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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은 만사의 근본
《서경》에 이르기를 “뜻(志)은 만사의 근본이다.”라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공(功)이 높음은 뜻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진덕수(眞德秀)가 말하기를 “뜻은 덕(德)에 나아가는 기초이다. 여기에서 시작하여 멀어도 도달하지 않는 것이 없고 단단해도 파고들지 못하는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 傳(書經)曰志者。萬事之根柢。又曰功崇惟志。先儒(眞德秀)曰志者。進德之基也。發軔乎此。無遠不達。無堅不入。]
《맹자》에 이르기를 “잘난 체하는 얼굴빛이 사람을 천 리 밖에서 막는다.”라고 하였고, 옛사람의 말에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따를 적에 그 마음이 좋아하는 바를 따르고 그 입을 따르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傳(孟子)曰訑訑顔色。拒人千里。隨古人有言。下之從上。從其心之所好。不從其口。]
《논어》 〈안연(顔淵)〉에 공자가 이르기를 “다스리는 자의 덕(德)은 바람과 같고, 다스림을 받는 자의 덕은 풀과 같다. 풀 위에 바람이 불어오면 풀은 한쪽으로 눕게 마련이다.〔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 草上之風, 必偃.〕”라고 하였다.
《논어》 〈위령공(衛靈公)〉에 “군자는 말만 잘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등용하지 않고, 그 사람이 보잘것없다고 해서 그 사람의 좋은 말까지 버리지는 않는다.”라고 하였다.
의견을 구하는 유지에 응하는 옥당의 차자〔玉堂應旨箚〕
·········································· 병산 이관명 선생, 병산집(屛山集) 제3권 소차(疏箚) 16수
삼가 아룁니다. 천재지변은 무엇인들 군주가 경계하고 두려워해야 할 것이 아님이 없겠으나 그 중 민생과 가장 절실하게 관련된 것은 가뭄만 한 것이 없고, 일 년 중에 가뭄이 언제나 근심스럽지 않을 때가 없지만 곡식이 피해를 입는 것은 또한 봄과 여름의 교체기에 발생하는 것만큼 심한 경우가 없습니다.
지금 하늘이 포학해서 재해를 내리자, 백곡을 파종하는 절기에 한번 찾아든 가뭄이 한 달 동안 이어졌고 전국이 똑같은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씨앗은 흙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어린 모는 마당에서 말라가니 백성들은 가슴을 치면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백성의 부모 된 마음으로 공구(恐懼)하고 수성(修省)하는 방도에 최선을 다하지 않음이 없으셨습니다. 몸소 사직단에서 기도하여 천지신명께 역경을 극복해 주기를 청하고 의금부에 거둥해서 죄수를 석방하셨으니, 위로는 신명을 감동시키고 아래로는 답답한 기운을 풀어 주리라 기대하였는데 하루 이틀이 가도 비 올 기미는 더욱 막연합니다. 신들이 감히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하늘이 아득히 먼 탓에 비록 전하의 지성스럽고 간곡한 마음으로도 감동시킬 방법이 없어서 이렇게 된 것입니까. 또한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전하께서 수성하는 것이 그 방도를 다하지 못한 채 사소한 한두 가지 문구(文具)만으로는 신들이 흠향하기에 부족해서 이렇게 된 것입니까.
아, 하늘과 인간은 한 이치로서 감동이 있으면 반드시 통하는 법인데, 감동시키는 방법은 실제로써 할 뿐, 거짓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성탕(成湯)이 여섯 가지로 자신을 책망하자 큰비가 천리에 내렸던 것이니, 이는 자신의 허물을 자책하면서 반성하는 실제에 기인한 것으로 하늘의 보답이 이처럼 분명하게 드러났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상제(上帝)가 높은 데서 듣는 것이 유독 오늘에 응하지 않는 것은 전하께서 하늘에 응하는 실제가 끝내 성탕에게 부끄러운 점이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인지 매우 염려스럽습니다. 신들이 명주(明主)를 원망하고 치세를 근심하는 것이 여기에서 더욱 간절해집니다.
이어서 얼마 전 구언(求言)하는 교지를 삼가 보니 윤음의 말뜻이 간절하여 이를 보고 듣는 사람이 감격하여 울지 않는 이가 없었으니,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군들 감히 함께 달려와서 우리 전하께 아뢰지 않겠습니까. 만약 전하께서 도움을 구하는 참된 마음을 가지고 선왕께서 천한 사람의 의견까지 받아들였던 실질적인 덕을 넓혀서 채용할 만한 한마디 말과 개혁할 만한 한 가지 폐단을 차례차례 시행하신다면 하늘에 응하면 하늘에 응하는 실제가 있을 것이고 말을 구하면 말을 구하는 실제가 있을 것이니, 인애(仁愛)한 하늘이 어찌 끝내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리석은 신들이 외람되이 경연(經筵)에 있으나 식견과 생각이 얕고 짧아서 진실로 성덕(聖德)을 보필하기에 부족하지만 충성을 다하려는 정성만큼은 보통 사람보다 뒤지지 않습니다. 이에 감히 외람됨을 피하지 않고 어리석은 신의 견해를 진달함에 처음부터 끝까지 ‘실(實)’ 한 글자를 가지고 전하를 위하여 자세히 말씀드리겠으니, 바라건대 밝으신 성상께서는 헤아려 채택해 주십시오.
