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조상의 묘를 벌초하기 위해 귀향을 나섰다가
고속도로와 국도가 정체를 빚고 있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조상이 없었다면 나 또한 현재 존재하지 않았을 것을 생각하니,
그동안 조상의 묘를 성실히 돌보지 못했더라도 조만간 벌초를 가야겠다는 마음가짐이 생길 것입니다.
올해 김 교도관은 20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묘를 벌초하러 고향에 가지 못했습니다.
매년 추석 때 고향에 내려가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올해는 꼭 아들의 도리를 다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는데,
혼자 계시는 어머니께서는 “힘들게 뭐하러 내려오니, 내가 벌초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울먹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김 교도관은 동료들과 회사에서 조금 떨어진 공동묘지를 찾아 벌초를 떠났다고 합니다.
누구의 묘를 벌초하고 있는 걸까요? 분명 조상의 묘는 아닐텐데요.
찾아간 곳은 ‘교정시설에서 질병 또는 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수용자들의 묘’라고 합니다.
교정시설에서 수용자가 사망할 경우 일반적으로 유족에게 전달되는데,
유족이 없거나 찾아가지 않는 경우
법률에 따라 이렇게 묘를 만들어 관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제128조(시신의 인도 등)
① 소장은 사망한 수용자의 친족 또는 특별한 연고가 있는 사람이 그 시신 또는 유골의 인도를 청구하는 경우에는 인도하여야 한다. 다만, 제3항에 따라 합장을 한 후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 소장은 제127조에 따라 사망 통지를 받은 사람이 통지를 받은 날부터 3일 이내에 그 시신을 인수하지 아니하거나 인수할 사람이 없으면 임시로 매장하여야 한다. 다만, 감염병 예방 등을 위하여 필요하면 즉시 화장을 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개정 2009.12.29>
③ 소장은 제2항에 따라 시신을 임시로 매장한 후 2년이 지나도 인도를 청구하는 사람이 없으면 합장하거나 화장할 수 있다
김 교도관과 동료들의 벌초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제초작업 사진>
낫 등 제초도구를 이용해 조심스럽게 벌초를 하고 있습니다.
일반 묘와 달리 봉분이 크지 않고, 비석 대신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표지석이 있네요.
<표지석 청소>
운명을 달리한 수용자의 이름과 사망일시를 기재한 표지석을 청소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표지석을 세우는 이유는
다시 가족들이 인도할 경우 또는 합장할 경우를 대비해서라고 합니다.
각종 산짐승이 묘를 훼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스테인리스 재질의 표지석을 만들었고 이로 인해 누구의 묘인지 확인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성묘 사진>
명절날 이들을 찾아와 성묘하는 가족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도 다르고 피도 섞이지 않은 교도관이
합장묘 앞에서 상을 차린 후 성묘하고 있습니다.
비록 세상에서는 범죄를 저질렀지만,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숙연해지는 것이라고 하는데요.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지금과 모습과 잘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잠시 지난 17일 방송된 MBC 드라마 <골든타임>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사진출처: MBC <골든타임> 홈페이지
교통사고가 난 환자가 긴급 이송되어 결국 수술 중 죽었습니다.
눈 앞에 나타난 보호자는 어린아이 두 명이였습니다.
의사인 최인혁(이성민 분)은 마음을 다잡고 "아버지가 많이 다치셨고 최선을 다했지만 살리지 못했다.
미안하다. 9월17일 10시 45분에 아버지 돌아가셨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상황을 속상해하고 있는 이민우(이선균 분)에게
"의사가 모든 환자를 다 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책임을 져야한다"며
"사망 진단서 떼기 전까지 그리고 유가족에게 정중하게 대하는 것까지
모두 의사가 해야 할 일이다"라며 의사의 본분을 말해주었습니다
김 교도관의 본분은 어디까지일까요?
수용자가 교정시설에 입소한 시점부터 출소할 때까지 재범하지 않도록 교정교화하여
사회에 복귀시키는 것이 교도관의 본분이라고 여겨왔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가족들에게 버려진 망자의 묘를 가족처럼 돌보는 것 또한
교도관의 본분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취재= 안양교도소 총무과 교사 김정섭
출처 : http://blog.daum.net/mojjustice/8705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