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먼저 “유리몸”이란 단어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유리는 쉽게 깨지지 않습니까 ? 그런 몸이라면 어떨까요 ?
유리처럼 쉽게 깨진다. 즉, 자주 다친다는 말입니다. 제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여태 살아오시면서 병원생활을 몇 번 정도 해보셨나요 ?
아니면 깁스를 몇 번 정도 해보셨나요 ?
저는 몇 번이나 해봐서 이런 걸 물어보시냐구요 ?
이 글을 시작하면서 정확히 생각해낸 것만 13회입니다. 양 팔, 양 다리를 시작으로 온 몸에 뼈를 가만두지 않았던
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세상에 이런 놈도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선척적으로 몸이 작고 약해서 4살 먹을 때까지 병원생활을 했습니다. 물론 기억은 안납니다.
집안 어르신들께 다 커서 들었던 이야기들 입니다.
그럼 제 유리몸 인생의 첫 시작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정확히 일곱 살 때 였습니다. 자고 일어났는데 팔이 안움직였습니다. 어무이께서 깨우러 오셔서 일어나려는데 오른팔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잠버릇이 좀 고약했던 저는 제 팔을 제 몸뚱아리 밑에 깔고 자버린겁니다. 그 날 제 인생의 첫 깁스를 하게 됩니다. 한창 유치원의 최고참으로서 장미반 아이들에게 몸소 가르침을 줘야할 당당한 해바라기반의 원생으로서 조금 자존심을 구겼습니다. 그리고 저는 더 큰 무대로 진출하게 됩니다.
2년을 조용히 지내던 저에게 3학년이 된 친구들이 고학년들만의 스포츠인 축구를 제안했습니다. 이게 제 인생의 첫 공놀이였습니다. 하지만 운동장을 호령하는 5,6학년들의 강력한 카리스마에 우린 구석에서 놀아야 했습니다. 저희들 눈에 이미 그들 중 몇 명은 박지성선수를 뛰어넘는 플레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거짓말 아니냐구요? 박지성선수가 공 몰고 7-8명을 제치는 것 보셨나요? 그 때 그 사람들에게 그건 쉬운 일이었습니다. 10명도 제쳐버릴 기세였습니다. 제 눈엔 당연히 더 잘해보였습니다. 그 화려한 기술들을 따라하려다 운동잘 구석에서 넘어져서 울고 있는 사내 하나가 바로 저였습니다. 얼마나 아프던지 뼈가 부러진다는게 얼마나 아픈건지 자~알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매년 1-2회 저는 동네병원에 원장님과 얼굴을 익혀가게 되었습니다.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2동 명성병원 “사공” 성씨를 가진 원장님 잘 계신지 안부 전합니다.
그런 생활을 이어가다 초등학교 드넓은 운동장에서 더 이상 적수가 없는 6학년이 됩니다. 저는 힙합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몸치였던 저는 친구들을 따라가 정체를 알 수 없는 형들에게 춤을 배웠습니다. 제 기억에 지금은 할 수도 없는 그런 동작들을 배웠습니다. 친구 녀석들과 같이 배우는데 아무래도 사내들이라 서로에게 경쟁심이 있어서 무리한 동작들도 연습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저는 인생의 경력을 하나 더 쌓았습니다. 눈치 채셨나요? 바로 그겁니다. 그날 하루를 마치며 청소를 하다가 여자애들 앞이라고 재롱을 부리고 싶었나 봅니다. 물구나무 서기를 하다가 팔에 힘이 빠졌는데 쇄골뼈를 바닥에 내리 치며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여자애들 앞이라고 아파죽겠는데 눈물도 참고 팔을 잡고 집으로 갔습니다. 걸어가는 길에 어무이를 만난 게 행운이었습니다. 13살의 나이에 드디어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거 별거 아니더만요.
드디어 교복을 입었습니다. 이제 꾸러기 짓을 하면 안되겠다는 신념을 가졌으나 학기 초부터 깨져버립니다. 이게 다 대한민국의 학연, 지연 때문입니다. 왜냐구요? 저희 중학교는 강동, 해운대, 해강, 해동초등학교 요렇게 4개의 학교에서 똘망이들이 섞여 입학했습니다. 학기 초 각자 뭉쳐진 같은 학교 출신들끼리의 미묘한 기싸움에 저도 동참했습니다. 그 모습이 지금 생각해 보면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수컷 동물들이 처음만나 서로의 서열을 가리기 위해 싸우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다 한 녀석과 시비가 붙었는데 너무 사사로운 일이 원인이라 지금은 기억조차 나질 않습니다. 여튼 그 위대한 전투에서 저는 오른손을 다쳐 교복과 합께 깁스를 입었습니다. 물론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2학년 때엔 왼쪽 다리를 부셔뜨려서 입원도 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병실에서 만난 바코드 머리스타일의 부상전문가(?) 아저씨께서 조언해주신 “다친 곳은 또 다치게 된다.” 라는 말씀처럼 3학년때 다시 왼쪽 다리에 다시 초록색의 깁스를 착용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하루는 집에서 무언가를 찾던 중 의료보험증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병원에서 주민번호만 불러줘도 전산으로 처리가 되고 카드형으로도 대체되었지만, 당시엔 양 손바닥에 겨우 들어오는 크기의 의료보험증이 있었습니다. 그 걸 발견해서 호기심에 펴봤는데 제 이름이 가득 했습니다. 열 댓줄 정도의 표에 저는 독점이란 걸 하고 있었습니다. 그걸 보니 화려한 제 경력에 대한 자부심(?)과 그 뒤로 씁쓸함이 밀려왔습니다.
