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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찬양예배(모임)의 현주소와 전망
경배와 신학이 없는 찬양예배
교회성장 위한 분위기 띄우기에 이용
전문사역자·목회자 인식 부족 부작용
“영혼의 노래만 하나님과 교제 가능”
한국교회는 그동안 찬송가 일변도의 찬양을 지양하고 습관적이고 형식적인 예배의 틀을 벗어나서 새로운 예배 형태인 찬양으로 드리는 ‘찬양예배’가 경배와 찬양, 찬양과 경배의 이름으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찬양 신학의 부재와 전문 사역자(예배 인도자)의 부족, 기성 목회자의 인식부족, 대중음악(CCM)의 무분별한 유입 등으로 적지 않은 갈등과 문제들이 노출되고 있다.
1. 한국교회 찬양의 역사
이 땅에 찬송가로 선정된 곡 외에 새로운 복음성가와 찬양이 들어온 것은 1970년대 중반이다. 1974년, 1977년 엑스폴로와 민족 복음화 대성회를 중심으로 ‘내게 강 같은 평화’, ‘나 자유 얻었네’, ‘예수님 찬양’ 등의 곡들이 복음성가라는 새로운 장르의 교회 음악의 형태를 띠고 보급이 되고 불려졌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예수전도단’ 화요모임을 통해 찬양으로 드려지는 새로운 형태의 예배가 생겨났고, 청년 대학생을 중심으로 이 모임은 한국 최초의 경배와 찬양 성격의 모임으로 꾸준히 성장을 거듭하였다.
80년대 초반은 한국교회 안에 본격적인 복음성가 활동이 시작되었던 시기이다. ‘사랑’, ‘실로암’, ‘가서 제자 삼으라’, ‘세 개의 못’ 등 복음성가들이 사랑을 받으며 국내 창작 곡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대중적 교회 음악에 상당한 공헌을 한 극동방송 복음성가 경연대회가 1982년부터 시작되었다.
80년대 중반, 예수전도단 화요-금요 모임이 더욱 활발해졌고, 최덕신을 중심으로 한 ‘주찬양선교단’이 86년 ‘그 이름’이란 음반을 내면서 수준 높은 복음성가 문화를 이끌며 꾸준히 전국적으로 복음성가를 보급하는데 큰 일을 했다.
87년에는 온누리교회에서 ‘경배와 찬양’이라는 이름으로 ‘두란노 목요 찬양’이 시작되었고, 교회적으로 시작된 최초의 찬양예배가 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충신교회 다드림선교단의 목요찬양예배, 88년 광성교회 목요 찬양, 중앙성결교회 화요 만남의 찬양, 89년 소망 호산나 목요찬양 그리고 은성 목요찬양, 부천 복사골 찬양, 임마누엘 선교단 목요찬양, 필그림 선교회 등 찬양 집회가 계속 생겼다. 상당수의 교회가 현재까지 이러한 ‘찬양예배’모임을 가져오고 있다.
2. 한국교회의 찬양예배의 문제점
1) 찬양의 신학이 없다.
한국교회나 세계교회 안에 무엇이 올바른 찬양인지, 어떻게 찬양해야 하는지 신학적인 정립이 되지 않아 교회 안에서 상당한 혼란과 갈등이 노출되고 있다.
과거의 전통적인 음악만을 진리라고 말하는 것도, 현대음악만을 고집하는 것도 다 문제가 있다.
찬송가가 있고, 성가대의 찬양이 있고, 경배 찬양이 있고, 복음성가가 있고 요즘에는 운동권 쪽에서 나오는 ‘기독교 노러도 있다. 여기에 대해서 교회 음악 지도자들은 일방적 매도가 아니라 분명한 신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교회의 찬양을 하나되게 해야 한다. 이것이 이 시대의 교회음악 지도자들의 사명인 것이다.
찬양에 대한 신학화가 없이 드려지는 ‘찬양예배’는 많은 한계상황에 부딪치고 있고, 특히 청소년들의 감정에 지나치게 치우치는 찬양(하나님 때문에 열광하는 것이 아니라, 분위기 때문에 열광하는) 등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교육신학, 선교신학, 목회신학 또 해방신학, 역사신학 이제 그 무엇보다도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는 찬양의 신학화를 시급히 이루어야 한다. 이러한 신학적 정립이 없이는 올바른 찬양도 지금의 나누어진 교회찬양도 하나되게 할 수 없다.
