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좋은산) 소개 내가 지리산으로 간 까닭

[아침햇빛]

내가 지리산 종주를 생각한 것은 정말 오래 전부터였다. 그렇지만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산이란 것을 익히 잘 알고 있는 터였기에 많이 망설이고 있었는데 시간적으로는 회사에서 주어지는 근속휴가를 사용하지 않으면 나가리 된다는 것이 첫째 계기가 되었으며, 산행 결심의 이유는 불혹을 반쯤이나 넘어가고 있는 내 정신과 신체 상태가 과연 무엇을 해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두 번째 계기가 되었으며 산행 방법으로는 인터넷의 어떤 아주머니가 쓴 단독 종주기가 세 번째로 큰 힘을 실어 주었다.
이에 3박 4일의 조금은 넉넉한 일정으로 계산하여 지리산 종주 코스 중 가장 힘들고 긴 코스인 구례 화엄사를 출발하여 산청 대원사로 하산하는 코스로 확정한 후에 이 계획을 아내에게 이야기하니 펄쩍 뛰면서 그렇게 위험하고 힘든 곳을 혼자서 가려고 하느냐며 한사코 말려 다음날 조용히 위의 세 가지 이유를 내세워 설득에 들어가니 깨끗이 내 의견을 들어주어 아내에게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우선 지리산 산장을 인터넷으로 예약 가능한 날짜를 조회 해본 결과 9월 10일 뱀사골 산장, 9월 11일 장터목 산장이 나를 위해 자리를 비워 놓고 있어 예약할 수 있었다. 아울러 9월 10일 노고단 자연 탐방코스도 13시 20분으로 예약하였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없이 무난히 종주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인터넷의 도움이 컸으며 거제에서 오고 가는 교통이며 산행 중 필요한 각종 장비 및 식품, 코스, 행동 요령을 전부 인터넷에서 지원을 받았다.
출발 당일 마침 토요일이라 통영의 "L" MART 로 나가 필요한 식품을 구입하고 18L 크기의 배낭 (무게 11KG) 을 꾸렸다.
첫째 날!
9월 9일 토요일 18시 40분에 드디어 잘 갔다 오라고 배웅해 주는 아내와 삼손이를 뒤에 두고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배낭의 무게가 제법 묵직하게 느껴졌지만 아직 한번도 해 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도전한다는 생각을 하니 발걸음은 아주 가벼웠다.
19시 16분에 출발하는 고현 출발 진주 행 시외버스(8,700원)에 몸을 실었다. 기사 아저씨께 터미널 가기 전에 진주 역 근처에 내려 달라고 하니 21시 15분 경에 진주 고려병원 앞에서 내려 주었다.
옛날 승용차가 없던 시절 내장산 등산을 위해 진주역을 찾은 이래 두 번째로 가본 곳인데 새로운 느낌에 참 반가웠으며 역전에는 포장마차가 늘어 서서 한잔의 유혹을 하고있어 만약 일행이 있었다면 소주 한잔과 순대 한 접시를 하고 싶었으나 혼자서야 어디 가능하겠는가? 어쩔 수 없이 커피 한잔을 마시고 캔 맥주 3개를 사서 배낭에 넣었다.
22시 20분 진주 발 구례구역(5,900원)으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에 올라탔다. 내가 열차를 타 본 기억은 신혼여행 갈 때 타 보았으니 무려 20년 만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으며 객차 안에는 서,너명 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 주위가 썰렁한 느낌인지라 창 밖을 내다보니 철길 옆 남강 변의 가로등 불빛이 남강 물과 어우러져 운치있는 밤 경치를 보여 주는지라 이에 쓸데없는 생각을 안주 삼아 맥주 한잔을 덧붙이니 썰렁하던 기분이 싹 가시었다.
둘째 날!
