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교회 발자취를 일년 동안 기록하지 못했던 것을 정리하면서 우리교회가 시작된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걸어왔던 흔적들을 다시 살펴 보았습니다. 개척교회시작부터 오늘까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강한 교회로 나아가고자 하는 작은 몸부림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위기라고 말들을 하지만 교회들마다 묵묵히 해야 할 일을 감당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교회 뿐만아니라 다른 교회들도 바르게 세워주시리라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설교를 준비하는데 빌립보서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사모하는 성경이 빌립보서입니다. 빌립보서는 옥중서신이라고도 합니다.
광주도성 안에 교회가 1600여 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이런 많은 교회들을 하나님께서는 살펴보시며 지금도 일하고 계심을 믿습니까? 크고 작은 음식점이 수없이 많듯이 교회도 큰 교회가 있고 작은 교회도 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위에 주님은 베드로를 칭찬하시고 내 교회를 세우겠다 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교회가 지금도 살아 숨쉬며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는 교회라고 생각하니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왜 빌립보교회를 그만큼 좋아하고 닮고자하는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이유가 있습니다.
제일 먼저....... 고난 속에서도 기뻐하는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빌립보교회 별명이 있습니다. 희락의 교회 희락의 복음이라고 합니다. 빌립보서는 4장으로 되어 있는데 말씀을 묵상하다보면 곳곳에 “기뻐한다 기뻐하리라” 이런 말이 무려 아홉 번이나 나옵니다. 기뻐한다는 이 말은 그져 밑도 끝도 없이 “ 너희는 기뻐하라 막연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내가 너희를 위해 고생했으니 너는 좀 즐거워 해라 이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묵상하다 보면 ”내가 기뻐하니 너희도 기뻐하라“ 참으로 실감 나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권면하는 바울 자신이 먼저 기뻐하면서 빌립보 성도들에게도 ” 너도 기뻐하라“라고 했습니다.
우리 자녀들을 휼륭 하게 키우는 방법은 따로 없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싸우는 모습 보여주지 않고 행복한 모습 즐거운 모습을 보여 주면 됩니다.
전도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교회에서 전도하라고 전도지 물티슈 심지어는 EM탈취제까지 준비해서 전도도구로 사용하도록 하지만 이런 도구는 어떻게 보면 간접적인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 성도가 삶의 자리에서 언제나 즐겁게 살고 기쁨 마음으로 싱글 벙글 웃고 상대방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스며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전도는 저절로 됩니다.
제가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는가하면 바울이란 사람이 예수에 미친 사람이라고 지난 주에도 말씀드렸지만 빌립보서는 감옥에 갖혀 있는 상황에서 이런 편지를 쓴 것 입니다.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빌2: 17-18........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어찌 죽을 날을 앞두고 기뻐합니까? 이것이 빌립보교회의 매력입니다. 한시도 바울은 바울자신만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빌립보 성도 들과 함께 기뻐합니다. 그래서 빌립보교회 신앙됨이 좋습니다.
또 한가지 빌립보서가 그렇게 좋은 것은 목회자와 성도와의 관계를 엿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계속 보겠지만 빌립보교회 감독은 에바브로디도 라는 목사님입니다. 이목사님이 빌립보교회를 잘 섬기고 있는데 교회를 처음 세우시고 떠났던 바울선생님이 지금 감옥에 있으니까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후원헌금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랑의 헌금을 가지고 로마에 계시는 바울에게 전달해야 하는데 누가 가느냐입니다.
결국 에바브로디도목사님이 헌금을 가지고 로마 옥중에 있는 바울 사도를 돌보기 위해 갔습니다. 당시 교통수단이 안 좋은데 마다하지 않고 헌금을 가지고 갔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로마에 머물면서 옥중에 있는 바울사도에게 사식도 넣어주고, 겨울 옷 등 필요한 것을 준비하였다가 주면서 바울 사도를 섬겼습니다.
그런데 그만 병을 얻고 말았습니다. 고열과 고통으로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자기를 위로 하러온 사람이 병을 얻었으니 바울의 마음이 오죽이나 아팠겠습니까? 일이 잘못되어 에바브로디도가 죽기라도 한다면 빌립보 교회에 얼마나 미안한 일입니까?
