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여는 아침
Can you cycle?
우 영 규 (시인· 문학평론가)
이른 새벽잠에서 깨어 큰아이가 타고 다니던 자전거를 꺼내 페달을 밟았다. 새벽 네 시가 채 되지도 않은 시간이었지만, 날은 이미 훤하게 밝아 있었다. 자전거를 타보는 일은 실로 수십 년 만의 일이어서 조금 어색하기도 했다. 마을을 빠져나가 대체로 조용한 길을 선택하여 서쪽 성서공단 길로 30여 분을 달려오면서 새벽의 고요함과 맑은 공기의 맛은 그야말로 보약을 마구 들이켜는 기분이었다. 일요일이라서 인지 공단으로 출근하는 사람도 없으니 시내의 교통상황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고 또한 금호강과 낙동강의 교차점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강바람은 기분을 한층 좋아지게 만드는 요소가 되었다.
엊저녁에 퍼붓던 소낙비는 누가 밀어내기라도 한 듯이 다 물러나고 하늘만 컴컴했지만 아직은 비가 또 내릴 기세는 아니다. 그런 탓인지 주변의 풀잎들은 빗물을 머금은 채 이파리를 일제히 빳빳하게 내밀어 하늘을 향해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듯이 나풀거리고 있었다.
호림공원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새벽의 고요함을 나 홀로 은밀히 즐기려 했던 생각이 무참히 깨지는 순간이었다. 이 이른 새벽에 나보다 먼저 행동개시(?)를 하였는지 상당히 많은 사람이 나와 운동을 하며 새벽을 즐기고 있지 않은가. 엊저녁에 열대야 현상이 있은 것도 아닐 텐데 요즘 사람들은 새벽잠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걱정이 많아서일까 잠시 생각게 했다. 그중에 내 시선을 끄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한두 명도 아니고 수십 명이 나이 관계없이 즐기고 있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분명히 저 사람들은 오늘이 무슨 특별한 날도 아닐 텐데 매일 나오거나 휴일에는 꼭꼭 출근하듯 나와서 자전거를 타며 새벽을 즐기는 사람들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40대 중반의 남자에게 다가가서 ‘자주 새벽 자전거타기를 즐기느냐’고 물어봤더니 씨익 웃으면서 ‘눈비 오늘날 빼곤 거의 매일 나와서 즐기다가 출근시간 맞춰 직장에 출근한다.’고 했다. 나는 괜히 미안하기도 하고 멋쩍은 생각이 들어 얼른 금호강둑을 향해 달아나고 말았다.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셔요
자전거가 나갑니다 따르르르릉
저기 가는 저 사람 조심하셔요
어물어물하다가는 큰일납니다
따르릉 따르릉 이 자전거는
울 아버지 장에 갔다 돌아오실 때
꼬부랑 꼬부랑 고개를 넘어
비탈길로 스르르르 타고 온다오
「자전거」 동시 목일신 (1928)
최근 들어 자전거가 부쩍 늘어났다. 레저용부터 출퇴근의 교통수단용이 특히 그렇다. 그 이유는 정부의 녹색성장이니 녹색교통이니 저탄소 배출 등등, 많은 구호가 과거의 추억놀이쯤으로 생각했던 자전거의 재등장 속도를 빠르게 했다. 요즘 어디를 가든 자전거를 타고 볼일을 본다든지 검소한 여성들은 운동 삼아 일부러 재래시장 나들이를 하는 광경들이 눈에 띄게 많아진 게 사실이다.
자전거 천국이라는 상주에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자전거 시티’라는 닉네임을 얻은 지가 오래전 일이다. 물 반 고기반 이라는 말이 있듯이 실제 상주 시내를 돌아다녀 보면 오히려 자동차보다 자전거가 더 많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옛날 나룻배가 쉴 새 없이 들락거렸던 상주는 우리나라의 으뜸 자전거 도시임이 틀림없다. 낙동강의 뛰어난 문화유산에다 자전거로 말미암은 미래 성장 동력까지 가진 셈이다. 인구 약 10만 6천명에 자전거 보유 대수가 8만 5천 대라고 하니 가구당 2대 이상 꼴이다. 이는 자전거 수송 분담률 21.6%로 선진국 수준이다. 이에 발맞춰 내년에는 자전거 도입 100주년 전국규모의 축전을 준비 중이라니 몇 년 후의 상주는 온통 자전거의 물결로 뒤덮일 것이 뻔하다.
