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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으로의 여행 크로아티아, 발칸을 걷다]
Balkan
열강들의 분쟁, 크림전쟁과 발칸전쟁
러시아는 18세기 이래 계속해서 영토 확장을 하다가 오스만 제국의 세력이 약해진 틈을 타 1853년 오스만 제국의 통치하에서 그리스 정교도가 박해 받는 것을 구실로 오스만 제국을 침입하였다. 여기에 맞선 오스만 제국을 비롯한 영국, 프랑스, 사르데냐 왕국의 연합국과 러시아의 전쟁이 크림전쟁이다. 한편 발칸 전쟁은 1912년부터 1913년까지 2회에 걸쳐 발칸 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이다.
500년 가까이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았던 세르비아, 불가리아, 그리스, 몬테네그로의 연합군이 발칸 반도에 남아 있던 오스만 투르크의 세력을 몰아내는데 이것이 1차 발칸 전쟁이고, 2차 발칸 전쟁은 발칸 국가들 사이의 전쟁이다.
우리는 스카달리야 거리에 있는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유명하다는 ‘엘렌 피보’라는 맥주를 맛보기 위해서였다. 레스토랑 안은 산뜻한 느낌이 들었다. 흰색 톤으로 되어 있는 내부는 한쪽으로 깔끔한 바가 자리 잡고 있었고 마주 보이는 곳과 입구 건너편에 좌석이 있었다.
우리는 바 앞쪽의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엘렌 피보를 주문하였다. 맥주가 나오고 잔을 부딪치고 한 모금 마셨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다음 행선지는 어디에요?”
그녀가 나를 바라보며 대답하였다.
“사실 코스를 확실하게 짜고 여행하는 것은 아니에요. 마음 흐르는 데로 다니고 있어요. 많이 보기 위한 것도 아니고요.”
나는 솔직히 그녀에게 말하였다.
“실은 그라츠에서 보고 헤어져 올 때 어디로 갈 건지 물어보지 않고 온 것을 후회했어요. 그러다가 이곳 베오그라드에서 엘레나 씨를 만난 겁니다.”
그녀는 나를 보다니 웃었다.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다음은 어디로 가시는데요?”
“스컬 타워(Skull Tower)가 있는 니시를 거쳐 마케도니아로 가려고요. 엘레나 씨는 어디로 갈 예정인가요?”
“글쎄요, 하루 더 이곳에서 머물까, 아니면 다른 곳으로 이동할까 생각 중이에요.”
나는 엘레나에게 제안하였다.
“결정되지 않았다면 저랑 같이 여행하면 어떨까요?”
“마케도니아, 알바니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등은 한국과 국교도 없고 혼자 여행하는 게 쉽지는 않을 거예요. 저는 차를 가지고 움직이니까 이동하기도 쉽고요.”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잔을 들어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맥주잔을 놓더니 나에게 말하였다.
“내일 몇 시에 출발하시나요?”
나는 엘레나를 쳐다보았다.
“내일 8시에 떠날 예정입니다.”
그녀는 “그래요. 그럼 함께 여행길에 올라보죠”하고 말하면서 웃었다.
그녀의 미소 짓는 웃음이 아주 예쁘게 느껴졌다.
나는 맥주를 한 모금하고 다시 물어보았다.
“혹시 발칸 반도의 일반적인 개념을 좀 이해하고 있으신지요?”
“발칸 반도, 그냥 한 번 정도 읽어 보았고 관심 있는 부분은…..관심이 있으니 이곳으로 여행을 왔겠죠?”하고 그녀는 맥주잔에서 입을 떼면서 말하였다.
“‘발칸’이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 아시는지요?” 하고 또 물었다.
“중세 터키어로 ‘산맥’이라는 의미 아닌가요?”
“맞아요, 전반적으로 발칸 반도는 산이 많지요. 그래서 ‘산이 많아 푸르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계속해서 그녀에게 이야기하였다.
