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일(4월 18일) 하동, 섬진강을 능멸하다
곡성-구례-하동-남해(108km)
오늘은 섬진강 마을 하동까지 갈 작정이다. 지난해 맞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좌절했던섬진강 여행을 이번엔 상쾌하게 마무리 짓고 싶다. 그때 하동으로 돌아와 광양으로 경로를 바꾸어 오르던 고개에서 내려다본 하동이 무척이나 인상적 이었다. 낮지도 높지도 않은 산들을 등지고 휘감아 돌아가는 섬진강을 품고 있는 하동은 포근했다. 포근한 마을에 터 잡고 사람들은 살가울 것 같았다.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터 잡고 살 처지는 안 되지만 이번이 하룻밤 묵고 갈 좋은 기회다. 섬진강을 오롯이 느끼며 그리던 하동에서 오후 일정을 느긋하게 즐길 생각을 하니 아침부터 설렌다. 아침식사는 김밥 두 줄을 섬진강 가에 나가서 먹었다.
곡성에서 출발하여 만나는 섬진강은 강의 오른쪽을 따라난 길 위에서 만났다. 자전거의 왼쪽 차선이 강의 오른쪽을 가려 황색 차선을 넘나들며 하동으로 내려갔다. 이른 시각 지나는 차들이 거의 없기에 가능한 역주행이다. 섬진강 레일바이크 타는 곳을 지난다. 관광버스 여남은 대가 레일바이크 손님을 내려놓고 있다. 레일이 나 있는 곳을 보니 강을 느끼기엔 너무 멀거나 산에 가려져 있어 보인다. 그냥 강변을 걷는 게 훨씬 낫겠다고 생각했다. 한 시간 쯤 내려오니 강을 건너는 다리가 세련된 모양과 색깔로 놓여 있다. 굽이굽이 흐르는 강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다리 위에 서서 강 상류 쪽과 하류 쪽, 양쪽으로 솟아 있는 산들을 훑어본다. 강의 오른 쪽으로는 넓은 도로와 ktx 철도가 남쪽으로 뻗어 있고, 강의 왼쪽으로는 구불구불한 길이 벚나무 가로수와 함께 남쪽으로 이어져 있다. 어젯밤 꿈이 아른거린다. 토벌대는 강의 오른쪽 길로 빨치산을 몰아 남하했을 것이고, 빨치산은 강의 왼쪽 산기슭을 따라 몸을 숨기며 지리산으로 들었을 것이다. 강을 사이에 두고 쫓고 쫓기며, 숨고 찾고를 거듭했을 것이다.
다리를 건너 강의 왼쪽 길로 갈아탔다. 오른쪽 길과 왼쪽 길은 달랐다. 만개한 벚꽃나무와 산모퉁이 사이사이로 넓었다 좁아졌다, 펴졌다 구부러졌다, 빠르다 느려지다, 를 반복하는 강은 ‘이래서 사람들이 섬진강, 섬진강 하는 구나’고 어렴풋하게나마 알려주는 것 같다. 난 섬진강에 와 본적이 없었지만 김용택의 시를 읽으며 섬진강에 왔었다. 조영남의 화개장터를 들으며 이곳의 인문학적 지형을 조금 엿보았다. 김용택, 조영남 보다 더 강렬한 인상은 정태춘의 노래에서 였다. 20여 년 전에 정태춘이 슬퍼했던 섬진강 노래가 자꾸 흘러 나왔다. 제목도 노랫말도 모두 잊었지만 가락만은 남아 있었다. 구슬픈 뽕짝 반주에 맞추어 ‘육만 엔 이란다’로 시작하여 ‘육만 엔 이란다’로 맺는 노래다. 후쿠오카에서 비행기 타고 온 일본 관광객들이 낮에는 섬진강 은어를 밤에는 늘씬한 풋가시내를 유린한다,는 노래다. 3박4일 밤낮으로 칙사대접 받은 일본인이 쓴 돈은 단돈 육만 엔 이란다. ‘유욱만 엔~ 이~이~라안다’를 흥얼거리며 구례로 간다.
구례에 다다른 강은 두 갈래로 나뉜다. 구례읍으로 들어가는 다리 밑을 지나서 왼쪽으로 흐르는 물은 하동을, 오른쪽으로 흐른 물은 광양을 거쳐 바다로 나간다. 구례읍은 곡성읍보다 훨씬 크고 세련돼 보인다. 곡성에서 시작한 강줄기가 아래로 흐를수록 넓고 깊어지듯 강을 따라 들어선 마을들도 그러했다. 구례를 벗어나 다시 이어진 섬진강을 따라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를 넘었다. 화개장터를 지난다. 잠시 장구경이라도 할까, 다가 곧 생각을 접었다. 장터는 마치 갓 개장한 민속촌처럼 샛노란 볏단으로 지붕을 올린 초가집들이 주욱 늘어서 있고 품바타령이 고성능 스피커로 청각을 마비 시켰다. 장터 몇 백미터전부터 관광버스며 대형 승용차들이 어지럽게 주차되어 있고 주차 행령은 장터를 한참 지나서도 끝나지 않았다. 하동에서 구례에서 달구지 끌고 덜컹이는 버스 타고 화개로 모여든 사람은 없을 터, 장구경이 뭔 의미가 있겠는가.
