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일만 친구 2013.07.27(토)~29(월)
첫째 날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친구 섭이네 고향,
영일만으로 여행을 떠난다. 구룡포 이정표가 보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섭이 고향 친구가 기다리고 있는 가리비 한상자의 선물이었다.


친구의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의 인품을 안다고 했다.
마음이 통하는 친구~
그래서
유유상종(類類相從)인
좋은 친구와 어울려야 한다.
▼ 과메기의 본고장 구룡포
고서상의 과메기 이야기-
소천소지(笑天笑地 / 1918 최창선) : 동해안 지방의 한 선비가 겨울에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기 위해 해안가를 걸어가다가 민가는 보이지 않고 배는 고파오는데, 해변가를 낀 언덕위의 나무에 고기의 눈이 나뭇가지에 꿰인 채로 있는 것을 보고 찢어 먹었는데 너무나 맛이 좋았었다. 과거를 보고 내려온 그 선비는 집에서 겨울마다 생선 중 청어나 꽁치를 그 방법대로 말려 먹었다.

경상도읍지(1832년), 영남읍지(1871년) :
영일만의 토속식품 중 조선시애 진상품으로 선정된 관련 식품은 연일과 장기 두 곳에서만 생산된 천연재료의 관목청어뿐이다.

동국여지승람 영일현 편 :
매년 겨울이면 청어가 맨 먼저 주진(지금의 영일만 하구)에서 잡힌다고 하는데 먼저 이를 나라에 진헌한 다음에야 모든 읍에서 고기잡이를 시작했다. 잡히는 것이 많고 적음으로 그해의 풍흉을 짐작했다.
▼ 구룡포 100년~
구룡포 근대 문화역사거리는 100년 전 구룡포에 이주·정착한 일본인들이 형성한 거리다. 당시 음식점, 제과점, 어구류 판매점, 술집, 백화점 등이 들어선 구룡포 지역 최대의 번화한 상업지구로 성장했으며, 지금도 이 거리에는 당시의 가옥들이 잘 남아 있어서 포항시가 복원사업을 통해 보존하고 있다

낡은 지붕과 붉은 벽돌, 빛바랜 나무창살... 무엇하나 오래되지 않은 것은 없다. 일본식 가옥거리에 들어서면 마치 빛바랜 풍경사진을 보는 것 같다.
일제 강점기~
우리 역사의 어두운 과거이기도 하다.


100여 년 전 일본인들이 살았던 일본가옥들이 1900년대 초반으로 시간을 되돌려 놓은 듯 자리를 잡고 있다.

구룡포 공원 입구 계단 ▲ 돌기둥~
이곳 공원입구 계단과 돌기둥들은 1920년대 일본인들이 세웠으며 돌기둥은 왼쪽 61개 오른쪽 59개 등 모두 120개가 있다. 돌기둥에는 구룡포항을 조성하는데 기여한 구룡포 이주 일본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패전으로 일본인들이 떠난 이후 구룡포 주민들은 시멘트를 발라 기록을 모두 덮어버리고 돌기둥을 거꾸로 돌려 세웠다.
그 뒤 1960년 구룡포 주민들이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들의 위패를 봉안할 충혼각을 세우는 과정에 도움을 준 후원자들의 이름을 다시 앞뒤를 돌려 세운 돌기둥에 새겨 현재에 이르고 있다.
▼ 구룡포 근대역사관

이 건물은 1920년대 일본 가가와현에서 이주해 온 하시모토 제기치가 살림집으로 지은 2층 일본식 목조가옥이다. 해방 후 개인주택으로 사용되어 오던 것을 포항시가 매입 수리하여 '구룡포 근대역사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건물 내부에는 100연 년 전 모습들이 잘 남아 있으며 당시 생활모습을 다양한 전시자료를 토해 보여주고 있다. 건물은 일본식 건물의 구조적 의장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 구룡포 섭이 형님 댁~


싱싱한 횟감으로 우리를 맞는 형수님의 맛깔난 손맛에 그만 함포고복... 그동안 만보가 맛본 횟감 중 최고였다. ▼ 삼촌이 뜬다하여 모인~ 포항 조카와 부산 형수님 그리고 김해 조카와 조카딸~

호미곶




첫댓글
겁게 떠날수있는 여유로움이 부럽 습니다.
친구 따라 나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정년 하시더니 좋은 곳으로 여행 많이 하시네요...
저도 그럴수 있을런지...
꿈은 이루어 진다는 말처럼~
분명 그리 되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