전하의 지혜는 만물을 두루 알고 행실은 다른 어느 왕보다 뛰어나시어 한결 된 마음으로 치세를 도모하느라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부지런히 힘쓰셨으니, 하늘의 재앙을 부르고 백성의 원망을 일으킬 만한 큰 실수가 없는 것은 많은 신하들이 다 같이 아는 바입니다. 그런데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후로 기근과 전염병이 해마다 거듭되어 오늘날에 이르렀고 이처럼 혹독한 가뭄에 생물들이 거의 말라 죽음으로써 부지런히 정사를 닦으시는 전하께 큰 근심을 끼친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신들의 생각으로는 전하께서 실질적으로 성지(聖志)를 확립하여 성학(聖學)을 항상 근면하게 익히지 않으시니 간언을 따르나 간언을 따르는 실제가 없고 절약하고 검소하지만 절약하고 검소한 실제가 없습니다. 백성을 구휼하는 것에서도 간절하게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또한 실질적인 효과가 백성들에게 더해진 것이 없으니 민생이 나날이 곤궁해지고 하늘의 재앙이 뒤이어 찾아온 것이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전(傳)에 이르기를 “뜻은 만사의 근본이다.”라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공(功)이 높음은 뜻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옛날의 제왕(帝王)이 왕자(王者)를 도모하거나 패자(覇者)를 도모할 적에 각자 뜻을 두었는데 그 뜻의 대소에 따라서 공업이 흥하기도 하고 쇠퇴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전하께서 조정에 나와 탄식하면서 평범한 군주가 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시지만 분발하여 큰 뜻을 펼쳐 스스로 옛날의 성왕(聖王)이 되기를 기약하지 않으시고 화려하고 좋아하는 것에 간혹 마음을 빼앗겨서 공사(公私)와 의리(義利)의 사이에서 서로 주객(主客)이 되어 끝내 용맹하게 정진하면서 일취월장하지 못하신다면 비록 자포자기 하면서 한결같이 포기하는 평범한 군주와는 혹여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공업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똑같습니다.
선유(先儒)가 말하기를 “뜻은 덕에 나아가는 기초이다. 여기에서 시작하여 멀어도 도달하지 않는 것이 없고 단단해도 파고들지 못하는 것이 없다.”라고 하였으니,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 실제로 성지(聖志)를 확립하고 순(舜) 임금과 도척(盜拓)의 차이를 구분하시어 문로(門路)를 바르게 하고 고명한 경지에 도달할 것을 기약하면서 조금도 바꾸지 않는다면 전하께서 지향하는 일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을 것이니, 치적이 없는 것은 근심할 바가 아닙니다.
제왕의 학문은 가난한 선비와는 다르지만 학문을 익혀서 지식을 지극하게 하고 행동을 힘써 실천하는 것에는 원래 두 가지 길이 없습니다. 지금 전하께서 넓은 집과 고운 털방석의 위에서 부지런히 강학하여 연구하는 것은 모든 성인(聖人)들이 자신을 수양하고 남을 다스린 법도였지만, 전하의 몸에 체득하여 정사에 시행한 것은 대부분 이들과는 서로 어긋났으니, 어찌 전하께서 이치를 살핌에 미진한 바가 있어서 이렇게 된 것이겠습니까. 전하의 마음에 진실로 쌓이는 공부가 지극하지 못하였기에 사사로운 뜻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수시로 나타나서 전하의 몸에 누가 되고 정사에 해를 끼쳤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상께서 학문을 비록 부지런히 익히시더라도 또한 궤짝만 사고 구슬은 돌려 준〔買櫝還珠〕 탄식에 무슨 유익함이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진실함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라는 가르침을 유념하시어 정미한 것을 탐색하고 실제의 이치를 분명히 보아서 반드시 지선(至善)에 머물기를 구하여 조금도 다른 곳으로 가지 않게 하고 몸을 돌이켜 정성스럽게 하며 다른 곳까지 넓혀서 실천하신다면 성학(聖學)은 날로 밝아져서 바라는 대로 다스려지는 정치〔從欲之治〕가 막을 수 없이 성대하게 펼쳐질 것입니다.
