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을 알아야 경기가 더 재밌다
— 사진이론을 배우는 이유와 사진을 즐기는 방법
[1] 룰을 알면 눈에 보이는 장면 너머가 보인다
1. 축구를 처음 보는 사람도 공이 골문에 들어가면 기쁘다. 야구에서 홈런이 나오면 함께 환호한다. 골프에서 공이 홀에 들어가면 멋진 장면이라고 느낀다. 경기의 규칙을 몰라도 눈에 보이는 결과는 즐길 수 있다.
2. 그러나 축구의 오프사이드를 알면 공격수가 왜 달려가다 멈췄는지 이해하게 된다. 야구의 아웃카운트와 주자 상황을 알면 번트 하나에 왜 긴장하는지 보인다. 골프에서 공이 놓인 자리와 코스의 모양을 알면 선수가 왜 바로 홀을 노리지 않고 안전한 곳으로 공을 보내는지도 이해하게 된다. 룰은 즐거움을 제한하는 설명이 아니라, 눈앞의 행동에 담긴 이유를 보여주는 설명이다.
3. 음악도 비슷하다. 음의 높낮이와 리듬을 조금 알면 같은 노래에서 박자가 밀리는 순간이나 화음이 바뀌는 순간을 듣게 된다. 요리도 재료와 불의 세기에 관한 기본 원리를 알면 음식이 타거나 싱거워졌을 때 원인을 짐작하게 된다. 어느 분야든 기본 원리를 알면 결과만 감상하던 눈과 귀가 만들어지는 과정까지 살핀다.
[2] 사진이론은 사진을 보는 ‘룰’과 같다
1. 사진이론을 스포츠의 룰에 비유하는 까닭은 사진을 더 잘 보고 즐기는 데 필요한 기준과 관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사진이론을 알면 “예쁘다”, “멋있다”, “잘 찍었다”는 감상에서 한 걸음 나아가게 된다. 사진가가 무엇을 골랐는지, 그 선택이 사진에 어떤 차이를 만들었는지 살펴보게 된다.
2. 다만 사진이론은 축구 규칙처럼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고정된 규칙은 아니다. “이렇게 찍어야 좋은 사진”이라는 정답도 없다. 사진이론은 사진을 만드는 법을 하나로 정해 주기보다, 사진과 현실의 관계, 사진가의 선택, 이미지가 읽히는 방식 등을 설명하는 여러 관점이다. 서로 다른 이론이 사진의 서로 다른 면을 밝히기도 한다.
3. 그러므로 사진이론을 배운다는 것은 어려운 용어를 외우거나 사진을 복잡하게 분석하는 일이 아니다. 이미 사진을 찍고 보면서 막연히 느꼈던 점을 정확한 말로 이해하는 일이다. 사진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미 해 온 사진 경험에 이름과 설명을 붙이는 과정이다.
[3] 사진이 현실을 보여주는 방식을 이해한다
1. 사진은 실제 사람이나 사물이 카메라 앞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Roland Barthes는 사진이 과거에 실제로 존재했던 대상을 가리킨다는 점을 사진의 중요한 특성으로 보았다. 그러나 대상이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이 사진 속 사건의 원인과 전후 사정까지 증명하지는 않는다. 사진은 현실과 연결되어 있지만 현실 전체는 아니다.
(출처: Roland Barthes, Camera Lucida: Reflections on Photography)
https://eclass.uoa.gr/modules/document/file.php/PSPA254/Barthes_Roland_Camera_Lucida_Reflections_on_Photography.pdf
2. 결승선을 통과하는 달리기 선수를 찍은 사진을 생각해 보자. 사진에는 선수가 결승선 가까이에 있는 순간이 담긴다. 하지만 그 한 장만으로 누가 우승했는지, 사진 속 선수가 얼마나 오래 달렸는지, 경기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두 알 수는 없다. 사진이 보여주는 모습과 그 모습에 관해 우리가 추측하는 이야기는 구분해야 한다.
3. 사진이론을 알면 다른 사람의 사진도 무턱대고 믿거나 의심하지 않게 된다. 먼저 사진에 실제로 보이는 것을 살피고, 제목과 설명이 어떤 정보를 더하는지 확인한다. 그런 뒤 사진만으로 알 수 없는 부분을 구별한다. 사진을 찍을 때에도 내 사진이 사실보다 더 많은 것을 증명하는 듯 보이지 않는지 돌아보게 된다.
[4] 사진가의 선택을 발견한다
1. 사진은 카메라가 자동으로 남긴 기록이면서 동시에 사진가가 선택한 결과다. 어느 곳에 서는지, 언제 셔터를 누르는지, 어떤 대상을 화면에 담는지에 따라 사진은 달라진다. John Berger는 사진을 특정한 대상을 기록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사람의 선택과 연결해 설명했다.
