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니.. 기독교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질문은 교회를 다니건
다니지 않건간에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아니.. 어쩌면 교회를 다니는 분들에게 던지는 메세지가
더 클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 태어날때부터 여지껏 교회를 다니고 있고
지금 졸업을 앞둔 대학교 역시 기독교대학임에도 불구하고
어제 책을 읽으면서야'복음'을 접한 자로서 해야 할 일을
깨달았거든요^^ ("십자가와 구속" - D.M.로이드 죤스)
벌써 20여일정도 지났군요. 크리스마스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말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라는 존재와
필연적으로 연결될수밖에 없으니까요. 기독교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말은 기독교 교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묻는 말일테고 그 기독교 교리의 핵심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분들도
(적어도 이 한국땅에 사시는 분들이라면..) 모두들 들어보셨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믿으세요"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으라니.. 예수 천국 불신 지옥..
교회를 다닌다 하는 사람들은 허구헌날 예수를 믿으라는데
예수 안 믿어도 잘만 사는데 도대체 예수를 왜 믿어? 라고 반문하실
분들이 열에 아홉이상 되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이 글을 쓰고자 하는 것은 그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제가 위에서 소개한 책의 저자가 성경을 통해 던지는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입니다. 역시나 위에 언급했지만 이 이야기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크리스챤들에게 보다 던지고 싶은 메시지입니다.
물론 예수를 믿지 않으시는 분들에게도 해당되고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이야기이고 이 이야기는 정말 중요한 이야기이기에
되도록이면 끝까지 읽어주셨으면 하는 바램이 있네요. 제가 태어나서 누군가에게 하는 이야기중 가장 중요한 이야기이기 때문이고
전 이 이야기를 평생 전할 결심을 했습니다.
그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여러분들도 저도 사람입니다.
사람이라 함은 누구나 태어나고 죽게 마련인데 이 과정을 '삶'이라고 합니다. 저자가 처음에 전제하고 있는 이야기는 이 세상에서의 삶은
매우 심각하고 엄숙한 문제라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유쾌하게 보낼 수 있는 천박하고 가벼운 것이 결코 아니며
이 세상에서의 삶은 엄청나게 진지한 일이라는 것이지요.(세상
사람들의 삶이 천박하다거나 가볍다고 무시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거듭났다고 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진지한 삶을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나아갈
길을 제시한 것입니다) 왜 삶이 진지할수밖에 없는가?
인생은 심고 거두는 것에 대한 문제라고 성경속에서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은대로 거둔다.. 이 격언을 모르는
분은 없겠지요. 누구나 알지만 제대로 된 것을 심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제대로 심는 것이냐..
콩 심은 데는 콩 나고 팥 심은 데는 팥 나는 것처럼 성경속에선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 (갈라디아서 6장 8절)"라고 이야기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이 두 가지중에 한 가지를 위하여 사는 사람입니다.
육체를 위하여 살든지.. 성령을 위하여 살든지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발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어떻게 하면
성령을 위하여 심느냐 하는 문제인데 놀랍게도 성경전체가 그 문제에 대한 답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답, 즉 참 메세지는 무엇인가?
무엇이 기독교 복음이며 기독교 복음은 어떤한 것이며 그 복음은
어떠한 것을 선포하는가? 그렇다면 내가 해야할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는 '은혜(Amazeing Grace)"로
말미암아 그것을 증거할 특권을 얻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전하는 것이 복음의 중심이고 사도중의 사도인 바울은
언제나 그것만을 전했습니다. 바울뿐만 아니라 그를 비롯한
사도들은 바로 그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했고 십자가가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전했습니다.
인기가 없었을뿐 아니라 고난과 순교로 인한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끝까지 전한 그들의 모습이 위에서 언급한
'참 메시지(복음)"의 중심과 핵심이 '예수님의 십자가'라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사람들은 착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자였다고..
좋은 사람이었다고.. 왼쪽 뺨을 때리면 오른쪽 뺨도 대라고
이야기하면서 착하게 살 것을 가르쳤던 사람일뿐이라고..
우리에게 윤리적 교훈을 제시한 고마운 인물.. 선생.. 이정도?