2) 전문사역자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경배와 찬양’은 단순히 노래부르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이기에 훈련되고 소명감 있는 예배인도자에 의해 인도되어야 한다. 사실 ‘찬양예배’모임에서 예배인도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어떤 사람에 의해 예배가 드려지는지에 따라 그 예배와 집회가 상당히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많은 교회에서는 신학적, 영적, 음악적으로 준비된 사역자들이 절대 부족하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시급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악기도 구입하고, ‘찬양예배’ 모임을 위한 모든 시스템을 갖추어 놓고도 사역자가 없고, 연주자가 없어서 고민하는 교회가 너무도 많다. 머리 없는 몸뚱이가 어찌 존재할 수 있겠는가? 두뇌 없는 몸의 움직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교회는 이러한 일을 단순히 기타 좀 칠 줄 안다고, 음악적 달란트가 좀 있다고 무작정 맡겨서는 안 된다.
교회는 미래의 지도자를 길러야 한다. 영적으로 훈련되고, 신학적으로 훈련받고, 음악적 재능을 지닌 예배 인도자를 발굴하고, 훈련시키는데 교회는 지금부터라도 과감히 투자를 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것이기 때문에 선교-구제-교육-봉사 그 어떤 부분보다 우선적으로 물질적 지원과 관심이 있어야 한다.
예배가 회복이 되고,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새로운 심령이 되면 선교도 구제도 교육도 봉사도 저절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많은 교회에서 찬양을 인도할 예배인도자, 전문사역자들을 요청한다. 그러나 이 일에 헌신된 사람이 없다. ‘찬양예배’를 인도할 전문사역자가 너무나도 시급한 현실이다.
이제까지 큰 교회 찬양모임의 인도자의 인도를 외적인 부분만 본 따서 인도함으로 영성과 음악성과 조직관리 능력의 부재 등으로 많은 시행착오를 가져 왔다. 이에 대하여 대책에서 언급하겠지만 찬양예배인도자(주 인도자, 협력 인도자-연주자, 음향, 영상, 워쉽댄스, 싱어 등)를 양성하는 전문기관이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 찬양신학교와 그 밖의 찬양세미나를 통해서 노력되고 있는 부분이 있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아직까지 주변을 맴돌고 있는 실정이며 그것도 상당부분 상업성을 목적으로 하는 바가 많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3) 찬양집회의 수단화
요즘 어떤 교회에서는 찬양에 대한 분명한 새로운 인식이 없이 남들이 하니까 우리도 한다는 식의 무비판적인 찬양집회들이 생기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숫자가 제대로 모이지 않으니까 중단하는 교회도 많이 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기성교회 목회자들이 가진 찬양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찬양을 교회부흥의 수단으로 본다든지, 청소년 문화의 한 장르로 본다든지, 다른 어떤 인간의 계산을 가지고 한다면 이것은 분명 잘못된 생각이다.
찬양은 우리가 당연히 드려야 하는 의무요, 이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로서의 찬양으로 마땅히 드려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인간적인 계산으로 판단한다면 분명 찬양예배에 대해 큰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찬송은 예배의 중요한 부분이다.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과 은혜의 표현을 위한 수단이며,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해주신 모든 것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며, 영혼의 노래이다. 따라서 찬송은 예배할 때 하나님께 반드시 드려야 하는 제물이 된다.
4) 예배 없는 찬양집회(모임)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왜냐하면 흐르는 물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여 있는 물에는 생명이 없다. 고기가 자랄 수 없다. 풀 한 포기도 자랄 수 없다. 우리의 찬양집회가 단순히 노래만 부르는 집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로서의 집회(모임)가 되어야 한다.
예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남을 가지며 그 만남에서 우리는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변화가 없다는 것은 그 만남이 없었다던가, 친밀하지 못하고, 온전하지 못한 만남이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찬양집회, 찬양예배 모임은 이웃과 민족을 고치고, 복음 들고 죽어 가는 영혼들을 향해 나가는 선교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삶의 기쁨과 감사, 사랑과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청소년들이 기성세대에 비판받는 부분이 이 부분이다. 찬양할 때는 손들고, 눈을 지긋이 감고, 감정도 잘 살리는데 열매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도 큰 문제다. 이것은 찬양을 시로 찬양하지 않고 단순히 리듬이 좋아서 리듬으로만 부르기 때문이다. 우리의 찬양은 리듬을 도구로 해서 가사로, 시로 우리의 고백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리듬은 우리의 감정을 돋우어 주긴 하지만 그 자체가 찬양이 될 수 없다. 그 리듬으로 얼마든지 세속적인 노래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찬양으로 예배를 드리는 모든 사람들은 리듬보다는 가사에 더 주목하고 시로 즐거이 부르며 하나님께 나가야 할 것이다.
