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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은 창밖을 바로보며 먼산과 가까운 밭둑에 피어난
나무와 풀들의 연두색 향연을 보면서 황홀한 기분을 느끼던 나날이었다.
무작정 자동차의 시동을 걸고, 정처 없이 떠나 꿈이 머물고 있을 듯한
아늑한 곳을 찾아 헤메고 싶은 마음이면서도 부드러우면서도
질긴 현실을 떨쳐 낼 수가 없어서 기껏해야 오토바이를 타고,
뚝방길과 산길을 오가면서 무지개처럼 아름 다웁지만
실체는 만져지지 않는 봄과 꿈의 안타까움에,
'봄날은 간다'란 노래를 부르며 공허해 지는 가슴을 달래던 나날이었다.
그래서 이번의 산행은 다른 어떤 산행보다도 기다려 지는 산행이었고,
신청자도 57명을 넘어서서 나 말고도
봄 나들이를 기대하는 사람이 많고나 하고 생각을 하게도 했다.
하지만 7일날 장원사람들이 '어버이 행사' 를 갖게 되었다면서 한꺼번에 몇명이 취소했고,
잇달아 또 몇명이 취소해서 버스에 오른 사람은 40명이 되지 못했다.
신청이 많아서 포기한 사람도 적지 않았는데,
대책을 세울 시간도 주지 않고, 취소한 사람들이 좀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자리를 채우던 인풍사람들과 장원사람들 대신 사현 사람들이 많았다.
지난 번 빠졌던 신ㄷㅈ씨 부부가 제일 먼저 눈에 뜨였고,
서ㅅㅇ,김ㄴㅇ,권ㅎㅇ,김ㅇㄹ 여사는 몇 달만의 산행이었고,
해병대의 원사로 제대했다는 김ㅇㅅ씨는 처음 가입한 사람이었다.
월산의 김ㅊㅅ씨부부가 막판에 취소는 했지만
지난 달에 빠졌던 김ㄷㅇ씨,이ㅁㄱ씨, 이ㄱㅌ씨가 앉아 있는 것은 든든한 기분이 들게했다.
빈박스가 있어서 한박스를 점령할 수도 있었지만 한ㅇㅅ여사와 같은 자리에 앉았다.
같은 동네에서 자라고 늙어 가는 데다 직장까지 같이 근무를 한 한여사가 옆에 있다는 것은
혼자서 한박스를 점령해 앉는 것보다 더 편안한 것이었다.
한여사가 두어달 빠지었기에 그간의 이야기를 도란도란 하던 중
"버스가 서세종 IC 로 들어 가지 않고, 국도로 가다가 경부고속도로로 직접들어 간다"고
한여사가 중얼거리며 "저기사가 아무래도 길이 설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도 경부고속도로로 들어가서 나무들이 봄바람에 살랑거리는 풍경들을 바라보자
집에서 그리던 꿈이 있는 곳으로 찾아 가는 듯한 생각이 들어서 아늑한 황홀감이 들었다.
뒷좌석에는 부인 최ㅈㄱ여사만 보내고 몇달동안이나 참석하지 않던 우ㅎㅊ씨가 타고 있었다.
30년 동안이나 장원에 살고 있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경상도 억양의 말씨가 뚜렸한 우씨였다.
비닐하우스 농사가 바빠서 겨우내 빠져 나오지 못했다고 했는데
애써 지은 토마도 농사가 박스에 8천원 정도면 단가가 맞겠는데,
2-3천원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며 농촌에서 지을 농사가 없다고 했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기치를 걸고, 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던 말은
불과 40년 동안에 쓸데 없는 옛말이 되어 버렸다.
농사기술의 발달로 비닐하우스를 하는 농민들이 농사까지는 잘짓지만
가격이 맞지 않으면 실패한 농사가 되버리는 것이었다.
수확만 많으면 성공이라고 하던 옛농사는
이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농민들이 한마음이 되서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않될 때가 된 것 같다.
나도 나이보다 나이를 덜 먹어 보인다고 하지만
우씨야 말로 나이를 먹어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보다 3살이나 더 먹은 사람이지만 농사를 짓는 사람이면서도
팽팽한 피부에 곱상한 얼굴이었고,
농촌에서는 드물게 환갑이 넘은 세대에 대졸인 사람이었다.