전(傳)에 이르기를 “잘난 체하는 얼굴빛이 사람을 천 리 밖에서 막는다.”라고 하였고, 옛사람의 말에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따를 적에 그 마음이 좋아하는 바를 따르고 그 입을 따르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진언(進言)하는 것 중에는 비록 전하를 보좌할 만한 훌륭한 언론과 올곧은 말은 없으나 광부(狂夫)의 말조차 성인(聖人)이 채택하셨으니 그렇다면 어찌 취할 만한 한 가지 말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조금이라도 비위에 거슬리면 번번이 불편한 뜻을 드러내셨습니다. 저촉되지 않게 부드럽게 한 말이라도 당시의 폐단을 간략히 언급했을 경우에는 겉으로 장려하셨으나 또한 실제로 채택하여 시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때문에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려는 자들이 주저하면서 감히 앞으로 나오지 못하였고 당시의 폐단을 거론하려는 자들 또한 유익함이 없다고 말하면서 계속해서 거론하지 않았으니, 어떻게 군주의 잘못을 아뢰지 않고 함구하는 것이 습관으로 굳어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나라를 위한 근심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옛말에 “사치의 해로움이 하늘이 준 재앙보다 심하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낭비가 재물을 소모시키는 점을 지극히 강조하여 말한 것입니다. 오늘날 재해와 전염병이 연달아 발생하여 물건을 생산하는 도에 이미 큰 손실이 있는데 또 이어서 쓸데없이 소비하는 것이 얼마인지 모르겠으니, 백성들이 어떻게 곤궁하지 않을 수 있겠으며, 나라가 어떻게 가난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삼가 보건대, 전하께서는 소박함을 크게 숭상하여 한가할 적에는 조용한 곳에 거처하시고 말 타고 사냥하는 즐거움이나 개와 말, 음악과 여색을 좋아하는 허물이 없으시니 의당 풀이 바람에 쓰러지는 교화로 한 세상을 크게 변화시켜야 하거늘 현재 사치의 폐단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은 어찌 전하께서 몸소 실천하실 적에 그 실제적인 부분에 미진하여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소부(召傅 소공(召公))는 군주에게 경계의 글을 올려서 먼 지방에서 생산되는 물건을 귀중하게 여기지 않았고 한(漢) 문제(文帝)는 재물을 아끼느라 노대(露臺)를 짓지 않았는데 지금 상의원(尙衣院)에서 해마다 연경(燕京)의 시장에서 무역하는 행위는 선왕(先王)이 먼 지방의 물건을 귀중하게 여기지 않았던 뜻이 아닐 뿐더러 역관들이 사사로이 판매한 비단을 후정(後庭)에 진상하고 있으니, 이는 다만 옷자락을 땅에 끌리게 하지 않는 미덕〔衣不曳地之美〕에 혐의가 있을 뿐만 아니라, 궁금(宮禁)이 엄숙하지 못한 것도 한심한 일입니다.
제궁(諸宮)의 제택(第宅)의 호화스러움도 오늘 같은 때가 없었습니다. 가옥의 구조에 대한 정식(定式)이 법전에 분명히 기재되어 있습니다. 또 신들이 장로(長老)의 말을 들으니, 선조(先朝)의 후궁인 안빈(安嬪)에게는 애초에 하사한 집이 없어서 급기야 딸인 정신옹주(靜愼翁主)가 출합(出閤)하였을 때 그의 집으로 따라갔고 목릉(穆陵 선조(宣祖))의 여러 옹주들의 집은 간혹 낮고 협소해서 내외의 구별을 갖추지 못했으니, 선왕들이 검약을 숭상하신 덕을 여기에서 대략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고 되도록 웅장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서 화려한 명칭과 우람한 구조가 구전(舊典)에 규정된 것보다 열배를 능가합니다. 시어(侍御)하는 내간(內間)의 궁녀와 아직 포대기에 싸인 왕자까지 각기 문호(門戶)를 세워 큰 거리에 맞대고 우뚝 솟게 하였으나 지금은 텅 비어 관리자들이 수직(守直)하는 장소에 지나지 않습니다.
재물은 땅에서 솟는 것이 아니고 부역은 귀신이 경영해 주는 것이 아니니, 재물을 손상시키고 백성들을 수고롭게 하는 것은 이미 말로 형용할 수 없거니와 전하께서 참된 마음으로 검약을 숭상하지 않았던 것을 사방에서 진실로 엿본 사람이 있었습니다. 여러 신하들이 장주(章奏)에서 대부분 이 점을 언급하였으나 전하께서는 한 번도 받아들이지 않으셨으니, 그렇다면 간언(諫言)을 따르는 도리에 부족하여 성덕(聖德)에 누를 끼침이 어찌 적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지금부터 빨리 포용하는 도량을 넓히고 검소하게 하는 방법을 다해서 채용할 만한 말은 채용하는 데 인색하지 말고 성상께서 검소함을 솔선하는 것을 신하들이 보고 감동케 하신다면 공거(公車)의 장주(章奏)는 쓸모없는 빈 종이가 되지 않을 것이고 부귀한 집안의 사치하는 풍습은 한바탕 척결되어 소박한 상태로 되돌릴 수 있을 것입니다.
