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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는 이름 그대로 참으로 넓은(廣) 고을(州)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엄청나게 달라졌다. 376년간의 백제 도읍지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으로 위용을 떨쳤던 광주는 한때(조선 명종 10년, 1577년) 23개 면을 품고 있던 광주부(廣州府)였다. 지금의 경기도 성남시와 하남시는 말할 것도 없고 서울의 송파구를 비롯해 한강 이남의 서울 땅 대부분이 광주 땅이었다.
고려 태조 23년(940년)부터 천년 넘게 광주로 불려온 이곳은 2001년 3월 21일 광주시(廣州市)로 승격했지만 3개 읍, 4개 면, 3개 동으로 구성된 인구 24만 명의 중소도시가 되었다. 최근에는 인접한 성남시·하남시와 통합논의가 진행 중이라니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인가. 다시 옛날 같은 거대 도시로 새로운 출발을 할 것인지, 많은 국민들의 깊은 관심권 안에 들어온 광주 땅 해협산으로 가본다.
해발 527.7m 해협산은 광주시 남종면과 퇴촌면의 경계를 이루는 지점에 솟아 있다. 아기자기한 산세가 누구나 부담 없이 오를 수 있는 산이지만 아직 외지인들의 발길은 뜸한 편이다. 하지만 현지 주민들에게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정상에 올라보면 팔당호가 산 전체를 휘어감은 듯하다. 남종면사무소를 출발, 해협산 정상에서 11시 방향에 솟은 정암산(402.8m) 북쭉 자락으로 달리는 342번 지방도로를 따라 역U자형으로 주행을 해본다. 광활한 팔당호와 남한강 물줄기가 내려다보이는 멋진 드라이브 코스다. 비록 겨울철이지만 한 차례 달려보기를 권하고 싶다.
쇠뫼기 88번 지방도에 감추어진 진주
퇴촌면소재지에서 동쪽으로 도수리~염티고개~영동리를 거쳐 양평 땅 강하로 이어지는 길이 88번 지방도로다. 이 길이 바로 해협산 남쪽 자락이다. 설악산을 비롯해 강원지역 산행을 마치고 서울로 귀환하는 도중, 확 트였던 37번 국도나 6번 국도가 막히면 양평대교를 건너서 남하한 다음에 곧잘 선택하게 되는 샛길이 바로 이 도로다. 도로변 좌우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특히 해 저문 밤길을 달려보면 손님들을 맞기 위해 도로변 식당들이 밝혀 놓은 휘황찬란한 조명들이 시선을 빼앗는다.
이 지역을 가장 잘 안다는 기관이나 많은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행정기관과 이 지역 사람들, 그리고 이 지역의 산꾼들에게 이 도로상에 있는 수많은 업소들 중에서 ‘딱 한 집’만 추천해 달라고. 그랬더니 자문을 받았던 10명 중 10명이 같은 업소를 추천해주었다. 이렇게 해서 얻어낸 정답이 ‘쇠뫼기(031-767-9852)’였다. 쇠뫼기? 참으로 별나고(?) 참으로 어려운(?) 이름이다. ‘쇠뫼기’는 ‘소(牛)에게 여물이나 물을 먹인다’는 옛말이다. 이 말이 자주 쓰이던 시절에는 소장수들이 소에게 물을 먹이면서 쉬어 가던 곳을 지칭하기도 했다. 그래서 ‘쇠뫼기’라는 지명을 얻게도 되었다는데 지금도 전국에는 몇몇 곳의 지명으로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기도 하다.
퇴촌면 도수리 93번지 계곡가의 ‘쇠뫼기’도 양평지역의 소장수들이 광주의 우시장으로 가다가 가파른 염티고개를 힘겹게 넘고는 잠시 쉬어 가던 곳이었다.
업주 정지수(鄭知秀·64) 여사는 지금의 업소 자리가 본인이 태어난 곳이라고 했다. 서울로 나가서 공부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아 다 기른 다음 고향으로 회귀해서 이 업소의 문을 열었다고 한다. 이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멀어져 가는 ‘쇠뫼기’를 한식집 옥호로 쓰게 되니 찾아오는 손님 모두 “쇠뫼기가 무슨 뜻인가?”로부터 대화가 열린다는 설명이다.
‘쇠뫼기’란 옥호가 손님들의 문학적인 감성을 자극이라도 한 것일까. 손님으로 왔던 시인 정운(靜蕓)은 이 집에다 ‘쇠뫼기’라는 시를 남겨 주었다.
양평에서 두어 시간/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염티고개 내려와/ 퇴촌이 보이는 곳/ 소 팔러 가는 농부의 고단함은/ 차가운 시냇물에 발을 담근다.// (중략). 자식들 공부 때문에/ 팔아야 하는 누렁이를 위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배불리 여물 먹이고/ 물 먹이는 일 뿐이다.// (중략). 이제 남은 것 없는 빈 몸이어도/ 자식 위한 푸근한 마음 하나 들고/ 재를 다시 넘는다.
