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 25. 밥상머리 교육
제 헌책가게에 오시는 손님들 중에는 일흔이 넘으신 어르신들이 여러 분 계십니다. 일찍 은퇴를 하고 노후를 즐기시는 노부부, 6.25전쟁 때 부상을 당하신 어르신, 농사철에는 뜸하시다가 가을 추수 때면 고구마 박스를 선물로 들고 나타나시는 어르신 등, 많은 분들이 찾아주십니다. 전통 5일장이 서는 거리 인근에 가게가 있어서 장날이면 장터 나들이를 겸한 어르신들의 방문이 많은데, “치매 안 걸리려고 보는 거여!” 하시며 책을 사시는 어르신을 보면 ‘참 곱게 보내시는 노후’라고 감탄하곤 합니다.
새해 들어 한 달이라 단골 어르신들이 모두 찾아주셨는데 이웃 도시인 용인시 남사면에서 오시던 어르신 한 분의 소식이 끊겨 전화를 드렸더니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번호입니다”하고 안내가 나왔습니다. 5년 단골이신데 그간 없던 일이라 걱정이 되어 자택 번호로 다시 전화를 드렸더니 벨소리만 울릴 뿐 통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작년 첫 추위 때에 오셨기에 “따뜻해지면 오세요. 할머니 걱정 시키지 마시고요.”하였는데 날씨가 조금 더 따뜻해지면 오시려나 싶기는 하지만 역시 걱정이 됩니다.
용인 어르신께서는 최근에 동몽선습(童蒙先習)을 가르쳐주셨습니다. 해가 바뀌었으니 벌써 재작년의 일인데 봄부터 여름까지 넉 달 동안 거의 매일을 오셔서 동몽선습을 읽히시고 해석을 해주셨는데, 덕분에 얼치기 공부로 시간만 때웠던 어릴 적의 기억을 돌이켜볼 수 있었습니다,
“동몽선습은 오륜(五倫)을 인륜의 근본으로 삼고,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역할을 설명한 책인데, 읽어 보았는가.”
한글 전용 세대의 초기에 옛 ‘국민학교’를 다녔던 저로서는 오륜의 뜻을 삼강오륜(三綱五倫)이라는 한자숙어를 익히는 기분으로 귀동냥한 몇 마디가 전부였던지라 알지 못하노라 하고 솔직히 말씀드렸고, 어르신은 한지로 엮은 필사본 고서를 교재로 가져오셔서 중노의 덜떨어진 헌책장사를 제자로 삼아 강의를 해주셨습니다.
천지지간만물지중(天地之間萬物之衆)에 유인최귀(惟人最貴)니
소귀호인자(所貴乎人者)는 이기유오륜야(以其有五倫也)니라.
만물 중 사람이 가장 귀하니
사람을 귀히 여기는 이유는 오륜이 있기 때문이다.
시고(是故)로 맹자왈(孟子曰) 부자유친(父子有親)하며 군신유의(君臣有義)하며 부부유별(夫婦有別)하며 장유유서(長幼有序)하며 붕우유신(朋友有信)이라하시니 인이부지유오상(人而不知有五常)이면 즉기위금수(則其違禽獸) 불원의(不遠矣)리라.
이 때문에 맹자께서는 “아버지와 자식 사이에는 친애함이 있어야 하며,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의리가 있어야 하며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구별이 있어야 하며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는 차례가 있어야 하며 친구 사이에는 신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사람이면서 오상(五常)이 있음을 알지 못하면 짐승과의 차이가 크지 않을 것이다.
연즉부자자효(然則父慈子孝)하며 군의신충(君義臣忠)하며 부화부순(夫和婦順)하며 형우제공(兄友弟恭)하며 붕우보인연후(朋友輔仁然後)에야 방가위지인의(方可謂之人矣)리라.
그러므로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며, 임금은 신하에게 의리를 지키고 신하는 임금에게 충성하며, 남편은 가족을 화합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며, 형은 동생을 사랑하고 동생은 형을 공경하며, 친구 사이에는 어짐(仁)을 나눈 후에야 비로소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벼락제자가 노선생님께 배운 동몽선습 오륜편(五倫篇)의 시작 부분입니다. 금수와 구별되는 인간의 존엄성을 인륜의 근거로 하여,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의 핵심적인 구절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하 오륜의 각 어의(語義)를 살핀 해설이 이어집니다마는, 대강을 살핀 위의 문장만으로도 인륜지도는 충분히 설명이 된 느낌입니다. 사회의 구성원이 각기 본분을 다하고 어짐(仁)을 나눈다는 것, 이에 더한 인륜이 어디 있겠습니까?