아, 오늘날 백성의 고통은 전하께서도 일찍이 밝게 살피시고 가슴 아파하신 것입니다. 세금을 감면하는 은전을 홀로 사는 어린아이에까지 두루 미쳤고 탕감해 주는 법령이 다시금 여러 해 동안 세금을 미납한 자들에게 미쳤으며, 그 밖에 백성을 비통한 마음으로 걱정하면서 위로하며 도와주신 것들도 지극한 것이라 할 수 있으나 가난한 집에서 걱정과 원망이 더욱 심해진 것은 백성을 병들게 하는 일을 척결하지 못한 것이 있어서 백성들이 실질적인 은혜를 입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백성의 폐해를 진실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으니 우선 중대한 사안에 대해서 논해 보겠습니다. 군포(軍布)의 폐해는 실로 치료하기 어려운 병입니다. 신들이 일찍이 이 폐해를 제거하지 않으면 나라꼴이 안 되겠기에 변혁하는 방도를 갑자기 도모하기는 어려우나 밤낮으로 변혁하는 방도를 생각해서 기필코 훌륭하게 변혁시켜야 하는 뜻을 어전에서 진달하고 상소문에도 덧붙여 아뢰었더니, 성상께서도 수긍하면서 주목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지시한 사항이 없으시니, 알지 못하겠습니다만 전하께서는 아직까지 훌륭하게 변혁시킬 방도를 찾지 못한 것입니까, 아니면 신의 말은 그저 허황되어 채용할 만하지 못하다고 여기신 것입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 먼저 유념하여 묘당(廟堂 의정부)에 널리 묻고 지난날 여러 신하들이 진달한 것을 모두 취하십시오. 호포(戶布)와 균역(均役) 등의 내용에 대해서는 연구하고 검토하여 좋은 점을 따라 변통해서 백년 동안 이어진 고질적인 병폐를 해결하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제하십시오.
백성의 고락은 수령(守令)에게 달려 있는데 오늘날의 수령은 대부분 제대로 된 인재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무능하여 자신의 임무를 감당할 수 없거나 탐욕으로 오로지 자기 자신을 살찌우는 데에만 골몰하는데도 안팎에서는 고발하고 쫓아내야 한다는 공론이 없어, 편안히 수령의 삶을 향유하는 가운데 백성들은 고스란히 그 피해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간혹 한두 가지 논핵하는 일이 있더라도 이를 조사하게 시키면 조사하는 관리는 인정에 구애되고 하리(下吏)는 위령(威令)에 얽매여서 여기저기 나타난 은밀한 비리들이 모두 무죄로 판명되고 얼마 뒤에 탐관오리들은 다시 주군(州郡)에 서용되어 지난날처럼 횡포를 부립니다. 탐관오리의 자리를 위해서는 이토록 후하면서 유독 백성들의 크나큰 고통에 대해서는 유념하시지 않는 것입니까.
신들의 생각으로는 수령을 신중히 선발하여 그들로 하여금 백성을 사랑으로 다스리게 하고 중간에 수의(繡衣 어사(御史))를 파견하여 자세히 조사하게 해서 무능력한 수령을 배척하고 탐욕스런 수령의 죄상을 캐내게 하십시오. 또 과거에 크게 뇌물죄를 범했으면서도 조사를 받고 풀려난 탐관오리에 대해서는 다시 조사하도록 하되, 만일 그 당시의 조사가 실상과 맞지 않게 진행되었을 경우, 조사한 관리를 기망(欺罔)한 죄로 다스리고 탐관오리에게는 추후에 해당 법률을 적용한다면 조사한 관리는 징계되는 바가 있어서 감히 바르게 조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탐관오리는 두려워하는 바가 있어 감히 제멋대로 날뛰지 못할 것이니, 이렇게 하신다면 뇌물죄에 대한 처벌을 엄중히 하여 여러 정사를 다스리는 방도에 도움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에 충익위(忠翊衛)와 충장위(忠壯衛) 등을 조사하는 일은 대개 진위(眞僞)를 종합적으로 밝히기 위한 의도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부류 가운데 음직으로 출사할 수 없는 자가 서리를 통해서 법을 어기고 함부로 소속한 것은 매우 가증스러운 일이나 소속된 뒤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 갑자기 천역(賤役)으로 태정(汰定 면직시킴)한다면 민간에서 동요하고 태정된 자들이 원망하는 것이야 이미 말로 형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 조사할 적에 실태를 파악하기가 힘든 실정은 근년에 충의위(忠義衛)의 비리를 조사하여 바로잡은 일 및 요사이 양정(良丁)의 존감(存減)에 대한 일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각 도에 조정의 명령이 이미 하달되었다면 중도에 철회하기는 어렵겠지만, 이처럼 가뭄을 걱정하는 때에는 모든 것이 백성을 소란스럽게 하는 일이 되므로 우선 모든 것을 정지하고 후일을 기다려 조용히 처리하는 것이 합당할 듯합니다.
충장위(忠壯衛)의 경우, 본래 전사자(戰死者)의 자손을 소속시키기로 허락했던 것인데 얼핏 듣기로 옛날 고(故) 상신(相臣)인 김석주(金錫冑)가 병조 판서 시절에 연석(筵席)에서 품지(稟旨)하여 비록 전사자의 음덕이 없더라도 소속되기를 원하는 양정(良丁)까지 또한 모집하여 들일 것을 허락하고 예에 따라 입번(立番)하면서 포를 납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이들까지도 모두 불법적으로 속하게 된 자들과 똑같이 가려낸다면 어찌 원통해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유사(有司)에게 명해서 이들을 자세히 구별하여 섞이지 않게 한다면 조정이 신용을 잃는 상황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산군(山郡)에서 대동미(大同米)를 돈이나 포로 대신 납부하게 한 것은 대동미의 운반이 어려운 것을 염려한 것이고 백성을 편리하게 하려는 방도에서 나온 것이었는데, 근래 목면(木綿)의 가격이 비싸져서 백성들은 쌀로 납부하기를 원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이 때문에 원망하게 된 것입니다. 당초 백성을 편리하게 해 주려는 의도가 지금은 백성을 괴롭히는 제도로 전락하고 말았으니, 신은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청컨대 앞으로는 돈과 포, 쌀을 모두 백성이 원하는 바에 따르고 피폐한 백성의 입속에 남아 있는 것까지 취하지 않게 하신다면 더없이 다행이겠습니다.
