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26일
제목 마무리 잘하는 성도
본문 딤후 4:5-8
무슨 일이든 끝이 좋아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도 끝이 좋아야 합니다. 어떻게 우리 인생의 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면 좋을까요? 바울의 마무리 모습에서 그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유언적인 요소를 갖춘 말씀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에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전제로 마무리했다
바울은 자신을 전제로 드릴 각오를 합니다. 전제란 희생의 제물을 준비한 후 마지막에 부어질 붉은 포도주를 의미합니다. 이는 바울이 생의 마지막 순간을 순교의 제물로 드릴 마음을 표현합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변함없이 주님을 섬겨왔습니다. 종횡무진 주를 위해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성도들을 굳게 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이제 백발이 성성한 바울은 한가롭게 보낸다고 해서 나무랄 사람은 없지만, 남은 힘 다 드림으로 생을 마감하고 싶어 합니다.
바울은 죽을 때에도 잠자듯 편하게 죽는 죽음을 원치 않았습니다. 기왕 죽을 바에 예수님을 위하여 죽고 싶었습니다. 그런 뜻을 여러 차례 밝혔습니다. 빌1:20-21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행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순교의 죽음으로 삶을 마무리하고 싶었습니다.
우포늪을 지키는 이인식 선생님은 교사직을 은퇴하고 날마다 우포늪에 출근하여 새들을 보살피며 사는데, 그의 소원은 자신의 죽은 몸을 독수리의 밥으로 내어주는 것입니다. 새를 위하여 아무것도 아끼지 않겠다고 합니다. 새를 위해서도 자기 몸을 줄 수 있다면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시고 죽으신 예수님을 위하여 남은 생을 드림이 마땅하지 않을까요?
모두가 순교적 죽음을 죽을 수는 없지만, 나는 젊으니 나중에 잘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늙은 몸이니 한가롭게 살다가 죽겠다는 생각도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남은 삶을 어떻게 살겠냐고 물으면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녹슬어 죽느니 닳아져서 죽겠다”던 휘필드의 고백을 내 고백으로 삼기 바랍니다. 온 힘을 다하여 주를 섬김으로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을 지킴으로 마무리했다
바울은 끝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영적 투쟁을 했습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고”라고 했는데, 이는 당시 유행하던 권투를 마음에 두고 썼습니다. 그는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웠습니다. 또 갈라디아서를 보면 십자가의 도리를 무효로 만들려는 거짓 교사들과 치열한 투쟁을 했습니다. 바울은 믿음을 지키는 일을 위하여 온갖 고통과 핍박을 겪었음을 고후11:23-27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선한 싸움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쳤습니다. 바울은 눈을 감는 순간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당시 마라톤이 유행했는데 결승점까지 달렸음을 염두에 둔 표현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믿음을 잘 지켜오고 있습니까? 지금 믿음을 지키기 위해 권투하는 사람들처럼 싸우며, 달리기 하는 사람처럼 온 힘을 다해 싸우며 뛰고 있습니까? 젊고 건강할 때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늙을 때, 몸이 아플 때에도 믿음의 길을 따라 달려가야 합니다. 믿음을 끝까지 지켜야 하고, 마무리를 잘해야 합니다.
벼농사도 마지막 결실기가 중요하듯이 노년의 때 신앙이 잘 익어야 합니다. 죽을 무렵 믿음으로 마무리해야 합니다. 한융기 집사님의 부친 한형수 성도님은 교회에 나오자마자 새벽마다 정갈하게 차려입고 기도하러 나오셨고, 천국 가실 때까지 그렇게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마무리를 잘하셨습니다.
지난주 103살 박애심 집사님께서 천국에 가셨습니다. 지난주일 오후 예배 후 마지막으로 뵈었습니다. 두 주 동안 물도 먹지 못하고 산소마스크로 연명하는 중이었습니다. 눈뜰 힘도 없는데, 신앙고백을 다른 때보다 더욱 또렷하게 확실하게 했습니다.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성령님이 역사하신 것이지요. 믿음의 마무리를 잘하신 것입니다. 이을진 권사님 역시 “목사님! 저는 끝까지 예수님 잘 믿을 것입니다.”라는 고백으로 믿음을 마무리하셨습니다.
