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지새운 후 글을 씁니다. 영혼이 잠들지 못하는 밤이 찾아들 때가 있습니다. 간밤이 그런 날이었습니다. 불심 검문처럼 하나님께서 불시에 "네 영혼을 내놔 봐라." 하시는 거지요.
밤새 많이 울었습니다. 눈물 길을 따라 뉘우치고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패스트리처럼 또 한꺼풀 죄의 껍질을 벗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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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밤 죽음이 찾아온다면, 하나님께서 오늘 내 영혼을 거둬가겠다 하시면 나는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아무쪼록 그 준비를 하려고 저는 요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사죄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의 10년 간 저는 여러가지 죄를 지었습니다. 배 고파서, 돈 고파서, 마음 고파서, 인정 고파서, 사랑 고파서...
먼 길 떠나기 전 차량 점검하듯, 체력 체크하듯 머지 않아 영원히 떠나갈 먼 길, 영혼의 귀로를 앞두고 수시로 영 상태를 살핍니다.
생명보험의 약관이 아무리 복잡해도 필요시 약속된 보험금이 지급되어야 하는 것처럼, 성경 신 구약 66권을 죄다 외운다 해도 유사시 '사랑'이 인출되지 않으면 말짱 헛소리지요. 성경은 '사랑'을 가르치는 책이니까요.
제가 아버지께 편지를 쓰고 또 쓰다가 고2 어느 날 '생각'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했지요. '지적 인간'이 되는 눈이 뜨인 거지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던 데카르트의 명제가 제 말이 되어 한 평생 인문학에 젖어 살았습니다.
생각을 마구잡이로 해서는 안 되니까 '생각하는 방법', 즉 철학을 대학에서 배우기도 했고요. 책을 읽으며 사유를 훈련하고, 기사로, 칼럼으로, 소설로 논리와 표현을 정연히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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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제가 2년 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삶의 명제가 극적으로 바뀌었습니다.
"나는 사랑한다. 고로 존재한다."로.
더 이상 생각이 저를 존재하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생각이 차오를 때마다 비워냅니다. 생각대신 믿음으로, 사랑으로 그 자리를 채웁니다. 생각으로 잘 살 것 같았으면 지금 제가 왜 이꼴이겠습니까.
사랑할 수 있다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처지와 형편이라 해도. 제 독자 중에는 사고로 사지가 마비된 남편을 23년 째 수발 드는 분도 계시고, 어린 자녀를 희귀병으로 잃었지만 같은 병을 앓는 다른 어린 생명들을 위해 신약 개발 승인이 나도록 혼신을 다하는 분도 있습니다. 두 분 모두 사랑으로 가능한 일이지요.
사랑하되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요? 가능하지 않아도 원리는 그렇습니다. 그 원리는 예수님으로부터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니까요.
'모든 사람' 속에는 제 전남편도 당연히 포함됩니다.
또한 예수님은 말씀하시죠. "사랑스러워서 사랑하는 거야 누가 못하냐. 안 사랑스러워도 사랑하는 게 진짜 사랑이지. 그러니 사랑하라."고.
저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바울이나 베드로만 예수님 제자가 아니라 저도 엄연한 제자입니다. 장군만 군인이 아니라 이등병도 군인이듯이요. 그러니 예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금과 은은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리라."한 베드로처럼 저 또한 물질로 돕지는 못하지만 제가 가진 것, 즉 말과 글로 섬기고 사랑하겠습니다. 끝까지 위로하고 공감하며, 영혼을 살리는 글과 말을 하겠습니다.
저더러 왜 이번에 호주를 가는지 묻는 분들께 답이 되었겠지요?
네, 제 전남편을 다시 사랑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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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축하합니다 박수 뜨겁게 보냅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