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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8회 손승호목사입니다.
지난 8,9일 이틀간 수안보에서 개최된 9회 서울신학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세미나에 참여하여
은혜 받고 메모한 것을 옮겼습니다. 최대한 저자의 의도를 잘 전달하려 했습니다만, 부족한 부분은 모새골홈페이지를 통해서 공급받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평안하십시요.
1강 임영수 목사(모새골 대표) 모 ~ 모든사람이 새 - 새로워지는 골 ~ 골짜기.
1. 새로운 삶으로 태어남
“성령안에서 삶은 다시 사랑받을 가치를 얻는다. 성령안에서 사람들은 삶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성령안에서 삶의 관련들은 다시 열매를 맺게 된다”. -율겐 몰트만-
한 시대의 영적 리더들은 모방의 삶이 아니라 자기 창조의 삶을 살았다.
성령경험은 예수 믿고 난 후에 그것도 아무에게나 아닌 어떤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성령경험은 새로운 삶으로 다시 태어남의 경험이다.
생명의 영인 성령은 인간을 새로운 삶으로 태어나게 한다. 새로운 사귐은 하나님과의 새로운 사귐이며, 모든 피조물과도 새로운 연대 관계를 갖는 것이다. 이 사귐은 믿음안에서 형성된다.
믿음안에서 하나님을 알게되고, 그분에 대한 신뢰가 생기면서 그 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사귐이 시작된다. 열려진 미래를 바라보기 때문에 현재의 우리 자신의 낡은 옷, 즉 과거의 경험, 과거의 업적, 상처와 같은 것들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의 희망에 우리 자신을 개방해 가게 된다. 이 사귐은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형성되어 가는 사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귐에는 회개, 치유, 보상, 순종, 화해가 있다.
임영수목사, 유일한 나로서의 삶을 살아야 겠다.
행위를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존재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이 전체에 대한 확신을 갖게한다. 기독교의 영성이란? 하나님안에서 성령님과의 깊은 사귐이다.
인간 - 영혼 - 영적 존재 - 하나님과의 사귐 - 인격적인 삶이 가능하다.
하나님은 여전하신데,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은 내면의 상처요. 장애다.
새로태어남은 하나님의 희망속에 있는 새로운 삶의 인격적 시작이며, 이러한 시작은 성령에 의해 완성되어 가야 한다.
목사는 외적인 것으로 살지 않고, 내적인 것으로 살아야 한다.
“종교개혁의 중심개념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일어나는 죄인의 ”칭의“였다. 이에 비하여 근대 경건주의와 부흥운동의 중심개념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타락한 인간의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남이었다.
그러면 이 두 개념을 어떻게 하나로 조화를 이루는가?
“칭의(마취하는 과정이라면)는 나에게 선언된다. 그러나 다시 태어남(봉합과 회복의 과정이다)을 나는 내 자신의 출생과 마찬가지로 확실하게 경험한다.
* 칭의는 나로 하여금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가지게 하며, 다시 태어남은 나의 내적 실체를 변화시키고, 나에게 새로운 삶의 씨앗을 주며, 내 안에 새로운 나를 세우며, 삶에 대한 나의 태도와 나의 삶의 현실을 갱신 시킨다.
* 칭의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행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태어남은 그 다음 인간안에서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다시 태어남”이라는 단어속에 들리는 표상들은 “죄의 용서”, 하나님 없는 자들의 의롭다함과 같이 과거의 극복을 지향하지 않고, 새루운 삶의 미래를 지향하고 있다. 이 표상들은 형성되어 가는 삶, 자연속의 봄을 연상케 하며, 종교개혁의 죄책의 영성과 은혜의 영성처럼 최후 심판과 분노의 날을 연상케 하지 않는다.
‘칭의’라 부를때 우리는 그것을 그리스도의 활동으로 묘사한다.
‘다시 태어남’이라 부를때 우리는 그것을 성령의 활동으로 묘사한다.
임영수목사, 성령충만 !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궁극적 추구의 목표점이다.
계 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
이 세상은 하나님의 정원이다. 모새골의 창립정신이다.
시편 23편 내 영혼을 소생시키는 것, 리뉴얼(?)
이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은? 평강과 희망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늘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우리의 삶을 리뉴얼해야 한다.
기독교 영성은 한 부분이 아니라 삶의 전 영역이다. ]
축도에서 우리는 “지금은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소통)하심이 구약과 신약의 약속과 성취가 이루어 져야 한다.
하나님의 활동무대는 에덴동산 (이 세상)이다. 여기까지..,
2. 존재 추구의 삶(본질의 삶)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에 크게 두가지 있다. 하나는 존재를 추구해가는 길이요 다른 하나는 행위를 추구해 가는 길이다. 이 詩에서 제시하는 길은 전자의 길이다. 사람이 존재를 추구해 가야 하는 이유는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길은 밖에서 안으로가 아닌 안에서 밖으로 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존재를 추구해가지 않고 행위만을 추구해 갈 때 특별히 신앙생활에서는 공허와 무의미에 빠지게 되고, 자기 의를 드러내려고 하는 신앙적인 위선에 빠지게 된다. 그뿐아니라 그러한 내적 공허를 사람들의 칭찬, 인기, 명예, 물질, 쾌락과 같은 것들로 채우려하게 된다.