“지리적으로 보자면 발칸 반도의 주산맥은 발칸 산맥입니다. 이 산맥은 북쪽에서 완만한 경사로 도나우 강 저지대까지 이어져 있죠. 남쪽으로 내려와서는 여러 개의 산줄기가 그리스까지 뻗어 있습니다. 북서부는 율리안 알프스 산맥이 연장되어 아드리아 해를 따라 펼쳐집니다. 산세가 아주 험해요. 그래서 해안 지방과 내륙 지방을 분리하면서 그리스 남족의 크레타 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크레타 섬은 아시다시피 유럽 문명의 모태 문명이 시작되었던 곳입니다.”
이어서 엘레나가 나에게 말했다.
“발칸 반도의 총길이는 동서로 1,300킬로미터, 남북으로는 1,000킬로미터 정도 됩니다. 이 발칸 반도는 물이 많은 곳이에요. 북쪽은 도나우 강 하류와 사바 강, 동쪽으로는 흑해, 남동쪽으로는 에게 해, 남쪽으로는 지중해, 남서쪽으로는 이오니아 해, 서쪽으로는 아드리아 해와 경계를 이루고 있지요. 그래서인지 물이 어느 곳보다 풍부하다는 느낌입니다.”
나는 그녀에게 또 물어보았다.
“발칸 반도의 크기가 어느 정도 되는지 아시는지요?”
“글쎄요, 수치로 표현하면 잘 모르겠는데 프랑스의 크기에서 남한의 크기를 빼면 발칸 반도 전체의 크기 정도라고 알고 있었요. 인구는 약 6,000만 명 정도?”하고 그녀가 말하였다.
“맞아요. 아마 그 정도 크기가 될 겁니다. 또 이곳은 종교로 인한 문제, 영토 문제로 많은 사람이 죽어갔던 곳이기도 하죠. 발칸 반도는 산악 지대가 많아 대륙성 기후, 그리고 아드리아 해와 흑해를 중심으로는 지중해성 기후가 함께 나타나기도 합니다.”
나는 왠지 이런 이야기만 하는 것이 쑥스러웠다. 그렇다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물어보기도 참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엘레나에게 신상에 관해서 물어보았다.
“스페인에 사신 지는 얼마나 되었나요?”
그녀는 살짝 웃더니 대답하였다.
“10년 정도 되었어요. 여행 갔다가 끌려 그곳에서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는데….그러다 보니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요.”
나는 다시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혼자 여행하시는 것 보니 미혼이신 것 같기도 하고 나이를 보면 결혼하셨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결혼하셨는지요?”
그녀는 웃으면서 나에게 대답하였다.
“어떤 것 같은데요?”
“안 하신 것 같은데요, 하셨나요?”
그녀가 웃으면서 말하였다.
“아뇨, 안 했어요.”
왠지 모르게 나는 입가에 미소가 흘렀다.
“엘레나 씨, 지정학적으로 발칸 반도는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중요한 지점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고대 이래 여러 민족들의 전략적 요충지였답니다. 따라서 유럽, 러시아, 소아시아 등의 각축장이 되어 버린 것이고요.”
엘레나는 나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말을 이었다.
“이 지역을 이야기하자면 아주 오래전 고대까지 올라가지요. 고대 그리스와 페르시아 간의 각축전, 로마시대, 비잔틴제국이라 불리었던 동로마와 이슬람 간의 각축전, 합스부르크제국과 오스만 제국, 러시아와 오스만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과 러시아, 그리고 발칸 토착 세력들 간의 영토 싸움이 치열했던 곳이죠.”
“발칸 반도 국가들을 종교적으로 구분한다면 어떻게 나눌 수 있죠?”하고 엘레나가 나에게 물었다.
“가톨릭 문화권으로는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정교 문화권으로는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루마니아, 불가리아, 이슬람 문화권으로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그리고 정교와 이슬람 혼재 문화권으로는 마케도니아 정도로 구분할 수 있지요.”
“그러면 문화도 굉장히 다양한 모습으로 남아있겠네요.?”하고 엘레나는 말했다.
“그렇지요. 종교가 생활에 파고드는 힘은 엄청나니까요.”