이러다 보니 매 년 다치던 몸뚱아리에게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조신하게 생활해거 저는 고등학교 입학 후 무려 3년동안 다치지 않는 대기록을 수립했습니다. 의학적인 시각에선 현재까지 제 인생의 전성기였으며,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고 집에선 철이 들었다며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도 국가의 부름이 들려왔습니다. 연중 행사로 매년 다치던 아들래미 군대 보내며 다치치 말고 잘 갔다오라고 말씀 하시던 부모님 심정이 어떠셨을까요. 저도 꽤 머리가 컸는지 죄송함을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69번 훈련병 황기섭 ! 5주간의 신병교육을 마치고 강원도 화천군 7사단 공병대대에 전입했습니다. 당시 우리 부대는 공병답게 대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철책교체 공사였는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휴전선” 바로 그겁니다. 그거 밀어넘기고 새 철책으로 갈아 끼우는 공사였습니다. 산 중턱에 우리 300여명의 병력이 잘 곳이 없어 4개월을 텐트치고 생활했습니다. 옆에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그 안에서 발전기로 계곡물을 퍼 올려 씻었습니다. 4월에도 추운 강원도의 산 중턱에서 군 생활 시작의 신호탄을 날린 저는 이등병 생활 열 흘만에 사고를 쳤습니다. 길다란 철근을 두 개씩 들고 옮기는데 개념충만(?)해 보이고 싶었던 제가 철근을 한번에 4개씩 짊어지고 다녔습니다. 이제 막 전입 온 신병이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어떤 고참이 싫을까요? 그러나 그런 따뜻한 시선이 오래가질 못했습니다. 그걸 들고 가던 저는 계단 턱에 걸려 넘어져 철근이 손등위에 떨어졌습니다. 왼팔에 붕대감은 저는 고참들은 일하는데 앉아서 쉬게 되었습니다. 얼굴이 따갑습디다. 눈에서 시뻘건 레이져들을 발사하는데 생전 처음보는 사람들 속에서 어찌 해야할 지도 모르겠고 그냥 있었습니다. 당연히 집에도 말 못했습니다. 그걸 어찌 말합니까.
군생활 하는 동안 저의 기록 행진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유격훈련 전 날 농구를 하는데 농구공에 손가락이 부러졌습니다. 덕분에 유격훈련도 빠졌습니다. 그땐 시간이 좀 지나 눈치 볼 군번이 아니라서 푹 쉬긴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군대가서 유격 훈련도 못해본 게 아쉽습니다. 보통 말년 병장에게 지나가는 낙엽도 조심하라고들 하는 말 들어보셨겠지요? 제가 본의아니게 그 말에 신빙성을 더 해주게 되었습니다. 전역을 한 달 남기고 커리어에 부족함(?)을 느낀 저는 군생활의 마지막을 골반 부상으로 매듭 지었습니다. 다른 중대랑 축구를 하는데 마치 한일전에 출전하는 국가대표 선수에 빙의되어 죽도록 뛰다가 그랬습니다. 사회로 나와 한참을 치료받고 1년 동안 재활을 했습니다.
지금 정상의 몸(?)으로 1년하고도 절반을 버티고 있는데 요즘엔 마음이 불안 합니다. 학교정문 앞에 풋장살이 생겨버린 뒤로 제가 다시 공을 차고 있습니다. 안하면 되지 않느냐 라고 말씀하지 마십시오. 전 담배를 안피는 대신 축구를 핍니다. 담배 못 끊으시다가 실패해 보신 분들 그런 모습을 보신 분들 공감해주세요. 그리고 모두 다치지 않는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참고로 하나 말씀드리면 깁스풀 때 조그만한 전동 톱으로 석고를 분해합니다. 그거 무섭다고 하시는 분들 많으신데 매우 안전합니다. 절대 다치지 않습니다. 제가 보장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칼날같은 지적 부탁드립니다.
첫댓글 이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먼저 “유리몸”이란 단어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유리는 쉽게 깨지지 않습니까 ? 그런 몸이라면 어떨까요 ?
네, 바로 그겁니다. 유리처럼 쉽게 깨진다. 즉, 자주 다친다는 말입니다.
유리몸이라는 말, 바로 제가 그 주인공입니다.
유리는 쉽게 깨지지 않습니까 ? 그런 몸이라면 어떨까요 ?
