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 / 제러미 리프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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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제러미 리프킨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어수선해지며, 그 변화를 다시 되돌리기는 너무도 힘들게 느껴진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엔트로피 법칙’이 자주 인용된다. 엔트로피 법칙은 자연현상에는 일정한 방향성이 있다는 경험적 사실에서 출발하였으며, “우주의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한다”는 것이다.
흔히 ‘무질서도’로 해석되는 엔트로피는 사람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다. 클로드 섀넌은 ‘정보 엔트로피’의 개념을 만들어 냈으며, 그 외에도 생물학, 경제학, 사회학, 정치학, 그리고 예술에 이르기까지 엔트로피의 개념과 법칙이 다양한 모습으로 인용되고 있다. 하지만 엔트로피가 원래의 엄격한 과학적 정의에서 벗어나 좀 더 폭넓게 적용될 때,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는 유용함과 함께 부적절한 해석을 통한 개념의 혼란과 부작용의 위험도 커지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엔트로피’는 사회비평가인 제러미 리프킨이 엔트로피 법칙의 개념을 원용하여 현대 물질문명을 비판한 저서이다. 리프킨은 엔트로피 법칙을 유용한 에너지가 감소하고 ‘사용 불가능한 에너지’가 증가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우리가 변화를 위하여 에너지와 물질을 계속 사용하게 되면, 궁극적으로는 에너지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는 ‘열 종말’과 사용할 물질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물질 혼돈’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천명한다.
기계론적인 세계관과 그 결과로 나타나는 물질만능주의와 과학만능주의는 더 이상 설 땅이 없다고 역설한다. 현재 우리는 산업 시대를 통하여 고에너지 사회를 지속해 온 결과로 화석연료의 고갈과 환경오염으로 인한 고엔트로피의 거대한 분수령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이제 막다른 기로에 서서 인류의 생존을 위하여 엔트로피에 기초한 새로운 세계관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리프킨은 다양한 분석과 논리전개의 근거로 엔트로피 법칙을 내세우고 있으나, 때로는 지나치게 자의적인 확대 해석으로 흐른 점이 아쉽다고 하겠다. 엔트로피 법칙이 제시하는 자연변화의 궁극적인 종착점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는 있다. 모든 유용한 에너지와 물질이 고갈된 무질서한 종말에 이르게 될 것인가, 아니면 일리야 프리고진 등의 주장처럼 혼돈으로부터 새로운 질서가 저절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다.
연일 급등하는 원유가를 걱정하며 급속한 자원의 고갈, 폭발적인 인구의 증가와 식량의 부족,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 등 우리를 둘러싼 문제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산업화 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 이행되는 변화의 시대에 무언가 혼란스럽고 방향을 잡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면, 리프킨의 경고와 그 의미를 나름대로 음미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엔트로피’는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며 생각해보아야 할 여러 가지 화두를 제시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인류발전을 위한 세계관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이 ‘인간성의 과학’, 그리고 ‘생태주의적’ 또는 ‘유기론적’ 패러다임을 강조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엔트로피 사회도 결국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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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러미 리프킨의 주장을 잠시 보면 엔트로피의 개념은 열에너지가 닫힌 고립계 안에서 높은 데로부터 낮은 곳으로 이동해 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열의 기체 분자가 질서의 상태에서 무질서의 상태로 이동해 가는 진행과정을 뜻한다. 이를 인간의 사회에 비쳐보면 사회라는 틀 안에서 질서라는 안정된 것에서 혼란으로 간다는 것을 말한다. 지금 인간의 사회는 이 엔트로피가 증가하고 있다. 즉, 무질서도가 증가하여 혼란이 증가하고 있다는 말이다. 엔트로피의 증가의 종착점은 지구의 종말이라고 그가 말하였다. 인간의 사회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무질서로 인한 혼란의 증가는 인간의 종말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우리는 이에 대해 대응하기 위해 무질서도가 증가하게 된 원인부터 알아보자.