그래서 바울과 빌립보 교인들은 에바브로디도를 위해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에바브로디도 병을 고쳐 주셔셔 회복되었습니다. 바울은 에바브도디도를 곁에 더 두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생각하니 지금 목회자 없이 지내는 것이 안 좋았기에 에바브로 디도를 보내면서 편지를 써서 보낸 것이 빌립보서입니다.
이런 사랑의 감동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빌2:25-26......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서로를 위해 걱정하고 염려하며 중보기도하고 기꺼이 에바브로디도를 바로 빌립보 교회로 보내는 바울의 마음 감동되지않습니까?
빌립보 교회 아름다운 모습이 또 한가지가 있습니다............ 이교회는 여성이 주도하는 교회였습니다. 지금도 교회가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여성들이 더 많습니다. 이 교회도 루디아라는 여인이 있었는데 자주 장사를 하는 실업인입니다. 루디아는 돈을 벌면 우선적으로 빌립보교회 재정을 담당하며 이끌어 갔습니다. 특히 바울이 감옥생활로 고생하고 있기에 빌립보교회성도들이 풍족한 헌금을 했습니다.
바울은 이 헌금을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헌금”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여러 교회를 세웠지만 이렇게 헌신적으로 도운 것은 빌립보 교회뿐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교회입니다.
얼마 전 신학교 동문모임을 앞두고 부안에 있는 새만금 영광교회를 갔는데 전형적인 시골교회였습니다. 점심 때가 되어서 목사님안내로 식사하러갔는데 시골음식점 치고 깨 좋은 시설인데 큰 간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대한민국 원조 바지락 죽” 음식점 이었습니다. 주변 음식점 간판을 보니까 다 원조 바지락 죽입니다. 획깔려요!!
그런데 이 음식점 간판은 대한민국 원조인데 사연을 들어보니까 바지락죽 원조로 TV에 여러번 출연하고 바지락죽 비법을 소개하는 사진도 걸어놓고 장사를 하더라구요 그런데 알고봤더니 친구목사가 시무하는 권사님이 운영하시는데 이 권사님 한분 십일조헌금이 거의 교회가 운영된다고 친구목사가 말 하더라구요 정말 아주 작은 농촌교회인데 이런 교회를 묵묵히 섬기는 70세 되신 백발의 권사님을 보며 정말! 교회마다 이런 성도님들이 오늘도 섬기고 계시구나 교회마다 이런 여성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교회 발자취을 보면서 우리교회도 작은 교회지만 꾸준하게 성도들의 십일조로 교회가 운영되고 선교비를 교회나 선교기관에 후원하는 일을 계속해왔습니다. 성도들이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땅 끝까지 복음전하는 교회로 지금도 우리교회성도 주향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보람된 일은 목사와 성도가 서로 위로해 주는 일입니다. 목회자는 성도를 성도는 목회자를 따뜻한 사랑으로 품어주는 위로와 격려 때문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얼마 전 우리교회가 노후된 차를 교체하고자 교회에 말씀 들린후 헌금을 교회에 드리면서 작정헌금을 보고 감사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어림도 없습니다. 십시일반으로 기쁜 마음과 감사가 담겨져 있는 차량헌금이기에 이렇게 소중한 차를 타고 다니구나 차를 타면 먼저 성도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제 빌립보서 말씀 한절 한절 다시 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바울이 문안 인사로 자신의 마음을 먼저 열었습니다. 1-2절....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먼저 1절을 살펴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바울을 편지 시작을 그리스도예수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종은 헬라어로 둘로스라고 합니다. 가끔 목사님들이 기도할 때 주님의 종이라고 기도 하는데 그런 일반적인 종이 아니라 여기서 말하는 종이란 팔고 사고 하는 노예를 말합니다.
노예는 그렇습니다. 주인이 말하는 데로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고 밥 먹으라하면 밥 먹고 기계처럼 움직입니다. 그래서 노예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노예 때문에 생긴 속담이 있지요 “노예와 당나귀는 같다.”라는 속담이 있었습니다. 이 속담에 담긴 속뜻은 노예와 당나귀는 똑같다 생각하고 짐승처럼 노예를 다룬다는 속담입니다.
2000년전 로마가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을 때 이 나라는 전체인구의 절반이상이 노예였다고 합니다. 노예가 이렇게 많은 이유는 강한 나라 로마가 이웃나라를 빼앗으면 힘 있는 남자나 예쁜 여자들을 노예로 쓰니까 인구가 늘어난 것입니다.
