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20대 대선 이후 검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신구권력이 교체되는 미묘한 시기에 정재계의 심장을 겨누면서 때아닌 사정한파가 몰아칠 조짐이다. 이는 검찰이 과거 정권 인수인계 시기 새로운 수사를 벌이기보다 기존 수사를 마무리하던 관행과는 뚜렷하게 대비되는 모습이다. 특히 최근 검찰이 탈원전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를 압수수색한 것은 사실상 문재인정부를 정조준한 것으로 풀이된다. 수사결과에 따라서는 현 정부 핵심실세의 기소를 피할 수 없다. 대선결과가 정권교체가 아닌 정권연장이었다면 재수사가 불가능했을 사안이다. 이에따라 신구권력간 전면전 양상을 띠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일감몰아주기 혐의로 고발된 삼성전자와 삼성웰스토리를 압수수색한 것도 논란이다. 기업 비리 수사라는 명목으로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의 경영승계를 다시 들여다보겠다는 것으로 해석돼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당분간 검찰 주도의 사정정국이 이어질 전망이다.
전운 감도는 검찰, 뉴시스
- 정권교체 이후 檢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 全부처로 확산 중 - 적폐수사 기조 文정부 정조준에 김의겸 “검찰 쿠데타” 반발 - 靑 울산시장 선거개입 최대 난제…文·尹 정면충돌 불가피
정치권은 검찰의 수사의도를 놓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검찰은 정권교체와 관계없이 법과 원칙에 따른 것이라고 강조하지만 신구권력 교체기 새 정부와 코드를 맞춘 ‘생존본능’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종점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이 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을 최종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검찰수사 본격화시 메가톤급 핵폭풍이 불가피하다. 여야 정치권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라는 비극적 트라우마를 가진 더불어민주당은 정권교체 이후 검찰발 쿠데타의 시작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검찰공화국’의 탄생을 막아야 한다며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관련 입법의 조속한 마무리를 강조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정반대다. 현 정부의 내로남불을 비판하면서 성역없는 철저한 수사를 강조하고 있다. 권력의 중심추가 이동하면서 새 정부 출범 이후 현 정부의 각종 의혹사건에 대한 전면 재수사는 필수적이다. 여야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검찰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더욱 쏠리는 상황이다.
탈원전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수사 신구정권 정면충돌
검찰의 최근 움직임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탈원전 의혹과 관련한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 수사다. 관련 수사는 야당의 고발에도 현 정부 내내 3년간 답보상태에 있다가 대선 이후 본격화됐다.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부동산과 정책과 더불어 국민들이 가장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대목이다. 검찰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표적인 대선공약이었던 탈원전 정책 추진 과정에서 코드가 맞지 않은 산하기관장을 불법으로 몰아붙여 사표를 강요한 정황이 있는지 꼼꼼히 들여다보겠다는 의지다.
서울동부지검 기업·노동범죄전담부는 지난달 25일 산업부 압수수색에 나섰다. 표적이 된 곳은 원전 관련 부서와 기획조정실, 혁신행정담당관실, 운영지원과 등이다. 특히 혁신행정담당관실은 산업부 산하 공공기관 4곳의 인사를 담당하는 부서다. 이어 사흘 뒤인 28일에는 한국 남동·남부·서부·중부 발전 등 4개 발전자회사는 물론 한국무역보험공사·한국에너지공단·한국광물자원공사·한국지역난방공사 본사 4곳에 대한 압수수색도 실시했다.
여권은 강력 반발했다. 김의겸 민주당 의원은 “칼끝은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하고 있다”며 “오늘은 앞으로 길게 이어질 '저강도 쿠데타'가 시작된 첫날로 기록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이번 사건은 국민의힘의 전신이었던 자유한국당이 지난 2019년 1월 백운규 전 장관 등 산업부 고위관계자의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한 것이다. 검찰은 이에 장재원 전 남동발전 사장과 윤종근 전 남부발전 사장, 정하황 전 서부발전 사장, 정창길 전 중부발전 사장을 소환해 조사를 마쳤지만 이후 수사진행은 지지부진했다. 핵심 의혹은 탈원전을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던 현 정부가 코드가 맞지 않는, 산업부 산하 공공기관장 4명의 사퇴를 정치적으로 압박했다는 것이다. 당시 4개 발전사 사장의 임기는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 이상 남아있었다.