찬양은 영의 노래이다. 우리의 입술로만이 아니라, 내 영혼 깊은 곳에서 나오는 진실한 영혼의 멜로디로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과의 영적 만남이 이루어지고, 그 만남을 통해 생명력 넘치는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먼저 무릎꿇고 그 다음 찬양하자
음악형태는 바뀔 수 있어도 영성은 유지돼야
전문가들 경건훈련… 사역영역 넓혀주길
무조건 배척말고 선교적 효용성 인정
5) 대중음악(CCM)의 오해와 갈등(무비판적 수용과 무조건적 반대)
CCM에 대한 논란은 많이 있어 왔다. CCM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첫째, 오락적 대중음악에 빠져 있는 기독청소년들에게 오락적인 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건전한 대용음악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한다.
둘째, 대중음악을 좋아하는 청소년들을 거부감 없이 교회로 인도하는데 적합한 음악이며 대중 문화적 특성을 활용, 대다수의 비 기독교인들이 부담 없이 복음을 접할 수 있는 전도 도구로 이용할 수 있다고 본다.
반면 반대하는 사람들은 첫째, 복음과 같은 거룩한 주제를 세속적이고 오락적인 양식으로 표현할 수 없다고 본다. 심지어 CCM은 사탄이 교회를 타락시키기 위해 오래 전부터 치밀하게 계획하고 사용하고 있는 전략 도구로 ‘양의 탈을 쓴 늑대’라고 주장한다.
셋째, CCM은 교회가 아닌 기독교 음반 산업계의 아티스트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바 이들은 대체로 영성보다는 이윤추구를 우선시 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대중문화에 대하여 부정적이며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목회자나 기성 교회 지도자는 오늘날 찬양예배에 유입되고 있는 비트가 강하고 리듬이 빠른 음악에 대하여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기에 젊은이들을 위한 찬양예배 자체가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독교적인 대중음악의 몇 가지 조심해야 할 과제로 인하여 CCM을 전적으로 무시해서도 안 된다고 본다. 문제는 신세대를 주 대상으로 한 새로운 복음적 대중음악으로서의 CCM에 대한 가치 평가는 그 음악이 얼마나 경건의 능력을 유지하고 있느냐에 따라 판단되어져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오늘날 찬양예배에 유입되는 CCM 음악을 경건의 능력과 함께 수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6) 찬양예배 운영상의 문제
찬양예배는 여러 모양으로 그 대상에 따라 구분해 볼 수가 있겠다. 청소년 위주의 찬양모임, 청년들을 위한 스타일의 자유로운 찬양예배, 어른 성도들을 위한 금요철야 찬양예배, 일반적으로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주일 저녁 찬양예배 등 그 모임의 성격과 대상에 따라 찬양예배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 찬양예배든지 찬양예배의 흐름과 내용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주제를 설정하고 기, 승, 전, 결 등으로 나누어서 인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기승전결이라 하지만 찬양의 흐름도 맞지 않고, 주제의 일관성도 없고, 왜 그 찬양을 불러야 하는 지의 명확한 이유를 밝히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찬양예배의 참석한 주 대상에 따라서 그 콘티(곡 순서)의 내용이 달라져야 함에도 찬양예배 인도자의 개인적인 성향과 스타일로 인하여 찬양의 인카네이션(incarnation)이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3. 전망과 제언
1) 전통과 유행(경건성과 다양성)
한국교회를 볼 때 1970년대에는 기도, 1980년대에는 말씀의 영역에 기름을 부으셨고, 1990년대에는 특히 찬양의 영역에 기름 부으심을, 이 일을 감당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찬양은 구원받은 사람만이 부를 수 있는 특권이기에 이 땅에 구원받는 백성들이 늘어날수록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음악이란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다. 모든 음의 세계를 다스리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가장 훌륭하고,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때로는 가장 경건하고 가장 거룩한 음악을, 때로는 가장 웅장하고 장엄한 음악을, 때로는 가장 멋지고 화려한 음악을 드릴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그렇게도 개성이 강하고, 다양하게 지어졌듯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음악세계도 너무도 개성이 강하고 다양하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다 누리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더욱 발전된 음악의 형태로 찬양하게 될 것이다. 역사가 발전해 오면서 삶의 양태가 바뀌어지고 음악도 점차 바뀌어져가고 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음악도 점차 바뀌어져가고 있다. 앞으로는 이런 변화들은 계속 될 것이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음악, 그 리듬보다 그 음악으로 찬양하는 그 영혼과 거기에 담겨 있는 찬양시이다.
2) 뉴에이지 및 록뮤직으로부터 보호와 영적 전쟁의 무기
우리에게는 죄로 물든 이 땅을 그리스도의 보혈로 적셔 그리스도의 땅으로 바꿀 사명이 있다. 이것은 음악에서 마찬가지이다. 모든 세속화된 음악을 그리스도의 보혈로 성화 시킬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 이 싸움은 이미 그리스도께서 이기신 싸움이다. 많은 청소년들이 얼마나 많은 세속음악으로 그 영혼이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가 보라.