제법 한참을 달려 하동, 순천을 지나니 9월 10일 00시 15분에서야 구례구역에 도착하였다. 기차가 떠난 후 플랫폼을 둘러보니 초가을 날씨치고는 아주 싸늘한데 주위엔 달랑 혼자만이 서있지 않는가? 황급히 플랫폼을 벗어나니 캄캄한 역전에는 택시 몇 대가 시동이 켜진 채 있었으며 기사 양반들은 전부 한 곳에 모여 쿨쿨 잠을 자면서 손님을 기다리는 모습이 가끔 TV 에서나 봄직한 전형적인 시골 기차 역을 연상케 하였다. 차창을 두드려 기사를 깨운 후에 구례 읍의 단 하나 뿐인 보석 찜질방으로 가자고 하여 그 곳에서 새벽까지 여장을 풀기로 하였다. (택시비 7,000원, 찜질방비 6,000원)
욕탕에서 간단히 몸을 씻고 찜질방으로 갈려니까 중뎅이 정도 보이는 학생들 세 명이 담배를 꼬나 물고 왔다갔다 하는 관계로 도저히 배낭이 안심이 되지 않아 배낭을 둘러메고 찜질방에 가서 눈을 붙여 보려 하였으나 토요일 저녁이라 손님이 많은 모양이다. 모포가 없어 잘 자고 있는 손님 것을 살짝 해 가지고 깔고 잤는데 벌받았나 보다. 빈대가 물었는지 양쪽 다리가 벌겋게 변하면서 근지러워 혼이 났다.
03시 50분 찜질방을 나섰다. 바람이 윙윙 거리는 것이 한 겨울 바람소리와 별반 다른 것이 없었다. 이른 새벽이라 인적이 없어 버스 터미널을 몰라 헤매고 있는데 시장에 청소하러 나온 부지런한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약 20분 정도 걸어 터미널 근처 24시 김밥집을 찾아 한 줄은 아침식사, 또 한 줄은 점심식사로 대용하기위해 김밥 두 줄(3,000원)을 샀다.
약 2분을 걸어 터미널에 도착하니 미니 버스 속에는 새벽에 구례구역에서 싣고 온 손님들로 가득 차 있어 앉을 자리가 없기에 기사 아저씨 옆 버스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04시 20분에 구례 터미널을 출발하여 화엄사 입구 주차장을 거쳐 성삼재로 가는 첫차이며 다음차는 6시 넘어서 있단다.
04시 30분 화엄사 입구 주차장에 도착하여 차비가 850원인 줄 알고 1,000원 짜리 한장 준비하고 있으니 기사 아저씨가 1,500원이란다. 내리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속은 것 같다. 난 구례구역에서 탄 것이 아니고 구례 터미널에서 탔는데......
거의 모든 사람들이 성삼재로 바로 가고 화엄사 주차장에는 나 포함 남자3명, 여자2명만이 내렸다. 달리 할 일도 없고 길이 어두워 플래쉬를 켜고 화엄사 쪽으로 길을 재촉하여 출발하니 매표소가 나왔는데 돈 받는 사람이 없어 기분이 썩 좋았다. 하기야 이 시간에 나와서 돈 받는 사람이 정신 나간 사람이지. 입장료와 문화재 관람료 3,800원이 고스란히 남았다.
05시 00분 화엄사 주차장에서 화엄사까지 이어지는 아스팔트 길을 열심히 걸어 도착했다. 산에 오르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라 화엄사에 들러 시간도 때우고 구경도 할 요령으로 두 손 합장하고 경내를 휘둘러 보니 같이 버스에서 내렸던 몇몇 사람들도 마음이 나와 같았는지 사찰 안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새벽부터 불공을 드리러 오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으며 사찰의 입구부터 대웅전까지 아주 아름답게 줄을 엮은 연등이 환하게 불을 밝혀 놓아 구경하는데 큰 무리는 없었다.
05시 10분 더 서성거릴 필요없이 산행을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다. 왜냐하면 같은 버스로 화엄사까지 왔던 한 사람이 산속 어둠 속으로 불빛을 밝히고 사라졌기 때문에 바로 뒤따르기로 하였다. 화엄사 입구 맞은편으로 산행을 시작하니 등산길은 너무 잘 다듬어져 있어 걷기에는 아주 편안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대나무 숲속으로 길이 있어 새벽 바람에 대나무가 서로 부딪혀 나는 이상 야릇한 소리와 산 짐승들의 울음소리, 돌 구르는 소리 등이 몸을 오싹하게 만들었으나 먼저 출발한 사람이 있어 그래도 위안을 찾아가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탈이 나도 먼저 간 사람이 탈 나겠지 생각하며.