“395년 발칸 반도는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로마제국이 동, 서 로마로 분리된 이후 15세기까지 약 천 년 동안 문화적으로 동서양 문화가, 그리고 종교적으로 가톨릭과 정교가 혼재되는 양상을 보여왔지요.”
이번엔 내가 엘레나에게 물어보았다.
“그러면 이 발칸 반도에 언제부터 이슬람 문화가 들어오게 되었는지 아시는지요?”
그녀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15세기 전후라고 이야기할 수 있죠. 오스만 투르크의 발칸 지배가 본격화하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알고 있어요. 그리고 1878년 러시아-오스만투르크 전쟁 이후 맺어진 산스테파노 조약과 베를린 조약에 의해 이 지역 민족들이 독립할 때까지죠.
이때부터 세 가지 종교, 즉 가톨릭, 정교, 이슬람이 혼재하는 양상을 보이게 되는 겁니다.”
“네, 맞아요. 오스만 투르크가 들어오면서부터죠.”
“베를린 조약은 의미가 매우 크죠. 왜 그런 줄 아세요?”
하고 나는 엘레나에게 다시 물었다.
“글쎄요.”
“산스테파노 조약으로 러시아의 남하 정책이 비약적인 성공을 거두었답니다. 여기에 불만을 가진 영국과 오스트리아가 이 조약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고요. 그러자 이 두 나라와 러시아의 관계가 안 좋아지고 비스마르크의 중재로 열강들이 모여 산스테파노 조약을 폐기하고 베를린 조약을 성립시켰죠. 이때 발칸 반도의 국가들인 루마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가 독립하였습니다. “
나는 다시 엘레나에게 물어보았다.
“발칸 반도에서 민족주의가 일어난 해를 언제로 보는지요?”
“아마도 14세기 후반이 아닐까요? 슬라브와 오스만 투르크와의 전쟁이 일어났던 때.”
“맞아요. 정확히 말하자면 1389년도죠. 바로 코소보(Kosovo)전투가 있었던 해죠.”
하고 나는 그녀에게 말하였다.
“코소보 전투에 관해 좀 이야기해 주시겠어요?”
“그러죠.”하고 나는 신이 나서 그녀에게 말하였다. 우선 맥주를 한모금 마셨다. 시원한 맛은 이미 사라지고 맥주 맛이 그대로 느껴졌다.
“코소보 전투는 세르비아와 오스만 투르크 군과의 전쟁이라는 것은 아실 겁니다. 이 전쟁은 세르비아의 ‘지빠귀들의 들판’이라는 코소보 폴례에서 일어납니다. 그 당시 세르비아의 왕자였던 라자르 공의 군대와 오스만 제국의 술탄 무라드 1세(1360-1389 재위)의 투르크 군 사이에 일어난 전투죠. 이때가 언제냐 하면 1389년 6월 15일입니다.
엘레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그러면 이 전투가 어떻게 진행되어 오스만 투르크가 승리하게 되었나요?”
“우선 결론적으로 오스만 투르크가 승리하였다는 것은 아실 겁니다. 이전쟁의 패배로 세르비아는 무너지게 되고 비슷한 시기에 비잔틴제국은 투르크 군에게 완전히 포위되어 콘스탄티노플 근처의 견고한 요새들을 많이 점령당하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정세를 보면 비잔틴제국과 슬라브 여러 나라의 내부가 매우 불안정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이용해 오스만 투르크는 발칸 반도 내에서 오스만제국의 점령지를 넓히려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오스만 투르크는 전쟁을 시작하였고 세르비아를 침범해 코소보까지 진격합니다. 그곳에서 세르비아의 왕자 라자르 공과 전투를 하게 되는 것이죠.”
엘레나가 말하였다.
“그 당시 비잔틴제국이나 슬라브 제국은 내부 분열과 힘의 분산이 있었는데 오스만 투르크가 이것을 이용하여 그들의 제국을 넓히려는 시도를 시작하였다는 것이네요?”
