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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길 7코스, 10코스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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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너무너무 예뻐요."
"엄마 눈에 벌(별)님 있어요."
날마다 내 미모에 대한 칭송이 자자한 호시절. 세상이 '깝깝하게' 돌아가도 진실로 성질 뻗치는 일은 한 가지, "꽃얄리군은 제굴(큰
아이)이보다 좀 못 생기지 않았어?"라는 남편의 간 큰 평뿐. 나는 평온하다. 제굴은 10대 소년이니까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불퉁불
퉁, 꽃얄리군은 젖을 떼고도 여전히 보들보들. 내 혈기는 열 살 터울 형제의 육탄전 덕분에 불끈불끈.
가끔 '혼자서 어디 좀 가고 싶다'는 생각을 코딱지처럼 궁굴렸다. 생각도 살아 있는지라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슬슬 어슬렁거려도,
빡 세게 산을 타도 좋을 것 같은데 앗싸! 군산의료원 산악회에서 올레 길도 걷고, 한라산도 오른단다. 나는 직원이 아닌 명예회원,
순번에서 밀릴 게 빤한 급박한 순간! 사흘 동안 집을 비우지만 신청부터 했다.
아기를 품었다 낳아 기른 3년, 오랜만에 만난 의료원 사람들은 "배지영, 그대로네"라고 했다. 이제는 그런 말을 들어야 할 만큼 나
이를 먹었다는 뜻이다. 쑥스러운 나는 "그런 립 서비스, 참 좋아요"라고 했다. 그랬더니 동구 선생님은 "흰 머리도 좀 있네"라고 했
다. 억울했다. 꼼꼼한 조사에 따르면, 현재 흰머리는 3개, 뽑아낸 건 5개. 좀 있는 편은 아닌데.
첫날, 올레 길 7코스를 걸었다.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고 아낀다는 소문대로 외돌개는 명절기차 예약하는 곳 같았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이국적인 당종려나무가 있는 속골을 지나면 초과학 체험도 할 수 있다. 염소만 다니던 길을 삽과 곡괭이로 일궜다는 수봉
로 흙길에서 멈춰 보시라. 그 많던 사람들은 순간이동 해 버리고 할랑할랑 걷는 이들만 남아 있으니까.
"여기를 언제 와 봤더라?"
법환 포구에서 기억을 가다듬었다. 남편이랑 큰아이랑 온 적 있다. 럭셔리한 테디 베어나 코끼리 쇼보다 마음이 갔던 곳, 법환 마
을. 한쪽에서는 엄마들이 빨래하고, 다른 쪽에서는 아이들이 물놀이하고 있었다. 젊었던 우리 엄마도 힘차게 옷을 빨았고, 나도 손
발이 탱탱 불도록 놀던 어린 시절. 그 생각이 나서 머리통이 뜨거운데도 구경하던 몇 년 전 여름.
풍경 속에 사람이 들어가면 추억이 된다. 남편도 아이들도 여기로 데려오고 싶다. 맑은 물만 보면, 방망이를 팡팡 두드리며 빨래하
고 싶어 하는 우리 엄마 조 여사도 강제 소환하고 싶다. 나는 효녀니까, 흙에서 뒹굴며 제대로 옷을 '후질러서' 조 여사를 기쁘게
해 드리고 싶다. 방망이질하는 조 여사 옆에서 아이들이랑 까불며 놀고 싶다.
조 여사는 내게 자매까지 주었다. 베이비시터가 퇴근하는 오후 7시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우리 아이들을 보는 이는 동생 지현이
다. 엄마 없다고 노트북을 끼고 저 좋아하는 것만 실컷 할 제굴, 일상 자체가 지시와 요구로 이루어진 꽃얄리군 때문에 일찌감치<
무한도전>과 '연느님' 피겨 시청도 포기하신 분. 신세 지고 떠나는 내 발걸음이 무거울까 봐 격려사까지.
"자매~ 애기들은 원래 우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 재밌게 잘 놀다 와."
오전 6시 30분, 한라산에 가려면 영실로 가야 하는데 버스는 안 움직인다.
입.산.통.제. 원인은 바람. 밤새 숙소에 킥을 날리던 실체도 바람. 간판을 날아다니게 하고, 비행기를 붙들어 맨 것도 바람. '미소
천사'인 류용희 선생님도 일곱 번이나 좌절한 끝에 오를 수 있었다는 한라산. 인간이 자연을 거스를수록 파멸은 가까워지는 법, 공
덕을 쌓아 다음 기회를 노리자.
'미중년'인 이희복 선생님이, 이런 궂은 날에 비행기를 안 타는 것이 행운이라며 다른 길을 안내한다. 올레 10코스, 화순 해수욕장
으로. 비옷을 입을까 망설일 정도로만 비가 온다. 걷다 보면 마라도, 가파도, 한라산, 산방산을 볼 수 있는 곳이라는데 당연히 시야
는 흐릿하다. 파도는 해수욕하는 사람 체온이 그리운지 걷는 이들 곁으로 바짝 덮쳐온다.