약 20분간을 쉼 없이 걸어가니 제법 가파른 길이 나왔으며 연기암을 지나 참샘터에 지나갈 즈음 06시가 되었으며 그 때야 날이 밝아져 후래쉬를 꺼도 될 정도가 되었고 06시 25분 국수등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다시 국수등을 출발하여 돌계단, 중재, 집선대를 지나는 동안 수원에서 왔다는 아저씨도 만나고 작은 폭포도 만나고 다람쥐도 만나고 화엄사 길로 하산하는 첫 등산객도 만났다.
숨이 코밑까지 차서 깔딱 넘어갈 정도라는 코재를 열심히 오르다 보니 이내 눈썹바위가 나오고 몇 발자국을 더 오르니 성삼재에서 노고단으로 통하는 큰 길이 나왔다. 그 곳에는 새벽부터 많은 사람들이 왕래를 하고 있었으며 수원 아저씨도 먼저 올라와서 쉬고 있어 서로가 화엄사 방면으로 사진 한 컷을 찍어 주고 아저씨는 오늘 중으로 갈 만큼 가다가 하산하여 돌아가야 한다면서 바쁜 걸음으로 먼저 출발하였다.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하니 08시 20분이 되었으며 취사장에는 벌써부터 많은 등산객들이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고 밥과 라면, 고기를 구워 대고 있으니 한마디로 돛대기 시장이 따로 없으며 아침 식사를 너무 빨리 한 나로써도 라면 생각이 간절해 한 개 끓일까 생각다가 간단하게 커피 한잔으로 몸을 데우기로 하였다.
대피소에서 10분을 올라가니 가짜 노고단 정상에 오를 수 있었으며 13시에 예약했던 노고단(1,507m) 정상 탐방시간을 10시 20분으로 조정한 후에 1시간 30분을 기다렸다. 노고단은 무분별한 등산객들의 자연 훼손으로 인하여 평소에는 개방하지 않고 하루에 네 번씩만 개방하여 지리산 고산지대 생태계 복원을 탐방객들에게 홍보하고 노고단 절경은 인터넷 예약자와 선착순 접수자에 한해 입장을 해주고 있는 실정이다.
노고단 정상은 아주 바람이 세차 옷깃을 여밀 정도로 추웠으며, 모자가 날아갈 정도였으나 날씨는 아주 맑아 노고단 운해를 볼 수는 없었지만 시계는 너무 좋아 저 멀리 섬진강 물줄기가 한눈에 들어와 경관이 아주 멋있었기에 미련없이 노고단을 떠나 다음 목적지인 뱀사골 산장으로 향할 수있었다. 노고단 운해는 다음 기회를 기약하고.............
10시 50분 노고단을 뒤로 하고 머나먼 임걸령 고갯길을 나섰다. 여기서부터는 엄청나게 많은 아저씨, 아주머니 부대들을 동원한 등산객들이 길을 막아 스쳐 지나가기에도 힘들 정도였으며 그 무리들을 헤집고 열심히 걷다보니 옛날 추억의 피아골 삼거리가 나왔다. 전장운전과에서 근무할 당시 사무실 워크숍 중 여기 이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힘에 겨워 더 산행을 하지 못하고 포기한 곳이기 때문이다.
11시 50분 마침 배가 출출해지던 차에 임걸령 샘터에 도착하였고  편편하고 넓은 바위 위에 배낭을 풀었다. 한 아주머니가 일행들에게 바나나를 나누어주다 보니 나도 자기 일행인 줄 알고 한 개가 재수 좋게 얻어 걸렸다.
새벽에 장만한 김치김밥 한 줄과 미숫가루 한잔, 맥주 한 깡통을 여유있게 비우고 곧 바로 출발하니 얼마가지 않아 또 추억 속의 노루목이 나왔는데, 여기 노루목에서 좌회전을 하여 산길을 오르면 지리산에서 두 번째로 높은 반야봉(1,732m)이 나오지만 저녁에 반야봉 낙조를 별도로 감상하기위해 아껴 놓고 경남, 전남, 전북이 한 곳에 모여있는 삼도봉(1,176m)으로 발길을 계속 재촉하였다.  삼도봉을 얼마 지나지 않으니 600개의 목조 계단이 나왔는데 화개재까지 연결되어 있어 지리산 종주 중 가장 등산객을 괴롭힌다는 곳이다. 이 길을 내가 다시 반야봉 낙조 감상을 위해 다시 올라왔다 내려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득하기만 하다.
터득 터득 걸어 드디어 뱀사골 200m 표시가 있는 화개재 삼거리 갈림길에서 뱀사골 대피소로 향하니 그 길 또한 만만치 않았다.
