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테가베네타」 vs. 「펜디」. 얼핏 보면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이 2개의 럭셔리 브랜드가 전세계 명품시장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굳이 공통점을 떠올려 본다면 ‘이탈리아 브랜드’ 또는 ‘최근 뜨는 럭셔리 브랜드’를 연상할 것이다. 모두 맞다. 전통있는 이탈리아의 두 브랜드를 대표하는 가장 뚜렷한 공통점이라면 이들이 세계 1·2위 럭셔리 멀티브랜드 그룹 LVMH와 구치그룹에서 전략적으로 키우는 세컨드 캐시카우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루이뷔통」과 「구치」의 영예를 이어갈 럭셔리 그룹의 전략적 포스트, 세컨드 베스트 브랜드다.
「보테가베네타」는 구치그룹의 전략 브랜드다. 수석 디자이너 톰 포드가 「구치」 「이브생로랑」을 디자인하던 시기에 「이브생로랑」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지만 최근에는 스타 브랜드로 떠올랐다. ‘베네치아의 아틀리에(Bottega Veneta)’라는 뜻의 브랜드 명이 언급하듯 「보테가베네타」의 수공예 핸드백은 성공을 거듭하고 있고 2005년 런칭한 RTW에 이어 작년에 새로 런칭한 주얼리, 홈 퍼니싱 부문도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보여주며 미래의 성장 모멘텀에 가세하고 있다. 「보테가베네타」의 급부상은 회계실적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2005년에는 영업이익이 흑자로 돌아섰고 지난 2~3년간 매출도 비약적으로 늘었다. 가장 최근 발표된 2006년 실적보고서에 따르면 매출은 2억6700만유로(약 3340억원)를 기록해 전년대비 67.2%가 증가했으며 영업이익은 5500만유로(약 688억원)로 전년대비 300% 상승했다.
인수 5년 만에 매출 7.6배 비약적 성장
2001년 2월 구치그룹이 「보테가베네타」를 인수하던 당시 매출이 3500만유로(약 438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5년 만에 매출이 7.6배로 상승한 것이다. 2004년만 해도 매출은 1억유로(약 1250억원)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최근 2004~2006년에 매출은 160% 증가했고 2.6배 규모로 성장했다.
패션계의 많은 이들에게 이같은 비약적인 성장은 놀라운 뉴스임에 틀림없지만 「보테가베네타」의 성공은 예견된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2004년 4월 톰 포드와 도메니코 데 솔레 CEO가 퇴진하면서 모기업 PPR과 구치그룹에 새로 등장한 창업주의 2세 프랑수아 앙리 피노 회장은 취임 후 곧 「보테가베네타」의 성장 가능성을 자신있게 언급했다.
앙리 피노 PPR 회장 겸 CEO가 취임한 2004년 당시 「구치」는 단연 구치그룹의 효자 브랜드로 다른 브랜드들의 손실을 충당하고도 남는 영업이익을 내는 제1의 브랜드였고 「보테가베네타」는 소규모 브랜드들 중의 하나로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 당시의 관심사는 투자를 지속하고 있는 「이브생로랑」이 향후 어느 시점에 적자를 흑자로 돌리고 과거의 전통을 상업적 성공으로 이끌어낼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또한 구치그룹에는 「보테가베네타」를 제외하고도 「발렌시아가」 「알렉산더맥퀸」 「스텔라맥카트니」 등 유명한 브랜드가 많았다. 「보테가베네타」에 대한 주목은 선견지명이었고 예상은 적중했다. 「이브생로랑」은 2006년 실적에서도 매출은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4900만유로(약 613억원)의 손실로 여전히 적자 상태에 있다.
2006년 3340억원 매출, 이익 300% 상승
그 외 브랜드들도 성장세는 크지만 「보테가베네타」만큼은 되지 않는다. 「발렌시아가」 「알렉산더맥퀸」 「스텔라맥카트니」 「베다앤코」 「세르지오로씨」 「부쉐론」 등 그 외 브랜드들의 실적은 2006년 처음으로 소폭인 1000만유로(약 125억원)의 순익을 기록해 흑자로 전환했으며, 매출은 3억8100만유로(약 4765억원)를 기록했다.