또 증미(拯米 물에 잠겨 젖었던 쌀)의 피해는 지금 강변에 있는 각 읍(邑)의 막대한 폐단이 되고 있습니다. 백성에게 증미 1섬을 주었다가 가을에 9말을 거두는 것은 물에 잠긴 쌀이 비록 한 섬을 가득 채웠다고 하더라도 이를 햇볕에 말리고 나면 8, 9말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물에서 건져낸 섬에는 속이 빈 껍데기가 존재하는데도 남거나 모자란지를 따지지 않고 곧바로 섬의 숫자대로 나누어 주기 때문에 백성들은 간혹 1, 2말가량의 썩은 쌀을 받는데 이 쌀은 또한 먹을 수 없습니다. 가을이 되면 납부를 독촉하면서 기어이 9말을 채우는데 해를 거듭하여 기근이 든 터라 자신이 국가에 바쳐야 하는 정당한 세금조차도 납부하기 어려운 실정인데 규정된 것 외에 터무니없이 징수를 가중시키니, 백성들이 원망하는 것은 진실로 당연합니다. 만일 이러한 폐단을 변혁시킬 수 있다면 참으로 큰 은혜가 될 것입니다. 만일 그러지 못한다면 청컨대 지금부터라도 난파선이 있는 모든 장소에서 건져낸 쌀을 말로 헤아려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고 가을에 이 숫자를 기준으로 거둬들여서 다소나마 백성들의 급한 사정을 덜어 준다면 더없이 다행이겠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신들의 진부한 말이 성상께서 도움을 요청하는 지극한 뜻에 답할 수는 없겠지만 정성스런 충심은 다만 전하께서 자신을 다스리고 백성을 부리는 방법에 있어서 되도록 실제를 힘써서 하늘의 진노함을 되돌리고 백성의 원망을 풀어 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만일 성상께서 신이 보잘것없다고 하여 신의 말을 버리지 않으시고 시행할 만한 것을 선택하여 속히 시행하신다면 신들이 진달하는 이 글보다 더 진전된 내용을 반드시 뒤이어 진달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죽은 말의 뼈도 오히려 천리마를 이르게 하였으니, 바라건대 밝으신 성상께서는 유념하십시오.
[주-1] 의견을 …… 차자 : 《국역 숙종실록》 27년 5월 21일 기사에 보인다.
[주-2] 성탕(成湯)이 …… 것 : 탕왕이 하(夏)나라 걸(桀)을 정벌한 후 7년 동안 혹독한 가뭄이 들었는데, 태사(太史)가 점을 치고 하는 말이 “사람을 희생으로 하여 비를 빌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탕왕이 이에 자신이 희생이 되겠다고 자청하여, 재계(齋戒)하고 모발과 손톱을 자르고 소거(素車)에 백마(白馬)를 타고서 자신의 몸을 흰 띠풀〔白茅〕로 싸서 희생의 모양을 갖추고 상림(桑林)의 들에 가서 세 발 달린 정(鼎)을 놓고 산천에 기도하면서 아래 여섯 가지 일로써 자책하니, 말이 채 끝나기 전에 큰비가 내렸다. 《事文類聚 天道部 禱雨》
[주-3] 명주(明主)를 원망하고 : 우매한 군주는 어떤 일을 하고자 해도 하지 못하지만, 총명한 군주는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기 때문에 백성들이 원망한다는 뜻이다.
[주-4] 공(功)이 …… 때문이다 : 《서경》 〈주관(周官)〉에 보인다.
[주-5] 선유(先儒)가 …… 없다 : 선유는 송나라 학자인 진덕수(眞德秀)로, 이 말은 그의 문집인 《서산문집(西山文集)》 권33 〈지도자설(志道字說)〉에 보인다.
[주-6] 순(舜) 임금과 도척(盜拓)의 차이 : 순 임금은 성인(聖人)인데 반해 도척(盜跖)은 9,000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남의 우마(牛馬)와 부녀(婦女)를 마음대로 탈취하기도 하고 제후에게 횡포를 부렸던 천하의 대도(大盜)였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순과 도척의 구분을 알고자 한다면 다른 것이 없다. 이(利)와 선(善)의 사이에 달려 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주-7] 궤짝만 …… 준〔買櫝還珠〕 : 근본을 버리고 지엽만을 추구하여 본말이 전도됨을 비유한 말이다. 춘추(春秋) 시대 정(鄭)나라 사람이 초(楚)나라 사람에게서 궤〔櫝〕를 사 오면서 그 궤에 장식되어 있는 좋은 구슬들은 모두 본주인에게 돌려주고 궤만 차지했다는 고사이다. 《韓非子 外儲說》
[주-8] 바라는 …… 정치〔從欲之治〕 : 백성들이 법을 범하지 않아서 윗사람이 형벌을 쓰지 않는 정치를 말한다. 《서경》 〈대우모(大禹謨)〉에 “바라는 대로 다스려진다.〔從欲以治.〕”라고 하였는데, 채침(蔡沈)의 주(注)에 “백성들이 법을 범하지 않아서 윗사람이 형벌을 쓰지 않는 것이 순(舜)이 바라는 바이다.”라고 하였다.