13시 40분 뱀사골 대피소에 도착하여 대피소 지킴이에게 저녁에 자고 가야하는데 벌써 도착하였다니 웃으면서 지금은 숙소를 배정할 수 없다고 한다. 배낭을 이 곳에 맡겨 놓고 반야봉 낙조를 구경하고 오겠다니 두어 시간정도 걸리니 잘 갔다 오란다.
작대기 두 개, 디지털카메라, 물 한통, 사탕 약간을 들고 다시 왔던 길을 돌아 반야봉 낙조를 구경하기 위해 화개재, 정확하게 652개의 목조계단, 삼도봉을 지나 16시 00분에 반야봉에 도착하니 해가 서산에 넘어가야 낙조를 볼 수있는데 아직도 하늘 중천에 해가 걸려 있어 신발 벗고 양말 벗고 퉁퉁 부어있는 새끼 발가락을 위로하고 있으려니 한 무리의 전라도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왁자지껄하게 다녀가고 뱀사골 대피소에 고기 구워 놓고 기다릴 테니 빨리 내려오라는 마음씨만 좋은 아저씨들도 다녀가고 칠순 아버지를 모시고 온 젊은 총각의 효심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어 놓고 가고 산이 잘 어울리는 내 정도 또래 될 만한 부부도 다녀가고 나니 산 정상에는 슬슬 찬바람이 일기 시작하고 이제 더 이상 등산객이 시야에서 보이지 않아지니 머리에 쓸데없는 생각이 점점 많아 지기 시작했다. 아직 해는 넘어 갈려면 한 뼘이나 남아 있는데 이 놈의 낙조를 보고 나면 분명 어두워질 텐데 뱀사골까지 한 시간을 어찌 갈 수 있을까, 반달곰도 있다는데, 그리고 늙은 시할머니가 혹시 뒤를 당기면 어쩌나....................
아직 더 살아야 되는데.........
반야봉 낙조고 뭐고 팽개치고 내려갈까 생각하고 작대기에 힘을 줄려는 찰나 카메라가 잘 어울리는 젊은 남자 두 명이 올라오지 않는가? 그리고는 낙조를 꼭 보고가야 하니 같이 구경하고 뱀사골 대피소까지 같이 가자고 한다.
내심으로는 얼마나 반가웠던지 원. 이 두 사람은 제주도에서 새벽에 출발하여 성삼재를 시작으로 이 곳까지 이제 도착했단다. 이 것을 인연으로 그 날 저녁식사와 다음 날 저녁은 심심찮게 보낼 수 있었으며 내 입은 한마디로 호강을 했다.
정확하게 19시 00분에 낙조는 시작되었으며 그렇게 심하게 불든 바람 마져도 그 순간만큼은 우리를 위해 멈추어 주었다. 내가 볼 수 있었던 지리삼경 중에서 유일한 것이었으며 소문 만큼 황홀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가슴은 벅찼다. 이후로는 다시는 반야봉 낙조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등뒤가 자꾸만 오싹해져 오니까.
20시 30분 뱀사골 대피소에 도착하여 마음씨 좋은 제주도 두 사람의 도움에 힘입어 공짜로 밥과 라면과 돼지고기와 잎새주를 약간 취할 정도로 마시고 산장비 5,000원, 침낭비 2,000원 들여서 잠들었으나 밤새 어떤 놈의 코 고는 소리와 자기 배낭에 김치국물이 나왔다고 밤새도록 배낭을 뒤적거려 비닐 봉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자다 를 반복하다가 다음날 05시에 일어났다.
셋째 날!
북어 국물에 햇반 말아먹고 커피 한잔 마시고 06시 00분에 제주도 아저씨들에게 먼저 간다고 메모 한장 남기고 대피소를 출발했다. 아침에 세수도 못하고 이빨도 닦지 못하고 죽기 살기로 자꾸 위로 걸어 올라가니 토끼봉(1,538m)이 나왔으며 계속해서 너들 길을 걷다보니 배낭이 아주 무거워 보이는 젊은 두 남녀를 만났는데 화개재에서 비박을 하고 일찌감치 출발했단다.
