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크리스토발(San Cristobal) Mexico
산 끄리스또발의 원래 명칭은 San Cristobal de Las Casas(라스 까사스의 산 끄리스또발)입니다. 이도시는 해발 2,120m에 있으며 인구는 약 8만명이고 오래된 도시라 관광객들이 많이 찾습니다. 도시 이름 치고는 길고 특이합니다. 그 생경한 이름 속에 낯익은 또 하나의 이름이 들어있습니다. 성직자 라스 까사스(Las Casas). 주의 종이었지만 이교도들인 선주민의 인권을 위해 헌신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원래 한 쿠바 농장의 노예소유주였습니다다. 1502년 콜럼버스의 두 번째 항해 때 아버지와 동행하여 소위 신대륙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역사의 각색을 거친 탓일까, 시대의 파고 탓일까. 그의 인생행로는 전형적일만큼 극적입니다. 선주민을 학대하지 말라는 몬테시노스 신부의 설교를 듣고 깨달은 바가 커서, 1515년 자신이 소유한 엔코미엔다를 버리고, 1524년에는 재산마저 모두 헌납한 채 도미니크 수도회에 들어갔습니다. 그 후 아메리카에서 최초로 서품을 받은 신부가 되어 지금의 멕시코 치아파스 지역에서 포교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그는 선주민을 포교할 적에도 그들을 미개하다고 여기지 않았으며, 다른 신을 섬기더라도 그들이 보여준 신심을 찬양했습니다. 라스 까사스는 다른 사제들이 지니고 있던 편견과 맞서 싸웠으며, 정복자들이 선주민을 수탈하려 들면 힘주어 비난했습니다. 선주민에게 뭇매를 가하고 돌아와 정복자들이 신께 죄를 고백하려 할 때면, 그들에게 고해성사의 기회를 주는 일마저 거부했습니다. 아울러 저술 작업에도 나서 <인디아스 파괴에 관한 짧은 보고서>를 통해 정복자들의 만행을 구세계에 고발했습니다.
3월29일 산 크리스또발(San Cristobal)시에서 약 30분거리의 Grutas de Rancho Nuevo(구루따스 새 목장)에 갔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의 소유권 논쟁은 소위 ‘신대륙’에서의 대량학살에 대한 평가와 직결된다. 땅에 대한 소유권을 가질 수 없는 선주민들은 생명권도 박탈당했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1492년부터 1560년 사이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약 4000만 명이 사라졌습니다. 물론 그 안에는 전염병으로 인한 희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에서 저지른 이 역사적 장부는 청산되지 않았으며, 청산될 수 없습니다. 라스 까사스는 그 장부를 기록한 최초의 유럽인이었습니다.
이것은 멕시코의 전통음식 따꼬(Taco)입니다.
동굴 앞에서..
동굴 속에서
종유석 앞에서
동굴 밖으로 나왔습니다
여기에 박물관도 있습니다. 라스 구르따스의 생활역사 박물관이 있습니다.
치와빠스는 주이름입니다. 멕시코의 치와빠스 주의 산 끄리스또발 시입니다.
농장에 사슴이 한가로이 물을 먹고 있습니다.
숲이 이루고 있는데 이곳 날씨는 약 20도 입니다. 한라산보다 높은 위치에 있어서 입니다.
멕시코의 낮은 해안가는 37도이상입니다.
식당가에서
복스바겐의 딱정벌래 차를 오랜만에 보았습니다. 히틀러가 사막을 가다가 차가 오버이트하니까 공냉식으로 개발하여 만든 차로 전세계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얻었던 차인데, 이름도 Beetle(딱정벌래) bug(벌래) 스페니쉬로는 La curalacha(바퀴벌래)등등으로 불리는 차입니다.
멕시코를 넘어 과테말라의 Xela(셀라)의 알롤몽가의 온천호텔로 왔습니다.
이곳에 와 온천물에 담그니 몸의 피로가 다 풀리더군요.
내 방앞에 있는 공동 온천탕입니다. 나는 내방의 개인 온천을 즐겼습니다.
이곳주민은 95%가 기독교인입니다. 그래서인지 방 키에 Camina con Jesus (까미나 꼰 예수스) "예수님과 동행"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온천 호텔의 식당
수영장에 들어가기전에 먼저 씻으라는 문구입니다. 방이 10개 정도의 호텔이고 이곳은 온천장으로 유명합니다. 돈을 내면 한시간동안 개인온천 방으로 가서 온천을 즐깁니다.
이곳은 호텔안이지만 밖에는 온천방들이 쭉 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온천방문자들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