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첫눈 산행기)
서설을 밟으며, 깊은 상념에 잠긴 하루
사실은 지난 주말 저는 한 동안 망설임이 있었죠.
제가 참여하는 YKA 등산모임의 소백산 종주(백두대간
종주의 한 코스) 1박 2일코스를 다녀올까,아니면
속초로 가서 설악 비치콘도에서 기다리는 산친구와
합류할까 망설이다가, '에라...하루 쉬자 '하고 다
취소했던 참입니다.
지난 주일은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려 갑자기 추워졌고,
사무실에 앉아서도 한기가 돌았던 한 주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경기도 연천군 신탄리와 강원도
철원군의 경계에 위치한 고대산(832m)정상에는
흰 눈이 하얗게 덮여 있었습니다.
아침 9시 정각, 의정부역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7시부터 일어나, 아침과 점심 두끼 먹을 도시락을
챙기고, 김치를 충분히 담고, 보리차 물도 2병을
넣고, 털 장갑,방한용 모자,입마개,스틱,깔판,아이젠 등
만반의 준비를 했습니다. 만일에 대비해서...
의정부에서 매시 20분에 출발하는 경원선(서울--원산,
북한에서는 강원선이라고 함) 꽃열차는 미끄러지듯이
하얗게 서리가 내려 앉은 들판을 힘차게 달린다.
배추밭에는 시퍼런 통배추가 먹음직스럽게 자라고 있다.
기차가 점점 더 38선이 있는 북녘으로 달리니,군부대가 많고
아직도 예전 그대로인 집들. 슬레이트 지붕에 나즈막한
적산가옥 마당에는 복슬강아지가 꼬리를 흔들고,
토종 닭들이 옹기종기 모여 모이를 먹는 한가로운 전원 풍경.
이 길은 머지않아 남과 북의 철도가 연결되어 '금강산 가는
길목'이 될 것을 생각하니, 우리가 왜 분단 50년을 그렇게
떨어져서, 철천지 원수지간으로 살았는지, 한많은 현대사
의 동족상잔의 비극을 상기하게 된다.
이런 저런 상념에 빠져 1시간 20분이 금방 지나갔다.
일행은 빨간 벽돌로 지은 조그만 신탄리역사를 빠져 나와
제일 먼저 철도종단점 표지판으로 향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We want to be back on track."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진다.
과연 언제나 이 철로가 평강으로 이어져 저 북녁땅을
마음대로 갈 수 있는 날이 올까? 이젠 녹이 빨갛게
슬어버린 레일, 뚝 잘린 철길을 한참동안 바라본 후
발길을 돌렸다.이 부근에는 도피안사,노동당사,철의
삼각전망대,제2땅굴,백마고지 등 6.25의 상흔이 남아 있다.
우리는 고대산 약수상회(등산로 초입)로 다시 돌아나와
상쾌한 아침공기를 들이 마시며, 하얗게 눈덮인 고대산
봉우리을 바라보면서 우회로인 제3등산로를 선택했다.
살얼음이 깔린 보도를 지나니 쇠줄로 가로 막은 위병소
안으로 군인 막사가 보인다.
예전에 있던 군 내무반,연병장,탄약창고 등이 철수하여
지금은 흉물로 남은 모습이다. 그 옆을 지나니 계곡길로
리본 표시가 달려 있다. 오늘은 등산객이 유난히 많다.
앞 사람만 따라가면 길을 잃을 염려가 없을 것같다.
하하~
새벽에 내린 눈과 얼음이 살짝 덮힌 계곡길을 20여분 오르니
밧줄을 타고 오르는 급경사길이 가로 막는다.머리에서 땀이
솟기 시작한다. 쉬지 않고 표범폭포 입구를 지나,얕은 계류
를 건너 다시 우측으로 이어진 넓은 자갈길로 들어섰다.
앞서가던 등산팀이 쉬고 있다. 날씨가 추운데다가,사방에
눈이 1cm정도가 쌓여 적당히 쉴만한 데도 없다.
주차장입구에서 출발한지 1시간만이다. 조금 있으니 금방
추워진다. 북사면이기 때문에 햇볕이 안드는 곳에서
더 이상 앉아 있을 수 없어서 곧 일어섰다.
여기서 부터는 X사단 OP부대 초소가 있는 제1봉까지는
길이 넓고 좋은 편이다. 군에서 쓰고 남은 폐타이어로 계단
을 만들어 놓아 밟으면 폭신한 게 감촉이 좋다. 여름철에는
갈참나무가 우거진 숲터널 길인데, 지금은 낙엽이 다 떨어져서
산비알의 속살이 다 드러나 보인다.
낙엽과 눈, 때로는 얼음이 언 길을 쉬지 않고 오른다.
나는 미끄러질까 봐 겁이 나는 데 환갑이 다 된 듯한
어른들이 일열로 올라가고, 내려오고 하면서 수인사를 나눈다.
금년 첫 눈에 반해서 모두들 동심으로 돌아간 것같다.
" 아저씨.얼마나 남았어요? 정상 까지..."
" 거의 다 왔어요. 조금만 가면 됩니다."