07시 55분 드디어 털보 아저씨가 지킴이로 있는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했다. 거기에서 어릴 때부터 절친하게 지내고 있다는 친구 할아버지(내가 보기엔 60대 후반)와 전날 저녁 그분들과 만나 소주 대병 한 병과 소주 이홉 들이 두 병을 마셨다는 대전에서 온 젊은 친구를 만났다. 그리고 장터목 대피소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를 계속했던 한 쌍의 40대 부부도 만났다.
오늘은 구름이 조금 있어 해가 나오지 않았으며 바람도 서늘하여 걷기에는 정말 안성맞춤이었다. 땀 한방울도 나지 않는 날씨에 걷다 서다를 반복해 가면서 이 곳 저 곳 눈길을 주어 가면서 다시 한참을 걷다보니 09시 50분쯤에 한창 공사 중인 벽소령 대피소를 지났고 그리고 아주 넓은 길이 있어 또 쉼 없이 걷다보니 11시 00분에 선비샘까지 도달하였다. 이렇게 산꼭대기로 계속 걸어가는데도 곳곳에 샘물이 있어서 등산객들의 목마름을 해결해주는 것이 지리산의 매력이라 생각된다.
덕평봉(1,521m), 칠선봉(1,576m) 이 있는 험한 길을 오르내리길 한참, 눈 앞에  아주 넓은 대평원이 나왔다. 여기가 세석평전 이란다. 세석평전은 해발 1,500미터의 고산 지대에 펼쳐져 있는 평원이며 봄이면 철쭉으로 유명하여 많은 등산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다.
세석 대피소를 12시 55분에 도착하였으니 꼭두새벽에 출발하여 꼭 7시간 만에야 맛있는 햇반과 신라면, 그리고 아내가 정성스럽게 만들어 준 맛있는 겉절이 김치와 오징어 무침과 맥주 한 깡통을 먹고 나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세석 대피소를 출발하여 촛대봉(1,703m)을 넘을 즈음 빗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하여 발걸음을 바쁘게 만들었지만 여기서부터 장터목 대피소까지는 약 2시간 거리이니 조금은 여유를 부리리라 생각하며 저 멀리 남해안의 섬들도 감상하고 그리고 광양 제철소며 진주시, 남강댐의 모습도 같이 산행하는 사람에게 설명하기도하고 고사목을 배경으로 사진도 한 장 찍었다.
막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하니 빗줄기는 굵어지기 시작했고 뱀사골 대피소에 두고 온 제주도 아저씨들이 늦더라도 꼭 여기까지 도착해야 된다고 했는데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하였다.
간단하게 저녁 식사를 마치고 7,000원에 누울 자리를 잡고 2,000원에 매트리스 2장 빌리고 자리를 깔아 놓고 제주도 아저씨들을 하염없이 기다리기를 한참만에 비에 쫄딱 젖은 두 사람이 저 만치에서 오지 않는가? 어찌나 반가운지.......
그 날 저녁 그 사람들과 또 세상 이야기 하면서 참치 김치찌개와 남은 소주를 깨끗이 비웠다.
넷째 날!
천왕봉 일출을 보겠다고 새벽부터 주위가 하도 부산하여 나도 눈 비비고 일어나 04시 20분에 영양갱 한 개로 배를 채우고 장터목 대피소를 출발했다. 하늘에 달도 별도 없었으며 눈앞은 캄캄하였지만 후래쉬로 길을 밝히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부지런히 걸었다.
도벌꾼들이 근거를 없애기 위해 불을 질렀다는 제석봉(1,806m), 하늘로 통해갈 수 있다는 통천문은 언제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사람들 속에 묻혀 천왕봉(1,915m)에 도착하니 05시 30분이다.
이 곳이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한 번 정상에 올라 보고 싶어하는 지리산 천왕봉이며 삼대가 덕을 베풀어야만 일출을 볼 수 있다는 곳이며 지금 내가 그 일출을 보기위해 삼일 째 걸어서 도달한 곳이다. 거기에는 인연 많은 제주도 두 사람이 이미 먼저 도착하여 새벽 찬바람에 추위를 피해 바위틈에서 날이 새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고 억수로 많은 사람들이 천왕봉 정상 돌을 두고 단체, 둘, 독사진 등등 사진 찍기에 열심이었다. 안개 때문에 아마 사진 한 장도 안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해는 올라오지 않고 아침 안개만 짙어져 가고 새찬 바람만 불어 결국에는 정상 천왕봉 표식을 기념 삼아 사진 한장 찍고 비행기 시간 때문에 백무동으로 하산 해야 한다는 제주도 아저씨 전화번호 받고 악수하고 아쉬움을 뒤로 하고 06시 00분에 대원사 방향으로 하산하기로 하였다.
