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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4:25-32
저는 교회를 생각하면 눈물 밖에 흘릴 일이 없습니다.
신학생으로 공부할 때 제 눈에 세상 모든 교회들은 다 때 묻어 보였습니다. 선배 목사님들이 속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신랄하게 교회를 비판하고 선배 담임 목회자들을 평가 절하하기 일 수였습니다.
부목사로 교회를 섬길 때는 더 가관이었습니다. 담임 목회자들의 목회가 우스웠고 무조건 순종하는 장로님들이 불쌍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신학을 끝내고 담임 목회를 해보니 목회가 그렇게 녹녹하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교회를 개척해 섬겨보니 신학생 때는 보이지 않았고 부목사 때는 가리워져 있던 수 없는 문제에 부딪힙니다. 그래서 쩔쩔 매고 있습니다.‘선배 목사님들이 참 훌륭한 분들이었구나, 장로님들의 인격이 한없이 귀해만 보입니다. ’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십 만명 이상 모이는 새들백 교회의 릭 워렌 목사님이 계십니다.
자서전과 같은 그 분의 책 (공동체의 삶)에보면 새들백교회는 개척한지 1년 만에 3천명이 넘게 모였답니다. 릭 워렌 목사님은 개척 초기 그 3천명의 교우 중 20 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성도는 고작 60여명이라 밝히며 그 분들에게 큰 고마움과 놀라움을 표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 교회 성장은 아픔과 갈등 없이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60명의 남은 사람들은 20 여년 동안 변화와 상처와 시험을 묵묵히 이기고 교회 성장의 든든한 버팀목이 된 것입니다.
그들이 한 알의 썩는 밀알이 되어 오늘의 수 천배의 열매가 맺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 공동체만큼 아프고 고통스런 공동체가 또 있을까 생각됩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끼로 모여있기에 수많은 갈등이 존재합니다. 저희 은빛교회는 교회에 대한 비판과 선배들을 우습게 생각했던 한 철없는 목회자에 의해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젊은 패기와 아집으로 똘똘 뭉친 30대 중반의 목사에 의해 2003 년 3월 30일 첫 예배가 드려졌습니다.
그리고 한해가 가는 가 했더니 어느 새 6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며 많은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저도 금주에 릭 워렌 목사님처럼 교적부를 보면서 개척 1년 동안 등록한 성도들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지금 병원에 입원 중인 문덕순 집사님이 1주년 기념 예배 때를 전에서 가장 늦게 등록을 하셨더군요.
초등학생을 제외하고 1년 동안 중학생 3명과 고등학생 2명을 포함 18명이었습니다. 그 중 지금까지 몇 명이나 남아있을까요?
돌아가신 이양옥 집사님 , 목사가 되어 떠난 서성원 집사님과 성남 아들내로 이사 간 이정의 권사님 외에 감사하게도 15명이 남아 있습니다. 훌륭하고 좋은 인격자여도 힘 든게 목사이거늘 거칠고 부족한 목사를 어떻게 잘 참아 주셨는지 생각하면 감사뿐입니다.
제가 지금도 이정도로 거친데 예전에는 얼마나 모나고 거칠 었겠습니까 ? 참아 주시고 용납해 주셔서 감사할 뿐입니다.
이런 분들로 인해 목사가 목사 되어 가고 교회가 교회 되어 가고 있습니다.
제 집에서 교회를 나오다 보면 지하차도 건설을 하고 있는 구간이 있습니다.
이 구간으로 인해 많은 불편을 겪습니다. 바닥이 철판이라서 미끄럽고 수시로 차선이 변경됩니다.
출 퇴근 길에는 교통 정체까지 심해 시간이 늦어지기 일수입니다. 보통 불편한 것이 아닙니다.
그 앞 표지판에 이렇게 써 있습니다. 「공사중」통행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위험, 추락 주의, 미끄럼주의
공사중 주의 하라는 이 표지판은 교회를 표현하는 적절한 단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땅에 있는 교회들은 모두「공사중」에 있습니다. 완성된 교회도 완성된 목사도 완성된 성도도 있을 수 없습니다.