가끔씩 대화가 오갈 때마다 나는
"우이장님 같은 분이 좀더 농촌 문제에 적극 나서 주어야 된다."는 말을 해왔지만
여기저기 흩어진 마을처럼 뭉처지지 않는 농촌 사람들의 마음인데다
'임기 중 한 건'하겠다는 지방자치제의 고질적이 병페가 부딛쳐
농촌의 개혁이란 것은 어느 몇사람의 힘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다만 아직도 "여행 전날이면 어린 시절처럼 설레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우씨처럼
소박한 마음을 잃지 않고 사는 것이 농촌에 사는 혜택이라고 돌려야 되는지 모르겠다.
한여사말대로 좀 수상해 보이는 기사가 고속도로를 벗어나자
길을 찾아서 빙빙 돌더니 결국에는 예정시간 보다 훨씬 늦은 11를 넘은 시각에,
목적지인 '소백산 국립공원북부 사무소'앞에 내려 놓았다.
등산코스는 북부사무소에서 시작해서 비로봉을 거쳐 어의곡탐방지원센타로 내려오는 것이었다.
고사리를 꺾어 보는 작은 산행의 경험에서
산행은 한시간 일찍 출발하는 것과
늦게 출발하는 것이 능률상 많은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버스에서 부터 지친 몸들은 첫발부터 무거워 보였다.
여러차례 산행에서 후미에 처졌던 사람들을 찾아서
같이 출발하고 뭉처서 가자고 말하면서 출발했지만
그 무리 보다 더 처져서 김ㄴㅇ여사가 신ㅊㅅ씨에게 의지하고 처지고 있었고,
그 앞을 서ㅅㅇ여사가 오고 있었다.
약한 사람들 끼리 똘똘 뭉쳐서 가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3미터 정도 넓이의 잔돌이 깔리 길은 큰 경사를 이루지 않고, 그늘로 그늘로 이어지고 있었다.
정ㅁㅅ여사는 우리보다 훨씬 잘 걸을 수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지만
나와 윤ㅌㅅ여사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걸었다.
내가 뒤에 처진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동안 한여사,김ㅈㅂ여사,
그리고 사현리의 김ㅇㄹ여사님들은 처지면 어렵다고 걸음을 재촉해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신ㅊㅅ씨가 김ㄴㅇ여사와 서ㅅㅇ여사를 책임지겠다고는 했지만
개운치 않은 마음으로 몇미터를 올라 가자 장상무와 총무강ㄷㅅ여사,이ㄱㅈ대장,
전ㅅㅈ여사,신ㅁㄱ여사가 기다리고 이었다,
장상무가 선두를 서기로 했는데, 기다려서 같이 가자고해도 앞질러 간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정말 통제가 되지 않는다고 서로 하소연했지만 먼저 간사람들은 강자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앞서가서 처지지 않겠다고 장상무가 멈칫거리는 사이에
한발자국이라도 더 간다고 떠난 약자들이니 심정이 이해가 가기도 했다.
거기서 서ㅅㅇ여사가 도착하고 신ㅊㅅ씨와 김ㄴㅇ여사가 좀처럼 보이지 않자
이대장과 김ㅇㅅ씨가 포기 시키던 데려 오든 한다고 오던 길을 내려갔다.
김ㅇㅅ씨는 오랜 해병대 생활이 몸에 밴듯 흰머리에 불구하고 강인해 보였다.
우리 산악회에 새로운 일꾼이 생긴 것 같았다.
다시 장상무가 떠나고 정ㅁㅅ여사와 윤ㅌㅅ여사와 나란히 길을 올랐다.
완만한 비탈을 구불구불 오르는 길가엔 5미터쯤 높아 보이는 나무들이 빽빽해
시원한 그늘을 이루고 있을 뿐 별다른 꽃도 피어 있지 않았다.
철쭉의 군락지는 산등성이 쯤인 것 같았다.
윤여사는 다른 산행에서도 그랬지만 길가의 풀꽃을 신기해 했다.
정원에 피어있는 화려한 꽃보다는 이렇게 산기슭에 피어 있는 들꽃들이 예쁘다고 했다.
윤여사는 25살에 9살이나 연상인 순 서울 사람인 남편을 따라 사현리에 왔다고 했다.
밤이 특산품인 이곳 정안에서도 윤여사의 집은 손꼽히는 규모의 밤나무 농장집이다.
그 넓은 산에 밤나무를 심고 가꾸는 남편의 곁에 있는 동안
윤여사 자신이 이름 없는 들꽃처럼 살아 왔을 것이다.
6년전에 동네 가운데에 커다란 집을 짓고 내려 왔지만
한동안 밤나무 농장의 한켠의 좋은 집이었지만 외딴 곳에서 살았으니
혼자 자라고 피는 풀꽃들에 관심이 더 가는 지도 모를 일이다.
