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기자의 칼럼
열정과 희망, 그리고 따스함을 쉽게 찾아보는 곳 - ‘참여형 문화인’이 즐비한 낙원 악기 상가를 방문하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대학생기자 고성훈 (2기, 서울취재)
취재일 : 7월 25, 28일
△ 서울시 종로구 낙원동에 위치한 낙원상가, 허름한 외부 전경
“제발 좀 나가세요. 영업 방해하지 말고…”
한 손에는 카메라, 다른 한 손에는 수첩을 들고 다니며 상가 이모저모를 물어보는 필자의 모습이 상인들에게는 그리 달갑지 않은 모양이다. 그 이유는 수차례 방영된 각종 매체의 부정적인 영향이 컸기 때문이겠다. 지난 1968년, 세계 최대의 악기 전문상가라 칭할 정도로 그 명성이 자자했던 곳임과 동시에 상가 4층에 있는 할리우드 극장(현재 서울 아트시네마)과 123 카바레, 당시 최대 규모였던 낙원볼링장 등이 호황을 누리며 서울 최대의 복합 문화공간으로 전성기를 이뤘다. 아울러 주변에 종로의 대표적인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있기에, 전통문화와 현대 문화를 잇는 주요 거점이 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러한 화려한 배경을 뒤로한 채 이제는 ‘남산을 가린다.’, ‘도시 재정비를 해야 한다.’라는 이유로 철거위기에 놓여 있다. 그렇기에 30년 넘게 지켜온 터줏대감들에게는 내심 불안하기 짝이 없었고, 당시 영문도 모른 채 취재하겠다고 덤벼든 나 자신이 지나치게 용감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지만, 낙원상가는 역사적, 문화적인 가치가 깊게 배어 있다. 아마추어부터 프로 연주자까지 한국에서 음악을 한다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쯤은 찾아간 곳이며, 상가 한복판에 서 있는 지금(주말, 평일 구분없이)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이 붐비기 때문이다. 입구부터 악기 시연하는 소리로 행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관악기, 현악기, 타악기 등 수많은 악기 속에 자신만의 ‘명기(名器)’를 사들이기 위해 이것저것 바꿔가며 연주하는 구매자들, 악기 수리 후 직접 시연해보는 악기점 주인들, 처음 구입이라 다소 긴장한 눈빛이 역력한 학생들을 위해 맛깔스러운 연주를 선사하여 구매자의 마음을 동요하게 하기도 하는 이들의 모습을 한 눈으로 보니 괜스레 흐뭇하다.
이 건물의 2,3층에는 약 240여 개의 악기점이 밀집해있다. 악기점을 자세히 둘러보면 그 앞을 서성이는 사람들을 쉽게 보게 된다. 중년으로 보이는 직장인을 만났다. “얼마 전에 동년배 직장 동료가 점심때 사옥(社屋) 옥상에서 아내 생일날 깜짝 선물을 하겠다며 색소폰을 연습하는 모습에 오히려 제가 반해, 가진 비자금을 모두 털어 이참에 장만하려 합니다.” 투명 유리창 밖에서 뚫어지라 쳐다보며 기대에 차있는 미소를 짓는 모습이 마치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와 같았다. 뒤를 돌아보니, 피아노를 갖겠다고 떼를 쓰는 아이가 보였다. “학교에서 친구가 피아노 치는 모습을 봤나 봐요. 하도 졸라대서 시세 알아보려 들렀는데, 애가 이렇게까지 사고 싶어할 줄은 몰랐어요.”라며, 이곳저곳 둘러보며 한 푼이라도 싸게 사려는 그 모습이 정겨웠다.
한 악기점 사장은 “최근 1년 사이에 환율이 많이 올라 악기 가격 역시 덩달아 고가 물품이 돼버렸어요. 그러다 보니 매출이 예년과 비교하면 많이 감소하였고, 설사 사겠다고 하는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을 맞추다 보면 남는 게 거의 없답니다.”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또한, “가만히 살펴보면, 유리창 밖에서 제 가게에 진열된 악기를 수 분 동안 주시하는 손님들 모습을 쉽게 보게 되는데요, 열 분 중 여섯, 일곱은 매일 오는 분들이세요. 그래서 한 번은 가게 안으로 불러서 커피 대접을 했답니다.”라며, 말하는 모습에는 사람 사는 냄새가 이런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아쉽게도 필자의 주변에는 음대 전공생이 아닌 이상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손가락으로 꼽힌다. 그만큼 현대 사회의 기계음을 좇는 성향과 함께 예전처럼 오순도순 한자리에 모이기보다 각자 개인 활동을 하는 환경에 지나치게 익숙해져서 그렇게 되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90년대 까지만 해도 여자는 피아노, 남자는 기타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인식이 짙게 깔렸었다. 그중에 누구 한 명이 여럿이 모인 곳에서 자신 있게 연주를 하면 인기도는 곧바로 하늘을 찔렀으며, 나아가 사랑하는 이성에게 결혼 프러포즈를 할 때 역시 승낙의 지름길이 되었다고 한다. 이에 반해, 멀티미디어의 급속한 유입과 하루하루 바삐 보내는 현대인들에게는 어쩌면 ‘사치(奢侈)’가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낙원상가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은 예외라 칭하고 싶다. 그 사람들의 가슴속에는 낭만이 있었으며, ‘구경꾼 문화인’이 아닌 ‘참여형 문화인’의 발판에 자연스레 도움닫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악기 구입 후 자신이 겪어나 갈 고독과 시련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 역시 중요하겠다. 자신이 어떤 악기를 선택했고, 얼마나 예산을 투자했으며, 앞으로의 관리 방법, 혼자 자연스레 연주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위해 공들일 시간까지 계산해야 한다. 악기를 다루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제아무리 쉬운 악기를 연주한다 할지라도 물 흐르듯이 연주하는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많은 인내를 감당해야 한다고 외친다. 즉,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얘기가 되겠다.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는 말이 있듯이, 꾸준함을 통해 어느덧 자신이 원하는 경지에 오르게 된다면 삶이 180도 전환하지 않을까 라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본다.
△ 낙원 악기 상가의 이모저모, 필자가 방문한 이 날은 직장인이 더 많았다.
△ 25일에 열린 낙원 악기 상가 직장인 밴드 경연대회, 음악에 대한 이들의 열정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