[주-9] 전(傳)에 …… 막는다 : 전은 《맹자》를 말한다. 이 내용은 《맹자》 〈고자 하(告子下)〉에 보인다
[주-10] 광부(狂夫)의 …… 채택하셨으니 : 《사기(史記)》 권92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보인다. 보잘것없는 사람의 말이라도 간혹 옳은 말이 있으면 성인이 채택한다는 뜻으로, 세상의 모든 훌륭한 말은 빠짐없이 수용하려는 자세를 말한 것이다.
[주-11] 풀이 …… 교화 : 《논어》 〈안연(顔淵)〉에 “다스리는 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 다스림을 받는 자의 덕은 풀과 같다. 풀 위에 바람이 불어오면 풀은 한쪽으로 눕게 마련이다.〔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 草上之風, 必偃.〕”라는 공자의 말에서 나온 것이다.
[주-12] 소부(召傅)는 …… 않았고 : 《서경》 〈여오(旅獒)〉에 나온다.
[주-13] 한(漢) 문제(文帝)는 …… 않았는데 : 노대는 지붕이 없는 누대(樓臺)로, 한나라 문제가 일찍이 노대를 지으려고 목수를 불러 경비를 계산해 보니 백금(百金)이 들었다. 문제가 말하기를 “백금은 중류층 열 집의 산업(産業)이 되니, 내가 어찌 소비하여 노대를 짓겠는가?”라고 하고 드디어 중지하였다. 《史記 卷10 孝文本紀》
[주-14] 옷자락을 …… 미덕〔衣不曳地之美〕 : 검소한 옷차림을 말한다. 한나라 문제(文帝)는 항상 검은 비단으로 지은 옷〔弋綈〕을 입었고, 신부인(愼夫人)의 옷도 땅에 끌리지 않았다. 《漢書 卷4 文帝紀》
[주-15] 선조(先朝)의 후궁인 안빈(安嬪) : 선조는 중종(中宗)을 가리키고, 안빈은 중종(中宗)의 빈(嬪)이며 선조(宣祖)의 할머니인 창빈 안씨(昌嬪安氏)를 말한다. 안탄대(安坦大)의 딸로 1499년(연산군5)에 태어나 1549년(명종4)에 세상을 떠났다. 1507년(중종2)에 궁궐에 들어가 1518년에 중종의 후궁(後宮)이 되었다. 2남 1녀를 두었는데 장남이 영양군(永陽君)이고, 다음이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이며, 딸은 정신옹주(靜愼翁主)이다. 안씨는 1577년(선조10)에 창빈(昌嬪)에 추봉(追封)되었다. 덕흥대원군은 세 아들을 두었는데 장남이 하원군(河源君)이고, 차남이 하릉군(河陵君)이며, 삼남이 선조(宣祖)이다.
[주-16] 공거(公車)의 장주(章奏) : 공거는 한(漢)나라 때 상소 및 징소(徵召)에 대한 일을 관장했던 관서(官署)의 이름이다. 여기서는 승정원에 올라온 상소를 가리킨다.
[주-17] 신이 …… 않으시고 : 《논어》 〈위령공(衛靈公)〉에 “군자는 말만 잘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등용하지 않고, 그 사람이 보잘것없다고 해서 그 사람의 좋은 말까지 버리지는 않는다.”라고 하였다.
[주-18] 죽은 …… 하였으니 : 전국 시대에 연 소왕(燕昭王)이 곽외(郭隗)에게 인재를 천거하게 하자, 곽외가 말하기를 “옛날에 어떤 임금이 연인(涓人)에게 천 금(千金)을 주어 천리마를 사 오도록 하였는데, 연인은 말이 이미 죽고 없으므로 5백 금을 주고 그 말의 뼈를 사 가지고 왔다. 그러자 천리마를 간절히 구한다는 소문이 나서 곧이어 살아 있는 천리마 세 마리가 이르렀다.”라고 하면서 인재를 구하려면 곽외부터 등용하라고 한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戰國策 燕策1》 여기서는 이관명의 보잘것없는 견해를 받아들이면 앞으로 훌륭한 의견들이 조정에 올라올 것이라는 의미이다.