“맞아요. 참 재미있는 것은 초기의 전투 상황은 세르비아에 유리했다는 것입니다. 초기에 세르비아의 귀족 출신인 밀로슈 오빌리크가 무라드를 살해했을 때만 하더라도 세르비아가 승리하는 듯하였죠.”
나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잔의 바닥이 보이는 맥주를 마저 마셨다. 그녀도 잔을 들어 마셨다.
“엘레나 씨, 이제 코소보 전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다시 이야기해 보도록 하죠.”
“자, 이제 다시 전쟁으로 돌아가 보면, 밀로슈 오빌리크는 탈영병으로 위장을 하여 오스만 투르크 군 진영으로 잠입하게 됩니다. 그리고 술탄의 막사로 들어가 독이 묻은 칼로 술탄을 살해합니다.”
그녀의 두 눈이 나를 응시하였다. 무엇인가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듯하였다. 나도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왠지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바로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어떤 사건에나 반전이 있듯이 이 전쟁에서도 반전이 있어죠. 그 반전은 이러한 오스만 투르크의 혼란을 아주 빠르게 수습한 사람에 의해 일어났습니다. 그게 바로 무라드의 아들 바예지드였습니다. 수습 후 그는 세르비아 군을 포위해 아주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고 그의 아버지를 죽인 라자르를 잡아 처형합니다. 이후 세르비아는 오스만 투르크에 공물을 바치게 되었고 그들의 군대에서 군역을 지게 됩니다. 이 전쟁에서 패함으로써 약 500년 가까이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이죠. 이제 이해가 좀 가실 겁니다. 어떻게 발칸 반도에 이슬람교가 전파되기 시작했는지.”
엘레나가 나를 보더니 말하였다.
“발칸 반도를 이해하는데 크림 전쟁과 러시아-오스만 투르크 전쟁, 그리고 1,2차 발칸 전쟁을 잘 알아야 한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물론 아주 중요한 부분이죠. 전체적인 맥락을 놓고 보면 그렇습니다.”
“제가 크림 전쟁과 러시아-오스만 투르크 전쟁에 관해 이야기해 볼게요.”
엘레나는 이렇게 말하고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바닥이 보이도록 맥주를 들이켠 다음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19세기 중반인 1853년부터 1856년까지 일어난 크림 전쟁은 크림 반도와 흑해를 둘러싸고 벌인 전쟁이죠. 이것은 중동을 둘러싼 열강들의 분쟁에서 시작되었죠. 러시아가 오스만 투르크제국 내 정교도들에 대한 보호권을 주장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성지에 대한 러시아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의 권리를 놓고 러시아와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분쟁이 또 한 원인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러시아와 영국, 프랑스, 프로이센, 오스만 투르크, 사르데냐 연합국이 싸운 전쟁입니다. 이때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야전병원에서 활약하며 간호학의 발전을 가져오기도 하였습니다.”
나는 엘레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사실 러시아의 존재는 그 이전에는 미약했습니다. 아시겠지만 1500년대까지만 해도 몽골의 지배를 받았죠.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열강들은 러시아의 존재에 대해 거의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러시아는 1600년대, 1700년대를 지나면서 급부상하는데 흑해를 삼키고 지중해까지도 넘보게 됩니다.”
엘레나는 나를 보며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그렇게 러시아는 부상하기 시작합니다. 1876년부터 1877년까지 일 년 동안 2차 크림전쟁, 즉 러시아-오스만 투르크 전쟁이 벌어지는데 이것은 러시아의 남하 정책이 원인입니다. 오스만 제국이 쇠퇴하면서 러시아는 유럽에서는 흑해와 프루트 강까지, 아시아에서는 카프카스(코카서스)산맥 너머로 국경을 확장했고 그로 인해 오스만의 영토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증대하게 되죠. 이 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한 후 발칸 국가들은 오스만 투르크의 오랜 지배에서 독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878년 전쟁이 끝나면서부터 발칸 국가들이 독립하는데 그 나라들이 세르비아와 루마니아입니다.”
