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나 역시 억울하다는 생각을 품고 살았다. 개신교인들이 사회적으로 유독 지탄을 받고 신뢰도가 바닥을 치는 이유가, 세상이 기독교를 향해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 때문이라 믿었다. 똑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기에 더 높은 도덕적 수준과 행동적 가치를 요구받는 것이라고, 그래서 우리가 조금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러나 종교라는 울타리 밖으로 한 발 걸어 나와 냉정하게 바라본 진실은 전혀 달랐다. 세상이 과도한 요구를 해서가 아니었다. 기독교인들이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그들이 태생적으로 학습해 온 지독한 특권의식과 선민사상에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교회 안에서 배우는 명제는 명확하다. 너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은 존재이며,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이 소중하고 중요한 사명을 띤 절대적인 영혼이라는 가르침이다. 내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소중한 존재라는 선언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인간의 존엄을 일깨우는 그 아름다운 문장들을 누가 감히 비난하겠는가.
진짜 문제는 그 ‘거룩한 특별함’을 내면화한 이후에 발생하는 타인을 향한 시선과 태도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가 되는 순간, 기독교 울타리 밖에 있는 다른 종교의 사람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불쌍하고 하찮은 존재'로 전락한다. 진리를 모른 채 죽어가는 가련한 영혼이라는 종교적 프레임은, 타인을 나와 동등한 인격이 아닌 계몽과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이 영악한 선 긋기는 같은 울타리 안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내가 출석하는 교회와 교단만이 가장 순수하다는 자부심은 다른 교회 교인들마저 은근히 경계하고 서열을 매기는 기괴한 배타성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기만이 정점을 이루는 지점이 바로 ‘섬김’이라는 단어다. 기독교인들은 누군가를 돕고 섬길 때, 그것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겸손인 줄 착각한다. 하지만 그 심리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대개 섬김이 아닌 우월감이 자리 잡고 있다. 더 나은 진리를 소유한 우월한 존재가, 그렇지 못한 덜 나은 존재를 위해 무언가 베풀어준다는 시선. 나를 낮추는 모습같지만 실상은 철저하게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종교적 오만이다.
이러한 종교적 심리는 프랑스의 사상가 프란츠 파농(Frantz Fanon)이 분석한 '타자화(Othering)'의 전형적인 메커니즘과 일치한다. 파농은 지배 집단이 자신의 정당성과 우월함을 획득하기 위해 피지배 집단을 어떤 방식으로 '미개하고, 결핍되고, 구원받아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는지 고발했다. 기독교인들이 세상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이 바로 이와 같다. 그들은 타인의 고유한 역사나 도덕성, 삶의 깊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오직 '우리 울타리 안으로 들어와야 할 미완성의 존재'로만 바라본다. 내가 상대보다 영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그 진지함을 덮어쓴 착각이, 타인의 존재가치를 무시해버리는 종교적 폭력의 시작점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이 글을 읽으며 "나는 그 정도로 속 좁은 기독교인은 아니다"라며 고개를 저을 것이다. 나름대로 예의를 갖추고 세상과 소통하며 살고 있다고 자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은 그 미세한 위선을 단박에 알아챈다. 마치 흡연자는 결코 맡지 못하는 지독한 담배 냄새를, 비흡연자는 멀리서도 본능적으로 알아채는 것처럼 말이다. 흡연자들은 나름대로 껌을 씹고 향수를 뿌리며 냄새를 지웠다고 안심하지만, 비흡연자가 마주하는 것은 담배 냄새와 인공적인 향수가 뒤섞여 만들어낸, 전보다 훨씬 역하고 퀴퀴한 체취일 뿐이다. 정작 자기들끼리 모여 있을 때는 그 악취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가장 진저리치게 부끄러운 사실은, 이 글을 적고 있는 나 자신 역시 그 역한 체취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문장을 이어가는 순간에도 내면에서는 "그래도 나는 저 오만한 기독교인들과는 달라. 나는 나름대로 깨어 있고 상식적인 편이야"라는 비겁한 변명이 고개를 든다. 남들을 날카롭게 해부하고 있으니 나는 그 부류가 아니라는 가짜 성적표를 스스로 발행하려는 얄팍함이다. 그러나 결국 나 역시 그 온실 속에서 자라나 대접받는 사역자로 제법 오랜 시간 살아온, 똑같은 악취를 풍기는 한 사람의 종교인에 불과했다.
내가 특별하다는 종교적 환상에서 벗어나, 울타리 밖의 이웃들을 나와 다름없는 평범하고 도덕적인 존재로 인정하는 상식을 회복하는 것. 향수로 위선적인 친절을 포장하기보다 내 몸에 밴 지독한 특권의식의 냄새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겸손함을 배우는 것. 그 대단한 구원의 확신은 없을지라도 내 부끄러운 실체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며 타인 앞에 마땅한 예의를 다하는 것. 그 지독한 체취를 지우기 위한 자각 속에, 비로소 세상과 말이 통하는 진짜 신앙이 시작될 수 있다.
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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