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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꿈사★공무원을꿈꾸는사람들
 
 
 
 
 
카페 게시글
② 한국사 심화 학습 [설명부탁] Help Me~~~~~!! ^0^
올록볼록 추천 0 조회 157 05.01.27 19:08 댓글 11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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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5.01.27 00:21

    첫댓글 1.답은 4번인가여? 이앙법은 그냥 논에 볍씨를 뿌리는 것 보다 훨씬 노동력이 절감됩니다. 그리고 벼를 수확한 뒤에 보리까지 심을 수 있답니다. 하지만 모내기 철에 가뭄이 들어버리면 바짝 말라버린 논에 벼를 어찌 심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앙법에는 물이 필수입니다. 그래서 많은 저수지와 보를 만들었을 껍니다.

  • 05.01.27 00:23

    하지만 비안오면 한해농사 말짱 도루묵이니 정부에서는 초기에 이앙법을 금지했던가.아마 그럴껍니다. 그리고 노동력이 절감되는 만큼 혼자서 농사를 할 수있는 땅이 늘어나므로 소작 얻기도힘들죠.

  • 05.01.27 00:33

    2.정조때 신해통공 조치 맞나여? 요즘 통 국사공부를 안해서리.일단 답은 2번같네요. 일단 전세는 결당4두,공납대신 대동미결당12두,삼수미세2.2두, 그리고 결작2두. 그래서 농민이 소유한 농지결당 총 세금은 20.2두. 여기서 용삼이 가 낼 세금은 2번 전세 4결 16두.3번 삼수미세 제외하고 72두.

  • 05.01.27 00:38

    4번.지대는 소작료를 말합니다. 조선시대 지대는 타조법,도조법(책이 없어서 정확한지는..)이 있는데요. 타조법은 정해진 비율대로 지대를 바치는 거고 도조법은 정해진 금액만큼만 주는 건데,타조법이 일반적이지만 도조법 같은 경우는 황무지나 간척지 같은 것을 개간했을 경우 인정되고 이 우 도지권을 가지게 됩니다.

  • 05.01.27 00:40

    그리고 타조법은 병작반수제, 그러니까 5:5가 보통이고 도조법은 거의 수확량의 1/3정도라더군요. 그러니 지대는 300두 정도.정확한지 아닌지 확신은 안서지만 대충 맞을껍니다. 그럼이만.....

  • 05.01.27 00:58

    1번답 아닌거 고르라고 했는데.. 그래서 1번답 1번 - 조선후기에는 이앙법을 보편적으로 사용

  • 05.01.27 01:11

    지송. 1번답을 왜 4번으로....

  • 05.01.27 02:16

    조선후기에 이앙법을 보편적으로 이용한건 맞지만, 정부에서 지원하지는 않은 걸로 아는데요..그리고 이앙법으로 인해 광작이 생기고 그래서 소작민들은 소작지를 얻기 힘들어지지 않았나요? 전 답이 2번인 것 같은데요..

  • 05.01.27 09:26

    1. 답2. 이앙법의 보급으로 광작이 가능해져, 노동력 절감효과로 소작인은 소작 얻기 더 힘들어 졌습니다. 1,3,4 다 맞는 애기입니다.

  • 작성자 05.01.27 20:30

    답변... 감사합니다~~~ *^^* 문제1,2 모두 2번이 정답이래요!! 문제2번은 아직 좀 이해가 안되는데, 좀 더 설명을 부탁드릴께요~~~ ^0^ Please....

  • 05.01.27 21:59

    전세 4 곱하기 4 는 16 그리고 전세 총 20.2두에서 삼수미세 2.2두 빼면 18두 곱하기 4는 72 그리고 병작지 3결 곱하기 300은 900에서 도조법 3분에 1로 나누면 300두 이상입니다..정조땐건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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