「보테가베네타」와 「이브생로랑」을 1대1로 비교하자면 2005년 말 매출 규모가 거의 비슷해지면서 「보테가베네타」가 처음으로 1400만유로(약 17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을달성했고 2005년 당시 「이브생로랑」은 6600만유로(약 825억원)의 적자상태에 머물렀다. 2005년 매출 규모는 「보테가베네타」가 1억6000만유로(약 2001억원), 「이브생로랑」이 1억6200만유로(약 2026억원)로 비슷했다. 2005년을 기점으로 「보테가베네타」는 구치그룹의 2인자 자리를 확실히 꿰찼고 지금은 성장 모멘텀을 기반으로 RTW, 주얼리, 홈퍼니싱 부문 등 라인 확장과 점포 확장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물론 「이브생로랑」도 실적이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 2005년 정체 상태던 실적이 2006년에는 매출이 20% 증가했으며 적자폭은 25%가량 감소했다. 그러나 실적 개선은 예상 외로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고 여전히 향후 실적에 대해 확실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태다. 2006년 회계실적보고회에서 구치그룹의 로버트 폴렛 CEO는 「YSL」의 흑자 전환 시기에 대해 명확히 제시하는 대신 향후 매출 규모가 3억유로(약 3752억원) 수준이 되면 흑자로 자연스럽게 전환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보테가베네타」는 무서운 성장세를 이어 나가 지금의 2배 규모인 5억유로까지 단숨에 키우고 그 이상의 브랜드로 세를 확장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보테가베네타」의 CEO 파트리조 디 마르코(Patrizio Di Marco)는 한 인터뷰에서 “5억유로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며 그 이상도 가능하다고 본다”고 언급하면서 “「에르메스」의 브랜드 포지셔닝과 비교해 볼 때 불가능하다고도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에르메스」는 2006년 매출이 15억2000만유로(약 1조9000억원)를 기록했다.
급성장 비결 ‘희소성’ 높은 니치 브랜드
이렇게 빠른 「보테가베네타」의 급성장 비결은 무엇일까? 업계 전문가들은 「보테가베네타」가 빅브랜드적 성격이 거의 없는 니치 브랜드이지만 3000억원 규모로 급성장한 요인에는 장인정신이 강한 상품력과 ‘희소성’이 주효했다고 진단한다. 「보테가베네타」는 전형적인 니치 브랜드다. 최저가가 1500달러에서 시작해 최고가 7만5000달러까지 이르는 「보테가베네타」는 진입가격대가 높은 엘리트 브랜드이고 소수 부유층에만 어필하는 독점적 상품이다. 게다가 로고가 겉에 드러난 것도 아니고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는 ‘it’백도 아니다.
그러나 이처럼 대중성을 배제한 ‘희소성’은 장인정신이 스며있는 퀄리티 있는 가죽의 지그재그 짜임(intrecciato)의 오리지널리티와 만나면서 소비자들의 마음속에 ‘럭셔리’의 이미지를 심었다. 「보테가베네타」가 럭셔리 이미지를 제대로 각인시켰다는 것은 정보업체의 조사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2006년 미국의 정보업체 럭셔리 인스티튜트는 미국 럭셔리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럭셔리 브랜드’ 하면 연상되는 브랜드를 조사했고 「보테가베네타」가 ‘가장 명성 있는 럭셔리 브랜드’로 선정됐다. 「보테가베네타」는 남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많은 수의 럭셔리 브랜드가 더 넓은 소비자층을 공략하기 위해 낮은 가격대의 상품을 출시하고 세컨드 라인을 런칭하기도 했고 세일정책을 활용했다. 또한 유명 셀러브리티를 활용한 광고캠페인으로 브랜드의 인지도를 늘렸고 너나 할 것 없이 ‘it’백을 디자인했다. 그러나 「보테가베네타」는 이런 전략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NO 저가상품, NO 세일정책, NO ‘it Bag’
오로지 가죽의 퀄리티, 장인정신, 참신하면서도 튀지 않는 디자인, 가죽 짜임으로 된 틀이 없는 부드러운 구조 등 상품개발에만 전념했다. 2001년 인수합병 초기부터 「보테가베네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한 토머스 마이어(Thomas Maier)는 이런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처음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다면서 “6월 12일 첫 근무를 시작한 이후 9·11사태, 사스를 겪어내야 했고 로고도 없는 상품을 디자인해 왔다. 아시다시피 「보테가베네타」는 그 당시 럭셔리 마켓의 철학과는 전혀 다른 철학으로 지금까지 왔다”고 언급했다.
또한 새로운 점포 개점은 매출 증가에 크게 기여했다. 2001년 2월 구치그룹이 인수했을 당시 17개 점포에 불과하던 「보테가베네타」의 점포는 현재 97개까지 증가했다. 2005년에는 18개 점포의 문을 열었고, 개점했고 2006년에는 파리의 몽테뉴 애비뉴 점포와 일본 도쿄의 오모테산도 점포 등을 포함해 14개의 점포를 오픈했다.