이들을 우리가 어떻게 구할 수 있겠는가. 교회는 산이나 광야에 세워지지 않았다. 죄 많은 이 세상 한복판에 세워져 있다. 그것은 이 어둠의 세상에서 빛을 밝히기 위함이 아닌가. 죄로 가득한 세속음악들을 성화 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세속음악이라 칭해지는 그 음악에까지 들어가야 한다.
지금 이 시대를 말세지말이라고 한다. 사탄은 자신의 때가 마지막인 줄 알고 최후의 발악을 다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세대에 그러한 사탄의 시끄러운 소리와 사탄의 최후의 발악을 잠잠케 할 수 있는 무기를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찬양이다. 시편 149편 5절 이하를 보면, 찬양을 드리는 사람의 입술을 통해서는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올려지지만, 찬양을 드리는 사람의 수중에는 두 날 가진 칼이 있어 이것으로 모든 마귀와 원수들을 결박하고, 잠잠케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찬양이야말로 영적 싸움에 있어서 강력한 무기이다.
우리는 보이는 세계에만 전쟁과 질병 등의 싸움이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전쟁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어둠의 영들과 싸워야 하는 영적 전쟁이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는 경건한 사람으로 점점 더 거룩한 영향력을 세상에 미치며 살기 원한다면 우리의 관심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있어야 한다. 영적 세계에 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찬양예배를 인도하는 인도자나 찬양팀의 영적 관리자는 이러한 마인드를 가지고 찬양팀 단원들을 그에 합당한 영성훈련을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리어 영적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예배현장에서 패배하고, 결코 승리하는 십자가 용사가 될 수 없다.
3) 문화의 새 옷을 서서히 입을 준비를 해야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부연한다면, 지금 청소년들의 문화를 보라는 것이다. 얼마나 다양하고, 활동적인 것들인가. 그 옛날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점잖고, 예의바르고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활동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시 68:4, 삼하 6:21).
앞으로 10년 20년 뒤, 이들 청소년들이 기성세대가 되었을 때 어떠하겠는가? 그때에 거룩, 경건만 따지는 그런 전통적, 고전적 성가만 불리리라 생각하는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들 세대에는 아마 지금 드려지는 찬양 곡들이 찬송가에 들어갈 것이다. 그런데 무조건 현대음악은 안 된다고 고집할 수 있겠는가? 보리밥을 먹던 시대의 문화와 쌀밥을 먹던 시대에 문화와 햄버거를 더 좋아하는 시대의 문화란 다를 수밖에 없다.
예배의 대상과 목적은 변함 없는 진리이지만, 예배의 방법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시대와 환경, 문화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한 예배의 형태들이 사용되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의 핵심적인 내용은 이미 성경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우리에게 이미 분명히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 전문적인 찬양 예배 인도자 훈련 센터 운영
훌륭한 찬양예배 인도자를 키워낼 수 있는 전문기관이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다. 각 부문별로 즉, 찬양인도자, 싱어, 연주자, 무용 찬양, 기술 등의 전문적인 훈련이 이루어져야 한다. 마치 교회 성장 연구소가 교회 성장의 컨설팅을 하고 있듯이 찬양 사역 연구소가 마련되어 각 교회의 찬양팀 운영에 대한 영적, 기술적, 조직적인 관리를 점검하고 올바른 찬양 예배를 인도할 수 있도록 지도해 주어야 한다.
5) 찬양 선교의 활성화
교회내의 찬양 예배에 머물지 않고 교회 밖의 복음이 필요한 현장에 찬양팀이 사역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농촌 선교, 병원 선교, 교도소 선교, 소년원 선교, 미혼모 기관, 중·고등학교·대학교 캠퍼스의 복음화, 해외 단기 선교 등을 통하여 선교의 비젼을 넓혀 주고 아울러서 찬양 예배 인도의 역동성을 부여해 줄 수 있어야 한다.
4. 결 론
지금까지 한국교회의 찬양의 역사와 문제점,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을 살펴보았다. 이제 다시 우리의 삶의 자리로 돌아와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고,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이 땅의 찬양에 대해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구해야 할 것이다. 찬양의 신학화는 사실 누구의 머리와 지혜로 짤 수 없다.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야 한다. 계속하여 하나님께 무릎을 꿇으므로, 이 땅에 찬양의 신학화를 통해 예배하며, 모든 마귀와 어둠의 권세를 멸하고 그리스도의 나라를 이 땅에 세워주시기를 기도하며 이 일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조건회 목사(예능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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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카페긴급,,,통신비,공과금을 내야 카페운영이 됩니다...
후원이 없습니다
지난달 공과금 통신료를 못내고..카페운영이 어렵습니다
카페를 잘 운영하도록 도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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