모두가 건축 중이요, 모두가 치료중이요, 모두가 공사 중에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위험합니다. 추락하고 미끄러 넘어질 수 있기에 주의해야 합니다.
오늘 첫 번째로 읽은 말씀 에베소서는 전체적인 내용이 교회의 정체성을 다루고 있습니다.
교회는 무엇이고 교회는 어떠하며 교회는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시 소아시아 여러 교회 가운데 에베소 교회는 가장 이상적인 교회가 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교회였습니다.
좋은 교회가 되려고 하면 설립자가 좋아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 설립자는 능력의 종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바울은 많은 교회를 세웠지만 오랜 시간 목회하지 않고 곧 바로 다른 곳으로 옮겨 다니는 선교사역자였습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만큼은 교회를 설립한 이후 3 년 이나 진득하게 목회하며 처음 멤버들에게 두란노 서원에서 제자훈련까지 시켰습니다.
그리고는 모태 신앙으로 훈련 받고 자란 경건의 사람인 디모데에게 에베소 교회를 위임했습니다.
이보다 이상적일 수 없습니다. 영성과 능력과 인격이 갖추어진 목회자에 평신도들이 깨어 있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에베소서가 보여주는 에베소 교회의 진실은 전혀 이상적인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읽은 본문을 보면 에베소 교회가 어떤 교회인가 그 일면을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식탁에서 자녀를 향해 "골구로 먹어라" 한다면 그 아이는 편식하는 아이일 겝니다.
"밤에 일찍 들어오너라" 라고 말한다면 아마 귀가 시간이 좀 늦는 자녀일 것입니다.
남편을 향해 “ 여보 술좀 조금만 마셔요" 그렇게 얘기한다면 남편은 술을 굉장히 즐기는 사람일 것입니다.
읽은 본문이 바로 이런 식으로 기록 되었습니다.
4장 25절에 보면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에베소 교회 안에 거짓, 진실하지 못함, 위선이 가득했다는 얘기입니다.
26절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고 했습니다.
교회 안에 혈기 부리는 사람들, 걸핏하면 화를 버럭내는 사람들, 성질 사나운 사람들이 가득했던 것입니다.
28절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라" 교회 안에서 조차 도적질 하는 사람까지 있었던 것입니다.
29절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라" 교회 안에 흉보고 헐뜯고 입술로 범죄하는 사람이 수두룩했다는 거지요.
이 모습이 이상적이어야 하는 에베소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천국이 아닌 지옥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꿈에 호랑이에게 쫓기다 더 이상 도망할 수 없는 낭떠러지 앞에 왔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겠냐고 선생님이 질문했습니다. 어떤 아이는 호랑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또 어떤 아이는 죽은 척 한다.
또 한 아이는 호랑이가 덮치는 순간 살짝 피하여 낭떠러지에 호랑이가 떨어지게 한다.. 등등 대답이 많았습니다.
드디어 선생님이 정답을 말씀하십니다. "정답은 말이야~ 꿈깨 "
왜 주께서 세운 교회가 이토록 약점과 허물이 많은가? 이유는 이 세상에 의인이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공동체가 이 땅에 존재한다는 것은 꿈입니다. 교회나 가정이나 흠 많은 인간들의 모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서로 아껴주고 서로 격려하며 함께 성장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연약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나를 들여 다 보면 됩니다.
그 흠과 연약성은 바로 내 안에 있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병원입니다.
죄로 인해 병들어 있는 사실을 아는 자들이 고침 받기 위해 모이는 곳이 교회입니다.
아프다고 아우성이요 고름 냄새, 썩은 냄새 , 피 냄새 진동합니다. 여기 저기 상처를 꿰매는 일이 다 반사입니다.
부러진 뼈를 맞추어야 합니다. 주사를 놓아야 합니다. 그러니 치료중인 공동체요 공사중인 공동체입니다.
제일 하이빌에 60 대 후반의 여자 권사님과 교회에 대한 깊은 회의를 가지신 그 분의 남편이 계십니다.