심지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자들마저도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모른채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이야기들의 일부분만을
가지고 가르치고 즐거워하며 그것으로 자신이 크리스챤이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우리로
하여금 착하게 살라고 이야기한것도 아니었고 어려운 자들을
도우라는 이야기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선 '생명'에 대하여
지극히 높은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고 그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인 그 자신인 그리스도께서 지실
"십자가"가 바로 그 가르침의 핵심과 중심에 놓여져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아주 중요한 편지라고
볼 수 있는 모든 성경속, 특히나 신약성경속에 있는 모든 장들의
대주제는 바로 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만이
그 어떤 흉악한 죄를 지은 인간들까지라도 분명코 구원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기에 그 사실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하는 이 메세지의 전도야 말로 기독교 복음전도의 가장 본질적이고 중심적인
메시지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야기합니다. 내가 이 예수의 십자가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입니다. 바울은 당대 최고의 엘리트였습니다. 지금의
미국과도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초강대국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고 하나님과 사람에 관한 지식, 그의 심오한 이해력, 그의 모든
철학과 헬라 시(詩)에 대한 지식, 그 밖에 다른 수 천의 문제들에
대한 지식들을 포함한 정말 일반인들로써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광대한 지식을 가진 그였지만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는 미련한 자가 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는 왜 이것만을 자랑하려고 하였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이 바로 이 십자가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로 하여금 자유케하고 구원을 가져다 주는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이기 때문이었고 이것은 절대적으로 생명과
죽음을 좌우하는 요점입니다. 이렇게나 중요한 십자가 사건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적게 언급해야 할 일도
아닙니다. 이 십자가를 후회스럽게 생각하거나 잊으려거나
이상화시키려거나 철학적으로 말할 필요도 없이 오직 그것을
우리는 "사랑하여야"만 합니다. -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지 아니하셨으면 그 어떤 누구도 구원받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십자가에서의 우리 주님의
죽으심이 분명하고 이것에 관한 증거는 너무도 풍부합니다.
그렇다면 이 십자가가 우리를 어떻게 구원합니까? 우리가 너무도
흔하게 들어왔던 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의 죄를 용서받으며 우리와 세상을 창조하신 능력의 하나님과 화해한다는 의미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시작하며 그럼으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게 됨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그렇게나 놀라운 구원의 능력을 지닌 십작가가 우리는 어떻게
구원합니까? 아이작 왓츠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라" - 그 위에서 죽으신 이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지 못하면 그 놀라운 일을 결코 이해하지못할 것입니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그 십자가에 매달리셨던 예수님은 분명한 사람이자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이 이야기가
너무 어려울수도 있는 비크리스챤들을 위하여 간략히 언급하자면
우리가 성탄절때마다 축하하는 것처럼 그 예수님은 분명한
사람이시기도 하지만 분명한 하나님, 완벽한 사람이자 완벽한
하나님이신 유일한 존재이십니다) 그렇다면.. 그 십자가 사건이
그렇게나 중요하다고 한다면 주님께선 십자가위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셨는가? 또 분명한 하나님이시라는 분이 왜 분명한 사람이
되셔서 굳이 죽으셨는가? 하는 물음에 물음들이 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것입니다. 그 죽음은 계획된 것이었고 예수님은 바로
그 계획된 십자가를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요. '인자가 섬김을 받으로 온 것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 그러면 왜 꼭 '그 분'이 '그렇게(십자가)' 하셔야만 했습니까? 성경 처음부터
끝까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나타나 있습니다. 일단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우리가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여러가지가 나오겠지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전제이자 진리는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달리 '빛'이시고 그 안에는 어두움이나
더러운 것이 조금도 없으십니다. 즉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추하고 미련하고
비열하고 죄악적인 존재들이기에 하나님의 의를 이해하지 못할
수 밖에 없습니다. (누구나 알겠지만 사람들은 늘 자신의 수준으로
모든 걸 이애해보려고 노력하고 그것이 이해가 안 될 경우 그저 말이 안 되는 것으로 치부하며 똑똑한 채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이해조차 못하는 범죄한 죄인과 거룩하고 거룩한 하나님이 화목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그렇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해답이 되느냐? 라고 물으신다면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선언하신 하나님께선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다고 말씀하셨음을 기억해내야만 합니다. 구약시대를 돌아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자신들의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것처럼 인간들의 모든 죄가 십자가상에서 예수님꼐로
옮기워졌고 그로 인해 우리의 죄책과 허물에 대한 형벌을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지불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불평도 불만도 없이 모든 것을 매었고 자원하는 심정으로 자신을 드리셨습니다.
