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마다 기가 다르다. 일본 도쿄의 기가 섬세하다면 서울의 기는 신명난다. 부산의 기는 남성적이요 전주의 기는 여성적이다. 기운을 읽으면 도시의 과거, 현재, 미래가 보인다. 도시의 운명은 타고난 기운과 불가분의 관계라, 기운을 따르면 도시는 발전하고 기운을 상쇄시키면 도시는 쇠퇴한다. 기운을 잘 살린 대표적인 도시가 뉴욕이다. 전 세계 어디를 돌아다녀봐도 이런 데가 없다. 특히 뉴욕의 중심 맨해튼은 기집합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맨해튼은 5개 뉴욕시 자치구 중 가장 작다. 그러나 명실공이 맨해튼은 미국의 자존심이요, 세계의 중심이다. 어떻게 이런 작은 섬에서 경제, 문화, 예술의 역사가 시작됐을까. 맨해튼은 상승과 확장의 기운을 뿜어내는 거대한 암반 위에 지어진 도시다. 그 돌의 힘이 지금의 맨해튼을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뉴욕에 살던 사람은 반드시 뉴욕으로 돌아온다는 속설이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집값, 보통 사람은 감당하기 힘든 생활비를 내야함에도 굳이 뉴욕으로 돌아오는 이유도 바로 돌의 기운이 그들을 다시 뉴욕으로 불러들이기 때문인데. 1994년 미국을 떠난 지 12년 만에 미국에서 생일을 보내게 됐다. 옛날 후암정사도 사라지고 정승처럼 서 있던 두 그루의 소나무도 베어졌지만 후암 가족의 사랑만은 여전했다. 2년 전 옛 후암정사 맞은편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구해 마침내 제2의 후암정사를 열고 얼마나 뿌듯해 했던지.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91년 처음 이곳에 와 94년 한국으로 떠나기까지 만 4년이라는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시한부인생을 선고받았던 청춘기, 도를 갈구하며 정처 없이 떠돌던 운수납자 시절, 처음으로 구명시식을 올린 남산 후암동 시절부터 잠실 석촌동에 후암정사를 열기까지 다사다난했던 내 인생의 전반기를 정리하는 의미에서 무작정 떠난 미국행.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인생을 돌아볼 수 있었고, 미래를 꿈꿀 수 있었다. 가극 '눈물의 여왕' 제작, 오성INC설립, 후암문화공간 설립, 부친 차일혁 총경의 기념사업, 유성법당, 일본 쓰쿠바 법당을 세우고 나만의 구명시식을 정립할 수 있었던 모든 원동력도 뉴저지 후암정사에서 비롯됐다. 지난 12년 동안 나는 많은 꿈을 이루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온 까닭은 이곳의 기운을 잊지 못해서다. 세월도 변했고 사람도 변했다. 이제는 석촌동 후암정사에서 만나 유성 법당을 거쳐 그 인연이 2대에 걸쳐 뉴저지 후암정사로 이어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내 생일을 맞아 거울에 비쳐지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혼자 건배를 올리며 일본 시인의 시를 읊조린다. "단 하나의 별을 향해서 숨가쁘게 찾아온 내 인생이여, 내 인생이 길거나 짧거나 후회는 없다. 벚꽃 아래서 내 인생을 되돌아본다. 참되게 살자, 진솔하게 살자, 살아있는 동안은 언제나 청춘이다." 다시 한 번 예기치 못한 깜짝 생일파티를 준비해준 뉴저지 후암가족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생일상에 차려진 풍성한 과일과 아름다운 꽃을 보며 얼마나 가슴이 벅차던지. 12년 만에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며 조심스레 남은 생의 설계도를 그려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