이분이 서울에서 공무원을 하셨는데 아내가 권사 되려면 남편이 교회 나와야 된다는 것 때문에 억지로 교회를 출석하게 되었답니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아내를 따라 교회를 다녔지만 조금 교회생활이 깊어지면서 교회의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친한 사람들끼리만 똘똘 뭉쳐있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정직한 줄 알았는데 정직하게 사는 사람도 별로 없어 보입니다.
오래 다녔다는 사람들이 터주대감이 되어 비집고 들어갈 틈을 안줍니다. 교회 짬밥이 군대 짬밥 못지않았습니다.
교회에는 용서와 사랑만 있으리라 믿었는데 교회 안에서도 싸움하는 소리가 가끔은 들려 옵니다.
깊은 속을 들여다 보고 이 남편은 실망을 하고 교회에 섞이지 못하고 방관자가 되어 수년의 세월이 흘러 가버립니다.
냉소주의자가 되어 구경꾼처럼 신앙생활을 하던 차에 은퇴하고 4년 전에 여기 아파트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집 앞에 입주에 맞춰 개척한 20여명 모이는 교회가 있어 등록을 하게 되었고 등록을 하자 마자 교회의 감투란 감투는 다 씌워 줍니다. ‘얼마나 기다렸던 일이냐?’목사님을 도와 내가 바라던 그 아름다운 교회를 이제 만들어 봐야지.’목사님과 손발이 척척 맞습니다. ‘
그런데 웬걸 1년도 못되어 상처를 받기 시작합니다. 목사님도 ‘이 사람이 내 목회에 걸림돌이구나’ 실망을 합니다.
서로 기대치가 높았던 만큼 서로 환멸을 느낄 수밖에 없지요. 기쁨은 사라지고 교회 가는 것이 고문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믿음 있는 권사님은 다독 거려 보지만 도대체 남편의 마음이 꼬부라져 부부싸움으로 번져 버립니다.
이 일로 부부가 합의하여 당분간 교회에 가지 않고 가정예배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가정예배도 몇 주 드리다가 흐지부지 되고 맙니다. 그래도 교회를 버리기엔 신앙이 들었습니다.
교회를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딘가에 좋은 교회가 있겠지 기대하며 매 주일 교회를 떠돈답니다.
사랑이 있는 교회, 용서가 있는 교회, 은혜와 감동이 있는 교회 - 그 이상적인 교회를 찾아 매주일 헤메이고 있답니다.
이렇게 되다보니 반겨 주는 교인이나 목사님의 환대마저 순수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교인으로 잡아 두려는 위선으로만 보인답니다.
그래서 권사님께 “우리 교회 한번 와 보라” 그랬더니 ‘작은 교회는 속 보여서 안 간다’고 하더랍니다.
그 말을 들은지가 벌써 2년이 넘었습니다. 아마도 저는 이 분이 제일 좋아 하는 노래가 이 노래일 것 같습니다. ♪ 오늘도 걷는다 마는 정처없는 이 발길. ♪
교회는 속이 보여야 합니다. 연약한 목사의 속이 보이고 성도들의 시커먼 죄악이 다 들어나야 삽니다.
숨기고 싶은 죄악이 들어나야 성령님이 고치시고 감추고 싶은 상처가 들어나야 성령님이 꾀맬 수 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역사하고 하나님이 도움을 주시는 것이지 감추어 진 곳에는 사람의 외식만 있을 뿐입니다.
에이즈처럼 겉으로 보이지 않으면 제천의 택시 기사처럼 큰 사회적인 충격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교회는 흠이 있습니다. 분명 부족함이 있습니다. 상처투성이입니다. 그럼에도 교회는 영광이 있습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내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교회는 천국의 문입니다. 많은 사람을 저주에서 해방하여 복 받게 하는 것이요 죄에서 나오게 하는 곳입니다.
악한 영으로부터 예수의 이름으로 성도를 보존하고 음부의 권세를 가정과 사업과 직장에서 강력하게 몰아내는 기지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셨을 때의 그 모습 그 대로 성령을 의지하여 그 사역을 감당하는 곳 그것이 교회의 영광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누리는 육신의 때는 잠시지만 영혼의 때는 영원한 것입니다.
허물 투성이지만 이 교회를 통하지 않고는 결코 인간의 가치와 기쁨과 영생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교횝니다.