<출처 : 병산집(屛山集) 제3권 / 소차(疏箚) 16수>
ⓒ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ㆍ한국고전문화연구원 | 유영봉 황교은 (공역) | 2015
원문 : 玉堂應旨箚
伏以天灾地變。何莫非人主之所當警懼。而其切於民事者。莫過於旱暵。旱之於一年之內。何莫非可憂之時。而禾糓之受害者。亦莫如春夏之交。今者皇天 o疾威。祝降時灾。乃於百糓播種之節。一旱彌月。八路同然。種不入土。秧枯於塲。萬姓叩心。大命近止。以 殿下父母生民之心。其於恐懼修省之道。盖無所不用其極矣。躬禱社壇。請命神祗。輦過金吾。疏釋罪囚。庶幾上可以格神明。下可以洩壹鬱。而一日二日。雨意愈邈。臣等不敢知上天玄遠。雖以殿下至誠惻怛之意。亦無以感動而然耶。亦不敢知殿下之所以修省者。未盡其道。而區區一二文具。不足以克享而然耶。嗚呼。天人一理。有感必通。而感之之道。以實而不容僞矣。是以成湯六責。大雨千里者。盖由 o於責躬修省之實。而天之報施若是明著。則盖高之聽。獨不應於今日者。深恐殿下應天之實。終有愧於成湯而然也。臣等所以怨明主而憂治世者。至此而益切矣。繼伏見日昨求言之旨。十行絲綸。辭意懇切。瞻聆所及。莫不感泣。凡有知識。孰敢不奔走偕來。以告我殿下哉。若以殿下求助之實心。克恢先王擇蒭之實德。一言之可用。一弊之可革。次第行之。則應天而有應天之實矣。求言而有求言之實矣。仁愛之天。豈終有不動者乎。臣等愚蒙。忝在經幄。識慮淺短。固不足以裨補聖德。而若其願忠之 o誠則不後恒人。玆敢不避猥越。冒陳瞽說。而終始以實之一字。爲殿下覼縷。惟聖明之裁擇焉。殿下智周萬物。行高百王。一心圖治。夙夜孜孜。而無大闕失可以召天灾結民怨者。羣下之所共知也。然而臨御以來。饑饉癘疫。比歲相尋。式至今日。旱暵此極。生類將盡。以貽宵旰之殷憂者何哉。臣等竊以爲殿下不能實立聖志。實典聖學。從諫而無從諫之實。節儉而無節儉之實。至於恤民。非不切矣。而亦無實效加於百姓。無怪乎民生之日困。而天灾之隨至也。傳曰志者。萬事之根柢。又曰功崇惟志。是以古 o昔帝王圖王圖霸。各有其志。而隨其志之大小。功業以之汚隆。今殿下負扆咨嗟。恥爲凡主。而不能奮發大志。自以古聖王爲期。芬華翫好。或有撓奪。而公私義利。互爲賓主。終莫之勇往直前。日進月就。則雖與凡主之自暴自棄。畫一而廢之者。若或有間。而及其不至。一也。先儒曰志者。進德之基也。發軔乎此。無遠不達。無堅不入。伏願殿下實立聖志。審辨於舜跖之分而正其門路。期臻於高明之域而不小轉移。則聖志所向。事無不成。而治效之不食。非所憂也。帝王之學。雖與韋布不同。而講學以致知。力行而踐 o實者。元無二塗。今殿下廣廈細氊之上。矻矻而講究者。罔非千聖所以修己治人之法。而體之聖躬施諸政事者。率多與之相乖。豈殿下之察理有所未盡而然耶。惟殿下本源之地。眞積之工未至。而私意不能淨盡。隨處闖發。爲累於聖躬。而爲害於政事者然也。然則聖上之講學雖勤。而亦何益於買櫝還珠之歎哉。伏願殿下加意於刻苦眞實之訓。探賾精微。灼見實理。必求止於至善而無少前却。反身而誠之。推擴而行之。則聖學日臻於緝煕。而從欲之治。沛然莫之禦矣。傳曰訑訑顔色。拒人千里。 o古人有言。下之從上。從其心之所好。不從其口。今之進言者。雖無至言讜論以佐下風。而狂夫之言。聖人擇焉。則豈無一得之可用。而少有觸忤。輒加未安之意。就其軟熟無稜角而略及時弊者。外示嘉奬。而亦無採施之實。是以欲匡闕遺者。趑趄而莫敢進。欲論時弊者。亦以爲無益而莫之繼。幾何不至於主過不聞。含嘿成習乎。其爲國家之憂。不可勝言矣。古語曰奢侈之害。甚於天灾。此極言浮靡之所以耗財也。今者灾沴連仍。生物之道。旣極損縮。而又從而費之無用者。未知其幾何。則民安得不困。國安得不 o貧乎。伏覩殿下敦尙素朴。宴居淸穆。無馳騁弋獵之娛。狗馬聲色之累。宜其草偃之化。丕變一世。而目今奢侈之弊日以益甚者。豈殿下所以躬率。未盡其實而然耶。召,傅進誡。不貴遠物。漢文惜財。不營露臺。而今者尙方之歲貿燕市。旣非先王不貴遠物之義。而衆胥私販之錦冒進後庭。此不但有歉於衣不曳地之德。而宮禁之不嚴。亦可寒心矣。