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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6.8. 설교문
탁종
신앙고백
찬송 37, 주 예수 이름 높이어
대표기도
성경말씀 골로새서3:1~4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마음공부
헌금 172, 빈들에 마른 풀 같이
광고 김점순 어르신 소천하셨습니다. 어제 보호자께서 시루떡을 해 오셨습니다.
찬송 405,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축도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고통 받고 있는~
잠깐 쪼그려 앉아 채송화를 본 경험 있습니까?
그 순간만은
어린아이처럼 얼마나 순진했습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변해버린 내 모습에 움찔하곤 합니다.
그제는 종일 교회에 있었습니다.
어제는 종일 요양원에 있었습니다.
우리 김행숙 선생님께서 빈자리를 채우느라 2,3층을 오르내리며
진땀에 젖는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이곳이 당연히 제가 있어야 할 자리입니다.
이곳을 떠나 다른 곳에 있다면 어색하고 불편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색한 곳에 가면 오래 있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아예 그런 자리는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자꾸만 소심해집니다.
제가 참을성이 없는 탓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나무를 많이 좋아 합니다.
그래서 나무를 많이 심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심은 나무가 울창하게 자랐습니다.
그래서 새들이 날아와 둥지를 만들고
새들이 지저기며 즐거워합니다.
이것이 저의 행복한 삶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커다란 소나무의 팔뚝만한 가지를 잘랐습니다.
많이 생각하고 결행한 것이지만
아쉬움에 비가 내리는 밤에도
비가 내리는 새벽에도 소나무 곁에 다가가
소나무의 아픔을 위로해주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래도 소나무는 오히려 저를 걱정하는 것입니다.
정 목사님!
나는 항상 비바람이 불어도 눈보라가 닥쳐와서
내 가지가 뚝 뚝 부러질지라도
언제나 여기에서 이렇게 변함없이 견뎌 왔어요.
걱정 마세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50여년을 살아오면서
일생동안 공부해온 것이 있습니다.
마음공부입니다.
그런데도 끝이 없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0’점입니다.
여전히 빵점이라는 것입니다.
부끄럽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크게 축복을 해 주셨는데도
부족하기만 합니다.
만족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감사하지 못합니다.
못된 제 소원을 다 들어주시고 있는데도
제 욕망은 바벨탑처럼 높아만 갑니다.
정신분석가 프로이드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사람은 사랑을 받는 존재라고.
그래서 사람은 사랑을 받고 싶어만 하지
사랑을 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렇습니다.
부끄럽습니다.
저는 겨울바다를 좋아합니다.
텅 빈 겨울바닷가 모래밭을 거닐 때면 행복합니다.
새 찬 겨울바람이 제 답답한 가슴을 관통할 때
상쾌합니다.
불쾌했던 생각,
옹졸했던 가슴이 새롭게 열립니다.
그래서 다시 새 힘을 얻습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 할 수 있게 됩니다.
1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절,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라.
3절,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4절,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금 들녘에는 모네기에 한창입니다.
그런데 여름이 오는가하면
곧 누럿누럿 황금 들녘입니다.
지금 산과 들에는 녹음이 짙어갑니다.
그런데 곧 누럿누럿 단풍 들 것입니다.
이렇게 세월이 참 빠르다는 것입니다.
저는 어제도 종일 요양원에서 독서를 했습니다.
그리고 해질녘에 집에 가서 밤늦도록 설교 문을 작성했습니다.
밤이 깊어갈수록 새벽이 오지 않습니까?
지금 초여름 더위에 우리 요양원에도 휭휭 선풍기가 돌아가지만
곧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저렇게
계절이 시작 되는가 하면
벌써 계절의 끝자락에 서 있고
그래서 누덕누덕 곤한 끝인가 하면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말씀이 아름답습니다.
다시 새로운 삶의 기초를 다시 다지자는 것입니다.
저는 언젠가 테니스를 치다가 오른쪽 어깨를 다쳤습니다.
그리고 지지난 겨울에 우리 선교비젼센타,
요양원을 건축하다가 공사가 1년여 중단 되었을 때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죽고 싶도록 힘들었지만 시공사와 전혀 싸우지 않았습니다.
근심 걱정 때문에 심장이 녹아 내는 듯 했습니다.
그래서 새벽기도회를 마치면 바로 산으로 갔습니다.
쓰러진 나무들을 잘라 통나무 보일러 뗄 감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슬프도록 복잡한 머릿속이 상쾌해지곤 했습니다.
그러다 오른쪽 뒷 종아리 인대 파열도 있었습니다.
쌩통 모르는 교인들은 웃기도 했을 것입니다.
목사가 기도는 하지 않고 무슨 나무를 한다고 하며
걱정 보다는 비웃듯 애둘 거렸을 것입니다.
그 때
그 겨울이
얼마나 아프고, 괴롭고, 슬펐는지 모릅니다.
정말 죽을 만큼 많이 아팠습니다.
마음과 영혼까지도 녹아내리듯 슬펐습니다.
지금도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숨이 막히고 가슴이 저려 옵니다.
그럴때면 왼 종일 눈 쌓인 산을 헤메며 쓰러진 나무를 잘라
제 작은 차에 실어 나르다 보면 추운 겨울인데도
왼 몸이 땀에 흠뻑 젖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공사가 시작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환도뼈가 부서지도록 시름했듯이
제 어깨는 나무와 시름하면서 다시 무너졌습니니다.
세상엔
단숨에 오를 수 있는 산山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리고 공짜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가야 할 길도 단숨에 다 갈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
복에 겨운 큰 축복을 엄청 누리고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보면 다 이룬 샘입니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훨씬 배부르지 않습니까?
모두가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도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항상 불평불만뿐 아니었습니까?