이런 점포망 확장은 2006년 2억6700만유로(약 3340억원) 매출 규모를 달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보테가베네타」는 계속해서 점포 개점에 투자할 계획이다. 올해는 일본 도쿄의 긴자 지역에 가장 큰 규모(603㎡, 약 180평)의 플래그십숍을 개점하며 이어 중국의 상하이와 베이징에 첫 중국점포를 개점하는 등 몇 개의 점포 오픈을 계획하고 있다.
올해 도쿄 상하이 베이징에 플래그십숍
「보테가베네타」의 성공은 일본에서의 인기가 주요인으로 작용했다. 매출 실적에서도 일본은 전체 매출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2004~2005년 일본의 매출은 전체의 33%를 차지하고 2006년에는 전 세계 시장에서의 인기를 반영하듯 일본의 마켓셰어가 조금 줄어든 31%를 차지했다. 2006년에는 유럽이 29%로 매출 2위, 미국과 캐나다는 19%로 3위의 매출 순위를 각각 잇고 있다.
토머스 마이어 수석 디자이너는 “일본인들이 단지 로고를 원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면서 일본인들의 「보테가베네타」에 대한 애정과 럭셔리에 대한 오랜 역사를 언급했다. 이를 반영하듯 「보테가베네타」는 작년 4월 일본 도쿄 오모테산토에 플래그십숍을 오픈하면서 오픈 기념으로 패션쇼를 성대하게 개최했다. 또한 한정판 핸드백을 출시해 일본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현재 전 세계에서 97개의 점포를 운영하는 「보테가베네타」는 매출의 83%를 가죽제품이 차지하고 있지만 RTW와 작년에 런칭한 주얼리, 홈퍼니싱 부문에도 중점을 둔다. 2006년 실적보고에 따르면 부문별 매출에서 RTW는 7.1%를 차지하고 풋웨어가 6.2%, 그 외 라인이 3.2%를 각각 차지한다. RTW 라인에 대해서는 2005년 3월 처음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여성복 컬렉션을 열어 평론가들의 좋은 반응을 얻어내며 성공적으로 마쳤다.
RTW, 주얼리, 홈 인테리어까지 라인 확장
그후 「보테가베네타」의 패션쇼는 바이어와 평론가들 사이에서 밀라노의 베스트 컬렉션으로 매년 포함되고 있으며 「구치」의 톰 포드가 센세이션을 일으켰듯이 「보테가베네타」의 수석 디자이너 토머스 마이어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2006년 6월에는 남성복을 런칭해 2007년 봄·여름 패션쇼를 개최했다.
액세서리, RTW 부문 이외에도 작년 4월에는 주얼리 라인을 런칭했다. 「보테가베네타」의 오리지널리티인 격자꼬임 기술은 팔찌와 목걸이에도 활용됐으며 가격대는 1만~1만8000달러의 최고가로 책정됐다. 또한 작년 4월에는 가구를 포함한 홈퍼니싱 라인도 새롭게 런칭했다. 「보테가베네타」의 가구 라인은 올가을 리모델링을 마치는 로마의 세계적 호텔 생레지스(St. Regis) 스위트룸을 채울 계획이다. 베네치아 감성의 「보테가베네타」 가구 라인은 소비자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보테가베네타」는 격자무늬의 장인적인 가죽 제품에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RTW, 주얼리, 가구 라인까지 포함하는 명실공히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의 진화를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
「펜디」, LVMH서 「루이뷔통」 이을 브랜드
구치그룹에 「보테가베네타」가 있다면 LVMH에는 「펜디」가 있다. 「펜디」는 2005년 이후 괄목할 성장세를 이어가면서 LVMH그룹에서 「루이뷔통」을 이을 세컨드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LVMH가 「펜디」를 인수한 것은 99년 10월. 프라다와 50대50 합작회사를 설립한 LVMH는 구치그룹과의 치열한 「펜디」 인수전에서 승리, 펜디 패밀리로부터 51%의 지분을 인수했고(2000년 7월 매각 완료) 2001년에는 프라다 그룹의 지분 25.5%를 인수해 LVMH 그룹으로 편입했다. 2004년에는 94% 지분을 소유했으며 나머지 6%는 펜디 패밀리의 카를라 펜디가 소유하고 있다.
