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lard Van Orman Quine은 20세기 분석철학을 대표하는 미국 철학자로서 논리학, 언어철학, 인식론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특히 경험주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그 내부의 전통적 가정들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하였다. 퀘인의 철학은 언어, 논리, 과학, 인식이 서로 분리된 영역이 아니라 하나의 전체적 체계를 이루고 있다는 통찰에서 출발한다. 그는 철학을 과학과 단절된 순수한 사변적 학문으로 보지 않고, 과학적 탐구와 연속적인 활동으로 이해하였다. 이러한 관점은 그가 제시한 자연화된 인식론과 전체론적 경험주의로 이어진다.
퀘인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글은 「Two Dogmas of Empiricism」이다. 이 논문에서 그는 전통적 경험주의가 의존해 왔던 두 가지 기본 가정을 비판하였다. 첫째는 분석적 명제와 종합적 명제의 구별이다. 분석적 명제는 의미만으로 참이 되는 명제, 예를 들어 “모든 총각은 미혼이다”와 같은 문장이고, 종합적 명제는 경험에 의해 참이 결정되는 명제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퀘인은 이러한 구분이 명확한 기준을 갖지 못한다고 주장하였다. 분석성을 정의하려면 결국 동의어 개념에 의존해야 하는데, 동의어 역시 다시 분석성에 의존하게 되어 순환적 정의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미만으로 참이 되는 명제라는 개념은 확고한 철학적 기초를 갖기 어렵다고 그는 보았다.
퀘인이 비판한 두 번째 교리는 환원주의이다. 전통적 경험주의는 각 명제가 개별적으로 경험에 의해 검증되거나 반증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퀘인은 우리의 지식이 개별 명제들의 집합이 아니라 하나의 상호 연결된 체계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를 흔히 “지식의 거미줄(web of belief)”이라는 비유로 설명하였다. 우리의 이론은 중심부와 주변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경험적 충격이 들어오면 우리는 그 충격을 조정하기 위해 체계 전체를 수정한다. 어떤 명제가 경험과 충돌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명제를 포기할 필요는 없으며, 대신 다른 가정이나 보조 가설을 수정할 수도 있다. 이처럼 경험은 개별 명제가 아니라 이론 전체와 대면한다는 점에서 퀘인의 입장은 전체론적 경험주의라고 불린다.
이러한 생각은 그의 자연화된 인식론으로 이어진다. 전통적으로 인식론은 인간 지식의 정당성을 선험적으로 정초하려는 학문이었다. 그러나 퀘인은 그러한 시도가 성공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그는 인식론을 심리학과 과학의 일부로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인간이 어떻게 외부 세계에 대한 믿음을 형성하는지를 실제 과학적 연구를 통해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관점은 철학이 과학보다 우위에 서서 지식의 토대를 마련하려 한다는 전통적 관념을 거부하고, 철학을 과학적 탐구의 연속선 위에 놓는다.
퀘인의 언어철학에서도 중요한 논의가 나타난다. 그의 저서 『Word and Object』에서 그는 번역의 불확정성(indeterminacy of translation)이라는 유명한 논제를 제시하였다. 그는 어떤 미지의 언어를 번역하려 할 때, 동일한 행동 자료를 근거로 하면서도 서로 다른 번역 체계가 모두 가능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예를 들어 원주민이 토끼를 보고 “가바가이(gavagai)”라고 말할 때 그것이 “토끼”를 의미하는지, “토끼 부분”, 혹은 “토끼 사건”을 의미하는지는 결정적으로 판별할 수 없다. 동일한 관찰 자료가 여러 번역 체계를 허용하기 때문이다. 이 논제는 의미가 객관적으로 고정된 실체라는 생각을 약화시키고, 언어와 의미가 이론적 틀 속에서 이해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퀘인의 철학에서 또 하나 중요한 특징은 존재론적 절약성이다. 그는 어떤 이론이 존재를 가정할 때 가능한 한 단순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를 흔히 “존재론적 약속(ontological commitment)”의 문제로 설명한다. 어떤 이론이 무엇의 존재를 인정하는지는 그 이론이 사용하는 양화 표현, 특히 “~이 존재한다”라는 형식에서 드러난다. 퀘인은 철학적 논쟁을 존재론적 가정의 차이로 분석하면서, 가능한 한 단순하고 명료한 존재론을 선호하였다. 이러한 태도는 분석철학의 논리적 방법을 더욱 강화하였다.
결국 퀘인의 철학은 경험주의 전통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분석과 종합의 구별을 비판하고 지식의 전체론을 제시했으며, 인식론을 자연과학과 연결시키는 자연화된 인식론을 주장하였다. 또한 언어의 의미가 단일하게 결정되지 않는다는 번역의 불확정성 논제를 통해 언어철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사상은 현대 분석철학, 언어철학, 과학철학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20세기 철학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