(출처: John Berger, “Understanding a Photograph”)
https://oldobjectsnewideas.com/_reading/_bergerUnderstandingPhotograph.pdf
2. 축제에서 불꽃놀이를 찍는다고 해 보자. 불꽃만 크게 찍으면 화려한 빛이 사진의 중심이 된다. 불꽃을 올려다보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함께 담으면 함께 모여 구경하는 장면이 중심이 된다. 공연이 끝난 뒤 바닥에 남은 종이컵과 접힌 의자를 찍으면, 행사가 지나간 뒤의 모습이 드러난다. 같은 축제에서도 무엇을 선택했는지에 따라 사진이 전하는 내용은 달라진다.
3. 사진이론은 이런 선택을 알아차리게 한다. “무엇을 찍었나?”만 묻지 않고 “왜 하필 이 순간과 이 장면을 남겼나?”를 묻는다. 사진을 찍은 뒤에도 화려하고 선명한 사진만 고르는 대신, 내가 실제로 관심을 둔 것이 어느 사진에 잘 드러나는지 비교한다. 촬영과 선택이 서로 이어지는 것이다.
[5] 카메라의 기능과 익숙한 사진의 관습을 살핀다
1. 사진가는 자유롭게 선택하지만, 카메라의 기능과 사진 문화의 관습은 그 선택에 영향을 준다. 자동 모드는 밝기와 초점을 알아서 맞추고, 인물 사진 모드는 배경을 흐리게 만든다. 인터넷과 사진 교육에서 반복해서 접한 구도나 색감도 우리가 좋은 사진이라고 여기는 기준에 영향을 준다.
2. Vilém Flusser는 카메라를 여러 가능성을 제공하는 장치로 보면서, 카메라의 작동 방식이 사진가의 선택에 미치는 영향도 살폈다. 이 생각을 실제 촬영에 적용하면 “내가 이 렌즈와 설정을 고른 이유는 무엇인가?”, “배경을 흐리게 하는 것이 지금 찍으려는 대상에 필요한가?”, “늘 익숙한 구도만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가?”를 질문하게 된다.
(출처: Vilém Flusser, Towards a Philosophy of Photography)
https://press.uchicago.edu/ucp/books/book/distributed/T/bo3535843.html
3. 이론을 안다고 자동 모드나 익숙한 구도를 피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점은 그것을 무심코 따르는지, 목적에 맞게 골라 쓰는지 아는 것이다. 배경을 흐리게 해 인물의 표정을 강조할 수도 있고, 배경을 선명하게 담아 인물이 놓인 환경을 보여줄 수도 있다. 이론은 익숙한 방법을 금지하지 않고, 그 방법이 사진에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 보게 한다.
[6] 사진을 어디에 어떻게 보여주는지도 생각한다
1. 사진은 찍는 순간에만 의미가 결정되지 않는다. 같은 사진도 가족 앨범에 들어갈 때, 신문 기사에 실릴 때, 사진집이나 전시장에 놓일 때 다르게 읽힌다. 제목과 설명, 함께 놓인 다른 사진도 관객의 이해에 영향을 준다.
2. Walter Benjamin은 사진과 영화처럼 복제되는 이미지가 널리 전시되고 유통되면서 예술을 만나는 방식이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오늘날에는 사진 한 장이 휴대전화 화면과 온라인 게시물을 거쳐 빠르게 퍼진다. 따라서 사진을 찍고 고르는 일뿐 아니라 어디에 올리고 어떤 설명을 붙일지도 사진을 사용하는 과정에 들어간다. 오늘의 온라인 환경에 관한 설명은 Benjamin의 논의를 현재에 적용한 것이다.
(출처: Walter Benjamin, “The Work of Art in the Age of Mechanical Reproduction”)
https://web.mit.edu/21w.784/www/BD%20Supplementals/Materials/Unit%20Three/Benjamin%20work%20of%20art.html
3. 예를 들어 지인의 사진을 허락 없이 올리거나, 사진 속 인물을 한 가지 이야기의 증거처럼 설명하면 그 사람은 사진을 찍고 올린 이의 판단에 따라 보이게 된다. Susan Sontag는 사진을 찍는 행위가 세상을 이미지로 소유하고 정리하는 태도와 연결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관점은 사람을 찍을 때 촬영자의 즐거움만 생각하지 않고, 찍히는 사람과 사진이 나중에 쓰일 방식도 살피게 한다.
(출처: Susan Sontag, On Photography)
https://www.lab404.com/3741/readings/sontag.pdf
[7] 사진이론은 감상의 재미도 깊게 한다
1. 사진을 보며 “좋다”고 느끼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화면의 색이나 구도가 마음에 들 수도 있고, 사진 속 사물 하나가 개인적인 기억을 떠올리게 할 수도 있다.