제 작년 10월 21일 동아 일보에 “ 지성에서 영성으로” 라는 타이틀 기사가 실렸습니다.
같은 형제끼리 총을 들고 무참하게 살육했던 6.25 전쟁의 아비귀환을 지켜 본 소년이 있었습니다.
이 소년은 1.4 후퇴할 때는 피난 열차 화물칸 위에 올라 아이를 끓어 앉고 있던 어머니가 추위에 손이 얼어붙어 그만 아이를 놓쳐버리고 실성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이런 비극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서울대학교에서 문학을 전공하며 수십 번 성경을 읽고 읽으면서 반기독교 사상을 키워 갔습니다.
그리고는 한국 최고의 문학가가 되고 초대 문화부 장관이 되어 막강한 필력을 과시하는 분이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이분은 자신의 필력으로 교회를 비판하고 성경을 마음대로 난도질하며 하나님을 무시했습니다. ‘어떻게 의로운 욥에게 상은 주지 못할망정 그의 재산을 하루 아침에 빼앗아가 알거지 만들고 10 명의 자식들을 생으로 죽이고 욥에게 조차 피부병으로 죽어가게 할 수 있냐며 이런 무서운 하나님은 있을 수 없다.
노아의 방주를 봐라 .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며 어떻게 하나님이 그 많은 사람을 다 죽일 수 있느냐 ?
그리고 노아를 봐라 모두 죽는데 저 혼자만 살겠다고 방주 지었잖느냐 . 그게 의인이냐 ?
저만 살겠다고 하는 것이 어떻게 의인이냐 ? 그래서 나중에 다 죽고 저만 살아남자 괴로워서 미친 것 아니냐 ?
그래서 대냊부터 술 먹고 발거 벗고 날 뛴 것 아니냐 ? ‘ 그 분의 문학적인 상상력은 탁월했습니다.
저는 이 분의 책을 통해 성경을 실존적으로 보는 눈이 열렸고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배웠습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품어져 나오는 기독교에 대한 거침없는 독설에 늘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랬던 그 분이 제 작년에 온누리 교회의 일본 러브 소나타 집회에서 신앙을 고백하고 눈물을 흘리며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너무 놀라운 일입니다. 이 일이 얼마나 놀라웠으면 메이져 신문이 타이틀 주제를 잡을 정도였습니다.
이 분은 이화여대 석좌교수인 이어령씨입니다. 이 분이 어떻게 이렇게 바뀌었을까요?
이어령 박사는 자신의 딸이 잃었던 시력을 되찾는 기적을 목도하면서 기독교에 대해 마음을 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눈이 흐릿해져 병원에 갔더니 망막이 손상 돼 병원에서는 수술할 수 없을 정도의 실명 상태가 된 것입니다. 최고의 지성인으로 막힘없이 살던 분이 76세의 나이에 인생의 절망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도 불의하고 불공평하던 하나님이지만 딸의 기막힌 상태 앞에 서니까 도와 달라는 말이 서슴없이 나오더랍니다.
그래서 딸과 함께 찾은 하와이 교회에서 제발 내 딸의 눈을 뜨게 해달라고 그러면 믿겠다며 눈물로 기도했답니다. 철저한 지성인인 자기 입에서 다른 사람 눈은 몰라도 내 딸 눈 만큼은 고쳐 달라는 이기적인 기도가 나오더랍니다. 이것이 여러분 영혼의 때입니다. 육신의 시간은 하나님없이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죽음의 때가 옵니다. 다른 사람 어쩌고 저쩌고 세상 풍조 어쩌고 저쩌고 시국이 어쩌고 저쩌고 간에 나하나 살려달라는 영혼의 때가 반드시 옵니다.