若夫諸宮第宅之侈大。莫今日若也。間架定式。昭載法典。且臣等竊聞長老之言。先朝後宮安嬪。初無賜第。及至翁主出閤之後。隨往其第。穆陵諸翁主之家。或 o有湫隘而未備內外之別。先王尙儉之德。於此槩可見矣。今殿下不惜費入之廣。務盡壯麗之制。華題傑構。十倍舊典。而侍御內間之嬪嬙。未離襁褓之王子。各立門戶。對峙街衢。而見今空虗。不過爲掌任輩守直之所矣。財非地涌。役非鬼營。則傷財勞民。已不可言。而殿下之無實心崇儉。四方固有以窺見者矣。諸臣章奏。多以爲言。而殿下一不開納。則其有欠於從諫之道。而貽累聖德豈淺尠也哉。伏願殿下繼自今。亟恢敷受之量。克盡昭儉之方。言可用則用之勿吝。儉自上而下有觀感。則公車章奏。 o不爲無用之空紙。而綺紈侈靡之習。庶幾一滌而歸之朴素矣。嗚呼。今日生民之倒懸。亦殿下之所嘗洞燭而隱恫者也。蠲减之惠。遍洽於獨存之幼稚。蕩滌之令。更及於積年之逋欠。其他所以軫念而撫恤之者。亦云至矣。而蔀屋之下。愁怨益深者。病民之事。有所未祛。而民不蒙實惠故也。今之民弊。實難毛擧。姑就其大者論之。軍布之弊。實爲膏肓之病。臣等嘗以此弊不祛則國不爲國。變革之道。雖難倉卒謀之。而不可不早夜以思。必致善變之意。仰達於前席。附陳於章牘。聖明亦賜頷可而拭目。至今尙無指 a177_057c揮。不審殿下未得其善變之道耶。抑以臣言直以爲妄誕而不足用歟。伏願殿下先加睿念。廣詢廟堂。盡取前日諸臣所達若戶布均役等說。參究細繹。從長變通。以解百年之痼弊。以濟斯民之塗炭焉。生民休戚。係於守令。而今之守令。多不得人。疲軟而不勝其任。貪饕而專事封己。而內無刺擧之論。外無黜陟之公。晏然保其專城之享。而民受荼毒。或有一二論劾之事。而若使査覈則査官拘於顔情。下吏牽於威令。奸贓之狼藉。盡歸於白脫。曾未幾何。復叙州郡。侵虐如舊。其爲貪吏地則厚矣。而獨不念小民之重 a177_057d困乎。臣等之意以爲愼簡守令。俾盡字牧。而間遣繡衣。詳加廉問。斥其疲軟。劾其貪汚。且以曾前貪吏之厚犯贓汚而因査得脫者。更使按驗。如其査覈不以實狀。則按査之官治之以欺罔之罪。追加貪吏以當施之律。則査官有所懲而不敢不正。貪吏有所畏而不敢放肆矣。其於嚴贓律釐庶政之道。不爲無補矣。今此忠翊忠壯等衛行査之擧。盖出於綜核眞僞之意也。此類之因緣吏胥。無蔭冒屬。雖極可惡。入屬年久之後。遽爾汰定賤役。則民間之繹騷。渠輩之怨詛。已不可言。而且其行査之際。未易覈實。觀於頃年忠 a177_058a義査正及近日良丁存减事。可知也。雖然旣已行會各道則似難中輟。而當此憫旱之日。凡係擾民之事。姑宜一切停止。稍待日後。從容審處。似乎得宜。至於忠壯衛則本以戰亡子孫許屬。而仄聞昔年故相臣金錫胄判兵曹時。稟旨筵席。雖無戰亡之蔭。良丁之願爲入屬者。亦許募入。而依例立番納布矣。今若並與冒屬而一例沙汰。則豈不寃痛乎。亦令有司詳加區別。勿爲混淆。則可免朝家失信之歸矣。山郡大同之錢布代納者。盖慮搬運之艱。而出於便民之道也。而近以木緜之價高。民願納米而不得。以此爲 o怨。當初便民之意。今爲厲民之歸。竊以爲不可也。請自今錢布若米。一從民願。而毋取錐刀贏餘於疲氓口吻之中。不勝幸甚。且拯米之害。爲今沿江各邑莫大之弊。盖授一石之拯米。秋捧九斗者。浸漬之米。雖滿一石。及其晒淨。不過八九斗故也。而今則所拯之石雖存空殼。不問盈縮。直以石數分給。故民或受出一二斗腐敗之米。亦不堪食。而及秋督納。必滿九斗之數。荐歲饑饉之餘。自己惟正之供。猶且難辦。而重之以科外之白徵。民之怨之。固其宜也。苟能變革此弊則誠爲大惠。如其未也則請自今凡有敗船之處。 o待其拯出。斗量分給。秋捧之數。以此爲準。少紓生民一分之急。不勝幸甚。顧念臣等陳腐之言。雖不足以仰答聖上求助之至意。若其欵欵之忠。則只望 殿下於治己臨民之道。務盡其實。以回天怒。以解民怨。倘蒙聖明勿以人廢言。擇其可行者。亟賜施行。則進於此者。亦必有繼陳者矣。死馬之骨。猶可以致千里之駒。惟聖明之留神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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