내 학창시절만 해도 자전거 타고 학교에 다녔고 직장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전거로 출퇴근하였으며 많은 사람이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교통수단으로 자전거를 이용했다. 심지어 대구에서 성주, 김천, 고령 등, 꽤 먼 거리까지도 자전거를 타고 볼일을 보곤 했었다. 기억에 아버지는 어머니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외가에 다녀오기도 했으며 우리 형제를 자전거에 태우고 그 먼 산소까지 데리고 갔으니 자전거의 위력은 정말 대단했다. 물론 그 당시 다른 교통수단이 없지는 않았다. 하루에 한두 번 다니는 완행버스나 미니버스가 있긴 했으나 교통비를 아끼려는 부모의 마음을 우리는 알지 못했다. 나는 그 당시는 시골이었던 대구근교의 칠곡읍내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우리 집에는 고물 자전거가 한 대 있었는데 그 자전거를 타고 아랫마을에 사는 여자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여자 친구의 어머니에게 물바가지를 얻어맞고 쫓겨난 기억이 생생하다. 겁이 나서 도망치다가 자전거 탄 채로 넘어져 콧등을 깨고 말았는데, 숱한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 흔적이 콧등 아래 조그맣게 남아 있다. 어쩌다 그 작은 흉터가 크게 보일 때 나는 그 속 기억의 샘으로 빠져들기도 한다.
밤에는 밤마다/자리를 펴고/누워서 당신을 그리워하고.
잘근잘근 이불깃 깨물어 가며/누워서 당신을 그리워하고.
다 말고 후닥닥/떨치고 나자/금시로 가보고 말 노릇이지.
가보고 말아도 좋으련만/여보 당신도 생각을 하우/가자 가자 못 가는 몸이라우.
내일 모레는/일요일/일요일은 노는 날.
노는 날 닥치면/두루 두루루/자전거 타고서 가리다.
뒷산의 솔숲에/우는 새도/당신의 집 뒷문 새라지요.
새소리 뻐꾹/뻐꾹 뻐꾹/여기서 뻐꾹 저기서 뻐꾹.
낮에는 갔다가/밤에는 와 울면/당신이 날 그리는 소리라지요.
내일 모레는 일요일/두루두루 두루루/자전거 타고서 가리다.
「자전거」 김소월 (김소월 시선집)
자전거를 타고 일요일 새벽에 집 나와 일요일 아침나절에 자전거타고 나는 집으로 간다. 우리 집사람 보러 간다. 멈춰 있던 물레방아가 천천히 돌아가면서 점점 시끄러운 소리를 내듯이 고요했던 새벽이 어느새 외래종 매미소리에 뒤범벅이 되어 사방이 시끄럽다. 출발해서는 천천히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서는 페달에 힘을 가하여 좀 빠르게 달려본다. 아파트촌이 내 옆을 빠르게 스쳐가고 도로의 개미들이 쏜살같이 도망을 다니는 외곽을 지나 나는 유유히 낙동강변과 멀어지고 있었다. 어디를 걷는다는 것도 좋지만, 자전거를 타고 이리저리 계획 없이 다니는 재미도 쏠쏠했다. 가까이 살면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골목길, 차를 타고 훌쩍 지나간 동네구경. 모두 낯설다. 낯설면서 정겹다. 낯설지만 낯설지 않다. 이 모두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쉬었다가고, 머물면서 정이 드는 것이다. 쉬었다가 가는 것, 빠르게 질주하다 적당히 쉬는 것. 이 행위는 경쟁하면서도 화합하는 ‘원효’의 ‘화쟁사상’과 닮았을까. 중도(中道)라는 낱말과 닮았을까. 이 고민이 오늘 또 하루가 짧겠다.
집 앞에 도착하니 앞집 1층에 사는 미국인 영어 강사가 놀란 토끼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Can you cycle?·····!!.’ 안하던 짓을 하니 그도 내가 신기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히죽거리며 늦은 아침밥을 먹으니 밥맛이 꿀맛이다. [송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