인수 당시 LVMH-프라다 합작회사의 인수금액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펜디」 순익의 33배 정도인 9억5000만달러로 추산하고 LVMH-프라다 합작회사가 지불한 55% 지분 인수액이 5억4500만달러로 추산했다. 당시 전문가들이 생각하는 적정 금액이 럭셔리 브랜드들의 경우 순익의 25배였던 것을 감안하면 구치그룹과의 인수전쟁에서 LVMH-프라다가 고가의 프리미엄을 얹어 「펜디」를 인수했다고 평가됐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프라다의 파트리조 베르텔리 CEO는 “「펜디」는 5억달러 매출이 가능한 브랜드”라고 언급했으며 LVMH 이사들도 인수액보다는 「펜디」의 잠재력에 무게중심을 뒀던 것으로 보인다. 98년 「펜디」의 매출은 1억4800만달러, 이익은 1650만달러(99년 11월 24일 WWD. 당시 유로를 달러로 환산한 액수. 유로 밝히지 않음)라고 밝혔다.
LVMH, 높은 프리미엄가로 인수 ‘구설수’
이처럼 고가의 프리미엄을 얹어 인수한 「펜디」였지만 인수 초기 몇 년간 「펜디」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2001년 11월에는 「질샌더」 「헬무트랑」 「처치그룹(Church’s Group)」 등 무리한 M&A로 자금압박을 받은 프라다 그룹이 지분 25.5%를 LVMH에 매각하는 일이 벌어졌다.
프라다 그룹은 4년 동안 LVMH로부터 2억9500만유로(당시 2억6000만달러), 처음에는 3500만유로를 받고 나머지는 4차례에 걸쳐 받는 조건으로 「펜디」를 매각했다. 당시 「펜디」의 실적에 대해서는 LVMH가 브랜드별 실적보고를 하지 않아 정확한 수치를 알 수 없지만 소식통에 따르면 2001년 「펜디」의 매출이 2억5050만달러 정도이며 1890만달러의 적자 상태라고 밝혔다(2002년6월 24일 WWD).
인수한 지 18개월이 지났지만 「펜디」는 1890만달러의 적자상태. 「펜디」의 대표적 상품으로 97년에 런칭해 30만개의 판매량을 자랑한 ‘바게트 백’은 세월이 지나가면서 인기가 줄어들었고 바게트 백을 이어줄 히트상품이 없었다. 그러나 「펜디」가 구제불능 상태였던 것은 아니다. M&A를 통해 인수 당시 4개에 불과하던 직영점이 18개월 지난 시점에는 83개로 늘어났고 직영점에서 나오는 매출이 전체 매출의 4분의 1에서 3분의 2까지 상승한 것은 주목할 만한 발전으로 지적됐다.
계속 부진, ‘바게트 백’ 후 히트작 부재
이후 2002년 2월에는 새로운 CEO를 영입하면서 「펜디」는 새로운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한다. 2003년 가을 시즌을 겨냥해 풋 웨어를 런칭했으며 바게트 백의 성공을 이을 상품으로 ‘오스트릭 백(Ostrik bag)’이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받으며 판매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성장 전략으로 매출의 80%를 차지하는 액세서리(가죽제품)와 모피 부문을 집중 육성할 것이며, 칼 라거펠트가 디자인하는 RTW 부문과 90년에 런칭한 남성복 부문에도 중점을 두고 확장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87년 젊은이를 겨냥해 런칭한 세컨드 라인 「펜디시미(Fendis sime)」를 중단하고 「펜디」에만 집중한다는 전략이었다. 99년 인수할 당시만 해도 2~3년이 지난 이후에 「펜디」의 기업공개(IPO)를 할 수도 있다고 발표했으나 IPO 계획은 무산됐으며 「펜디」 브랜드를 적자에서 벗어나 성공궤도에 올려놓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
리포지셔닝 후 ‘스타 브랜드’ 전략 시동
2003년 리포지셔닝을 위한 새로운 전략은 「펜디」의 핵심 아이템인 액세서리(가죽제품)와 모피를 집중 육성하고 그 외 라인인 RTW, 시계, 풋웨어에 중점을 둔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를 통해 「펜디」를 5억달러 규모의 브랜드로 키우는 것이 목표. 이후 3~4년간 해마다 15개의 점포를 오픈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업계 전문가는 “새로운 전략이 성공하면 2007년께에는 「펜디」가
흑자 전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LVMH 대변인은 “5년 후 「펜디」는 스타 브랜드로 재탄생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2004년 「펜디」는 2억5000만유로 매출에 2500만유로의 적자를 기록했지만 2005년부터는 리포지셔닝 전략이 성과를 보기 시작했다. 매출은 두 자릿수의 성장을 기록했고 영업이익의 성장세도 두 자릿수라고 발표했다. 현재 「펜디」의 리포지셔닝 전략은 성공하고 있고 LVMH 그룹 내에서 두번째 브랜드로, 「루이뷔통」을 이을 캐시카우로 발돋움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두 자릿수의 성장세가 지속된다면 「펜디」의 목표치인 5억달러 매출은 곧 달성될 것으로 보인다.