정여사도 경상도 통영이 친정인 산이 가까운 대산의 곳집말이라는 곳에 사는 사람으로
사업상출장하는 남편이 없는 동안 소일거리로
산에 올라 고사리 등 산나물을 뜯기도 한다고 했다.
좀 비슷하게 생긴 풀을 나물이냐 아니냐를 묻고 대답하는 동안 크지 않은 바위가
앉아서 쉬어 달라고 하는 것처럼 옹기종기한 곳에
김ㄱㅅ씨 김ㅇㄹ씨와 사현리의 몇분 여사님들과 한여사,김ㅈㅂ여사가 쉬고 있었다.
선두의 일부는 이미 떠났고, 뒤에 오는 다른 일행이 도착하면
거기서 점심식사를 하려는 요량이었다.
비탈이 심하지 않아 돌사이로 흐르는 물도 바위틈에 고였다가 흐르고,
가지를 넓게편 나무들이 시원한 그늘을 이룬 것이다.
소백산이란 이름 난 산을 등산온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곳의 멀지 않은 산기슭에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소풍을 왔다가 쉬는 기분이었다.
10분 쯤 지나니 이대장과 신ㅊㅅ씨,김ㅇㅅ씨,강ㄷㅅ여사가 서ㅅㅇ여사만을 데리고 올라왔다.
김ㄴㅇ여사는 도저히 않될 것 같아서 산행을 포기시켰다고 했다.
김ㅈㅂ여사와 한여사,우ㅎㅊ씨가 바위 건너에 자리를 잡고,
나머지는 비교적 넒은 곳에 펼처 앉았다.
각자 배낭속에 넣어 왔기에 무엇을 가져 왔는지 몰랐으나
꺼내 놓으니 집에서 먹는 반찬 못지 않은 식단이었다.
찰밥,유부추밥,김밥 더구나 누가 가져 왔는지 상추쌈까지 펼쳐졌고,
윤여사가 그것에 고추장을 칠해서 건네주어 밥을 쌓아서 입네 넣으니
집에서 먹는 밥과는 기분이 달랐다.
식사 중에도 방울토마도와 씨 없는포도 같은 과일이 손에 손을 거쳐서 나누어 먹고 있으니
작년부터 13번의 산행 동안 가장 즐거운 점심 식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까지의 점식 식사는 산정에서 이루어졌고,
그것은 하행길을 앞두고 이루어 지는 것이었으나, 오늘은 산행의 초반에 이루어 진 것이었다.
점심 식사가 끝나고 다시 오르기 시작 하는 곳에서 얼마 되지 않아
장상무와 신ㅁㄱ여사,전ㅅㅈ여사 남ㅅㅇ여사,마을금고 조ㅁㄱ여사가 식사를 끝내고
쉬고 있는 것이 보였고, 이정표는 비로봉까지 2.6키로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백미터가 아닌 키로미터란 표시에 한숨이 나왔지만
이제는 포기하는 사람을 기다려 줄 버스도 떠난 후였다.
거기서 부터 경사는 가파라졌고, 빼옥하던 나무들은 듬성듬성해졌지만,
큰 나무에 치어서 피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꽃들은 보이지 않았다.
지난해 자랐던 한해살이 풀들이 바람에 휘날리는 속에서
가끔씩 외롭게 보이는 분홍색의 꽃들은 철쭉꽃이 아니라 진달래 꽃이었다.
지난해 5월초에 일림산에 갔을 때는
첫째주말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철쭉이 절정을 지났었는데,
이곳은 둘째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철쭉이 피기에는 이른 모양이었다.
나도 다른 때의 산행보다 피곤함을 더 느끼고 있었지만
서여사에게 신경을 쓰다보니 오르는 시간은 길어졌다. 그래도 가장 후미는 아니었다.
지난번 산행에는 괜찮아 보이던 김ㅈㅅ씨가 심한 피로를 느끼는 것 같아서
이대장,김ㅇㅅ씨,신ㅊㅅ씨가 앞뒤를 받치며 강ㄷㅅ여사와 같이 올라 오기 때문이었다.
누구보다도 산을 잘타는 사람이지만
길가에 피어 있는 이름 모를 풀꽃을 보면서 사진에 담기를 즐기다가
뒤에 처지던 강여사가 오늘은 마음 놓고 사진을 찍는 날일 것 같았다.
비로봉 2.1키로가 쓰여진 이정표가 있는 곳에 이르자 주위를 둘러싼 나무들이 거의 사라지고
트인 시야로 우리가 서있는 곳들보다 낮은 산들이 눈에 들어 왔다.
