 삼독을 근본적으로 소멸 시키겠다는게 불교니까. 오늘날은 미국에서 이것을 활용하는 방법을 연구했는데 분노조절하는 핵심 방법은
1. 평소에 분노를 덜 느끼도록 훈련하는 것.
분노를 덜 느끼게 하는 게 중요한데 불교에는 있어요. 모든 이들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행복의 원인을 짓기를! 그렇게 축원하고 기도를 해주는 것이지요. 내가 가장 가까이 있는 부부부터 자녀부터 친인척부터 점차점차 발전시켜나가는 거지요.
2. 느낀 분노를 원활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아는 것.
표현을 해야 돼. 원활하게 표현하라고 했네요. 꾹꾹 참다가 뭐 터지는 소리 내면 ‘못살어’ 그러면 끝나는 거지요. 느낀 분노를 원활하게 하는 방법은 소통, 대화가 되겠지요. 부부싸움하고 남편은 코를 골며 자네, 자기는 분노를 못 이겨서 밤새 뜬눈으로 잠을 못 잤는데, 그 다음날 이야기하니 남편은 그런 게 있었는지 모르는거야. 혼자만 열 받고 씩씩거리는거야. 회사가도 마찬가지야. 회사 가서도 그이야기 듣고 자기는 밤새 뜬눈으로 지새웠는데 그 사람은 그런 것이 있는지 모른거야. 그런 경우가 많아요. 혼자만 이 갈고 그런 경우가 많아요. 그런 경우는 대화를 해야 된다. 대화를 하는 방법은 대한민국국민은 대화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거예요. 대화의 기법이 책으로 많이 나오더라고요.
근본적으로 대화는 자기가 좋으려고 하는 거예요. 저는 불자들 상담을 많이 하니까 부부문제를 조언을 해줘야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때는 어떻게 하냐면, 대화를 해라, 남편이 와서 우리 마누라 진짜 맘에 안든다는 거예요. 음식도 자기 맘에 안든데. 그래서 니가 뭘 좋아하는지 혹시 얘기를 해본적은 있냐? 30년을 살면서 이야기 해본 적이 없어, 그러면 뭐해줄까? 그러면 괜찮어, 괜찮어. 그렇게 해놓고 음식솜씨도 없고 내 마음을 저렇게 모르나. 지가 표현 안해서 모르는 것을 어쩌라고, 나는 어떤 음식이 좋다라고 표현을 해라, 이것보다 조금 덜 짜면 맛있겠다. 하면될 걸, 왜 이렇게 짜냐고. 랄랄랄 하면 안되지, 그렇게 하면 안되고 말을 해야 돼, 대화를 해야 돼 대화를 하게 되면 왼만한 건 해결 못할게 없어. 몇 만명을 봤는데 대화를 하면 잘살아 서로 일터지기 전에 이런 일은 어떻게 하면 좋겠어 하고 대화를 하는데 일이 있겠어요. 문제가 되도 작아서 쉽게 해결이 가능해요. 그렇기 때문에 분노를 원활하게 푸는 방법은 대화이다. ‘너 이런이런거 잘못됐어’가 아니라 ‘당신 이렇게 할 때 기분이 좋았어!’ 그러면 반드시 기억하게 되지요. 누구든지, 너 죽여 살여 그렇게 하면 상대도 열 받지요. 나는 당신이 이렇게 이렇게 할 때 기분이 좋고 행복했어. 남의 불행을 원하는 사람이 어디있 겠어요?
자애관인데. 나와 같이 있건 안있건 모든 이들이 행복하길! 그것을 자꾸자꾸 넓혀가야 하는데, 자애관으로 나가면 대화가 아름답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대화를 원활하게 하는 방법은, 자기중심으로 표현하는 거예요. 1인칭 중심으로 표현하는 거예요. 나는 당신이 이렇게 이렇게 할 때 좋아, 당신이 어떤 음식을 할 때 맛있데, 그러면 그 음식 365일 매일 먹을 수 있어. 그러면 질리니까 다른 음식도 맛있다고 표현을 해줘야 돼. 그래서 느낀 분노를 원활하게 푸는 방법은 ‘대화’다. 대화를 하는데 대화는 아름답게. 웃으며 대화를 했으면 끝날 때도 웃으며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굉장히 중요해요. 대화의 비결 이예요. 웃으면서 시작하고 웃으면서 끝나는 대화. 이게 원활한 대화 방법 이예요. 단순한 거예요. 불교는 이렇게 단순해요.
3. 분노의 감정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 것.
혼자 몇 년간 씩씩거려봐야 상대는 그런 거 있는지 조차도 전혀 몰라요. 그 분노를 다른 것으로 빨리빨리 대처시키는 거예요. 서양 사람들이 뭐라고 했냐하면, 분노를 이해하고 명상과 통찰하는 것인데, 명상과 통찰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을 지켜보는 거예요. ‘아, 내가 분노를 하고 있는데 이 분노의 원인은 뭐지?’ 그게 통찰이예요. 그러면 가볍게 해결되더라.
‘불교라는 것은, 행복학이고 성공학이다 라고 이 연사가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데 있는 거예요. 뭐 대단하게 교리를 엮고 안엮고 할 필요 없이 삼학만 가지고도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최상의 해결방법이 다 들어있다. 명상과 통찰를 통해 인내심, 열린마음, 반성, 변화를 수용하는 적극적인 미덕이 필요하다, 적극적인 자세로 문제를 해결 하려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불가능한 것이 없다. 불교를 멀리서 찾으려고 하지 말고. 여러분들 자기 자신을 늘 지켜봐라. ‘지켜봐라’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감정의 변화, 대화의 변화, 행동의 변화가 전부 운명자체다. 전에는 운명을 바꾸려면 생각을 바꾸고, 습관을 바꾸고, 환경을 바꿔라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운명이다. 생각을 떠나서 운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습관 따로 운명 따로있는 것이 아니다. 환경 따로 운명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생각이운명이고 습관이 운명이고 환경이 운명이다.
내 운명이라고 생각하면, 그때부터는 탐심, 분노, 어리석음을 좋은 것으로 얼른 바꿔서 여러분의 운명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여러분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지요.
진정한 행복학이고, 영원히 잘사는 행복학이고 또 성공학이고, 자기계발도 이 불교처럼 멋진 것도 없다.
분노를 조절하는 핵심에는 3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분노를 덜 느끼도록 훈련하는 방법. 자애관.
두 번째는 느낀 분노를 원활하게 푸는 방법. 대화
세 번째는 분노의 감정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 방법인 자기 통찰.
이렇게 우리가 자애관과 대화를 통해서 생각이 운명이고 행동이 운명이고 습관이 운명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자기운명을 좋은 쪽으로 바꾸려고 노력을 하면 무조건 된다.
태평양을 건너서 대서양을 건너서 인도양을 건너서 무조건 행복해 진다. 이런 불교를 여러분이 최대한 발휘를 해서 본인도 이웃도 행복해지기를 축원합니다.
아미타불.
그리고 여러분 사랑합니다.
|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오늘도 감사합니다.
나모대원본존지장왕보살마하살
()()()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무량대복 받으시길 기원드립니다
나모대원본존지장왕보살마하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