우리는 통상 하는 거짓말로 여길 수 밖에,
다시 뒤에 내려오는 아줌마에게 묻는다.
"한 두번 속았나요... 아직 멀었죠?"
"30분이면 아마 될 겁니다..."
이렇게 위안을 받아가며 출발 1시간반 만에 제1봉,
정상에 오르니, 이제야 처음으로 사방이 확 틔여
보인다. 군 파견부대 초소와 안테나, 부식창고도 있었다.
산 꼭대기에서 사람(병사)을 만나니 더 반갑다.
오른편으로
난 군 참호를 따라 능선길에 다다르니 부식을 나르는 모노
레일이 길게 이어진 길이다. 순간 차거운 삭풍이 불어와
매섭게 귀를 때린다.
젊었을 때, 최전방에 근무하던 군대시절이 회상된다.
나는 여기보다 더 전방인 대성산 XX고지에서 근무했었다.
전방중에서도 제일 춥고,제일 높은 1175고지,OP였다.
한 여름에도 내무반에 갈탄 난로를 때던 기억이 생생하다.
겨울이면 영하 25도까지 내려갔다. 지금은 상상도 못할
폭설로 인해 길이 막혀 부식공급이 차단되었고, 도로를 뚫
는 사역(제설작업)이 매일 계속되었다.
12월부터 다음 해 3월까지는 유선통신이 유일한 연락수단이
되기도 하였던 곳이다. 여기서 지척의 거리, 이곳 초병들의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든다.
출발 2시간만에 정상, 헬기장에 도착하니 초등학생들과
관광버스로 온 산악회,동창회(남성고)등산객이 우글우글하다.
오늘은 고대산, 고대봉(932m)의 무슨 생일날 같았다.
2000년 통일시대를 맞아 현장학습의 교육장이
된 느낌이다.
대형 헬기장 한편에 서 있는 고대봉 표지석에는
"통일의 기수.
새천년 새아침
통일의 초석을 다지며"
라고 XX부대에서 써 놓았다.
북쪽으로 철원평야가 한 눈에 들어온다. 저 멀리
38선이 보인다. 남방한계선은 커다란 호수 위로
어렴풋이 보이는 작은 구릉이란다.
초병들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며 듣고 있던
백발의 한 등산객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지포리가 어디지? "하며 그 노인은 드디어 옛 지명을
대지만,초병은 눈만 꿈벅꿈벅 한다. X사단 백마고지에
서는 피아간에 공방전이 치열했던 곳, 이 고지를 탈환
하려고 수많은 영령들을 희생시킨 역사의 현장이다.
헬기장 뒤편, 양지바른 남향에 자리를 잡고 중식을 해결,
금방 추워서 더 앉아 있을 수가 없다. 밥 먹기가 무섭게
종주코스로 달려갔다. 금학산과 얼굴바위를 쳐다볼 틈도
없이 790봉을 지나 비석봉에 닿으니 저 아래로 신탄리
마을 지붕이 보인다.
우리는 제 1등산로를 택해 비교적 쉬운 하산길로 내려섰다.
오후 1시가 지났다. 제법 따스하게 햇살이 비치고,
날이 훤해진다. 지뢰지대 표시가 있는 군 시설물을 지나
내리막 길을 달린다. 너덜지대이긴 하지만, 길이 잘 닦여
있어 큰 고생은 안했다.
그 많던 등산객은 어디로 내려갔는지 안 보인다.
내려오는 길에서 만난 몇몇 산악인과 그들의 최근
내장산 등반,민둥산 등반,두타산 등반 등 얘기를 들으며
나는 오늘도 예외는 아니라고 겨울철에 특히 주의할 것을
강조했다.
"등산은 내려갈 때 자주 사고가 납니다,
다 내려왔다고 안심할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입니다."
" 그래요. 난 지난 번에도 버스 타는 데에 왔는데
발을 헛 디뎌서 앞으로 넘어져서 지금도 절뚝거려요."
등반사고는 날씨나 지형의 난이도가 크게 문제 되지
않으며, 긴장을 풀었을 때가 주의해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얘기를 나누다 보니 오후 3시,출발지점에 도착했다.
관광버스가 여러대 와 있었다. 약수상회 오리고기집은 초만원,
우리는 한참을 내려가다가 비닐 포장마차집으로 들어가
산에서 만난 40대의 젊은 후배와 함께 시원한 동동주에 손두부와
묵은 김치를 먹으면서 즐거운 환담을 나누었다.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오른다. 열차에 몸을 실으니 졸음이
엄습해 온다. 아이 졸려~
잠시 눈을 부치니 어둠이 깔린 차창 밖으로 불빛이 환하다.
5시 20분 정각에 만원 꽃열차에서 등산객들이 쏟아져 내린다.
오늘의 산행은 우연히 최전방 산을 찾았다가 첫눈을 만나는
행운의 산행을 하게 되었다.흐뭇~
(참가자: 김동식 부부. 김양래부부)
2000.11.13 일죽 산사람
첫댓글 2000년 11월에 쓴 글이군요. 한참동안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글쟁이 산쟁이 일죽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