우리가 가는 산도 험하지 않았지만 보이는 산들도 민둥했다.
해발1400미터라고는 하지만 좋게 말하면 정말 후덕스런 충청도사람 그대로의 산이었다.
산등성이 근방에서 몇개의 나무계단을 오르고 나자
우리동네 주변의 산처럼 완만한 산등성이 길이었다.
정여사가 "우리 너무 느린 것아니에요?"하는 말에
"걱정 말아요. 우리를 떼놓고 가면 집에까지 가는 것은 내가 책임 질게요."하며
큰소리를 치며 갔는데, 자기의 실력으로 갔다면 선두그룹에 끼어 갔을 정여사는
느린 우리의 걸음에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서여사와 함께 좀 늦게 앞서서 기다리고 있던 윤여사와 정여사를 만났을 때,
"감사님은 저체력이야"하며 놀렸다. 창피하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산악회의 남자회원 중에서 내가 가장 약지인것이 사실이니까 말이다.
정여사와 나란히 가는 두어차례의 산행에서 들키고 만 것이다.
그 여자들보다도 약한 체력은
정상부근에서 같이 한 회원 모두에게 여지 없이 들키고 말았다.
잠바를 벗고, 땀을 닦으며 오르던 산행은 정상부근에 이르자
어디서 오는지 모를 강하고 찬 바람에 다시 잠바를 입게했다.
길을 표시도 할겸 해서 만든 듯한 정상을 알리는 가파르지 않은 계단을 오를 때,
갑자기 허벅지와 종아리에 쥐가 나는 것을 느꼈다.
거기서 합류한 전ㅅㅇ여사와 같이 가던 정ㅇㅎ여사가 발끝을 올리며 마비를 푸는 방법을
알려 주었으나 되지 않았다, 정ㅇㅎ여사는 오늘은 불참한 부회장 김ㅇㅈ씨의 부인으로
남편과와 수차례의 산행으로 산에 익숙한 사람으로
같은 동네의 전ㅅㅇ여사를 돌보며 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조급한 마음은 정여사가 시키는로 해도 되지 않았고,
뒤따라온 강여사에게 바늘을 빌려서 피를 내고야 겨우 정상을 밟을 수가 있었다.
땅에 누워있는 마른 풀밭의 조금 높은 곳에 표시비가 있었고
벤치가 한개 놓여 있는 곳이 정상이라고 했다.
그곳도 앞이 확트이는 전망과 경치는 없었다.
거기서 몇컷의 사진을 찍었으나 인증샷이 될 내 사진은 없고, 회원들의 사진만이 있다.
무거운 사진기를 들고서 힘들여 산을 오르던 전ㅁㅎ양이 오늘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서 몇걸음을 내려오다가 다시 쥐가 나는 것을느꼈다.
이대장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쥐는 지리산 천왕봉에 오를 때나 나는 것인데..."하며 웃었다.
정말 창피한 기분이었다. 김ㅇㅅ씨가 군대에서 낙오는 병사들을 독려할 때 쓰던 방법으로
몸을 궆혔다 폈다를 가르쳐 주었으나 움직임 자체가 어려웠다.
가까스로 다시 강여사에게서 바늘을 빌려 피를 내고서 산행을계속했다.
내려오는 길이기에 더 이상 쥐가 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미 몸이 정상이 아님을 깨달았기에 마음의 여유가 사라졌다.
다시 이대장과 강여사,김ㅇㅅ씨가 뒤에서 김ㅈㅅ씨를 보호하며 내려오고
나는 조금 앞서서 정여사,윤여사와 함께 내려오기 시작했으나 남아 있는 길은 멀기만 했다.
화왕산의 하행길 처럼 험하게 경사진 바위틈을 내려가는 길은 아니었다.
그래서 계단을 설치한 곳도 가드레일을 설치한 곳도 없었다.
있는 그대로의 돌들을 촘촘히 박아 놓은 길은 지쳐있는 종아리에
찌릿찌릿한 아픔으로 계속 되었다.
가끔씩 있는 흙길을 걸을 때는 폭신함을 느끼었지만
모퉁이로 사라지는 길을 돌아가면 여지 없이 그 울퉁불틍한 길이었다.
화왕산에서 느꼈던 지루함은 지루함도 아니었다.
서로서로의 입에서 나온 말이 "정말 끝도 없어"라는 말이었다.
그래도 어느새 그 울퉁불퉁한 그길의 왼쪽에는 제법 물이 흐르는 계곡으로 바뀌어 있었고,
거기서 빨리 내려가면 지루하기만 하다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김ㄱㅅ씨와 김ㅅㅌ씨를 만났다.