이런 노예 종의 모습을 잘 알고 있는 바울이 편지를 쓸 때 제일 먼저 자신을 가르켜 그리스도예수의 종이라고 쓴 것은 자신의 신분 자신의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그만큼 바울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분명히 알았습니다.
이처럼 바울 자신이 그리스도예수의 종이라고 한 것은 몇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이 그리스도예수의 절대소유라는 것입니다. 즉 나는 예수님의 것입니다. 내 소유 내 건강 생명 재능도 다 주님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고전6: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라고 쓴 것처럼 노예를 팔고 사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피의 값을 치루시고 나를 사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예수님께 팔려온 영원한 노예다...... 절대적 노예다...... 나는 예수님의 것이므로 아무런 선택도 자유도 없다 이런 뜻으로 한 말입니다.
두 번째는..... 그리스도예수께 절대 순종함을 말합니다. 노예는 생각도 자유도 없습니다. 오직 주인의 말을 듣는 것 그 외에 대한 생각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판단조차도 없습니다. 문자 그대로 절대 순종입니다. 노예에게는 칭찬도 고맙다는 인사도 못받는 것이 노예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그런 말씀이 있지요 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눅17:9)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하고 알아주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이 사실 아닙니다.
그 다음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라고 했습니다. 성도란 거룩한 백성을 말합니다. 거룩이란 무엇으로부터 떠난다 무엇으로부터 구별된다는 말입니다. 성도라면 거룩한 백성이기에 생각도 구별되고........ 음식도 구별되고........ 의복도 구별되고 .........내 운명도 구별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성도라면 구별된 목적으로 세상 사람과 다르게 살아야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악하고 어리석으며 교만하고 게으르고 더러우며 이기적입니다. 어떻 때는 너무나 세상냄새가 나서 니가 목사냐 니가 성도냐 그런 성령님 음성이 들려옵니다. 이런 우리의 모습이지만 우리 안에 거룩한 분이 거하십니다.
바울이 빌립보 성도라고 부르지만 반드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부족하고 나는 믿음이 약하고 나는 세상냄새가 나서 성도라고 불러주시는 자체가 죄송스럽고 부끄럽지만 내 안에 그리스도예수가 계시기에 바울은 기꺼이 빌립보 성도를 그리스도안에 있는 성도라고 부르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 놀라우신 분이 거하십니다......우리 안에 영광과 거룩과 능력과 지혜와 사랑이 가득하신 분이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룩하고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 거룩하시고 놀라우신 분을 모셨기 때문에 성도입니다. 그것은 간장을 담은 병을 간장병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우리의 생각과 기질과 성향대로 산다면 그것은 곧 실패하는 삶이며 비참한 삶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으로써 성도의 삶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 산다면 내가 사는 삶이요 내가 나타나는 삶입니다. 그것은 곧 지옥과 같은 삶입니다.
우리가 진정 그리스도예수안에서 성도라면 오직 내가 사는 삶이 아니요 내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사는 삶인 것을 꼭 기억해두십시오. 내가 행하는 삶, 내가 기쁘고 행복한 삶이 아니라 내 안에서 주님이 행하시고 주님이 기뻐하시고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음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이것은 빌립보 성도에게 축복을 기원하는 기도입니다.
은혜는 헬라어로 ‘카리스’(Χάρις)라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값없이 가져주신 구원의 선물입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를 품고 하루 하루 신앙생활하면서 기쁨과 감사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평강은 헬라어로 ‘에이네레’(εἰρήνη)라고 합니다. 살롬입니다. 평화입니다. 마치 부활의 주님을 외면하고 불안에 떨고있는 제자들에게 우리예수님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불안을 평안으로 바꿔지는 삶입니다. 은혜와 평강!! 하나님이 값없이 거져 주신 은혜를 삶 가운데 평강 살롬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매일 하나님이 공급해 주셨던 만나를 거두어 들인것 처럼 우리는 매일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의 생활을 통해서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삶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누리는 영적인 특권이요 영적인 축복입니다.
문제는 축복의 근원이 누구인가? 이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바울은 은혜와 평강의 출처를 오직 “하나님 우리 아버지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로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강조합니다.
설교시간마다 김승권목사가 축복기도를 합니다. 우리자녀들에게 부모로써 축복기도를 합니다. 은혜와 평강이 우리교회 성도들에게 자녀들에게 있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할 때 축복의 근원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이런 축복기도를 자주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교회를 우리가정을 축복해주시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