검찰의 수사결과에 따라 제2의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비화될 수 있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현 정부 출범 초기 박근혜정부에서 임명된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의 사표를 종용한 사건이다. 김은경 전 장관은 직권남용 협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과는 별개로 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 의혹에도 현 정부 핵심실세나 고위인사가 관여됐을 경우 파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총리실·교육·통일·과기부 확산…현정권 타격 불가피
산업통상자원부의 일명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정부세종청사 산업부 원전 관련 부서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한 날 직원이들이 모여 있다. 2022.03.25. 뉴시스
이뿐만이 아니다. 검찰의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는 최근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산업부 이외에도 교육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일부까지 검찰의 수사손길이 미치고 있다. 이 또한 2019년 당시 야당의 고발사건을 검찰이 재조사에 나선 것이다. 그동안 검찰 캐비닛에 잠들어있던 사건이 대선 이후 정치지형의 변화와 맞물려 현 정부 임기 막바지에 수사 본궤도에 오른 것이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민통합을 말하면서 임기 시작을 사정정국, 보복 수사로 시작하겠다는 선언”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은 “검찰의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 수사는 늦어도 한참 늦었다”며 “검찰은 청와대 특감반 330개 공공기관 블랙리스트 작성의혹, 국무총리실·과기부·통일부·교육부·보훈처 산하 공공기관 블랙리스트 의혹, 원자력관련 공공기관 블랙리스트 의혹 고발 사건 등 문재인 정권 불법에 대한 수사들도 조속히 착수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는 현 정부 초기 교육부, 과기부, 통일부 등에서 사표를 냈던 일부 기관장을 상대로 지난 2019년 참고인 조사를 마친 것으로 최근 드러났다. 임기철 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장은 정권실세의 사퇴 압박에 시달려 임기 2년을 남기고 사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준영 전 경제인문사회연구원장 역시 총리실의 사퇴 압박에 임기를 1년 11개월 남기고 사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밖에 동북아역사재단 김호섭 전 이사장과 북한이탈주민지원센터 손광주 전 이사장 역시 정권 핵심부의 사퇴 압박에 시달린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문재인정부 전반을 겨냥하는 검찰의 고강도 수사다. 핵심은 해당 부처 장관이나 정권실세가 박근혜정부에서 임명된 국책연구기관장이나 정부 산하 기관장들에게 정권교체를 명분으로 사표제출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특히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면 현 정부 핵심실세들의 연루설 또한 수면 위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앞서 자유한국당은 이와 관련해 2019년 3월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 홍남기 경제부총리, 김상곤 전 교육부 장관, 조명균 전 통일부 장관 등 11명을 고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대법원에서 법리적으로 죄가 된다고 판단한 만큼 수사에 나선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지만 상황은 간단치 않다. 문제는 검찰수사가 신구정권의 전면전 양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미 대선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은 정면충돌한 바 있다. 윤 당선인이 대선후보 시절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에 나설 의지를 내비치자 문 대통령이 “현 정부를 근거 없이 적폐수사의 대상으로 몬 데 강력한 분노를 표한다”며 공개 사과를 요청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뚜렷한 결론 없이 양측의 반감만 커진 채 상황이 유야무야됐다.
게다가 대선 이후 양측의 상황도 악화일로다. 윤 당선인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대통령집무실의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에 현 정부가 제동을 건 것은 물론 한국은행 총재, 대우조선해양 사장 등 임기말 인사권을 놓고 거친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이 때문에 정권 인수인계 작업 역시 순조롭게 진행되기보다는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삼성 일감몰아주기 수사, 이재용 또 정조준?
뉴시스
정계뿐만 아니다. 재계 역시 검찰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 검찰이 삼성그룹 계열사 부당지원 의혹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 안팎에서는 대선 이후 경제단체장을 만나 자유로운 기업활동 지원을 약속했던 윤석열 당선인의 국정운영 기조와는 달리 검찰이 무슨 이유로 기업압박에 나선 것인지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특히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와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대내외적인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기업수사는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여의도 정치권 주변에서는 삼성뿐만 아니라 현 정부에서 유독 잘 나갔던 일부 기업들의 경우 새 정부 출범과 더불어 본보기 수사의 대상이 되지 않겠느냐는 관측마저 쏟아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지난달 28일 경기도 수원 삼성전자 본사는 물론 성남 분당에 소재한 웰스토리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이는 지난해 6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웰스토리에 사내급식 물량을 몰아준 혐의로 삼성전자 등 삼성 계열사 4곳과 웰스토리에 시정명령 및 과징금 총 2349억원을 부과하고 삼성전자 법인과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을 고발한 데 따른 것이다. 핵심 의혹은 삼성 미래전략실이 개입해 이재용 부회장 일가 회사인 삼성웰스토리에 사내급식 물량을 100% 몰아준 뒤 웰스토리가 확보한 배당금을 이 부회장의 경영승계과정에 지원했다는 것이다.
다만 당시 9개월간 진전을 거두지 못한 수사가 현 정부 임기말 속도를 내는 것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적지 않다. 검찰 수사의 칼끝이 단순한 일감몰아주기 의혹을 겨냥한 게 아니라는 의심이다. 재개 안팎에서는 검찰의 수사에 무리한 기획수사라는 반발이 적지 않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단순한 일감몰아주기 의혹을 경영권 승계로 확대하는 것은 무리한 짜맞추기 수사”라면서 “삼성을 신호탄으로 재계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광풍이 몰아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점차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사정당국에 밝은 한 관계자는 “대선국면에서 대장동 물타기 수사로 체면을 구긴 검찰이 재계 최대어인 삼성을 정조준하면서 국면전환에 나선 것”이라고 평가한 뒤 “검사 출신인 윤석열 대통령 시대를 맞아 검찰이 스스로의 몸값 과시와 존재감 부각에 삼성을 이용한 측면이 크다”고 분석했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현 정부를 정조준한 검찰의 수사 의도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며 “검찰의 적폐청산 수사가 윤석열정부에 부담을 줄 경우 속도조절론이 제기될 수 있지만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수사로 확대될 경우는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의 정면충돌이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기업수사는 현 경제상황을 고려할 때 지나칠 정도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며 “지나치게 보여주기식 수사에 나설 경우 국민들의 검찰불신이 보다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