그들 옆에는 조ㅁㄱ여사가 서있었는데, 무척 지쳐 있는 표정이었다.
그곳에 놓여있는 벤치에서 땅콩을 나누어 먹으며 쉬었다.
거기서 부터의 길 옆의 시냇물은 다시 보기 어려울 아늑하고 그윽하고,
시원한 풍경으로 바뀌어 있었다.
좀 더 여유가 있었으면 사진도 많이 찍으며 즐기며 갔으면 좋겠는데,
발은 걸을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뛰어지고 있었고,
우리를 놓치면 더힘들어 질 것이라고 쫓아 오는 조여사의 종종거리는 걸음이 안쓰러워 보였다.
조여사도 종종 산행을 했으나 아기를 출산한 후 1년쯤 산행을 하지 않았다가
다시 시작한 산행이, 길고도 먼 오늘의 산행이 되었다는 것이다.
종아리를 부담스럽게하던 돌길이 점점 부드러운 흙길로 바뀌어 가다가
드디어 이산으로서는 가장 험했을 곳에 다리가 놓여 진 곳이 나왔다.
위쪽으로는 기암이, 다리 아래로는
평생 쉬어도 싫증이 날 것 같지 않은 물이 넘쳐 흐르는 계곡이 보였다.
"정말 여유가 있었으면 얼마나 멋지게 즐기고 갔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은 산행때마다 느끼던 것으 로
아쉬움 위에 아쉬움을 쌓아가다가 잊어 버리는 것이 우리들의 산행인가 보았다.
거기서 부터 포장길이었고 조금 내려가니 어의곡탐방소가 나왔다.
참았던 소변을 거기서 해결하고 포장길을 종종 걸을 치면서 내려왔는데,
거기서 주차장 까지도 가까운 길은 아니었다.
아마 그리 길지도 않은 길이었지만 지친 몸이라 더 길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주차장에 이르니 먼저 온 일행이 지루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보다 먼저 산길을 걸으면서 무엇을 느끼었을까?
앞서가니까 여유가 있어서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느끼었을까?
아니면 앞서가려는 성급한 마음때문에 쫓아가려고 여유가없었던 우리와 똑 같이
숱한 풍경들을 보지 못하고 지나치기만 했을까?
아마 그들 역시 쫓기듯 산행을 마치었을 것이다.
우리네 인생도 똑 같이 성급한 마음으로 잡을 수 있는 소중한 것들을
모두 놓치고 사는 지도 모른다.
5시30분에 예약된 마늘정식이 준비된 식당에 6시가 넘은 시간에 도착했다.
그것도 우리보다도 한참 쳐졌던 김ㅈㅅ씨 일행을 탐방사무소에서
그곳의 지원용 버스로 태워다 준 덕분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버스에 오르니 7시가 넘어 있었다.
집에 전11시 안에는 갈수 없을 거라고 전화를 했다.
올 때의 겪은 것으로 보아 쉬운 길로 가기는 어렵게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버스에 앉으면 잠을 자려고 했지만 아프지 않은 곳이 없어서 잠도 오지 않았다.
옆의 한여사도 등산화를 벗고 창에 기대고 눈을 감고 있었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같은 충청도지만 동서로 시원히 뚫린 길이 없기에 충남북은 먼길이 될 수밖에 없기는 하지만
서투른 기사는 경기도의 안성까지 올라가서
서안성 JC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오는 길을 택했고,
그나마 주말이지만 막히지 않았던 경부고속도로 덕에 11시경에 농협 앞에 도착할 수있었다.
한여사와 헤어지면서 "다음 달에 또 가자면 못간다고 하겠지?"하고 했더니
"글쎄'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나도 한여사도 같이 간 일행 모두 끝이 없는 길을 헤메든 하루였다.
잘보고갑니다
잘보고 잘 읽고감니다
잘 읽고 갑니다. 열심히 사시는 모습이 참 좋습니다.
삶에 여유가 느껴집니다
조만간 나도 조금이나마 안정된 여유를 갖고 싶습니다.
잘보고갑니다
산행이 굉장히 힘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사진을 보니 다시한번 가보고 싶어지네요.
좋은 사진과 글. 고맙습니다
잘보고갑니다
잘 보고 갑니다
그릇이 넓은 분이신것 같습니다.
소백산의 칼바람~~
참 좋은곳이예요
좋은글 사진 잘보고갑니다
산행을 주관하시는분의 심정을 알거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