평사리 최참판 댁을 지나면서 우려했던 걱정거리가 눈 앞 현실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제발 섬진강만은 ‘가카의 망극한 성은’을 타지 않기를 바라고 바라고 또 바랐다. 그렇게 바랐건만! 경상남도 하동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강변에서 00건설 제5공구라는 고딕체 활자가 눈에 들어박힌다. 그 옆에 ‘국가하천 섬진강’이라는 표지판이 강의 운명을 대변하고 있다. 점심 먹으러 들어간 식당 주인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길과 강을 왜 이렇게 파헤치냐? 주민들은 가만있냐?”고 공격적으로 말을 걸었다. 주인은 섬진강 참게눈을 뜨고는 “나 참, 길이 넓어져야 손님이 많이 올 거 아닙니까. 성수기와 주말만 되면 차가 막혀서 말도 못해요. 여기 주민들이 원해서 하는 겁니다.” 더 말붙일 맛이 없어 재첩국그릇에 머리를 틀어박았다. ‘아이씨, 왜 이리 짠거야!’
하동으로 들어가는 길은 곳곳이 헤집어져 있고 가로수는 뽑혀나갔고 산모퉁이는 벌건 속살을 다 드러내놓고 있었다. 길 아래 모래톱으로 중장비들이 분주하게 오가며 강바닥을 긁어대고 있다. 그 살풍경 속에서도 재첩잡이배는 멍텅구리처럼 재첩만 긁어모으고 있었다. 하동 입구에 도착했다. 오늘 아침 부푼 설렘은 하동에 가까워지면서 바람 빠진 애드벌룬이 돼 버렸다. 하동이 싫어졌다. 하동 사람들-함부로 훼손하고, 거기서 떨어지는 쇳가루에 영혼을 팔아버린-을 경멸하며 망설임 없이 하동을 외면했다. 하동에서 시작된 섬진강 파괴는 강을 역류하여 구례 곡성으로 파급되는 것은 시간 문제리라. 사람들아 제발 거스르지 마라. 남해로 가기로 했다. 하동을 벗어난 강변 갈대숲은 벌써 철재 구조물들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저 구조물들을 레고블럭 끼워 맞추듯 연결하면 ‘생태 자전거길’이 될 것이다. 제 생명을 죽여 생태 자전거길에 바치는 것이 국가하천의 운명이다. 적당한 주기와 세기로 앞, 뒤, 옆 방향을 바꿔가며 불러오는 바람으로 화를 달래기에 바람은 너무 무력했다. 어제의 꽃비는 황홀했다. 오늘은 처연하다.
한 동안 기억에서 사라졌던 4차선 도로가 하동에서 다시 나타났다. 4차선 위에는 화물차들이 폭력적으로 분주하게 질주하고 있다. 남해로 이어지는 4차선 도로는 여행 초기의 공포를 재연하고 있다. 질주하는 화물차들은 어김없이 ‘00건설 제0공구’라 적힌 가설표지판이 있는 곳으로 사라졌고 그곳에서 다시 4차선으로 나타났다. 지난 번 여행에서 가졌던 하동에의 환상은 능멸로 바뀌었다. 하동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전역하는 군인이 하는 말을 하동에 그대로 내뱉고 하동을 떠났다.
하동의 식당에서 들은 말이, 내게 말을 전한 그 한 사람의 의견일 뿐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남해로 간다. 하동 주민들이 섬진강과 강의 길을 되살리기 위해 일어날 것을 간절히 바라고, 믿는다. 오늘 하동에 퍼부은 나의 저주가 편견이길, 기우이길. 남해 바다로 흘러가는 섬진강을 바라보는 내내 절박하게 소원했다. 남해대교 앞에 자전거를 멈췄다. 섬진강과 만나는 남해는 쓸쓸했다. 남해대교를 건너는 차량의 다수는 관광버스다. 뽕짝반주가 쾅쾅 울리는 버스가 대교를 지날 때 마다 다리는 부르르 경련했다.
첫댓글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 그동안 속없이 자전거길을 달렸던게 아닌가 반성합니다 ㅎㅎ
왠지 화가 나면서 서글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