Barthes는 사진을 보는 사람의 지식과 문화에 연결된 관심을 ‘스투디움(studium)’, 개인에게 유독 강하게 다가오는 세부를 ‘푼크툼(punctum)’이라고 불렀다. 이 구분은 사진을 보는 재미가 사진의 구성뿐 아니라 관객의 경험에서도 생긴다는 점을 설명한다. 푼크툼은 사진가가 미리 정해 넣는 효과라기보다, 관객에게 뜻밖에 마음을 건드리는 요소에 가깝다.
(출처: Roland Barthes, Camera Lucida: Reflections on Photography)
https://eclass.uoa.gr/modules/document/file.php/PSPA254/Barthes_Roland_Camera_Lucida_Reflections_on_Photography.pdf
2. 사진이론을 알면 전시장에서도 작가의 의도를 맞히려고 애쓰기보다 사진 안의 단서와 자신의 반응을 함께 살피게 된다. 무엇이 먼저 눈에 들어왔는지, 왜 어떤 세부에서 오래 머물렀는지, 제목을 읽은 뒤 느낌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생각한다. 사진 감상은 정답을 맞히는 시험이 아니라, 사진과 관객 사이에서 의미가 생기는 과정을 알아가는 일이 된다.
3. 사진을 찍는 즐거움도 넓어진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촬영 전에 무엇을 볼지 궁리하고, 찍은 사진을 고르고, 서로 비교하고, 다른 사람의 해석을 듣는 과정까지 사진생활에 포함된다. 사진이론은 사진을 더 오래 바라보게 하는 이유를 만들어 준다.
[8] 사진이론을 실제 사진생활에 적용하는 방법
1. 처음부터 어려운 책을 읽거나 용어를 외울 필요는 없다. 자신이 찍은 사진 한 장을 골라 아래 질문을 차례로 던지면 된다.
(1) 사진에서 실제로 확인되는 것은 무엇인가?
(2) 사진가는 어떤 순간과 위치를 골랐는가?
(3) 화면에 담긴 것과 담기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4) 제목이나 설명이 사진을 어떻게 읽게 하는가?
(5) 내가 이 사진을 좋아하거나 남기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2. 다음 촬영에서는 같은 대상을 다른 위치와 거리에서 찍어 본다. 예를 들어 축구 경기에서 골키퍼를 찍을 때, 골키퍼만 크게 찍은 사진과 골대·공격수·관중까지 담은 사진을 비교한다. 첫 사진은 골키퍼의 표정과 몸짓을 강조하고, 두 번째 사진은 경기 안에서 골키퍼가 놓인 상황을 보여준다. 사진이론은 어느 쪽이 정답인지 말해 주지 않는다. 각 선택이 무엇을 보여주는지 이해하게 한다.
3. 사진을 고를 때에는 잘 찍힌 사진과 자신이 관심을 둔 것을 잘 드러내는 사진을 구분한다. 초점과 노출이 정확한 사진은 기술적으로 완성도가 높다. 하지만 사진의 주제와 선택이 서로 맞는지는 별도로 살펴야 한다. 기술적 완성도는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사진의 의미와 예술적 성취가 결정되지는 않는다.
4. 사진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준 뒤에는 해석을 바로 설명하거나 정답으로 고치지 않는다. 관객이 사진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듣고, 그 해석을 만든 단서가 화면 안에 있는지 살핀다. 반응이 다르면 사진을 더 잘 읽는 방법을 발견할 수도 있고, 사진의 제목이나 배열을 다시 생각할 수도 있다.
[9] 맺음말
1. 스포츠의 룰을 알면 경기의 흐름과 선수의 판단이 보인다. 음악의 기본 원리를 알면 리듬과 화음의 변화를 듣게 된다. 사진이론을 알면 사진가가 무엇을 선택했고, 그 선택이 사진을 어떻게 보이게 하는지 알게 된다.
2. 사진이론은 모든 사진에 같은 답을 적용하는 규칙집이 아니다. 사진을 찍고 보면서 이미 어렴풋이 알아 온 사진의 특성을 분명한 말로 이해하고, 자신의 판단을 세우도록 돕는 지식이다. 철학이나 미학을 모두 공부한 뒤에야 시작할 수 있는 난해한 문턱도 아니다. 자기 사진 한 장을 다시 바라보는 데서 출발한다.
3. 그래서 사진이론을 배우는 목적은 사진을 어렵게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사진을 더 잘 이해하고, 더 세심하게 감상하고, 찍고 고르고 나누는 모든 과정을 더 재미있게 즐기는 데 있다.
룰을 알면 경기가 더 잘 보이듯, 사진이론을 알면 사진 속 선택과 의미가 보인다. 그때 사진생활은 셔터를 눌러 결과를 얻는 일에서, 사진을 발견하고 이해하는 즐거움으로 넓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