참된 경건의 목적은 사람이 사람다워지는데 있다. 존재를 추구해가지 않는데서 경건의 삶은 경건의 모양만 있고 능력은 없는 위선이 되고 만다.
임영수목사: 존재를 추구하는 삶은 안에서 밖으로 되어진다. 참된 경건의 목적은 “사람이 사람다워지는데 있다”. 진정한 힘은 홀로있음 “하나님앞에, 하나님과 함께 있을때”이다.
영성이란? 오늘 이 시대의 시류를 제대로 봐야 한다.
존재를 추구하는 삶, 행위를 추구하는 삶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하나님과 사귐 세상에서 활동
홀로있음 함께 함
거함 섬김
내면 외면
관계적인 부르심 주권적인 부르심
부르심 성품
보이지 않음 보임
실제 삶 반영된 삶
영적 에너지의 재충전 영적 에너지의 적용
휴식 일
[케네스 보아 Kenneth D. Boa "기독교 영성, 열두 스텍트럼” p. 307]
존재는 하나님과 사귐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는 것이라면, 행위는 그것을 가지고 사용하는 것이다. 존재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라면, 행위는 실천하는 것이다. 존재는 우리의 삶의 원인을 하나님에게 두는 것이라면 행위는 외적으로 나타나는 결과이다.
인간의 참된 행복은 바른 존재 방식에서부터 이루어지게 된다. 존재를 추구해간다는 것은 결과를 살지 않고 과정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성실성의 삶은 믿음, 소망,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여기서 사랑이 최고의 덕목이다. 사랑은 믿음과 소망에 근거한 현재의 삶이다. 존재함에서 이루어지는 내면성에는 “작은 지성소”가 형성된다. 그리고 삶의 통제소가 세상이 아닌 은밀한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이 된다.
이 시에서 존재를 추구해 가는 삶에서 이루어지는 경건의 삶의 표상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로 묘사되어 있다.
임영수목사 “제대로 된 목사 하나가 대통령보다 더 낫다”. 아멘..
자유의 영성, 스트레스에게 먹힘을 당하는 삶은 내면의 세계 “작은 지성소”를 형성되면 자유의 영역이 형성되면 꼭 필요함에 몰입하게 된다.
모새골의 이미지는 임영수목사의 내면의 삶이 그대로 형상화 되어 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he restores my soul. He guides me in paths of righteousness for his name's sake]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밖으로 드러나는 외형이다. 그러한 “푸른신앙” [(김정준박사)는 시편 1편의 주제를 이렇게 표현했다]. 은 외부로는 드러나지 않는 존재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시에서 존재를 추구해 가는 삶이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오로지 주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다“(2절).
시편 119편에서 “율법은 법, 증거, 도, 율례, 계명, 판단, 길, 말씀”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되어 있다. 행복이란? 물질적인 것이 아니다. 부유와 권력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도 있으나 그 부와 그 권력이 떠나가면 행복의 파랑새도 날아가고 만다.
행복은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데 있으며 사람다워지는 길은 경건의 삶을 통해 이루어진다.
경건의 삶을 실현해 가는 구체적인 길이 존재 추구의 길이다.
하나님과 말이 없는 사귐으로 묵상
존재 추구의 핵심은 하나님과의 사귐(교제)이다. 하나님과 사귐에서 묵상이 말이 없는 사귐이라면, 기도는 말이 있는 사귐이다. 이 시에서 “주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한다”는 말이 없는 사귐이다. 여기에서 묵상하다로 쓰인 히브리어 “예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하나님의 하신 일에 대해 숙고한다. 하나님의 행위를 드러낸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은 말씀을 “금과 같이 귀중하게 여기고, 꿀과 같이 달게”여기고 말씀을 읽는 것 (듣는것), 그리고 말씀을 음미(반추) 하는 것, 다음으로 음미가운데서 깨달은 것으로 하나님과 대화하고 대화 후에 머무름으로 묵상의 단계로 정의할 수 있다.
임영수목사 “큐티는 능동적 묵상이라고 할때 주체는 ”I"가 된다.
묵상은 수동적 묵상이라고 할때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한국교회는 영적인 카타르시스와 성령의 혼돈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임재가운데 머무를때, “감정, 두뇌, 전체를 stop”하고, 하나님을 기다려야 한다. 성령의 인도하심속에
듣기, 음미, 대화, 머무름의 단계로 나아간다.
기독교의 묵상과 동양 종교의 묵상과는 다르다. “동양의 묵상은 마음을 비우기 위한 노력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묵상은 마음을 채우기 위한 시도이다. 기독교 묵상은 우리 자신을 자유롭게 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데 필요한 완전함으로 이끌어 준다.
큐티와 성경공부는 말씀을 분석하고, 그 뜻을 찾아낸 다음에 말씀을 삶에 적용시킨다. 그러나 묵상의 의도는 말씀을 분석하거나 해석하지 않는다. 단순히 읽거나 귀를 기우려 듣는다.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인상깊게 들려오는 말씀을 음미해 가는 것이다.