그래서 지금 작은 작은 일들에 힘이 빠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주님께서는 사랑하셔서
오늘 아주 귀한 말씀으로 다시 새롭게 시작하라고 권면하십니다.
1절을 다시 읽어 드립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절,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라.
3절,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4절,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참 아름다운 말씀입니다.
다시 믿는 자로써 새롭게 삶의 기초를 세우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반석위에 다시 교회를 세워 가라는 것입니다.
다시 시작하려면
먼저 자신의 삶을 뒤돌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체투지五體投地란 말을 아십니까?
신체의 다섯 부위를 땅에 닿게 엎드리는 것입니다.
먼저 두 무릎을 꿇어야합니다.
그리고 두 손이 땅에 닿아야 합니다.
그리고 머리 이마가 땅에 닿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납작 엎드리는 모습 아니겠습니까?
제가 힘들 때
제가 고통스러울 때
제가 슬플 때에도
텅 빈 교회
텅 빈 십자가 아래 납작 엎드리기만 하면
눈물이 펑펑 쏟아집니다.
눈물이 한 없이 쏟아집니다.
그런데 한동안 누워만 계시는 어르신들 때문에
요양원 2층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비워 두었습니다.
엊그제 가 보았습니다.
죄송스럽게도 먼지가 가득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은혜를 저버린 배은망덕한 제 모습이었습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우리들의 믿음에 그리고 마음에 먼지가 가득한 것입니다.
그동안 축복에 겨워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축복에 겨워 감사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매너리즘에 빠져버렸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목사
기도하지 않는 성도
감사할 줄 모르는 목사
감사할 줄 모르는 성도를 주님께서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모두 감찰하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새벽기도회 때
나 권사님께 교회 청소를 부탁 드렸습니다.
이제 예배당이 깨끗해졌습니다.
이제는 제 마음도
이제는 우리의 성전도
다시 맑고 깨끗하게 정리를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지금 오체투지五體投地의 모습으로
다시 기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망하거나 죽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요나 한 사람 때문에
배가 풍랑을 만나지 않았습니까?
내我가 망하거나 죽기 전에
얼른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우리가 망하거나 죽기 전에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망하거나 죽기 전에
머리를 가장 낮게 숙이고
겸손하게
소리도 내지 말고 울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친히 찾아와 만나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건강을 위해
아니면 성취감 때문에 등산을 좋아합니다.
산봉우리에 올라가 야~호~
크게 외치면 세상이 다 내 것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사람의 본성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명산일지라도 우리의 도구에 불과합니다.
부끄럽고 안타깝습니다.
이제는 산을 밟고 정복하려 오르는 것보다
산을 만나면 더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어찌 생각해 보면 산을 오르는 일보다
우리들의 하루하루가 매일 넘어야 할 더 험악한 산 아니겠습니까?
등산객들이 산을 오르고는 있지만
내가 오르는 것은 산보다는 더 고단한 내 자신일 것입니다.
그래서 산다는 것은
더 높이 오른다는 것보다
더 깊이 체험해 가는 지혜가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높은 산 깊은 계곡보다도 더 아름다운
주님의 말씀을 깊이 만나고 체험해 가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우리 모두는 예배당 밟기 기도회를 등산하듯 실천해 가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주님께 칭찬 받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매일 예배당에 가서
주님을 홀로 만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가슴에 겸손하게 모으고
이마를 깊게 숙이고
조용히 기도하면
가슴이 조여오고
두 눈에 눈물이 흐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왜? 그랬을까?
하면서 제 자신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을 탓할 수 없습니다.
이러면서 우리는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매일 영혼의 길을 닦아가야 합니다.
심심할지라도 이것이 성도가 가야 할 길입니다.
그러면 견딜 수 없었던 아픔과 슬픔까지도
주님께서 친히 찾아오셔서 닦아 주시고 싸매 주실 것입니다.
1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절,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라.
3절,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4절,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얼마나 아름다운 복음입니까?
사도바울은 또 이렇게도 말씀하십니다.
육신을 쫓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쫓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일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 이니라(롬8:5,6)
그래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수련꽃을 보셨습니까?
지금 6,7월에 하얗게 피는 꽃입니다.
그리고 밤에 꽃잎이 접히므로 수련이라고 합니다.
이제 밤이 되면 휘황찬란한 밤거리 그만 방황하시고
노래방 따위를 그만 기웃기웃 거리지 마시고 어리석음을 반성하며
이제 조용히 누워
수련처럼
주님만을 생각하면서 쉼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도 멀지 않았습니다.
엊그제도 김점순 어르신이 소천하시지 않았습니까?
수련처럼 아름답게 운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수련의 아름다움은
수련의 수줍음입니다.
수련이 질 때면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물속에 몸을 감춥니다.
그래서 열매까지도 물속에 맺습니다.
얼마나 겸손한 부끄럼입니까?
요즘 이렇게 수줍어하며 아름다움을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
여인들이 많아 진다면
세상은 더 맑고 아름다울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우리의 믿음도
이렇게 수줍어하는 수련을 닮아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사람도 수련처럼
나이가 들어 갈수록 가려지는 수줍음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에게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아직까지도 50여년이 되로록 빵‘0’점인 마음공부를 더 하고 싶습니다.
사람이 없는 깊은 산속에서 묵언을 수행하며
반성과 깊은 사색에서 오는 깨달음
그래서 어떤 요란함이나 경박함도 없이
조용하게 마음의 깊이를 더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급함이나 분냄도 없이
수련꽃처럼 수줍어하고
부끄러워하는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런 소망이 언제 오겠습니까?
지금부터라도 매일 작게작게 성전 밟기를 시작하면서
영혼의 길을 닦아가는 일이 무심해 보일지라도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이 없는 삶이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읽고 마치겠습니다.
1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절,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라.
3절,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4절,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