스파이ㆍB-펜디백 히트로 두 자리 성장
「펜디」의 CEO 마이클 버크(Michael Burke)는 “「펜디」는 이제 궤도에 올랐다”면서 “리포지셔닝 전략의 성공으로 2006년에는 매출이 3억유로(약 3750억원)를 기록했으며 지금과 같이 20%가 넘는 성장률을 지속한다면 2008년이 되기 전에 5억달러 매출을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LVMH는 「펜디」가 향후 5년간 20~25% 성장률을 이룰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영업이익률을 20% 수준으로 올릴 것을 목표로 한다고 덧붙였다. 99년 「펜디」를 높은 프리미엄액을 얹어 인수하면서 세웠던 5억달러 규모의 스타브랜드는 차근차근 계획을 실현해 가고 있는 중이다.
「펜디」에 있어 2005년은 두 자릿수의 성장세를 보인 주목할 만한 해이기도 하지만 80주년이 되는 역사상 기념적인 한 해였다. 1925년 아델레와 에도아르도 펜디(Adele & Edoardo Fendi) 부부가 창립한 「펜디」는 2005년으로 80주년을 맞았고 칼 라거펠트가 「펜디」의 RTW를 디자인 한 지도 40년이 됐다. 8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펜디」는 뉴욕 맨해튼과 로마에 「펜디」 플래그십 숍을 오픈했다.
또한 스파이 백이 새로운 베스트셀러 아이템으로 등장했고 모피, 풋웨어 매출이 두드러졌다. 2006년에는 스파이, B-펜디, 셰프 앤 백드주르(Bag-de-Jour) 라인이 베스트셀러로 떠올랐고 칼 라거펠트가 디자인하는 RTW 선글라스 풋웨어도 매출 성장이 두드러졌다.
80주년 이후 RTW 슈즈 남성복 등 ‘약진’
「펜디」가 상품 라인을 성공적으로 확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문별 매출 구성이 변경된 것에서 알 수 있다. 2004년 액세서리 70%, RTW-모피 20%, 남성복과 그 외 부문이 10%로 구성됐던 매출은 2005년에 액세서리 50%, RTW-모피 30%, 슈즈 10%, 남성복, 시계와 그외 부문이 10% 구성으로 변화됐다. 이는 핵심 부문인 액세서리와 모피 이외에도 RTW, 슈즈, 남성복의 약진이 두드러졌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향후 「펜디」는 새로 런칭하는 주얼리 라인, 향수 부문을 중점 육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LVMH의 「펜디」 지분 확보도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2002년에 67%까지 지분을 인수한 LVMH는 2004년에는 94%까지 지분을 높이는 데 11억달러 이상의 비용을 지불한 것으로 밝혀졌다. 나머지 6%는 펜디 다섯 자매 중 한 명인 카를라 펜디가 소유하고 있다.
2005년부터 두 자릿수의 괄목할 매출신장률로 5억달러 매출의 고지를 바라보고 있는 「펜디」. 80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펜디」는 오리지널리티 있는 상품력으로 전 세계 소비자들을 사로잡았고 바게트 백을 잇는 스파이, B-펜디 등 베스트 아이템들은 「펜디」의 성공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는 LVMH 그룹에 편입됐지만 「크리스티앙디오르」화도 「루이뷔통」화도 되지 않은 「펜디」 고유의 독창성에 기인한 것이다.
전통 + 독창성 ‘오리지널리티’가 성공 열쇠
이같은 「펜디」 뒤에는 40년 넘게 RTW를 디자인하고 있는 칼 라거펠트, 펜디 패밀리의 3대로 액세서리 부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는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Silvia Venturini Fendi)가 있다. 이 2명의 디자이너는 완벽한 호흡으로 RTW와 액세서리의 양대 축을 잘 이끌어가고 있으며 「펜디」의 오리지널리티를 이어간다.
「펜디」는 50억달러 매출과 영업이익률 20%라는 목표를 향해 공격적으로 사업 확장을 진행 중이다. 핵심 상품인 액세서리, 모피의 상품 개발은 물론 RTW 풋웨어 시계 안경 등 상품라인과 새로 런칭을 준비하는 주얼리 라인 등 다양한 상품 분야를 육성하고 있다. 이처럼 「펜디」는 ‘이례적인 럭셔리 분야의 M&A 성공작’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LVMH에서 「루이뷔통」을 이을 캐시카우로 키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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