우리가 짓는 죄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고 이 세상에 있는 양이나
소들을 전부 죽여 피를 흘리게 한다해도 모든 인류가 짓는 죄를
용서하기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신 하나님께서 계획하고 완성하신
놀라운 사건이 바로 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한 가지입니다. 이 메시지를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믿는 이것이라 - 사도행전13장 38-39절"
(다른 것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러면 그리스도가 네게 대하여 모든 것 중의 모든 것임을 알게 되리라 - 우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 결코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십니까?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어떤 의문과
두려움이 늘 따라다닙니까? - 제가 읽은 책의 로이드 죤스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설교자는 자기 회중을 알 필요가 없다
- 제가 의역하면 이렇습니다. 설교를 하는 사람은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필요도 없고 가장 먼저 전해야 할
말씀은 단 하나이고 이것은 그 어떤 사람에게도 필요한 말씀이 되고
능력이 되는 말씀이기에 단지 전하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
아닐런지.. - 왜 그렇습니까? 우린 누구나에게 해당되는 공통되는
한 가지 가장 중요한 일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다 비열한 죄인이고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사람들이 어떤 죄를 지었느냐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대한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예를 들면
그 사람이 술을 먹는 사람인가.. 살인은 저질렀는가.. 매춘을
하였는가.. 정말 사회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죄의 가짓수는 늘어가고 사람들은 서로 죄의 크기를 비교해가며 자기는 흉악한 자는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며 마치 자신은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난
사람인양 삶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죤스 목사님은 그런 일에 관심도
없을 뿐더러 사람들이 지은 죄목에 대한 목록을 갖고 싶지도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죤스 목사님을 비롯한 정말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깨달은 사람들이라면..
그것이 우리라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전하는 이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진정 믿는다면.. 그것을 믿고 그 때문에 그 분께
감사하며 그와 그분이 행한 일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의 모든 죄가 철저하게 도말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인 것입니다. 전 세계에 두루 다니면서 전했던
메시지.. 그리고 우리가 전해야 할 그 '참 메시지(복음)'은 사람들
가운데 가장 극악하고 비열하고 가장 절망적인 자들에게나
가장 훌륭하고 선하고 자비한 모든 사람들에게 동등하게 전할 수
있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그들 모두는 사람들 보기에는 격차가
있을지언정 절대적인 의를 지니신 하나님앞에서의 심판을
결코 피할 수 없게 타락하였으며 죽어있지만 이 메시지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즉각!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얻습니다. 설령 그의
삶이 사람들 보기에 실패한것 같이 보이고 조롱받을찌라도
말입니다 (십자가상에서의 강도를 기억하십시오 예수님께서 관심을
가지신 자들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예수님을 필요로 하시는 자들에게 관심이 있으십니다. 난 죄인이
아니야!! 복음은 내게 필요치 않아.. 중요치 않아.. 라고 말하는
자들에게 구원은 없습니다)
여러분.. 가슴이 두근거리십니까? 이 십자가의 놀라운 능력과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 어떤 것인지 분명해짐에 하나님의 부르심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적어도 전 그랬습니다. 목사의 아들로서..
신학대학생으로써 스물여덟의 나이를 먹기까지.. 스물 다섯의
을에 하나님을 만났지만 이제서야 하나님의 뜻과 계획하심이
보다 확실히 보이는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사도바울 시대에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회당에 나갔을때에도 이
놀라운 복음을 접한 이방인들은 다음 안식일에도 또 다음
안식일에도 와서 이 '참 메시지(복음)'에 대하여 더 많은 것을 듣기
원했습니다. - 우리도 그러합니까? 그 메시지에 대하여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으십니까? 만일 이 진리에 대한 어렴풋한 빛을 가졌다면
더 듣기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듣고 싶지 않다면 사도의 말로
경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이를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사도행전 13장 41절)"
찰스 웨슬리의 4가지 질문을 끝으로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구주의 보혈이 내 몫이 될 수 있는가? 그를 괴롭힌 날 위해 그가
죽으셨다고? 그를 죽게 만든 날 위하여? 오 놀라운 사랑 나의
하나님 주께서 어찌 나를 위하여 죽으셔야만 했나요?"
첫댓글 역시 멋있군...희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