絃(현) 하나하나에 불교가 깃들 때까지 / 지안 스님
‘가야금 연주자’ 지안스님
부친 도우려 입문한 가야금
시련 딛고 실력자로 ‘우뚝’
“염불소리가 바로 한국음악”
불교음악 발전에 기여 ‘목표’
서울 충정로 부근에 있는 사회복지법인 수효사 효림원에서 만난 지안스님.
노래하고 작사하는 스님들은 더러 있으나 악기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스님은 정말 찾아보기 힘들다.
智安스님은 종단의 희귀한 재원이다.
가야금 연주자다. 피아노로 따지면 ‘체르니50번’에 해당하는 산조한바탕을
다 떼었다. 20세기 가야금산조 명인인 김죽파(1911~1989) 類의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전통 5음계에 서양음악의 7음계를 결합한 25현 가야금으로 불교음악의 대중화에 나서는 스님이다.
어릴 때부터 음악에 재능이 많았다.
여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다가 결국 가야금을 골랐다.
‘취미’나 ‘특기’라기보다는 ‘孝行’이다. 부친이 국가무형문화재 제42호 악기장(匠) 이수자인 최세춘 장인이다.
“아버지가 더 훌륭한 가야금을 만들 수 있도록 연주도 해보고
품평도 하면서 돕자는 마음”이었다. 그 마음이 아주 절실하지는 않았다.
가야금이 조금씩 손에서 떠났고, 가야금과 상관이 없는 대학교에 들어갔다.
머지않아 길을 잘못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능을 다시 보고 음대에 진학했다.
남들보다 늦은 만큼 빨리 따라잡아야 한다는 강박이 컸다.
남들보다 더 높이 오르려다가 결국 무리를 하고 말았다. 손가락을
구부릴 때마다 소리가 나는 ‘방아쇠수지 증후군’에 걸렸다.
양손 검지 부분의 수술자국이 선명하다. 치명적인 부상으로 운동을
접어야 하는 스포츠 유망주의 심정처럼 처참하고 캄캄했다.
우연히 템플스테이에 참여했고, ‘내 마음 내려놓기’ 프로그램 덕분에
마음에 빛이 내렸다. 30대가 다 되어 비구니 스님이 된 사연이다.
절에 들어와서는 가야금을 완전히 잊고 살았다. 고마운 분들이 없었더라면 여전히 그랬을 것이다.
운문사 승가대학 학인 시절, 어린이 여름불교학교에서 아이들을 위한 장기자랑을 하다가
숨기고 있었던 진면목이 드러나 버렸다. 어른 스님들은 “재능을 썩혀서는 안 된다”며
제자를 공부의 길로 다시 밀어 넣었다. 머리 깎고 승복을 입은 채 숙명여대 음대 대학원에 다니게 된 이유다.
현재 동국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한국음악의 거장 박범훈 조계종 불교음악원장의 지도를 받고 있다.
은사인 사회복지법인 수효사 효림원 이사장 무구스님도 든든한 후견인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찬불가운동도 원래 스님들이 주도하셨잖아요.”
이제는 그저 국악인이 아니라 스님이다. 뉴에이지 계열의 힐링 음악에 관심이 많지만,
불교음악의 정통성을 확립해야 한다는 스승의 권유도 새겨듣고 있다.
“음 하나 하나에 법력이 깃들어있지 않다면 스님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란
책임의식으로 스스로를 단련하고 있다. 지안스님은 행자 때부터 염불 淸이 좋다고,
이른바 ‘쩨(製)’ 잡혔다는 칭찬을(얘기를, 소리를) 들었다.
“사실, 염불이 바로 국악입니다. 스님들이 반야심경을 암송하는 리듬은
(음율은) 메나리조(경상도·강원도·함경도 지방의 민요에서 사용되는 음계)와 놀라울 만치 똑같아요.”
자신도 모르게 익혀온 불교의 소리를 불자들에게 회향해야 할 역할이 주어졌다.
‘신도들을 감동시키고 싶다’는 진심으로, ‘연주가 곧 수행’이라는 자세로 늘 연습을 계속한다.
사람들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을 듯해,
노래도 함께 하는 가야금 병창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준비하고 있다.
박범훈 원장이 보내줄 신곡을 기다리는 중이다. 몸속에 흐르는 藝人의 피가 기대된다.
부처님을 봐서라도 앞으로는 가야금을 놓지 않을 것이다
2021. 08. 20.
출처 : 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