우리 집 가문에는 3대 아니라 10대를 더듬어 봐도 덕을 쌓지 않은 세대가 없는 것 같은 데 틀림없이 그 날 천왕봉에 올라온 사람 중에 못된 짓하고 도망 온 사람이 있어서 선의의 피해를 입지 않았나 믿는다. 이로써 지리삼경을 예상하고 출발했는데 달랑 반야낙조만 감상하였기에 다시 지리산을 올라 와야만 될 두 가지 이유를 남기게 되었다.
06시 30분 중봉(1,875m)을 지날 즈음 서울에서 오셨다는 50대 후반의 지식인 느낌이 나는 어떤 아저씨를 만났는데 연신 "아이고 좋다"를 연발하시며 세상의 고민을 훌훌 털어 버리고 자연을 벗삼아 풍류를 즐기는 듯한 그런 이미지를 풍긴다. 그 분이 말을 붙여 오기에 이런 저런 세상사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해박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분야에 지식을 겸비한 분이고 요즘 어떤 일을 하시냐고 여쭈어 보니 IMF 당시 한전에서 근무하다 정리해고 되어 아직까지 보시다시피 백수로 지내신다고 한다.
그 분과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세상에서 소중하게 생각해야 될 것이 무엇이며 내가 살아 가는 길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많이 얻었다.
치밭목 대피소 1km 가 남았다는 이정표 근처에 도달하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으며 아저씨 발걸음이 너무 느려 먼저 내려 가겠다고 인사를 하고 치밭목 대피소에 도착하니 07시 55분이다.
이미 그 곳에 도착한 네,댓 명의 등산객들이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나도 가져간 물로 라면을 끓이고 햇반을 데워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데 이내 그 서울 아저씨가 도착하셨다.
아저씨는 쌀로 직접 밥을 지어 드시는데 쌀은 집에서 씻어서 가져 와야만 쌀이 불어있어 약한 불로 밥을 하면 그렇게 밥맛이 좋다고 하신다. 나는 산에서의 마지막 식사인지라 남은 김치를 다 먹고 국물은 어쩔 수없어 통의 뚜껑을 닫으려는 순간 아저씨께서 그 국물을 달라고 하신다. 김치국물만 드리기에 미안해 하는 내게 산에서는 김치국물에 라면을 끓여 마시면 정말 맛있다며 연신 고맙다고 인사하는지라 김치국물 같은 이런 작은 것 때문에 이렇게 인사 받기는 처음이라 몸둘 바를 몰랐다.
내 버너로 아저씨 라면을 끓여 드리고 일회용 커피도 한 개 드리고 약 300m 가량 떨어진 샘터에 가서 새로 물 2병을 채우고 아저씨께 하산하셔서 만나면 동동주에 파전 한 접시 하자는 말을 남기고 09시에 치밭목 대피소를 출발했다.
09시 30분 일대 장관인 네 갈래, 두 갈래, 세 갈래로 떨어지는 3층 짜리 무재치기 폭포에 도달한 후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으니까 시원하게 작은 폭포를 한 개 더 만들었다. 여기에서 산행을 시작한 이래 3박 4일 만에 처음으로 손 씻고 세수하고 이빨 닦고 물가에서 여유를 한 번 부려 보았다. 그래도 아직 내 몸에서는 간장냄새가 진동을 해 내자신이 냄새를 맡기가 역겨울 정도인 만큼 진주에 도착하면 꼭 목욕탕에 들러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계곡을 따라 약 30분을 걸어 내려오니 새재 마을과 대원사로 갈라지는 갈림길이 나왔으나 어차피 가장 길고 힘든 코스로 산행하기를 마음먹었으므로 당연히 새재 마을로 하산하기로 하였는데 다음에 만약 또 기회가 있으면 다시는 이 길을 택하지 않을 것이다.
등산길 주위에 바로 계곡 물이 흐르고 있어 가던 발길을 잠시 멈추고 양말을 벗고 산행 이후 처음으로 물 속에 발을 담갔다. 과연 1분을 견딜 수 있을까 하며 숫자를 세어보니 스물을 넘어가지 못해 뛰어 나왔다. 과히 지리산의 계곡 물 답다.
