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6:18]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죄에게서 해방되어 - 성도의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으로 죄의 몸이 멸하여졌으며, 동시에 죄에 대하여 죽은 그는 죄에서 벗어났다. 이런 이유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 '종이 되었느니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둘로데테'는 단순 과거 시제를 취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단순과거 시제는 어떤 동작이 불확정직임을 나타낸다. 즉 동작의 결과가 완료되었음을 나타내지 않는다. 바울은 성도가 '의에게 종이 된'것을 단순과거 시제로 표현함으로써 7절의 '교훈의 본', 곧 복음을 믿은 결과 성도가 죄에서 해방되어 그리스도의 종이 된 상태가 현재에도 계속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시 32:11]"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찌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찌어다...."
너희 의인들아...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 - 대다수의 많은 시편들과 같이 다윗은 본시의 마지막절을 감사로 장식하고있다. 여기서 그가 권고하고 있는 감사는 죄를 자백하기만 하면 그 죄를 옮기우시고 덮어 가리우시고 죄에 대한 책임을 일체 지우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의인들'이나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은 처음부터 율법에 완전히 일치되게 산 자들을 의미하기 보다는 비록 죄를 범했을지라도 회개함으로 다시금 율법에 순종하여 사는 자들을 의미한다
[롬 1:17]"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가? 이 의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의로 제공되셨음을 말함이다. 사람이 하나님 하나님 앞에 의를 얻는 문제에 대하여 신학적 의견을 대표적으로 든다면, 세 가지로를 말할 수 있다. ⑴ 펠라기안 학파의 의견, 이 학파에서는 말하기를, 사람은 유대인의 의식적 율법을 순종함으로 의를 얻는 것이 아니고, 다만 도덕적 율법을 행함으로 말미암아 의를 얻는다고 한다.
⑵ 로마교의 의견, 여기서는 율법적 행위로 말미암아 의를 얻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의견은 성경적이 아니라. ⑶ 푸로테스탄트 교회의 의견. 여기서는 성경이 말하는데로 바로 주장하였다. 곧, 우리는 우리로 말미암아 행하여진 무엇으로 의를 얻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위하여 행하여진 다른 이의 의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다고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이 의는 본래 우리의 것이 아니고 다만 그리스도의 것을 우리의 것으로 인정하여 주는 것 뿐이다. 이 의는 복음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인데, 그 의로 말미암아 신자가 의롭다 함을 받는다. 그 의는 완전한 것이다. "나타나서"란 뜻은 무엇인가? 이 말에 대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사실을 생각하게 된다.
⑴ 하나님의 정하신 구원의 때가 이르었다는 뜻.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신자들에게는 바로 종말을 현재화시켯다는 의미도 되어진다. 이 의를 받는 자는, 세상 끝날에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벌써 심판을 받았다. 인자가 땅 위에서 사죄하는 권세가 있다고 한 대로, 신자들은 벌써 그리스도 안에서 사죄와 칭의를 받는다. 이 세상에서 사죄와 칭의를 못받은 자는 내세에도 그것을 받지 못한다.
⑵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는 말은 그것이 영원 전 하나님의 작정에 감취엇던 것이라는 뜻을 내포함,이 감취었던 것이 나타난 것을 보는 신약 시대의 사람들은 감사히 그것을 받아야 된다.⑶ "나타나서"란 말이 현재사로 되었으니, 그것은, 사람이 복음을 믿는 그 현재에 하나님의 의ㅣ와 접촉되고 또 받아지는 상칙을 말함이다. 이와 달리 3:21에는 "나타났으니"라는 현재 완료 동사가 사용되었다.
그것은 그리스도 사건의 역사적 실현)의 완료를 보여 준다. 믿음으로 믿음에. - 칼빈은 말하기를 이것은 불완전한 믿음으로부터 완전한 믿음에 이르는 신앙적 장성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 해석은 옳지 않다. 하찌는, 이것이 역설체론로서 오직 믿음으로만 의를 받는다는 의미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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