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 스님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 제가 관찰을 바르게 한건지 스님께 여쭤보고 싶어서 자료를 보냅니다.
지난 주부터 텍사스 주가 매우 더워졌습니다. 잔디에 스프링 쿨러를 틀어야 되는데 이게 고장이 나서 스톱이 안 되길래 제가 고쳐버렸습니다.
그러기 전에 인부들을 불러서 일을 시켰는데 3시간 일하고는 저한테 "일품삯-비용"을 100만원이 넘게 청구해 놓고 돌아갔어요.
생각해 보니까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면서 불편한 마음이 계속 일어나는 거여요. 저녁 때쯤 좌선을 하는데 여러번 그런 생각과 마음이 그렇게 쑤욱 쑥 올라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그래도 계속해서 일어나는 대로 "알고 알고" 하는데 한참 지나니까 어느 순간 '비싼 청구액'에 대해서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이해가 들면서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고 고요해졌습니다.
그래서 좌선하는 동안 내내 고요하게 아는 마음을 관찰했거든요. 불편한 마음이 많이 사라진 것도 알았고요, 그러면서 괜찮아졌습니다.
이제 제가 생각해 보니까 마음이 일어날 때 이해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러한 불편한 마음이 사라진 거고,
이런 마음을 아는 마음을 관찰을 할 때, 이렇게 불편하거나 화가 나거나 그러한 것들을 알고 수용하고 받아들이면 더 이상 그것에 대한 불편한 집착이 사라지는 그런 프로세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답 변]
네, ‘마음’이란 게 그렇습니다. 그런 성질의 것입니다. 어떤 상황이나 일(세간적)에 대해 접촉하고 경험되어지면 그것이 자신의 마음 안에 저장되었다가 생각으로 떠오르는 경향이 아주 왕왕합니다.
특히 조용히 앉아서 수행 좀 할라치면 어김없이 리바이벌 되곤 합니다. 그건 어떻게 조절하거나 억제할 수 없는 일어나는 마음의 고유성질, 그것들의 일입니다. 그런 것에 내가 개입해서 간섭하거나 상관하거나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보면 잘못된 마음가짐 & 견해로서 보는 것이기 때문에 낄레사를 불러모아서 괴롭습니다. 일어나는 마음이 보는 마음을 자꾸 끌어가 버리기 때문에 사띠사마디가 이어지기는커녕 ‘두는 사띠’마저도 챙김할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까지 몰리게 됩니다.
그래서 지나간(과거) 생각들이 떠오르거나 일어날 때는 우선 먼저 마음이라는 게 그런거구나를 다시 생각(바른 생각)해 주고 인정해 줄 것 같으면 수그러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여타 대상들을 <들어오는 대로 알아지는 대로> ‘알고알고’ 해주면 차츰차츰 노팅부터가 달라질 것입니다. 훨신 부드럽고 수월하고 편안해질 것입니다.
대상을 보는 마음가짐이 바르게 되어야 만이 노팅 또한 수월하고 편안해질 수 있습니다. 편안하고 고요하다고 거기에서 안주해버리지 말고 역시 알아지는 것을 다시 알고를 죽 해줘야 됩니다.
바른 마음가짐으로 자꾸자꾸 노팅을 하게 될 것 같으면 노팅의 가속도(사띠사마디)가 나서 더욱 편안한 마음, 아는 마음을 알게 됩니다. 지켜보는 마음까지도 알 것입니다.
뭐니 뭐니해도 보는 쪽, 관찰하고 수행하는 쪽이 발라야 됩니다. 수 많은 대상들이 6문에서 항상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띠란, 대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그것을 알아차림으로서, 앎으로서 보는 대상이 자꾸자꾸 바뀌고 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변화과정을 많이많이 알아야 보는 힘이 생긴다고 하는 것입니다.
불편(dosa)하다고 아는 그 마음을 바로 알면 사띠가 좋을 때는 바로 가라앉을 것인데, 보는 쪽의 마음가짐이나 견해가 잘못되면 그것으로 보기 때문에 괴로움이 더욱 커질 수 있고 오래 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보는 마음, 관찰하는 마음, 수행하는 마음이 어떤가를 항상 체크하고 수시로 점검하면서 노팅을 해줘야 됩니다.
올바른 마음가짐에 올바른 대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바른 생각(正思惟)은 기차의 머리와 같습니다. 생각이 바르게 되어야 기차의 꼬리가 잘 따라 오는 법입니다.
아무 것도 원하지 않고, 바라지 않는 마음이 얼마나 바른 法인지를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모든 것을 바르게 알았을 때(正見) 아무런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우뻬카)이 바로 지혜입니다.
세간의 일일지라도 처음부터 지혜 있시 접근하거나 조인을 해야 합니다. 보는 힘(이해의 지혜/정견)이 완전하지 않을 때는 언제, 어디서든 불편하고 화나는 낄레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지혜가 있는 사람에게는 별 상관이 없고 문제가 되진 않습니다만.
사야도께서는 『우리는 생각을 사용하지만, 유용하게 사용하려는 특성은 지혜입니다. 요점은 생각 자체가 아니라, 생각 뒤에 숨어 있는 의미(뜻), 바른 아이디어, 이해입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지혜만큼 유용하고 힘 있는 것도 없습니다. 지혜의 가치를 알 것 같으면 ‘알아차림 밖에 없으며’ 마음의 속성을 알 것 같으면 ‘선택의 여지가 없을 줄’ 압니다. 사두사두사두~
첫댓글 고맙습니다
사두ㅡ사두ㅡ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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