10시 50분 경이 되니 마을에서 개 짓는 소리가 들려 오고 감나무가 보이기 시작하고 사람들의 손으로 경작한 밭에는 옥수수, 콩 등이 보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11시 10분 "하늘아래 첫 동네"라고 간판이 있는 새재 마을에 도착하니 똥개 한 마리가 내 다리에 와서는 냄새를 한 번 맡아보고는 사라진다.
동네 어귀에 대원사 5km 라는 이정표를 보고 시멘트가 잘 포장된 길을 걸어 내려가자니 여태까지 맛보지 못한 고통이 내 발을 괴롭혀 오는 것이 아닌가? 흙과 돌 길은 걷는데 무리가 없었지만 시멘트 내리막 길은 정말 힘들고 지루하기를 말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산 하는 중간 중간 길가에 세워 둔 경고 표시에는 2003년 태풍 매미가 왔을 때 수십 명의 인명을 앗아 간 곳이라며 수영과 야영을 금한다고 적혀 있었다. 한참을 걸어 내려오니 치밭목 대피소에서 새재 마을을 거치지 않고 바로 내려오는 길과 만나고 또 한참을 내려오니 대원사에 불공을 드리러 왔다 가 계곡 구경을 하러 올라오시는 한 무리의 할머니들을 만났는데 올라가지도 않을 것이면서 천왕봉 올라가려면 얼마나 걸리느냐고 묻길 래 아마도 내일 아침까지 걸어가셔도 힘들 것이라고 대답 해 주었다.
대원사에 도착했으니 그냥 지나치기엔 섭섭하고 평소 3배로써 불공을 드렸으나 이번만큼은 무사히 산행을 마칠 수 있어 부처님께 특별이 2배를 보너스로 더 얹어 5배로써 내 마음을 표시하였다.
12시 53분 유평 매표소까지 도착함으로써 화엄사 주차장을 출발한 이래 56시간 23분의 산행을 마무리 하였는데 내가 걸어 온 거리는 정확히 계산을 해 보지는 않았지만 약 55km(140리) 정도로 추측이 된다. 매표소에서 동동주 한 사발, 파전 한 접시(10,000원)를 시켜 놓고 그 걸어온 종주 길을 회상해 보건대 이 길은 누구나 다 걸을 수있는 길이지만 그렇다고 도전하지 않으면 결코 해낼 수없는 길이기에 내가 정말 대단한 일을 했구나 싶어 내 자신의 건강한 정신과 건강한 신체에 감사했으며 산행을 흔쾌히 허락해 준 아내에게도 감사했으며 산행 중 나와 한 번이라도 말벗이 되어준 모든 분들과 인터넷에 친절하게 종주기를 올려 주신 어떤 아주머니와 무사히 잘 갔다 오라고 격려한 또 다른 모든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동동주 한 사발을 다 마시고 버스 타면 화장실 비우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 올 수 있으니까 반 사발을 남기고 13시 35분 유평을 출발하여 진주로 가는 버스(4,300원)에 올랐다. 진주에 도착하여 목욕탕을 찾아 보았지만 눈에 띄지 않아 그냥 거제에서 씻기로 하고 14시 50분 진주를 출발하여 고현에 17시 00분에 도착(8,700원)하였다.
마지막으로 목욕탕(3,700원)에 들러 깨끗하게 마무리 짓고 18시 00분에 집으로 들어가니 모든 일정이 마무리 되었다.

이상으로 이 산행기를 작성 해 보니까 산행기간은 비록 짧은 3박 4일이었지만 작성 기간은 무려 3주간이라는 긴 시간을 할애해도 결말이 잘 나오질 않는다.
짧았던 그 순간들을 회고하고 글로 남기려니 시간은 흘렀어도 정말 보람이 있었으며 만약 또 다시 기회가 있으면 재도전 해보고 싶어지고 마음으로 크다랗게 직접 다가오는 느낌은 없었어도 그렇지만 작은 감동들이 잔물결을 이루며 가슴 한구석에서 살살 나오는 것 같아 정말 잘한 결정과 실행이었다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아직 글이라고는 한 번도 써 본적이 없는 나 이기에 이 종주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읽혀져 향후 지리산 종주를 계획하고자 하시는 분들께 크게 도움은 되지 못해도 종주를 결심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종주에 필요한 준비물들과 종주 코스 안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으로 본 종주기를 마무리 짓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