토속한식집 ‘쇠뫼기’의 정지수 여사는 자신의 업소를 ‘청국장으로 밥을 먹고 사는 집’으로 표현했다. 간장·된장·고추장 등 장류는 음식의 기본. 이 모두를 직접 담가서 사용한다. 철저하게 전통의 맛만을 고집하게 되니 온갖 조미료와 양념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전혀 다른 맛으로 느껴질 수 있을 법도 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쇠뫼기에서 차려내는 이 맛이야말로 우리가 어릴 적에 먹던 어머니의 손맛, 바로 그 맛이다.
식당 마당 바로 앞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고 아무리 큰 장마에도 넘치지 않는 천혜의 계곡이다. 그 건너편 넓은 공간 땅 속과 비닐로 지은 온실 속에는 수많은 장독이 묻혀 있다. 앞으로 10년을 내다보며 저장해둔 양식이 들어 있다고 한다. 직접 가을걷이한 무공해 농산물들이 전통 방식 그대로 가득 저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시장을 봐야 할 식재료들은 최상품으로 엄선을 한다는 원칙도 철저하게 고수한다고 했다. 한 번 인연이 닿았던 손님들이 반드시 다시 찾아오더라는 업소 측의 말에는 그만큼 충분한 근거가 있는 셈이다.
오밀조밀한 실내장식에 가야금까지 놓여 있는데 이 가야금은 소품이 아니라 정 여사가 직접 연주하는 악기였다. 국악을 꾸준히 공부해온 음악도인 정 여사의 가야금 연주 실력은 아마추어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것이 이 집을 추천해준 여러분의 공통적인 평가였다. 그 누구라도 이 집 식탁에 앉아 그윽한 가야금 소리에 손수 빚었다는 모주 한 잔의 그윽한 주향(酒香)에 취해보면 신선이 따로 없음을 발견하게 되리라.
메뉴 쇠뫼기 청국장정식·된장찌개정식 각 3만 원(2인)
간장게장정식 2만5,000원. 고추장구이정식 2만 원. 황태구이정식·더덕구이정식 각 1만7,000원. 청국장영양밥 1만3,000원. 감자전·해물전 각 1만 원, 쇠뫼기특주 5,000원(소), 1만 원(대). 소주는 없다.
전화번호 [쇠뫼기] 031-767-9852
찾아가는 길 염티고개 서쪽으로 지척의 거리 해협산 나들목
도토리명가 단합대회와 시산제 장소로 이용할 만한 곳
도토리묵은 오래전부터 구황식이나 별식으로 내려왔다. 더욱이 수많은 사람들이 헐벗고 굶주렸던 한국전쟁 기간에는 연명을 위한 식품이 되기도 했었다. 그래서 도토리묵이라면 빈곤의 상징처럼 인식되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확 달라졌다. 값싸고 쉽게 먹을 수 있는 건강식품으로 인기가 상승했고, 특히 산자락의 식당에서는 하산주로 선택되는 동동주 한 잔과 찰떡궁합의 단골 안주가 되고 있다. 어떤 산자락에는 도토리묵 마을까지 형성되어 있을 정도다.
해협산자락(도수리 86-1)에 위치한‘도토리명가(대표 한일환·031-768-7552)’는 옥호처럼‘도토리 코스요리 전문점’을 표방하고 있는 명실상부한 도토리 요리의 명가다. 확 트인 넓은 공간에 취사가 가능한 숙박시설까지 갖추고 있어 연말연시 산악회 단합대회나 연초의 시산제 장소로도 이용해볼 만하다.
메뉴 도토리 코스요리
전화번호 [도토리명가 ] 031-768-7552 기타 넓은 공간에 취사가 가능한 숙박시설
찾아가는 길 해협산자락(도수리 86-1)에 위치
소담골 강원도 방향 나들이길 만남의 장소로
‘음식이 넉넉하여 보기에도 먹음직한 것’을‘소담하다’고 한다. 퇴촌면 도수리, 천진암 사거리에서 양평 방향 100여m 지점에 우산형 지붕의 건물에 차려진 식당 이름이‘소담골(031-765-3936)’이다. 저녁시간 여러 차례 이 집 앞을 지났는데 마당에는 늘 승용차들이 꽉 차 있었다. 이 집을 추천해준 부산 출신의 어느 부인 말대로 손님이 많았다. 식당 안 분위기는 편안했다. 그리고 충남 예산 출신의 안주인 김보숙(50)씨의 인상 역시 편안하다. 손님이 많을 만한 이유를 금방 알게 되었다. 처음 건물을 지었을 때는 차를 파는 카페였는데 지금은 소박한 토속음식을 차려내는 식당이 되었다고 한다. 안주인의 설명에 의하면 아침 손님이 의외로 많다고 했다. 특히 주말이나 휴일 아침에는 강원도 방향 나들이길 손님들이 이곳‘소담골’에서 만나 혼자 타고 온 승용차 한 대는 이 집에 맡겨 두고 카풀로 나들이길에 올랐다가 귀환길에 들른다고 했다.
메뉴 소담골정식 1만 원. 게장정식(간장) 2만 원
전화번호 [소담골] 031-765-3936
찾아가는 길 퇴촌면 도수리, 천진암 사거리에서 양평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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