유리처럼 쉽게 깨진다. 즉, 자주 다친다는 말입니다. 제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 배워갑니다.... 저는 인생의 경력을 하나 더 쌓아갑니다." 글을 왜 3인칭으로 써노? 쌓아갔습니다.
소재는 재밌는 내용이니까, 군더더기 말을 줄여가면서 작성하시길..
다시 한번 수정해보겠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오홍 !! 멋지다!! 안그래보였는데 ;;
ㅎㅎㅎ 허우대만 멀쩡하단 소리 좀 듣고 살았어 .
와~~ 마지막에 축구를 핍니다! 멘트, 멋진거 같아요 ㅋㅋㅋㅋ
축구랑 초콜릿 좀 피거든 ㅋㅋㅋㅋ
형은 정말 튼튼할줄 알았는데...ㅋ
크크 ,, 너 완전 속았어. 난 FC Hospital 출신인데...ㅋㅋ
행님 축구하는거 보고싶습니다 ㅋ
나 ; ; 심심하면 하는데..ㅡ.ㅡ;; 시험 끝나고 우리반끼리 공 또 찹시다 !!
히야~ 대단하네요 ㅋ 전 양팔이 한꺼번에 다쳐서 양팔깊스 해봤는데.. 일명 '질럿' ㅋㅋ
헛 ,, 양팔 깁스 ㅋㅋ 아직 도전해보지 못한 종목이네...
C반 긱스 황기섭 ㅎㅎ 근데 점점 무쇠몸이 되어가는거 같다 ㅎㅎ 다칠수록 강해지는 기섭신 ㅎㅎ
무쇠몸 ㅋㅋㅋ 제발 튼튼해지고 싶다. 이놈의 뼈는...
워 ㅋㅋ 형님 운동 좋아하시길래 몰랐네요, 그래도 좋은 자세인듯, ㅎㅎ잘 읽고 갑니다.
ㅎㅎ 나는 운동을 좋아하는데 ... 그놈이 날 싫어하는지...
FC hospital 돋네
ㅋㅋㅋㅋㅋㅋ 증인 돋네
전기톱 자를때 발가락 간질 간질 안거리드나 ㅋㅋ 진동이 온몸으로 느껴져서 좋음^^
진동 느끼는건 초등학교 때 ㅎㅎㅎ 나중엔 내가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음.
저도 왼팔 깁스로 4주정도 입원하는데 낮에는 행복 천국 밤에는 병맛 ㅋㄷㅋㄷ
4주나 입원했네 ㅋㅋ 병원밥 진짜.... 망할.. 우리 학교밥이랑 비슷
텐트에서 어떻게 살음? ㅋㅋ
살아진다. 저 사진속에 진짜 300명 넘게 살았음.. ;; 증인 - B반 서동준 학생.
미친 넓은골 저기 갔다오고부터
사람은 아무데나 던져놔도 적응하는구나 생각 했네
물 없어서 모기알 섞인 물 마실 때 이미 해탈한 듯.. ㄷㄷ
ㅋㅋㅋ 형님 다음에 저희반 끼리 한번더 하죠~ ㅋㅋ 그때 희망을 봤습니다. ㅋㅋㅋ
ㅎㅎ 4학기되면 또 차자 ! 우리반끼리 하니까 진짜 재밌던데
형, 저는 살면서 깁스 한번도 안해봤습니당 ~!! ㅋㅋㅋㅋㅋㅋ
잘 읽고 갑니당 ^^
행운아네 ..;; 어째 살면서 한번도 안하지 ..... ;; 좋겠다 !
행님 그래서 몸싸움을 안하는구나^^
몸싸움 하면 다쳐~~ ㅠ 이제 안다치고 살아보고 싶어 ~~~
행님 몸조심하세요 이제 겨울입니더 행님
응 ,, 다가오는 추위 ! 커져가는 위험~
기섭이형~~~ ㅋㅋㅋ 유격 한번 받으실래용? ㅋㅋㅋ 교육생 PT8번 준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격장가서 구경은 했는데 ㅎㅎ 빨간 모자들 무서웠음 // 레인져 ;;
아 행님.............진짜 몸조심 해야겟어요 조심조심 또 조심 ㅎㅎ
ㅎㅎㅎㅎㅎ 내 뼈의 전단강도 = 2.45kg/mm2 ....... 망할 재료역학
그렇게 안보이던데 ㅋ 은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약골이네
네 ㅋㅋ 군대 고참들이 허우대라고 많이 놀렸어요 ㅋㅋㅋ
행님 좋은 말 인거 같습니다 ㅋㅋㅋㅋ 저도 그럼 시험 치기전에 한탕 해야...~
ㅋㅋ
몸 조심 하십시오~ 날도 추운데^^
너도 조심해 ㅎㅎ 사람 언제 다칠지 모름 !
히히>< 재밋게 잘읽었서요^^
올해 몸 조심하이소 한방에 가뿝니더.
인생은 한방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