4.3 항쟁을 담담하게 일러주던 버스 기사는 우리를 내려주며 올레 길에서는 시계를 보지 말라고 했다. 나이를 먹었어도 각자 마음
속에는 말 안 듣는 아이 하나쯤은 들어 있을 텐데도 누구 하나 저항하지 않고 느긋하게 따른다. 걸으면서 삶은 문어가 보이면 그것
을 먹고, 막걸리와 파전을 팔면 또 먹는다. 맥주나 커피가 있는 곳도 세심하게 들러준다.
나는 걷다가 고사리를 발견한다. 어떤 사람은 궁궐에서 "김상궁, 게 있느냐?"하며 전생의 자신을 만난다. 나는 고사리를 보면 몇 만
년 전의 채집하는 인간이 된다. 소유의 개념이 없던 때로 돌아간 거니까 친구 길림에게 몽땅 주고서도 기쁘기만 하다. 그런 날 밤
이면, 테트리스 게임에 빠져 있던 때처럼, 천장에서 "띠띠 띠리리리~" 하면서 고사리가 내려온다.
한쪽에서는 '삐비'를 뽑아 껌처럼 씹고 있다. 제주 출신인 장성조 부장님은 제주도 말로 '삥이'라고 가르쳐준다. 섬은 먹을 게 귀해
서 먹었다는데 육지 사람들도 이걸 아느냐고 묻는다. 나는 그때 이재희 언니 얼굴을 본다. 그녀는 '삐비'뿐만 아니라 메뚜기, 개구
리로 만든 '만세탕'도 열심히 먹고 자랐다. 그녀의 강철 체력 8할은 그때 만들어졌을 거다.
사람들은 말똥 옆에서 도시락을 까먹고, 유채꽃밭에서 논다. 전염병이 번지듯 머리에 꽃을 꽂기 시작한다. 나도 그만 따라 하고 만
다.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꼬아 돌려본다. 이러면 안 되는데 눈에 힘이 풀리고 실실 쪼개는 웃음이 난다. 이미지 실추다. 현대의
학은 언제쯤, 머리에 꽃 꽂은 여자가 광녀처럼 '순박'해 지는 걸 막는 신약을 개발할까나.
젊고 아리따운 처자들이 나보고 사진 찍어달라고 한다. "좀 비싼데… 백 원 줘요"하고 찍어줬는데 초콜릿 다섯 개를 준다. 마다해
도 주기에 "다섯 번 더 찍어줄게요" 했지만 다음부터 외면하는 느낌. 하긴, 나도 청춘의 시절에는 서른아홉 살도 늙수그레하게 여
겼는데, 뭘. 그래도 누군가 <올레 길 유머 무작정 따라 하기> 같은 책을 내면 반드시 읽어 보리라.
생각해 보면, 사람 사이에는 타이밍이 있다. 나한테는 등산용 고급 비옷을 선물해 주고, 자기는 우산을 챙겨온 내 친구 길림. 우리
가 10대나 20대 시절에 만났다면 한 공간에 있었다 해도 가까워지지는 못 했을 거다. 놀러 가서 밤도 안 깊었는데 술 그만 먹으라
하고, 남자 애들이 놀자 하면 방어막을 치고, 아침 일찍 일어나 혼자 밥하는 아이였던 길림.
지금은 내 자식과 내 남편이 먼저인 아줌마들, 자신을 위해 돈과 시간을 쓸 때면 좀 재 봐야 하는 처지. 그러나 '미스 코리아'만 못
나가지, 할 수 없는 일이 뭔가. 뱀 있어도 신나서 산나물을 뜯고, 주제를 넘나드는 '박식'한 수다를 무한정 떨고, 연말이면 마음 둔
곳에 쌀과 돈을 보낸다. 스타일이 달라도 나는 길림이 아주 잘 보인다.
해가 지기 전부터 사람들은 노래하고 춤춘다. 탁자 위에 올라가고, 화장지를 흩날리며 열광한다. 나는 <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
다>에 나온 옛날 엄마들의 화전놀이를 생각한다. 한복을 입고, 장구를 치고, 하루 내내 꽃전에 막걸리를 먹는다. 얌전한 엄마도,
술 못 하는 엄마도, 그날만큼은 발악적으로 동네 뒷산에서 놀았다는, 1년에 단 한 번 주어지던 화전놀이.
노래방 화전놀이는 연장, 연장, 연장. 그럴수록 두고 온 일상은 닥쳐오고 있다. 떠나오면서 나는 곧 두 돌 되는 꽃얄리군에게 "엄마
두 밤 자고 올게"라고 했다. 난생처음, 엄마 없는 밤을 보낼 아이는 "세 밤 자요"라며 은혜를 베풀었다. 그래도 마음을 파고들던 불
안, 맛있는 거 먹을 때랑 아이가 좋아할 만한 하멜 상선에서는 근심으로 마음이 두근댔다.
군산에 오니까 마중 나온 남편과 꽃얄리군을 안고 있는 동생 지현이 보였다. 지루한 걸 참지 못하는 소년 제굴이는 차로 막 들어간
참이었다고. 우리 식구들을 본 이지연 선생님이 "유럽 여행이라도 갔다 온 줄 알겠네"하며 웃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꽃얄리군을 안
고 숨을 들이켰다. 아, 보드랍고 달큼한 아기 냄새! 이로써 내 화전놀이는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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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올레 걷기가 절정에 다달았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