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전, 지하철1호선 어느 끝자락부근에서 고향선배 두분과 저녁식사를 같이했다.
두분 다 직장선배이기도 한 우리셋은 같은 직업인으로 정년퇴직을 한 선후배지간이다.
맏형님은 70대초반에 다방면으로 사회활동을 아주 왕성하게 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즐거운 삶을 살고 있고, 중간형님은 건강을 위주로 체력향상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계획된 나날을 보내는 등, 우리 모두는 나이와 무관하게
은근히 건강을 자신하며, 주량 또한 지지 않으려 하는 편이다.
삼겹집에서 식사를 곁들인 음주량은 옆자리의 손님들에게 민망할 정도였다.
그리고 시간이 꽤나 되었다.
우리는 애당초 만남의 장소를 맏형님댁 부근으로 정하다보니 중간형님은 지하철1호선 대여섯역을 지나야 하고,
나는 왜관역을 출발하여 동대구역 경유 지하철 1호선 열개정도의 역을 지나서 왔다.
술을 곁들인 즐거운 저녁식사를 마친 뒤, 헤여지자고 나오던 중, 맏형님이 우리집 부근인데 그냥 보낼 수 없다며,
길 옆의 막창집으로 안내하여 우리는 2차로 들어가 막창을 안주로 또..
이러다간 열한시 몇분의 막차를 놓치겠다싶어 중간형님과 함께 뛰다싶히 1호선 지하철에 올랐다.
승차 후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던 형님은 잠이 들었다.
형님이 내려야 할 역에서 깨워, 내리게 했고, 나는 조급한 마음으로 동대구역에 도착, 마지막 기차를 탈 수 있었다.
이제 5~6분이면 대구역이고, 20여분 가면 그 다음역이 내가 내려야 할 왜관역이다.
승차 후 마음을 놓고 다음역인 대구역을 지나면서 깜빡 졸은것이 화근이었다.
눈을 떠보니 낯선곳 같아 출발직전에 총알같이 뛰어내렸다.
아~ 구미도, 김천도 아닌 영동역이다. 큰일났다. 오늘밤엔 어떤일이 있어도 집에가야 한다.
새벽 5시반에 아내를 태워 갈곳이 있었다. 우리집 앞을 지나가는 시내버스도 6시가 넘어야 운행을 한다.
영동역 앞에 택시가 정차해 있다. "왜관까지 얼마요?" "11만원입니다." 정신이 번쩍 든다.
아무리 바빠도 이건 아니다싶어 내일 첫차시간을 알아보려하니 대합실 문을 걸어잠궈버렸다.
집에 전화로 사정을 이야기하고, 하행선 첫차를 기다리려니 몇시간동안을 보낼곳이 없다.
찜질방도, 모텔도.. 낯선곳에서 춥기도 하고, 역 앞 편의점에 들어갔다.
우선 추위를 달래려고 컵라면과 소주 한병을 사서 시간을 보내려하니 가게안에서는 안된다고 한다.
가게밖 테이블에서 요기와 추위를 달랬다.
밤새 역앞을 오가며 추위를 달랬고, 날이밝으니 할머니들이 하나둘씩 봇따리를 짊어지고 내곁으로 모여든다.
직접 채취한 두릅과 나물류를 대전으로 팔러가려, 상행첫차를 타기 위해서다.
어떤 70대 할머니는 내곁에서 자식들을 원망하는 하소연을 하기도 하고, 시끌벅적 재미있어 시간가는 줄
모르는 가운데, 기다리던 하행선 첫차가 드디어 들어왔다.
아내에게는 도착시간이 맞지 않으니 콜택시를 불러 타고가라고 연락한 뒤, 자리를 찾아 앉았다.
이렇게 편할수가.. 씁쓸한 미소와 함께 간밤에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런데 잠시 후.. 아이고! 깜짝 깨어보니, 대구역표지판이 보인다. 번개같이 일어나 뛰어내렸다.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었고.. 또 올라가서 왜관표를 샀고, 그렇게 해서 집에 오게되었다.
아내는 아직 대구역까시 왕복한 사실은 모른다. 나중에 콜택시값은 25,000원 주었지만..
(지난 어느 날 비가 촉촉히 내리던 오후에, 큰형님이 전화로 "오늘 한잔하기 딱인데 나오게" 했을 때 변명하고
못나가서 몇일 뒤, 내가 "오늘 셋이서 한잔합시다." 형님은 "엊저녁에 과음해서 오늘은 쉬려했지만 좋네! 오게"
로 시작된 자초한 일이었다.) - 건강한 모습으로 산행 때 뵙겠습니다, -
첫댓글 술도 좋지만 하기 힘든 경험을 했군요. 산 대장님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겠죠. 스릴러를 읽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