이러한 묵상의 과정은 듣기 > 음미 > 대화 > 머무름의 단계로 진행된다. 그 어느단계에 있든지 묵상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다음으로 하나님과 말이 있는 사귐을 위한 기도이다. 기도는 모든 종교에 다 있다.
시편 기도는 원시인들이 행한 것과 같이 변덕스러운 존재를 무마시키기 위해 일정한 종교의식으로 행해지는 주문이 아니다. 시편에서 기도와 찬양은 그들의 역사에서 자신을 드러내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경외함에서 발생된 것이다.
임영수목사 :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영원한 것은 없다. 하나님의 평강과 희망은 안에서 밖으로 나가야 한다.
시편기도는 다른 종교에서 기도와는 달리 하나님과의 사귐에서 이루어진 대화이다.
그래서 시편 기도의 특징은 피상적이지 않고 매우 진솔하다. 시편에서 기도는 거룩하신 분과의 사귐, 즉 나와 당신의 관계에서 발생되는 대화이다. 대화는 인격적 대상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
목사는 오늘 이 시대에 영적 지도자로서 리더자로서 살아야 한다. 복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믿고 꾸준히 그 길을 걸어가라.
시편 28편의 기도는 진솔하다. 내 문제를 가지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처방이 어떻게 내려져서 결론되어지더라도 순복하겠다는 태도가 필요하다. 기독교 영성에서 회복은 하나님의 보상을 통해서 되어진다.
목사는 목사다운 영적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 희망과 평강을 갖고 하나님앞에서 살아야 한다.
하나님과 진솔한 대화가 이루어지게 되면 말이 없이 그분안에 고요히 머무는 단계로 들어서게 된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끼리 말없이 함께 있어도 말을 할때보다 마음으로 더 깊은 교감이 이루어진다. 기독교 신앙은 강탈하면 안된다. “하나님은 너의 미래의 시간을 네게 주기를 원하신다. 이게 복음이다. 아멘.
아래의 내용은 신문기사에 실린 내용을 옮겨온 것입니다. (아마도 국민일보?)
“‘은사 있어야 성령 체험’이라는 시각은 곤란”
서울신대(총장 목창균 박사) 주최 제9회 전국목회자 세미나가 충주 수안보파크호텔에서 8일부터 1박 2일간 3백여명의 목회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성령! 성결의 능력입니다’를 주제로 개최된 이번 세미나에는 임영수 목사(모새골 대표), 이신웅 목사(신길교회), 여주봉 목사(포도나무교회) 등이 강의했다.
첫 강의에 나선 임영수 목사는 성령에 대한 오해들을 바로잡으면서 강의를 이어갔다. 임 목사는 “우리는 ‘언제 성령을 경험하였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당황하게 된다”며 “이는 성령의 경험을 방언이나 예언 기도와 같은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은사가 없으면 우리는 아직 성령 경험을 하지 못했다고 단정한다”고 지적했다.
▲ 이날 세미나에서 임영수 목사는 개인적인 경험들을 섞어가며 강의를 진행했다. ⓒ이대웅 기자
임 목사는 “성령 경험은 예수 믿고 난 후에, 그것도 아무에게나 아닌 어떤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성령 경험은 새로운 삶으로 다시 태어남의 경험이며, 인간이 새로운 삶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새로운 사귐의 삶으로 인도돼 가는 것”이라 정의했다. 새로운 사귐은 하나님과의 새로운 사귐이며, 모든 피조물과도 새로운 연대 관계를 갖게 되는데 이 사귐은 믿음 안에서 형성된다.
임 목사는 이후 기독교 신앙에서 새로운 삶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과 관련된 중요한 신학적 개념 두 가지를 소개했다. 바로 ‘칭의’와 ‘다시 태어남’인데, 임 목사는 “이 문제 때문에 저는 성장 과정에서 퍽 오랜 기간 동안 갈등하며 고뇌했다”며 “종교개혁의 중심 개념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일어나는 죄인의 ‘칭의’였고, 이에 비해 근대 경건주의 부흥운동들의 중심 개념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 자녀로 ‘다시 태어남’이었다”고 밝혔다.
두 개념이 조화를 이루는 과정도 설명했다. 칭의는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갖게 한다. 다시 태어남은 내적 실체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삶의 씨앗을 주며, 내 안에 새로운 나를 세우고 삶에 대한 나의 태도와 나의 삶의 현실을 갱신시킨다. 칭의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행하는 것을 말하고, 다시 태어남은 그 다음 인간 안에서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세미나를 주최한 서울신대 목창균 총장은 “금번 목회자세미나는 성령님께서 주시는 능력이 성결임을 인격적으로 실감나게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데 초점을 뒀다”며 “열정적인 찬양과 살아있는 은혜의 말씀, 최고의 강사와 함께 능력의 하나님을 경험하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첫댓글 대단하십니다...
목사님의 사역과 삶에 비하면 세발의 피랍니다. 그저 그 자리에 함께 할 수 있는 은혜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지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