“자, 이제 그럼 발칸 전쟁에 관해서는 제가 이야기해 보도록 할께요.”
하고 내가 엘레나에게 말하였다.
“발칸 전쟁은 1,2차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1912년, 500년 가까이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았던 세르비아, 불가리아, 그리스, 몬테네그로의 연합군이 그때까지 발칸 반도에 남아있던 오스만 투르크의 세력을 몰아내는데 이것이 제1차 발칸 전쟁입니다. 1차 발칸 전쟁은 몬테네그로의 선전 포고로 시작되고 동맹국들은 그로부터 10일 후 참전합니다. 승리는 물론 발칸 동맹국에서 돌아갔죠. 이 전쟁의 결과 오스만 제국은 1913년 5월 30일 런던 조약으로 유럽의 거의 모든 영토를 상실하게 됩니다. 이때 알바니아의 독립이 원칙적으로 합의되었고 나머지 영토는 발칸 국가들의 분할, 차지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엘레나가 이야기했다.
“1차 발칸 전쟁에서 알바니아가 독립할 수 잇었던 것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가 아드리아 해로 세력을 넓히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알바니아의 독립을 지지했기 때문이죠.”
나는 엘레나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2차 발칸 전쟁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 아시는지요?”
엘레나는 나를 보고 빙그레 웃더니 이어서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2차 발칸 전쟁은 1913년 7월에 시작됩니다. 이것은 오스만 투르크와의 전쟁이 아니라 발칸 국가들 사이의 전쟁입니다. 마케도니아 정복지를 두고 그리스, 세르비아, 루마니아 3국이 불가리아를 상대로 전쟁을 한 것입니다. 전쟁의 발단은 불가리아 왕국이 마케도니아 지방에서 세르비아 왕국보다 훨씬 많은 영토를 차지하고자 한 것에 있었죠. 외교력과 군사력에서 밀린 불가리아는 알바니아를 제외한 모든 발칸 국가들과 전쟁을 벌였지만 결국 항복을 하게 됩니다. 동년 7월 30일 루마니아 왕국의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강화회의가 개최되고 여기서 체결된 조약으로 불가리아는 도브루자를 루마니아에게, 마케도니아 대부분을 세르비아와 그리스에게, 동부 트라키아를 오스만 투르크에게 양도하게 됩니다.
듣고 있던 나는 엘레나에게
“발칸 전쟁의 결과는 제가 간단히 말씀드리고 이제 정리하도록 하죠. 시간가는 줄 몰랐네요.”라고 말했다.
엘레나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히 요약해 보자면 불가리아는 2차 발칸 전쟁으로 인해 1차 발칸 전쟁에서 얻은 영토를 대부분 상실하게 됩니다. 그래서 세르비아와 관계가 소원해지죠. 불가리아는 결국 이 전쟁의 결과로 인해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편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1차 세계대전에는 전쟁 역사에 있어 참으로 새로운 양상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우선 이 전쟁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나라가 참전한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총력전이었습니다. 또한 새로운 대량 살상 무기가 개발되어 그 어떤 전쟁보다도 엄청난 인명 피해를 불러일으켰습니다. 화학무기, 탱크, 기관총과 같은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여 전쟁에 사용하였고 또한 비행기가 등장하였습니다. 비행기는 처음에는 적진의 후방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정찰하기 위한 정찰기로 사용되었으나, 점차 직접 전투를 수행하였습니다. 이러한 전쟁은 곧 끝날 것이라 생각하였지만 막대한 피해를 발생시키며 4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엘레나의 얼굴을 보면서
“결과는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됩니다. 맥주 한 잔 더하실래요?”
하고 물어보았다.
“아뇨, 시간도 되었는데 이제 호텔로 돌아가죠.”
밖으로 나왔다. 아직까지 태양은 높이 떠 있지만 시간은 저녁이었다.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택시에서 내려 호텔로 들어가면서 나는 그녀에게
“내일 8시에 출발합니다. 내일 뵐께요. 내일부터는 좀 더 재미난 여행이 될 겁니다.”
하고 웃으면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