누구 에게나 마지막 영혼의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 때를 향해 세월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손댈 수 없는 상태지만 혹시나 하는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한국에 있는 안과병원을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검사를 한 의사는 처음부터 망막손상이 된 적 없다고 진단을 내렸습니다. 미국과 하와이의 병원에서는 분명이 망막손상으로 실명 일보 직전까지 갔던 눈이 처음부터 이상이 없던 상태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 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기적 때문에 예수를 믿은 것은 아니랍니다. 기적을 보고 믿으라고 한다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소경들이 눈을 떠야 믿을 것이랍니다. 그가 예수를 믿게 된 진짜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내 딸이 내 얼굴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나는 지식과 돈으로 딸을 구할 수 없었는데 하나님은 내 딸의 눈을 뜨게 하고 아버지가 줄 수 없는 행복과 평안까지 주었습니다. 우리 딸의 행복은 아버지의 지식이나 내가 가진 재물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육신의 아버지인 내가 줄 수 없는 그 기적과 행복과 평안을 줄 수 있는 영의 아버지를 그래 나도 믿어보자 . 그 마음을 가졌더니 믿겨지지 않던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믿겨지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그는 덧 붙여 말합니다. ‘나는 바울이 아닌 도마입니다.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 지식인입니다.
그러나 도마도 물에 빠지면 허우적거리고 철저한 절망의 궁극에 이르면 욥처럼 영성의 소리를 듣게 됩니다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보았기에 진짜를 볼 수 없었습니다. 제가 소경이었습니다. ’ 그 분이 양화진 순교자 기념 교회에서 간증하며 끝맺은 말이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 나는 박애주의자 예수는 좋은데 교회는 위선적이라 싫다고 말해왔습니다.
교회는 사람을 심약하게 만들고 목사들은 성도를 우매하게 만든다고 독설을 뿜으며 50 년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살아온 내가 나이 먹어 갈 곳은 교회 뿐 이었습니다. 교회가 불의하더라도 교회는 영생의 문이요 목사님은 하나님과 나의 영혼을 잘 영결해주는 중매자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교회에 나오는 이유는 죄를 이기고 영혼의 때를 준비하러 나오는 것입니다.
교회가 불의하더라도 결코 버릴 수 없는 이유는 교회만이 천국의 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저주로 영원히 죽을 우리를 살리시려고 이곳에 교회를 세워주셨습니다.
좀 껄끄럽더라도 육신의 때가 다 지난 후 영혼의 때를 만날 때까지 공사중인 교회에서 미끄러지고 추락하지 마십시오. 또한 여러분이 육신을 벗어 던지고 영혼의 때를 시작할 때 그 중개자의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저를 위해 많이 기도해 주십시오.
마지막 절 말씀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교회는 서로를 인자하게 불쌍히 여기며 용서하는 교회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은빛 교회의 설립 6년의 세월은 갈등과 온갖 상처 속에서 용납과 친절이 무엇인지를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이 부족한 목사를 향해 그리고 우리 서로를 향해 그리스도의 용서를 실천한 시간이었습니다.
뼈 아픈 고통의 시간을 용납하며 자신의 성숙을 함양하고 영혼의 때를 향해 가는 시간 그것이 교회의 나이입니다.
이제 우리는 6년의 세월을 뒤로 하고 새로운 시대를 향해 나아가지만 완벽함보다는 연약함이 더 많이 불거져 나올 것입니다.
그 때 어떻게 하시렵니까 ? 미끄러지고 추락하시겠습니까 ? 아니면 불쌍히 여기시며 용서 하시겠습니까 ?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심처럼 용서할 때 이 교회는 천국의 문이 열리며 하늘로 부터 맺힌 것이 풀어 질 것입니다.
음부의 권세가 우리의 심령과 가정과 기업을 삼키지 못하는 강력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을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은빛교회의 출발은 목사부터 허점과 허물이 많은 그렇고 그런 출발이었습니다. 그러나 분명 주님이 세우신 천국의 문이었습니다.
6년의 시간 동안 이 교회가 가진 것이 있다면 철없는 목사를 잘 섬겨주신 우리 성도님들의 인자한 용납 뿐입니다. 저는 믿습니다. 이 예수님과 같은 그 용납 때문에 우리는 죄의 권세를 이기고 땅에서나 하늘에서 맺힌 모든 것을 풀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육신의 때가 다 지나고 우리 앞에 천국 문이 활짝 열리게 되는 영혼의 때를 아름답게 시작할 것입니다.
이 복되고 이상적인 교회를 향해 우리 모두 재도약 할 수 있는 오늘 이 시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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