성도님들도 믿음의 마무리를 잘하시기를 바랍니다. 누가 봐도 믿음의 마무리가 잘하신 분이었다는 말을 듣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믿고 천국의 소망을 확신하는 중에 눈을 감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무리를 잘하는 신자가 되라
건축할 때 마무리를 잘하는 사람이 좋은 건축가입니다. 전자제품 서비스하러 오신 분들 보면 뒤처리까지 깨끗하게 정리한 후 혹시 다른 곳에 불편한 것은 없습니까? 사용하시다가 불편한 점이 있으면 다시 연락 주십시오.
교회 행사를 마친 후 쓰레기 분리하는 것을 보면 더 손볼 것이 없이 깔끔하게 정리를 마치기도 하지만, 재활용할 수 있는 것까지 분리하지 않고 뭉뚱그려 버리기도 합니다. 교회 공간을 사용한 후 다음 팀이 사용하는데 기분 좋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정돈을 잘해야 합니다.
마무리는 사소한 곳에서 차이가 드러납니다. 동생이 옷 가게를 하는데 중국에서 만든 옷을 보면 단추 하나, 바늘 한 땀이 부족해서 불량품 취급을 받고 헐값에 팔리거나 반품합니다. 요즘 흔히 쓰는 말로 2%가 부족합니다.
반면 일본은 바늘 끝만큼의 미세한 부분에서 마무리를 잘하니 선진국 대접을 받습니다. 시야게라는 일본말이 있는데 마무리의 뜻인데, 무슨 일이든 정교하게 마무리합니다. 도로를 파고 수도관을 묻은 후 재포장할 때 요철이 거의 생기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도로를 땜한 곳을 보면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맨홀과 노면의 높낮이가 다르면 차량 흐름이 원활하지 않고 차축이 흔들리니 차량이 빨리 마모되고 허리가 아픈 분들에게 고통을 줍니다.
일상의 일도 사소한 일에 의해 큰 격차가 생기거늘 하물며 믿음의 일이겠습니까? 교회 어린이와 청년들이 씩씩해짐도 귀하지만, 노인 성도님들의 마무리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교회의 저력은 젊은이의 수효에만 있는 게 아니라 믿음으로 마무리한 자가 몇인가에 따라 평가를 받게 됩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본래는 “신은 디테일에 있다.”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단이나 사기꾼은 언뜻 보면 비슷합니다. 그러나 세부 사항으로 들어가면 거짓과 악이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도 큰 것이 아닌 디테일 곧 작고 세심한 곳에 마음을 두십니다. 지금 하는 일이 무엇이든지 조금만 더 세심한 노력을 해보십시오. 옷차림 조금만 신경 쓰면 세련되고 단정해 보입니다. 직장에서 맡은 일에 대해서도 마무리에 신경 써보십시오. 출근은 5분 빨리, 퇴근은 사무실 주변을 살핀 후 조금 늦게 해보라 꺼지지 않은 전등이나 선풍기도 있을 것이고, 종종 결정적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번 불난 호텔 직원은 방에서 불탄 냄새가 난다는 고객의 말을 듣고 객실 주변을 잠깐만 살펴보았다면 어땠을까요? 7명의 사람을 살리고 호텔 재산을 지키고, 소방인력을 낭비하지 않는 일등 사원이 될 것입니다. 화재 현장에서 에어 매트 위에 떨어졌지만, 미미한 차이로 비켜나감으로 둘 다 죽었습니다. 사소한 마무리는 작은 일이 아닙니다. 크고 중요한 일이 됩니다.
예배 시간 조금만 일찍 오면 넉넉한 마음으로 예배에 임할 수 있습니다. 설교 듣는 태도를 조금만 더 마음을 기울이면 영혼이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헌금도 깨끗한 돈 모아두었다가 드림도 참 귀하게 보입니다. 예배 마친 후 10초만 주변을 살펴보십시오. 그러면 옆 사람의 놓고 간 물건, 비뚤어진 의자도 보이고 꺼지지 않은 선풍기도 보입니다. 요즘 예배 후 선풍기, 에어컨을 끄는 분들이 생겨서 감사합니다. 닫힌 창문도 열어주십시오. 평소처럼 하시되 마무리에 조금만 신경을 써보십시오. 작은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살펴보십시오. 여러분이 가장 믿음의 열렬했을 때가 언제였습니까? 그때에로 회복하시고, 그 터 위에 사소한 마무리를 더 하시기를 바랍니다. 마무리 잘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