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원나라 시기의
원잡극 중에 하나. 저자는
상중현(尙仲賢)이라는 사람인데, 진정(眞定) 출신이고 . 강절행성무관(江浙行省務官)이라는 벼슬을 지냈다는 것 이외엔 생애에 대하여 알려진게 거의 없다. 11편의 잡극을 썻다고 하는데 「유의전서(柳毅傳書)」와 「기영포(氣英布)」, 「삼탈삭(三奪槊)」 3종과 「왕괴부계영(王魁負桂英)」의 곡사(曲辭) 1절(折)과 「귀거래혜(歸去來兮)」, 「조낭배등(趙娘背燈)」의 잔편(殘篇) 정도만이 남아 있고, 나머지 4종은 완전히 사라졌다.
하지만 남아 있는 작품만으로도 당대에 중요한 잡극 작가 중에 한명으로 취급을 받는데, 문장이 아주 깨끗하고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영포는 이 상중현의 잡극 작품 중에 하나로,
진(秦) 말
한(漢) 초에 활약한
영포(英布)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이야기로,
초한쟁패기에 보통 주목되는 인물들이
항우(項羽)나
유방(劉邦), 혹은
건한삼걸(建漢三傑) 등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특이한 일이다. 대체적인 줄거리는
사기(史記) 경포열전의 내용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으나 상중현이 허구로 덧보탠 부분도 있다. 하지만 인물들이 말하는 지명이나 사건 등은 대체로 사기의 내용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 편이다.
이 작품의 본래 이름은 한고조탁족기영포(漢高祖濯足氣英布) 인데, 사기 열전의 기록 중에 유방이
수하(隨何)를 보내 경포를 회유하였다는 이야기와, 유방이 발을 씻으면서 영포의 기세를 꺾으려 했던 일화를 취해서 상중현이 중간중간에 자신이 살을 붙인 이야기다.
이 희곡의 특징이라면 마치
힙합의
라임을 보듯이 완벽하게 잘 짜여진 결구와 깨끗하고 아름다운 문장에 있는데,
선비인 수하의 굴러가는 듯한 교묘한 언변과 무장인 경포나, 특히
번쾌(樊噲)의 마구 내뱉는 소리가 묘하게 대조를 이루면서 재미를 준다. 꽤나 유쾌하게 전개되면서도 구성이나 문장에서 빈틈이 없는 점이 특징.
창법에 있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 한 사람이 노래부르는 것이 일반적인 원잡극의 격식이라면, 이 작품은 주인공 경포만 노래를 부르지 않고 4절에서 경포의 전승을 알리러 온 전령도 노래를 부르는 등 연극 효과를 크게 하고 있다.
이 작품의 현재 남아 있는 판본은 원각고금잡극삼십종본(元刻古今杂剧三十种)과
원곡선(元曲選) 본이 있는데, 원작에 가장 가까운 것은 원각본이지만 생략된 내용도 있고 불완정한 측면도 있다.
국내에서는 명문당 출판사에서 낸 '원잡극선'에 번역이 되어 실려 있는데, 앞서 말한 이유 때문에 주로 원곡선에 의존하면서 원간본은 옆에 놓고 참고만 했다고 한다.
아마
초한전쟁을 다룬 작품 중에 경포가 가장 막강하게 나오는 작품일듯. 어수룩해서 머리 좋은 수하나 유방의 의도에 질질 끌려가면서도 한탄도 많이 하고, 야심만만한 인물상이라기 보다는 순박한 면모지만 그야말로 무식한 인간처럼 묘사되는 번쾌보다는 우직한 무인에 가깝게 묘사가 된다.
무엇보다 4절에서는
경포가 항우와 직접 일기토로 겨루어서, 항우를 도망치게 만든다! 딱히 항우가 차륜전을 치루느라 지친 상황도 아니었고, 서로 미친듯이 싸워 항우를 무찔러버리는 것.
초한전쟁을 다룬 각종
초한지 물에서 항우가 완전한 일 대 일의 대결에서 패배하는 경우는 이 경우가 고금을 통틀어도 유일한 사례일듯. 사실 항우와 경포의 대결이 직접 묘사되는것은 아니고, 전령과 장량의 대화를 통해 언급되는데 그 대화만으로도 경포의
포스가 어마어마하다.
그리고 시점 상으로 항우가 아직 완전히 패망하지는 않았지만 몰락하는 시점이라,
토사구팽을 당하는 모습은 묘사되지 않고 끝난다. 다만 이 작품의 경포는 "제후왕 씩이나 된 사람이 뭐가 부족해서 반란을 일으키냐?" 는 질문에
"황제 한번 해보고 싶었다, 임마!" 같은
패기로운 대답을 하는 실제 역사 속의 경포와는 달리,
"한나라를 도와서 내가 한신 같은 왕하고 비등하게 되었네. 내가 한나라를 돕지 않았다면 경형(黥刑) 받은 몸으로 어떻게 왕이 되었을까 ㅠㅠ" 할 정도로 비교적 소탈한 모습에, 유방의 은혜에 진심으로 감복하는 등 성격이 많이 달라 계속 전개가 되어도 미래가 달라질 수도 있을듯?
또 묘하게 경포와
용저(龍且)가 서로 앙숙으로 묘사된다.
첫댓글 영포가 항우와 일기토를 했다는 것은 처음 들어 보네요..
경극의 소재는 삼국지에서도 있고, 초한지에도 나오고 해서 무궁무진한 것 같아요.
여포와 유관장 삼형제의 결투하고 비슷한, 극적인 장치이지요...ㅋ
저거 보면 유방은 참 발을 자주 씻는것 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