돌이켜보면 우리 사회의 교육은 부모에 대한 신뢰에서부터 출발했던 것 같습니다. 연즉부자자효(然則父慈子孝), 즉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은 가족 구성원 간의 신뢰의 출발이기도 하였지만, 사람으로서의 마땅한 도리인 덕(德), 인(仁), 의(義),예(禮)를 배우는 첫 걸음이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사람, 사람이 사람이냐? 사람다워야 사람이다.
어릴 적에 할아버님께서 사람 인(人) 일곱 개를 써 놓으시고 풀어보라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코흘리개 시절의 일인지라 일러주신 교훈은 잊었습니다만, 최근에 어떤 분의 책에서 위의 문장을 발견하고 무릎을 쳤습니다. 출전은 맹자(孟子)라고 되어 있는 위의 한 줄 문장은 할아버님이 숙제로 주셨던 일곱 개의 사람인(人)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사람의 도리를 하지 않는 사람은 사람 명색으로 불릴 자격이 없다”라는 뜻으로 이해가 되어 당시에 할아버님이 주셨던 교훈의 뜻이 맞을 거라고 감격해 하였습니다.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가족 시절의 우리는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한 상에서 식사를 하였는데, 그 예절이 엄격하여 항상 조심스러웠습니다. 어른이 먼저 수저를 들기 전에는 꼼짝을 할 수 없었고, 식사 시작 전과 후에 감사 인사를 드리지 않으면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밥알 하나라도 허투루 흘릴 양이면 당장 숟가락을 빼앗기고 야단을 맞았고, 웃어른을 모시는 예의범절과 집안의 대소사에 대해 이런저런 지혜를 배우기도 하였습니다. 교육의 첫 번째 스승은 밥상머리에서 예의법도를 가르치신 어른들이셨던 것입니다.
재승덕(才勝德)하지 말고, 덕승재(德勝才)하라.
(재주가 덕을 앞지르지 못하게 하고, 덕이 재주를 앞서게 하라.)
국민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특별히 불러 가르쳐주셨던 말씀입니다. 일찍 집안이 어려워져서 천자문 한권도 제대로 떼지 못하고 할아버님 슬하를 떠나온 저는 위의 말씀의 뜻을 새길 주제가 못되었습니다. 때문에 까맣게 잊고 실수투성이 인생을 살아왔는데, 뜻밖에 노(老)선생님께서 동몽선습의 강의가 끝나는 날 같은 문장을 가르쳐주셨습니다.
“才勝德薄(재승덕박)이니 不才勝德(부재승덕)이라.”
재주가 많으면 덕이 모자란다. 재주나 지식이 덕을 앞서게 해서는 아니 된다.
듣는 순간 머리를 치는 것이 있었습니다. 나는 과연 말씀대로 덕승재(德勝才)의 뜻을 알고나 살아왔는가. 노선생님은 “非人不傳, 不才勝德(비인부전, 부재승덕)”이라 하시며, “인격에 문제 있는 자에게 비장의 기술을 전수하지 말며, 따라서 재주나 지식이 덕을 앞서게 해서는 아니 된다”는 설명을 주셨는데, 반세기 전 초등학교 때에 이미 배웠으나 잊고 있었던 도리를, 다시 배워 깨칠 때까지 말만 앞서는 인생을 살아왔던 것입니다.
德勝才(덕승재)를 謂之君子(위지군자)요,
才勝德(재승덕)을 謂之小人(위지소인)이라.
덕이 재주보다 많은 사람을 군자라 하고, 재주가 덕보다 많은 사람을 소인이라 한다.
노자는 도덕경(道德經)에서 덕(德), 인(仁), 의(義), 예(禮)를 다루었는데 이 중 덕(德)을 사람에게 제일의 덕목으로 다루었다. 德(덕)을 풀이하면 彳(두인 변, 조금 걸을 척)에 直(곧을 직) 밑에 心(마음 심)을 합성한 뜻글자로 ‘바른 마음과 행동으로 정직하게 앞으로 걸어 나간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솔직하고 무색의 타고난 그대로의 인간소질(人間素質)을 가리킨다.
자치통감(資治通鑑)에 있는 내용을 보면 재주라고 하는 것은 덕(德)의 바탕 위에 있어야 하고, 덕(德)이라고 하는 것은 재주의 으뜸(帥)에 있어야 한다. 고로 “재주와 덕(德)을 모두 온전히 갖추면 그를 일러 성인(聖人)이라 하고, 재주와 덕(德)이 모두 없으면 그를 일러 바보라 한다(才者德之資也, 德者才之帥也, 是故, 才德兼全 謂之聖人, 才德兼亡, 謂之愚人)”고 했다. 아무리 재주가 있어도 덕을 겸비하지 못하면 그 재주는 쓸모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 재주로 큰 위해를 입힐 수도 있다는 놀라운 충고를 하는 글이다. 또한 자치통감(自治統監)에서는 “옛날부터 나라를 어지럽히는 신하와 집안을 망하게 하는 자식은 재주는 넉넉한데 덕이 모자라서 엎어지고 뒤집어짐에 이르게 하는 자가 많다(自古昔以來, 國之亂臣, 家之敗子, 才有餘而德不足, 以至於顚覆者多矣)”고 하였다.