우선 텔레비전, 컴퓨터 등의 여러 가지 대중매체로 인해 이것이 일어나는 듯하다. 텔레비전과 컴퓨터와 같은 예전에는 없었던 것들이다. 이는 인간의 편의를 제공하고 각종 많은 업무를 처리한다. 하지만, 이 기존에 없던 이 물체로 인해 우리 사회는 무질서도의 증가가 확장되었다. 여러 대중 매체를 통해 우리는 매일 매일 변하는 문화에 대해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우리는 그런 문화에 익숙해 졌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혼란에 빠져있는지도 모른 체 계속해서 이 대중매체들에 빠져들고 있다. 그로 인해 개인 각자는 그 정점에 달했을 때 예기치 못한 행동을 일으켜 사회에 큰 무리를 주는 수가 있다. 대중매체가 발달할수록 이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대중매체를 통한 무질서도는 대중매체의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자체의 성격에 의해 개인에게 그 것을 심어 준다. 우리가 보거나 듣는 대중매체는 단순하기 짝이 없다. 언제나 정해진 레파토리에 짜여져 있다. 이렇게 단순히 생각하고 우리는 웃고 즐기고 한다. 하지만 정작 그 화면 안에서는 수많은 것들이 계속 변한다. 이중에서 나의 가치관과 정체성을 건드리는 부분도 적지 않다. 이는 혼란이 오기에 충분한 조건이다. 즉, 나의 무질서도는 상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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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Entrophy)란 무엇인가?
에너지를 생각할 때 잊어서는 안 될 법칙이 두 가지 있다. 에너지는 두가지 법칙에 최종적으로 지배된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 첫째는 에너지란 절대 만들 수도 없고 또 없애버릴 수도 없다는 법칙이다. 사실 에너지는 빛에서 전기,그리고 열이라고 하는 형태는 때로 변하여 가지만 그 양은 전체적으로 보아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 이것은 보통 열역학 1 법칙이라든가 혹은 에너지가 늘 보존된다는 의미에서 에너지보존의 법칙이라고 한다. 여기서 에너지가 보존된다고 하는 것은 예를 들어 석유를 연소시킨다고 생각할 때 그 전후의 에너지 총량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즉, 태운 뒤의 열과 배기가스와 수증기에 포함되어 있는 에너지를 합하면 석유가 원래 가지고 있던 에너지와 같게 된다는 뜻이다. 배기가스와 수증기도 그 나름대로의 에너지를 갖고 있지만 문제는 이들을 아무리 모아보아도 이미 난방용으로는 쓸 수 없다는 것이다. 가령 같은 에너지량이라 할지라도 이들이 지닌 에너지는 어떤 의미에서는 사람이 일을 시키기 위해 두 번 다시 쓸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높은 곳에 있는 물은 그 높이에 해당하는 위치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물은 물레방아를 돌리고 물레방아의 운동에너지는 곡식을 빻는 유용한 에너지로 쓰여질 수 있다. 이때 물이 떨어지기 전이나 후의 에너지 양은 서로 같으나 떨어진 물은 에너지를 더 공급해 주지 않는 한 이제 더이상 유용하게 사용될 수 없다. 즉 에너지의 쓰레기(?)가 생기는 것이다. 에너지의 양은 같지만 왜 그렇게 되는 가를 설명하는 것이 열역학 2 법칙, 또는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라고 불리 우는 것이다.
이 법칙이 설명하고 있는 것은, 에너지란 자유로이 형태를 바꾸어 갈 수 있으며 변환시킬 수도 있지만 그때마다 반드시 어떤 대가를 치루지 않으면 안된다는 뜻이다. 이 대가란 앞서 말한 예에서처럼 본래 그 에너지가 가지고 있던 일 할 수 있는 능력, 즉 포텐셜(potential)의 포기라고 하는 것이다. 열역학에서는 이와 같이 일로 변환시킬 수 없는 양을 엔트로피라 정의하고 있다. 에너지를 변환시킬 때마다 엔트로피는 발생하며 그 총량은 증가해 간다는 말이 된다. 에너지를 그 만큼 많이 소비하면 공해에 부닥치고, 분별없는 과학의 남용은 엔트로피를 발생시켜 그 증가에 부딪치게 된다는 사실을 학생들에게 일깨워 줌은 생활의 지식이 아닌 지혜임을 깨닫게 하는 좋은 예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자원, 식량의 고갈은 과학에 의해 해결될지도 모르지만, 이것도 엔트로피 증가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