인터넷을 뒤져 찾아본 “才勝德薄(재승덕박)이니 不才勝德(부재승덕)이라.”의 출전입니다. “바른 마음과 행동으로 정직하게 앞으로 걸어 나가는 게 인간의 도리다. 단, 재주를 앞세우지 말라. 자기뿐만 아니라 사회에까지 위해를 끼치게 된다”이니, 50년을 격해 다시 배운 교훈이고 인생의 지침인데, 그때에 이미 배웠던 걸 모르고 헛된 삶을 살아왔으니…… 기회가 주어지기만 하면 목청껏 소리를 높여 남을 비난해가며…… 참으로 부끄러운 인생이었던 것입니다.
은행나무 밑에 가을이 내려앉는다.
노랑저고리 때묻을까봐
사알짝, 사알짝 내려앉는다.
‘가을’이라는 제목의 위의 동시는 초동학교 3학년 때 글쓰기를 지도해주셨던 박선생님의 글입니다. 50년도 더 지난 그 무렵 아버님이 실직을 하신 바람에 집안 형편이 많이 어려웠는데, 담임도 아니셨던 박선생님은 토요일마다 저를 데려다가 저녁을 먹이신 후 글쓰기를 가르쳐주셨습니다.
“많이 먹고 공부 열심히 해라.”
동시 한편으로 남은 선생님의 기억…… 동몽선습을 가르쳐주신 노선생님의 안부를 걱정하다가 문득 반세기 전으로 돌아가서 글쓰기를 가르쳐주신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자작 동시를 다시 읊어 보고 있습니다. 키가 훌쩍 크시고 잘 웃으시던 분이라는 외에, 함자도 기억하지 못하는 박선생님…… 밥상을 차려 주시던 사모님이 육영수여사처럼 웃으면 눈가에 주름이 졌다는 기억뿐, 정작 선생님의 모습은 생각나지 않는 것입니다.
아버지로부터는 생명을 받았으나, 스승으로부터는 생명을 보람 있게 하기를 배웠다. (플루타르크 영웅전)
위는 명언집에서 찾은 문장입니다. 어린이집 문제로 공격을 받고 있는 선생님들에게 꼭 들려드리고 싶어 옮겨 보았습니다.
선생님이란 참으로 좋은 직업입니다. 제자의 기억 속에 각인된 선생님의 모습은 제자의 인생을 결정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당장 저부터 지난 50년 동안 은행나무 아래에서 가을을 찾곤 하였고, 중노의 몸이 된 지금도 동몽선습을 다시 가르침 받아 새삼스레 사람이 되고 있으니, 세상의 선생님들은 부디 자부심을 가지시고,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초석이 되어 주시기를 감히 청해 올립니다.
그 좋은 말씀을 가르쳐주신 노선생님이 돌아가셨다네요. 엊그제 소식을 들었는데.... 겨울 동안 못뵈었더니 그새.... 죄인이 된 기분으로 몇 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요즘처럼 仁.義.禮.知.信..갖춘 사람찾기가 어려운 세상에
좋은글로 깨쳐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도 귀동냥한 지식을 옮긴 것입니다. 실행하지 못하는 지식은 아니 배움만 못하다는데....
읽어 주시고 좋은 말씀 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글귀 감사합니다
읽어 주시고 좋은 말씀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랜만에 좋은 글 읽고 갑니다 앞으로 자주 들르겠습니다
읽어 주시고 좋은 말씀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 후손이배워야 할글입니다 잘읽고갑니다 감사해요.
읽어 주시고 좋은 말씀 주셔서 고맙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잘보고갑니다^^
밥상머리 교육참중요하죠..//
밥상머리 교육참중요하죠..//
재밌네~~~ ㅋㅋㅋㅋㅋㅋ
가정교육~~~종교와 더불어 사람을 젤 마지막까지 지켜줍니다.
잘 읽었습니다
잘보고갑니다
잘보고갑니다
부모님과 스승님 모두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분들이지요. 그 뷴들의 은혜는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어렵긴하지만 잘 보았습니다 즐 주말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정말좋은글입니다 잘읽고갑니다 감사합니다 ~~
이좋은 글들은 요즘 젊은이들이 배워야 할텐데~쯧
함께 가족이 둘러 앉을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사라져 아쉽습니다.
옛생각이...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글 감사드리고 행복하십시요
옛날 교육은 밥상머리 교육이라했는데 그게 지금 생각하면 실질적인 교육이라 생각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